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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76화 (176/202)

귀환무관 176화

제갈선우는 광장에 묻어놓은 벽력탄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딸깍!

뭔가 잘못 건드렸는지 절대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가 벽력탄에서 들려왔다.

“아, 아직은 괜찮아. 문제없어. 막대를 제 위치에 돌려놓기만 하면…….”

제갈선우는 중얼거리면서 벽력탄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벽력탄에 꽂혀 있어야 할 쇠막대가 보이지를 않았다.

제갈선우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바닥에 쇠막대가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포, 폭발을 멈출 수가 없다니…….”

제갈선우는 눈앞이 컴컴해지면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다.

때마침 벽력탄의 내부에 있는 기계 장치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철컥!

만감이 교차하면서 제갈선우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도, 도망가야…….”

제갈선우가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위험하다고 말하며 사람들을 통제했는데도 구경하느라 남아 있는 자들이 굉장히 많이 존재했다.

거기다 그 통제를 하는 개방의 거지들마저 아직 주위에 많았다.

제갈선우의 얼굴이 석고상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내가 폭발을 몸으로 막아내면…….”

선천진기까지 끌어다 쓰면 그때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제갈선우는 잠시간의 생각 끝에 희생하기로 마음먹었다.

결정을 내려서일까?

제대로 돌아가지 않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갈선우는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피하시오! 도망가란 말이오! 내 말 안 들리시오? 벽력탄이 터지기 직전이란 말이오!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시오!”

처음에는 제갈선우의 말을 다들 믿지 않았다.

그가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제갈선우가 시뻘게진 얼굴로 목이 터져라 소리치는 걸 보고는 다들 진짜란 걸 깨달았다.

“꺄아아아악!”

“다들 도망가!”

“으아아아앙! 엄마!”

개방도들은 보기와는 다르게 의기가 대단했다.

그들은 곧장 도망치지 않고 질서 있게 사람들을 소개했다.

그때 멀리서 달려오던 백서휘가 그들을 보고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최대한 빨리 가야 돼!’

백서휘는 전력으로 응룡비천신법을 펼쳤다.

그가 도착한 현장엔 제갈선우가 두 눈을 감고 벽력탄을 들고 있었다.

“제갈선우! 그거 나한테 넘기고 다른 곳으로 가.”

“예?”

“나한테 넘기고 다른 곳으로 도망가라고!”

“제, 제가 희생을…….”

“고집 피우지 말고 어서 꺼져!”

뭔가 방법이 있을 거라 여긴 제갈선우는 백서휘에게 벽력탄을 넘기고 거리를 벌렸다.

백서휘는 곧장 묵룡갑을 진기로 강화하고 호신강기까지 둘렀다.

그 순간, 벽력탄 내부의 장치가 움직이며 내는 소리가 멈추었다.

철컥! 철컥! 철커덕!

‘온다!’

백서휘는 순식간에 강기 막을 만들어 벽력탄을 계속 둘러쌌다.

한 겹, 두 겹, 세 겹, 네 겹…….

열 겹이 막 되었을 때 벽력탄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소리는 컸지만 백서휘가 강기로 감싼 덕분에 사상자나 재산 피해는 없었다.

“……됐다.”

백서휘는 강기 막을 없애고 손에 끼는 수투 형태의 갑옷을 벗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로 급하게 막은 탓에 손바닥에 피가 철철 나고 있었다.

“묵룡갑에 호신강기까지 강화했는데 상처를 입다니…….”

무인도 아닌 자가 쓸 수 있는 무기가 현경의 경지에 오른 이가 펼친 공격과 위력이 비슷했다.

괜히 수호문의 선조들이 벽력문을 멸망시킨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 벽력탄, 아니, 정확히 말하면 특대 크기의 폭뢰신탄이지? 아무튼, 이건 너무 위력적이야.”

백서휘는 쓱쓱 피를 묵룡갑에 닦아내고는 다시 수투 형태의 갑옷을 손에 착용했다.

“벽력탄 건은 대충 보고 말려고 했는데 이래서는…….”

제갈선우를 마냥 믿고 맡기기엔 일이 너무 컸다.

제갈선우를 따라다니면서 같이 특대 크기의 폭뢰신탄을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을 내리기 무섭게 제갈선우가 쭈뼛쭈뼛 나타났다.

“괘,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아.”

