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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69화 (169/202)

귀환무관 169화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식탁 앞에 둘러앉았다.

‘몇 달 만에 다 함께 하는 식사인지 모르겠네.’

다들 바쁘기도 했거니와, 백서휘는 장사를 떠나 있기까지 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하는 이 ‘식사’라는 행위가 백서휘는 너무나 반가웠다.

‘좋구나.’

웃고 떠들며 식사를 하던 와중에 내일 바로 북경으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

백서휘의 탄식하는 소리가 장내를 가로질렀다.

백은하가 무슨 일이냐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또 어딜 가게 됐는데…….”

“어딜?”

“북경.”

“북경은 왜?”

“해야 할 일도 있고 겸사겸사 친한 사람들도 만나려고.”

백서휘는 금의위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고 황 씨 부자와 만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할 일이 뭔데?”

“그건 알려줄 수 없어.”

“왜?”

“걱정하게 될 테니까.”

다들 백서휘가 누군가와 싸우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이번엔 쉬운 상대니?”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그렇겠지.”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던 백서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진짜로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금의위 정도야 가뿐하거든.”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우염상이 입을 열었다.

“금의위랑 싸운다고? 설마 나 때문인 게냐?”

“어느 정도 연관이 있긴 하지만 우 노괴 때문에 그런 건 아니야.”

“내가 연관되어 있는데 나 때문이 아니라면 금의위에서 만든다는 그 무기가 문제인 모양이구나.”

“그 무기가 선을 좀 많이 넘었더라고. 그래서 내가 가는 거야.”

우염상이 침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따라가는 건 안 되겠지?”

“응, 안 돼.”

“발목 잡을 일은 없을 거야.”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때를 못 맞추면 심각해지는 일이라 최대한 빨리 가야 돼서 그러는 거야.”

“그렇구나…….”

장내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곳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지금 같은 분위기가 싫었던 백서휘는 먼저 일어나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어쩌지?”

백서휘가 팔짱을 낀 채 묵룡갑을 보며 입술을 비죽거렸다.

“가져가야 하나? 어차피 신순을 발동하면 모든 암기를 쳐낼 텐데? 음…….”

백서휘는 장고 끝에 결정을 내렸다.

북경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는 만큼 묵룡갑을 가져가든, 입고 가든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더 가져갈 건…… 딱히 없는 것 같네.”

일찍 잠자리에 든 백서휘는 새벽 나절에 일어나 장사를 떠났다.

* * *

백서휘는 세 개의 성을 가로지른 끝에 북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적 생각은 응룡비천신법을 쉬지 않고 펼치게 했다.

그 탓에 이전과 다르게 몸이 무겁고 삼단전 모두가 뻐근했다.

‘금의위에서 알아볼 수도 있으니 역용을 하는 게 좋겠어.’

북경은 금의위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어디에 얼마나 손을 뻗었을지 모르는 만큼 최대한 본래 얼굴은 내보이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백서휘는 천환역용공으로 어디에서나 볼 법한 얼굴로 변화시키고 북경에 들어갔다.

‘일단은 금의위 본영에 잠입해 볼까.’

마음을 먹자마자 백서휘는 철통 보안을 자랑하는 자금성의 담을 넘었다.

동창의 내시들을 다 죽인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는데 경비 동선이나 수준이 달라진 게 없었다.

‘다른 곳도 예전 같으면 쉽게 일을 끝낼 수 있겠어.’

은형잠종술을 쓴 백서휘는 수많은 전각을 지나쳐 금의위의 본영으로 향했다.

‘저긴가.’

창을 든 소기들이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안 들킬 자신이 있었던 백서휘는 그들을 그대로 지나쳐 본영에 들어갔다.

다들 본영이라고 마음을 놓은 건지 금의위들은 침입자가 들어올 거라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는 듯했다.

‘방심하지 않는 선에서 편하게 돌아다녀도 되겠어.’

한참을 돌아다니다 북진무사의 집무실을 발견했다.

백서휘는 집무실에 들어가 무기 개발과 관련된 문서가 있는지 찾아봤다.

‘이럴 리가 없는데? 왜 아무것도 없는 거지?’

