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75화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만드는 소리가 들려오자 반가면을 쓴 자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영롱한 빛이 감도는 검이 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흡!”
반가면을 쓴 자는 숨을 참으면서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서로의 검이 맞부딪히자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일었다.
주변으로 퍼져나간 충격파는 건물 일부를 부서지며 잔해가 이쪽저쪽으로 날아갔다.
운이 좋게도 잔해는 사람들을 피해서 땅에 떨어졌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백서휘는 반가면을 쓴 자를 재차 공격했다.
그의 검이 허공에서 회천만일의 검로를 따라 움직였다.
강검의 묘리가 제대로 담긴 검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반가면을 쓴 자가 공격을 막기 위해 이를 악물고 검을 올려 쳤다.
쾅!
힘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해 반가면을 쓴 자는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우웩!”
피를 한 바가지 토한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검에서 들려선 안 되는 소리가 났다.
쩌저적!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가면을 쓴 자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검신을 살폈다.
“어, 어떻게……?”
딱 두 번 맞부딪혔는데 심각한 내상을 입고 검신에는 커다란 금이 갔다.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여태 혼천회에서 보낸 무인들이 왜 실패했는지 알 것 같았다.
“버틸 수 있는 건 한 번뿐인가.”
내상도 내상이지만 검에 금이 간 게 심각했다.
반가면을 쓴 자가 사용하는 무기는 무려 ‘백련정강’으로 만들어진 검이었다.
그런 귀한 검이 두 번 딱 공격을 나눴을 뿐인데 금이 가버렸다.
아무리 경지 차이가 있다지만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가면을 쓴 자는 시선을 검에서 백서휘 쪽으로 옮겼다.
백서휘는 호적수라든지, 난적(難敵)을 보는 눈빛을 하고 있지 않았다.
돌멩이를 보듯 무심하게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반가면을 쓴 자는 패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검은 한 번 더 부딪히면 부서질 테고 내상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경지 차이는 넘보지 못할 정도이니 답도 없고, 희망도 없었다.
반가면을 쓴 자는 깔끔하게 자결하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됐다.
“계속 응전하다가 잡혀서 고문당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무슨 소리냐?”
“네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게 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백서휘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반가면을 쓴 자는 결의에 찬 얼굴로 어금니의 독단을 깨물었다.
독단이 부서지며 나온 독기가 식도를 타고 위로 넘어갔다.
주르륵!
반가면을 쓴 자가 입에서 피를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직감한 백서휘가 궁신탄영의 수법으로 공간을 빠르게 좁혔다.
반가면을 쓴 자가 비틀거리다가 픽 하고 쓰러졌다.
“네 뜻대로 흘러가게 두지 않는다고?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백서휘는 독령을 이용해 반가면을 쓴 자의 몸에 흐르는 독기를 흡수했다.
『이건……!』
‘왜?’
『제겐 영약이나 다름없습니다.』
반가면을 쓴 자는 기절한 상태라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줄 모르고 있었다.
“경지가 높고 하는 행동을 보면 꽤 고위직 같은데…….”
고급 정보를 좀 많이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독령의 독기 흡수가 끝났다.
‘그냥 들고 가도 되지?’
『독기 흡수를 빠르게 한 덕분에 이놈 몸엔 큰 이상이 없어서 그냥 아무렇게나 들고 가도 됩니다.』
‘점혈해도 상관없다는 소리야?’
『예.』
백서휘는 반가면을 쓴 자의 훈혈을 점혈해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학무관으로 데려갔다.
학무관엔 임무를 맡겼던 오룡단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임무는 잘 수행했어?”
남궁민과 모용진만 고개를 끄덕이고 나머지 오룡단원은 낙심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이 흘린 피인지, 싸우다 묻은 적들의 피인지는 모르겠지만, 황보정석과 당기준의 옷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보지?”
“예.”
황보정석과 당기준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일인데?”
“상강에 적들이 잔뜩 있었습니다.”
“그들과 싸웠단 거야?”
“몰래 숨어 있던 게 들키는 바람에 독에 대해서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적들이 계속 지키고 있는 걸 보면 상강에 독을 풀고 있을 거야.”
“기만 전략일 수도 있잖습니까?”