“호, 혹시 위중한…….”

“아니, 그냥 손바닥 좀 까졌어.”

제갈선우는 백서휘를 괴물 보듯 바라봤다.

폭발음만큼 파괴력이 강했다면, 지금 광장은 물론이고 이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피해를 입은 사람도 없고, 건물들도 멀쩡했다.

“지금부터 너는 나랑 같이 다닌다.”

“……예.”

백서휘와 제갈선우는 장사 전역에 있는 폭뢰신탄을 모두 제거했다.

다행히도 폭뢰신탄이 터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가족들을 노린다는 놈들뿐인가.”

솔직한 심정으로 백서휘는 그들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놈들이 아직 장사에 남아 있다면 정상이 아니라고 봐야 했다.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도 알고 폭뢰신탄과 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사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도 봤을 텐데도 일을 그대로 진행한다?

그러면 작전을 맡은 책임자의 지능이 한참 떨어진다고 봐야 했다.

‘내가 부재중인 상황을 노려서 짠 작전일 테니 머리가 있다면 절대 진행 안 할 거야. 만약 진행하는 머저리가 있다면 그놈은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어야 돼.’

생각을 끝마치기 무섭게 무사들이 장원으로 달려오는 게 기감에 느껴졌다.

“머저리들…….”

백서휘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가는 수밖에 없겠네.”

황천익에게 가족들을 잘 지켜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오룡단과 함께 연무장으로 나갔다.

“이 머저리들아! 연무장으로 와라!”

백서휘는 내공을 담아 웬만한 천둥보다 더 크게 소리쳤다.

습격 작전의 현장 지휘관은 연무장을 피해서 가란 명령을 내렸다.

혼천회의 무인들은 그의 명령대로 연무장을 피해서 백서휘의 가족들에게 직행했다.

“곱게 죽여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하겠네.”

가족들을 고립시키고 납치하려고 했단 것에서부터 이미 백서휘는 화가 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혼천회 놈들이 말까지 들어 먹지를 않으니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가만두지 않겠어.”

백서휘가 질풍 같은 속도로 가족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음?”

문이 뭔가에 턱하고 걸린 것처럼 밀리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기감으로 안을 살펴보니 황천익과 가족들이 문과 창문을 가구로 막고 있었다.

‘잘하고 있군.’

가족들의 안전은 황천익을 믿고 있으면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싸울 준비를 하는데 오룡단이 달려오는 게 기감에 느껴졌다.

“느, 늦었습니다.”

자신이 너무 빨리 온 것이지 오룡단이 늦은 게 아니었다.

“빠르진 않지만 늦은 것도 아니야.”

“다음에 이런 일이 있거든 더 빠르게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혼내지 않았다는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걸까?

아니면 지금까지 했던 수련이 빛을 발한 걸까?

오룡단에게 느껴지는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오늘은 이들을 믿고 싸워도 되겠단 판단이 섰다.

일부러 검도 뽑지 않고 혼천회의 무인들을 기다렸다.

“으아아아아!”

혼천회의 무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다 백서휘를 보고 멈칫했다.

‘머저리들.’

절정 경지 이상의 고수들이 환술로 기세를 감춘 채 하수들 사이에 숨어 있었다.

이상한 건 그런 고수들과 붙어도 오룡단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놈들을 이만치 성장시켰단 사실이 뿌듯했다.

끓어오르던 분노가 사라지고 백서휘의 입가엔 미소가 그려졌다.

강하다는 걸 본인들도 느끼는지 오룡단은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혼천호의 무인들을 바라봤다.

“믿어도 되나?”

“됩니다!”

“저놈들을 다 끝장내고 와라.”

“예!”

이야기를 들은 현장 지휘관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부하들 따위로 우리를 어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백서휘는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게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심한 걸 후회하게 해주마. 돌격!”

“도, 돌격이요? 아직 흑백쌍노(黑白雙老)분들이 오지 않으셨습니다.”

현장 지휘관은 작전 책임자가 붙여준 보좌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했다.

“시끄럽다! 그분들 없이도 저놈들 죽이는 건 할 수 있어. 돌격해라! 돌격!”

“우아아아아!”

혼천회의 무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오룡단을 향해 달려갔다.

당기준이 잠광환허술을 써서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일월안으로 그를 보고 있는 제갈선우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우리도 가자! 돌격!”