극비리에 진행 중이라 그런 건지 무기 개발과 관련된 문서가 하나도 없었다.

‘음?’

기감에 화경의 경지에 막 오른 듯한 무인과 그보다 훨씬 떨어지는 무인이 이리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혹시 모르니까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몰래 이야기를 듣는 게 낫겠어.’

백서휘는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후, 열었던 창문을 다시 닫았다.

그리고 전각의 지붕 위로 올라가 청각을 증폭시켰다.

드르륵!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두 명의 무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가장 강한 무인이 북진무사의 전용 의자에 앉고, 그보다 훨씬 약한 무인이 그의 앞에 섰다.

“폐관 수련하는 동안 있었던 일들 다 보고 해봐.”

북진무사가 매서운 눈으로 천호(千户)를 노려봤다.

“오면서 말씀드렸지만, 연구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부족한 건 없나?”

“폐하께서 몰래 지원해 주신 것도 있고, ‘그곳’에서 성심성의껏 지원해 준 것도 있어서 부족한 건 없습니다.”

“다행이군.”

“문제는 최고 수준의 암기를 만들려면 필요한 사람이 있는데…….”

“필요한 사람? 화령철장 우염상을 말하는 건가?”

“그 우염상을 잡으러 간 자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보고도 올라오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는 걸 보면…….”

“죽었겠군.”

북진무사는 부하가 죽었는데도 무감정한 모습을 보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으니…….”

“수색 인원을 파견하자는 건가?”

“예.”

“소수의 인원만 따로 파견해서 수색하는 쪽으로 진행해 봐. 그리고 화령철장은 포기하고.”

“화령철장은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바로 조금 전에 연구 개발은 잘 진행되고 있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그러면 화령철장은 필요 없는 것 아닌가?”

“화령철장이 필요한 연구는 아직 시작도 안 해서 그렇습니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연구야. 화경의 무인을 죽이는 건 불가능해.”

“불가능하다던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무인도 죽였습니다. 무기 개발에 성공하기만 하면 화경의 무인도 죽일 수 있다고 봅니다.”

“초절정 경지의 무인과 화경의 무인은 하늘과 땅만큼 격차가 있다. 그런데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더 빠르고 강한 암기면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용기 있는 천호의 말에 북진무사는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화령철장을 데려오는 데 몇 명이나 필요하지?”

“다섯 명이 당했으니 그 두 배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열다섯 명을 보내.”

“알겠습니다.”

“보고할 게 남았나?”

“아니요. 없습니다.”

“그럼, 나가 봐.”

정보를 캘 만큼 캤다고 생각한 백서휘는 자금성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자금과 인력을 지원해 준 곳이 어딘지 찾아야겠어.’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는 일은 금와전장만큼 잘하는 곳이 없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수호문을 도와 일한 덕분이었다.

‘노인네한테 도움을 요청해야겠어.’

백서휘는 금와전장의 주인인 황일승과 황석준이 머무는 황가장으로 갔다.

이번에도 역시 자금성에서처럼 담을 넘어 잠입했다.

황가장의 식구들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조심하면 할수록 좋았다.

‘노인네는 집무실에 있겠지.’

다른 사람들은 소일거리나 하는 나이에 황일승은 아주 정력적으로 일을 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황일승은 서류를 들여다보며 주판으로 열심히 계산 중이었다.

‘근처에 하인이 없으니 대놓고 들어가도 되겠는데?’

백서휘는 은형잠종술과 천환역용공을 풀고 집무실의 문을 옆으로 밀었다.

드르륵!

황일승이 자연스럽게 소리가 난 문 쪽을 바라봤다.

“허어억! 너는……!”

“뭘 그렇게 놀래.”

“갑자기 문이 열리길래 귀신인 줄 알았다.”

“노인네한테는 그냥 귀신보다는 저승사자 쪽이 더 가깝지 않아?”

“이놈이 뚫린 입이라고 막말을 하는구나.”

“하하!”

백서휘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만 웃고 이번엔 또 뭐 때문에 북경을 찾았는지나 말해라.”

“노인네랑 석준이 보고 싶어서 왔지.”

“이놈아!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해.”