“정, 고민되면 상강이랑 이어진 하천 같은 곳의 물을 떠다가 닭이나 쥐에게 먹여보면 되잖아.”
“아! 그러면 확실히 독이 중독됐는지 아닌지 알 수 있겠군요!”
“우물은…….”
“지현의 협조를 받아 사람들에게 우물물을 쓰지 말라고 이야기는 해뒀습니다. 그런데 불평하는 자들이 많아서 경고가 효과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그냥 놔둬. 경고까지 했는데도 먹어서 죽으면 그건 멍청해서 죽는 거니 자연사라고 보면 돼.”
백서휘의 시선이 제갈선우에게로 향했다.
“너는 어때?”
“벽력탄은 두 개밖에 못 찾았습니다.”
“해체는 했어?”
“해체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 장사 밖에 버리고 왔습니다.”
“몇 개를 설치했는지 모르니 이놈을 고문하는 수밖에 없겠네.”
“예.”
백서휘는 반가면을 쓴 자를 의자에 앉힌 후 마혈을 점혈하고 훈혈을 해혈했다.
반가면을 쓴 자가 신음을 내며 정신을 차렸다.
“여긴?”
“널 고문할 곳이다.”
“분명 독단을 깨물었는데 어찌…….”
“그까짓 독 해독하는 건 일도 아니니까 정신 차렸으면 알고 있는 거나 말해.”
“……네게 도움이 될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거다.”
“고문을 받아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한번 보자.”
백서휘는 반가면을 벗긴 후 산산조각 내버린 후 감각을 증폭시키는 약을 입에 넣었다.
반가면을 썼던 자는 동안이라기보다는 실제로 나이가 어린 건지 젖살이 남아 있었다.
“너어어 나한테에에 무슨 지스으을 하아안 거야아아! 이 소리이이…… 이 냄새애애…… 으아아악!”
백서휘는 반가면을 썼던 자가 내는 소리를 듣지 않고 혈도와 혈맥에 역의 성질이 담긴 기운을 주입했다.
“끄아아아악!”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어.”
“아아아아악──!”
“이름 말해 봐.”
“끄으으윽! 하, 하무진! 하무진이다. 이, 이걸 멈춰줘! 제바아아알!”
“내게 협조하겠다고 약속하면 멈춰주지.”
“혀, 협조하겠습니다.”
“좋아.”
백서휘는 하무진의 혈도와 혈맥에 흐르던 역의 기운을 회수했다.
“거짓말하면 넌 조금 전에 겪었던 고통을 또 당하는 거야.”
“아, 알겠습니다.”
“이번에 꾸민 음모에 대해 아는 거 다 털어놔 봐.”
“으, 음모라면……?”
“날 목표물로 삼고 꾸민 작전 말이야. 설마 모르는 척하면서 넘어가려는 건 아니지? 그때는…….”
“마, 말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시행하려던 작전은 매수한 사람들을 이용해 장사 전역에 설치해놓은 벽력탄을 터뜨리는 거였습니다.”
“설치해놓은 위치는?”
“마, 말로 설명하는 건 어렵습니다. 장사 전역이 그려진 지도가 필요합니다.”
“지도?”
제갈선우가 방을 뛰쳐나가더니 장사 전역이 그려진 지도를 구해왔다.
“지도 있다. 이제 말해.”
“지, 지도를 50칸으로 나눠서 구역을 표시해놔야 합니다.”
제갈선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도의 구역을 50개로 나누었다.
“불러.”
“삼오(三五), 칠이(七二), 팔육(八六)…….”
지도에 표시된 걸 보고는 백서휘는 욕밖에 하지 못했다.
“이 미친놈들……!”
지도에는 스무 개의 표시가 되어 있었다.
혼천회 놈들은 장사를 완전히 날려 버리려고 한 것 같았다.
“제갈선우! 개방이랑 하오문에게 알려서 벽력탄을 해체하고 와!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하오문이든 개방이든 벽력탄 빼돌렸다 걸리면 죽는다고 전해.”
“예!”
제갈선우가 지도를 들고 회의실로 뛰어나갔다.
“상강에 푼 독의 이름이랑 용량을 말해.”