모용진이 땅을 박차며 힘차게 뛰어가서는 몸통 박치기를 날렸다.

혼천회의 무인들이 강풍에 쓸려가는 낙엽처럼 이리저리로 날아갔다.

타격을 받지 않은 자들이 모용진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카카카카카캉!

“하하하하! 그런 허접한 공격으로는 나한테 상처 못 입힌다!”

적들의 관심이 모용진에게 끌렸을 때, 당기준이 나타났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보좌의 뒤였다.

보좌가 인기척을 느끼고 방어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목이 잘린 후였다.

쩌저저적!

보좌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자마자 당기준은 다시 잠광환허술을 써서 모습을 감추었다.

현장 지휘관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당황하고 있을 때 전장에서 굉음이 들렸다

콰아아앙!

뭔가 싶어 보니 아까는 없던 구멍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안에는 혼천회의 무인들이 산산이 조각난 채 죽어 있었다.

“남궁 동생! 황보 동생을 도와줘!”

본인 한계에 가까울 정도로 큰 기술을 쓴 탓에 황보정석이 힘들어했다.

일월안으로 그의 상태를 바로 알아차린 제갈선우는 가장 여유로운 남궁혁에게 명령을 내렸다.

파지지직!

전광이 일더니 한참 멀리 있던 남궁혁이 황보정석 앞에 나타났다.

그는 정신없이 움직이며 혼천회의 무인들을 학살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백서휘의 부하들이 이렇게 강하단 정보는 못 들었는데…….”

현장 지휘관이 어찌할 줄을 몰라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동안, 혼천회의 무인들은 죽어 나갔다.

두 사람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게 기감에 느껴졌다.

기세만 따지면 둘 모두 종리혁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누구지?’

의문을 품었을 때 노인 둘이 나타났다.

왼쪽에 있는 노인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오른쪽에 있는 노인은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이 똑같이 생겼어. 쌍둥이인가? 저 옷차림에 쌍둥이는…….’

현장 지휘관이 사기가 다시 올라 소리쳤다.

“흑백쌍노께서 오셨다!”

백서휘가 미간을 찌푸린 채

그가 아는 흑백쌍노는 전대의 고수로 합격술의 대가들이었다.

“우리가 뭘 하면 되느냐?”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현장 지휘관을 보며 물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여주십시오! 아군은 빼고요!”

“……불가능해. 저기에 우리보다 고수가 있다.”

“백노님! 지금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싸워야 하실 때입니다. 그게 본회와 쌍노님들과의 계약 아닙니까.”

흑노와 백노가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전장에 뛰어들었다.

“오룡단 물러나!”

제갈선우의 말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룡단은 뒤로 빠졌다.

불만을 표시하는 이가 없는 걸 보면 사전에 다섯 사람이 합의한 약속 같았다.

“도망가게 놔둘 것 같으냐!”

흑백쌍노가 오룡단에 무공을 펼치려고 했다.

‘염천, 균천, 현천! 그다음…… 경천신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백서휘가 경천신뢰 초식으로 흑백쌍노의 공격을 차단했다.

“공격하게 놔둘 것 같아?”

백서휘는 흑백쌍노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흑백쌍노는 공격하는 걸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서로 간에 말도 없었고 눈빛을 교환하지도 않았다.

그냥 생각이 서로 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까다롭겠어.’

흑백쌍노는 백서휘가 태어나기 전부터 초고수로 군림했던 자들이었다.

그 탓에 중원을 지키느라 수많은 전투를 치렀던 백서휘에 비견될 정도로 경험이 많았다.

‘그렇지만 못 이길 상대는 아니야. 오히려 내가 압도할 가능성이 크지.’

한 단계 이상의 경지 차이라면 흑백쌍노를 짓누를 수 있으리라 백서휘는 생각했다.

놀라운 건 흑백쌍노 역시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었다.

“우리 중 한 명이 죽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거라. 알아들었느냐?”

“아, 알겠습니다!”

현장 지휘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껏 조용히 살았으면 제자나 키우고 소일거리 하면서 얌전히 살지. 왜 여기까지 오고 그래.”

“……네가 말한 그 제자를 살리려고 여기로 왔다.”

흑백쌍노가 백서휘를 노려보며 합격술을 펼칠 자세를 잡았다.

“그 제자에게 못 돌아가게 해주지.”

백서휘가 검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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