“그렇게 티가 나나?”

백서휘는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아주 잘 난다.”

“이상하네. 다른 사람들은 내가 거짓말해도 못 알아차리던데.”

“내가 사람 상대한 게 몇 년인데 그걸 모르겠어. 거기다 너는 내…… 아니다. 찾아온 용건이나 말해. 또 무슨 부탁을 하려고 온 거야?”

“예전 일의 연장선이야.”

“예전 일이라면…… 동창이 또 사고를 친 거냐?”

“아니.”

“그럼 누가 또 사고를…… 설마, 금의위?”

백서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네가 움직여야 하는 일이 계속 생기는 걸 보면 네 팔자도 보통 팔자가 아닌 것 같다.

“보통 팔자였으면 노인네를 만나보기나 했겠어? 대금와전장의 주인이라 아마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걸.”

“금와전장의 주인은 이제 내가 아니다.”

“그럼 누가 주인인데?”

“우리 집안에 나를 제외하면 전장의 주인이 될 만한 사람이 누가 있겠어.”

“설마…….”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다. 석준이한테 다 물려줬다.”

“그놈이 그럴 능력이 돼?”

“능력이 되니까 물려줬지.”

“허!”

“이번에 네가 부탁할 일도 내가 아니라 석준이에게 하면 된다.”

“그럼 지금 석준이한테 가도 되나?”

“얼마든지.”

백서휘는 황일승에게 나중에 보자는 말을 전한 후 황석준에게로 갔다.

피가 어디로 가는 게 아닌지 자신을 본 황석준은 황일승과 똑같이 반응했다.

“사람 놀라게 좀 하지 마. 이럴 때마다 수명이 1년씩 줄어드는 것 같단 말이야.”

“다음부턴 유의할게.”

“이번엔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백서휘는 황일승에게 했던 이야기와 못다 한 이야기를 합쳐서 황석준에게 해주었다.

“……그럼 네 부탁은 그 연구 자금과 인력을 지원해 주는 정체 모를 단체를 추적해달라는 거야?”

“어.”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뭐 하러 이렇게 빙빙 돌려서 말해.”

“상황을 알고 추적하는 것과 모르고 추적하는 건 다르잖아.”

“그렇긴 하지.”

“지금부터 조사를 시작하면 결과는 언제쯤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황석준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일주일 정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일주일이나? 더 빨리는 안 돼?”

“너도 알겠지만 숨어 있는 놈들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백서휘는 간절한 눈빛을 황석준에게 보냈다.

“후~ 좋아, 닷새까지는 줄여볼게. 이 이상은 안 돼.”

“고맙다. 너밖에 없어.”

“결과는 어떻게 받을래?”

“여기서 가장 가까운 객잔에 머물 테니까 결과가 나오면 그쪽으로 사람을 보내. 보내는 사람한테는 대막적호 금운학을 찾으라고 하면 될 거야.”

“왜 가명을 쓰는 거야? 설마 우리 쪽 사람을 못 믿어서?”

“혹시 모르잖아.”

“내 밑에 있는 사람은 다 믿을 만하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금의위 놈들이 목덜미에 칼을 들이밀어도?”

백서휘가 목소리에 살기를 살짝 섞어 말했다.

“그건…… 알았어. 네 뜻대로 할게.”

“너도 조심해. 금의위에서 너랑 노인네를 예의주시하고 있을 테니까.”

“우리를 예의주시한다고?”

“북경에서 내가 도움받을 곳이 여기랑 하오문밖에 더 있어? 아마 사람 심어놓고 은밀히 지켜보고 있을 거야.”

“조심스럽게 추적해야겠네.”

“위험할 것 같으면 뒷일은 나한테 맡기고 그냥 포기해. 알았어?”

백서휘는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황석준을 바라봤다.

“포기는 좀…….”

“하라면 해.”

“알았어.”

“난 이만 간다.”

“잘 가. 멀리 안 나간다.”

“바라지도 않아.”

백서휘는 다시 담을 넘어 황가장에서가 가장 가까운 객잔에 방을 잡았다.

이로부터 닷새가 흘렀을 때, 황석준이 인피면구를 쓰고 그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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