“삼진사(三震死), 학령초(鶴靈草), 청살취충(靑殺臭蟲)을 4 대 3 대 3의 비율로 섞어서 만든 독이고, 하루에 한 말을 강에 풀고 있습니다.”
하무진의 설명을 듣는 당기준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웬만해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조차 화를 낼 만큼 혼천회가 미친 짓을 한 것 같았다.
백서휘가 당기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놈들 바로 죽지 않고 일주일을 앓다 죽게 하는 독을 만들었습니다.”
“그건 왜지?”
“친인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봐야 장사 사람들이 관주님과 관주님의 가족들을 더 많이 욕하고 성토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백서휘는 피부로 느껴졌다.
“……저놈들 계획대로 일주일 동안 상강이랑 우물에 독을 풀면 사람들이 얼마나 죽었을까?”
“못해도 장사 인구의 반은 죽었을 겁니다.”
“진짜로?”
“예.”
“이런 미친 새끼들.”
백서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무진에게 다가갔다.
“왜, 왜 가까이 오십니까? 저는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말했습니다.”
“아직 내게 말해 줄 게 남았잖아.”
“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무차별적으로 살인하려는 것도 있을 테고, 혼란스럽게 만든 후에 가족들 습격하려는 것도 있을 거고…… 그렇지?”
“아닙니다.”
“맞잖아!”
윽박지르자 겁을 먹은 하무진이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 마, 말씀드리겠습니다.”
백서휘는 하무진에게서 혼천회 소속 무인들이 집결하는 장소와 습격 시간에 관해 들었다.
역의 기운을 더 강하게 주입하면서까지 더 작전이 있는지 물었다.
“무, 무차별 살인을 지시한 적은 없습니다! 진짜 없어요! 아니, 그런 작전이 아예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차별 살인은 없다?”
“그, 그렇습니다! 지, 진짜로 이제는 더 숨기는 거 없습니다.”
“그렇겠지. 다 얘기했을 거 아니야.”
“관주님!”
남궁민이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왜?”
“이놈이 아직 말하지 않은 게 있습니다.”
“어떤 거?”
“혼천회에 대한 정보요.”
“아, 제일 중요한 걸 잊을 뻔했네. 고맙다.”
백서휘는 이제껏 주입했던 것의 세 배나 되는 역의 기운을 하무진에게 주입했다.
“혼천회랑 회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걸 다 말해 봐.”
“끄아아아아아악! 모, 모릅니다. 모, 몰라요. 사, 살려주십시오!”
“의지가 대단하네. 어디 끝까지 가서도 그러나 보자.”
역의 기운을 늘리는 바람에 근육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뼈가 산산이 조각나는데도 혼천회나 회주에 관한 정보를 말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데?”
지금처럼 고문하면 그 누구라도 진실을 토해낸다.
그런데도 말하지 않는 걸 보면 금제 같은 것이 걸린 게 틀림없었다.
백서휘는 중요한 정보 제공자인 하무진을 죽이지 않기 위해 황급히 역의 기운을 회수했다.
“지현께 사정 말하고 협조 구해서 이놈 감옥에 가두고 너희 둘이 지켜.”
“예!”
남궁혁과 모용진이 하무진을 데려갔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황보정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 시간 있으니까 상강부터 정리해야지.”
“관주님 가족들에게 습격 작전을 펼칠 놈들을 잡는 게 아니라요?”
“아직은 괜찮아.”
황천익도 있고 술법이 담긴 물건도 있으니, 가족들을 습격할 놈들은 나중에 처리해도 됐다.
“상강으로 가자.”
“예.”
백서휘는 상강에 있는 무인들을 죽이고 그들이 가진 독을 모두 독령으로 흡수했다.
그러고는 두 사람을 시켜 장사 전역에 있는 우물에 해독제를 넣게 하였다.
‘벽력탄 쪽도 확인해야겠어.’
하늘에 달이 떠오른 지 오래지만 움직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당장 내일이면 하무진에게 매수된 자들이 설치한 벽력탄을 터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벽력탄 건을 해결한 이후에 습격할 놈들을 잡아야겠다. 그래도 다 혼천회 소속이니 회주에 대해 아는 놈이 한 놈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