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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70화 (170/202)

귀환무관 170화

“대막적호 금운학 대협의 방이 어딘지 아십니까?”

인피면구를 쓴 황석준이 객잔 주인에게 물었다.

객잔 주인은 그의 전신을 훑어보더니,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리켰다.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보이는 방에 있소.”

“고맙습니다.”

황석준은 객잔 주인에게 철전을 던져주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방 안에 있던 백서휘는 걸음 소리를 듣고 지금 오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석준이가 여길 왜 온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밖에서 종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띠리리링!

백서휘는 문을 열고 황석준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황석준이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와서는 바닥에 앉았다.

“인피면구는 왜 낀 거야?”

“……어떻게 알았어? 목소리 때문에 들킬까 싶어서 아직 말 한마디를 안 했는데.”

“역용한 거랑 다르게 인피면구는 인위적인 면이 있어서 눈썰미 좋으면 알아보기가 쉬워.”

“그렇구나.”

“나 놀라게 하려고 인피면구를 낀 것 같지는 않고…… 금와전장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전장에는 문제가 없어.”

“그럼 뭐 때문에 낀 건데?”

“자금 흐름을 추적해서 나온 사람들이 너무 거물이라서.”

“도대체 얼마나 거물이길래 대금와전장의 주인이 이렇게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거야?”

“그냥 거물이 아니라 거물‘들’이야.”

“여러 명이란 소리야?”

황석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누군데?”

“가장 거물은 왕진이고 그다음이 오지서, 그다음이 구의진.”

하나같이 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황석준이 언급한 자들이 얼마나 거물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뭐 하는 사람들인데?”

“왕진은 황제 폐하를 태자 시절부터 가르친 글 스승이자 제일가는 충신이고, 오지서는 우리랑 경쟁하는 적송전장의 전주(錢主), 구의진은 청연상단의 대방이야.”

“그 사람들이 무기 개발하는데 필요한 걸 대고 있다는 거야?”

“그래.”

“왜?”

“셋 다 공통점이 있어. 무림인에게 자식을 잃었다는.”

“제기랄! 혈루단 같은 게 놈들인가 보네.”

“혈루단? 그게 뭔데?”

“무림인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이 복수하려고 만든 단체야. 이전 무림맹주였던 하백상이 소속되어 있었었지.”

“모임의 성격은 비슷한 것 같네.”

“그럼 그자들도 무림의 파멸을 원하는 거야?”

“그건 나도 모르겠어. 내가 아는 건 왕진이 인력을, 오지서가 자금을, 구의진이 필요한 재료들을 대고 있다는 거랑 무기 개발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의 대략적인 위치뿐이야.”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의 위치를 알려주고 너랑 노인네는 잠깐 숨어 있어.”

“숨어 있으라고? 왜?”

“네가 말한 자들이 진짜 거물이라면 너나 노인네가 위험해질 거야.”

“음…… 알았어. 일 끝날 때까지만 숨어 있을게.”

황석준은 무기 개발이 이루어지는 곳의 위치를 대강 알려주고 객잔을 떠났다.

“밤에 움직여야겠어.”

백서휘는 하오문을 통해 왕진, 오지서, 구의진이 사는 곳의 위치를 알아낸 후 밤이 될 때까지 방에 있었다.

‘먼저 갈 곳은 연구소다.’

백서휘는 연구 인력들을 죽이고, 자료들을 깡그리 없애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천지회랑 동창에게 한 것처럼 싹 다 죽이고 연구 자료를 없애면 되겠지. 세 사람이랑 금의위에게 죄를 묻는 건 이후에 하고…….’

행동 방향을 대강 결정했으니 이제 준비를 할 때였다.

백서휘는 묵룡갑을 입고 검을 챙겨 객잔 밖으로 나왔다.

특이한 모양의 갑옷에 사람들의 이목이 주목됐다.

유명세를 바라지 않던 백서휘는 빠르게 북경을 떠나 비밀 연구소가 있는 소오태산(小五台山)으로 향했다.

* * *

‘저 산 어딘가에 무기 개발이 이루어지는 곳이 있다는 건데…….’

금의위와 황군이 민간인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걸 보면 산에 뭔가가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이렇게 보니 석준이 능력이 되게 좋구나. 노인네가 전장을 물려준 이유가 있어.’

여유가 없어서 닷새밖에 시간을 못 줬다.

그런데 황석준은 그 짧은 시간 안에 무기 개발이 이루어지는 곳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냈다.

이건 젊은 시절의 황일승도 불가능한 일이라 백서휘는 확신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알아낸 거지? 자금 흐름만으로는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일 텐데…….’

나중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백서휘는 은형잠종술을 펼쳤다.

금의위와 황군은 바로 앞에 그가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냥 지나쳐가는 놈들을 속으로 비웃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진짜 사활을 걸었나 보네.’

경비 동선이 황제가 있는 자금성보다 촘촘하게 짜여 있었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이만큼 오는 것이 불가능했을 정도로 빡빡했다.

거기다 소오태산 전체에 금의위와 황군들을 풀어놓아서 경비 동선만으로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의 위치를 유추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탕탕탕탕!

산을 빙 둘러 돌아다니는데 어디서 콩 볶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다 잘해놓고 여기서 망치네.’

진짜 바로 조금 전까지 뭐 빠지게 산속을 돌아다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소리로 실마리를 쥐여줄 줄이야.

생각지 못했던 행운이 닥치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소리가 커.’

귀청을 찢어놓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리가 컸다.

이 말은 지근거리에서 무기를 시험하는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가볼까?’

백서휘는 콩 볶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뭐 하는 거지?’

일꾼으로 보이는 자가 잡담을 나누며 암기를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나씩 골라서는 나무로 만든 사람 모형에 암기를 사용했다.

탕!

요란한 소리와 다르게 암기에서 나온 침은 나무 인형을 꿰뚫지 못했다.

“불량!”

외치는 소리를 들은 후에야 뭘 하는지 알게 되었다.

저들은 지금 양품과 불량품을 구별하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탕!

“끄아아아!”

제대로 나무 인형을 겨누고 격발했으나 손에서 암기가 터져 버리고 말았다.

불량품을 찾던 일꾼은 너덜너덜해진 손을 붙잡은 채로 울부짖었다.

“으아아아악!”

동료들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의, 의방에 데려가야 돼!”

“여기 의방이 어딨다고 그래!”

“북경으로 가면?”

“미쳤어?”

그때 순찰하던 금의위 하나가 일꾼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와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도, 동료가 다쳤습니다. 북경에 있는 의방에 가야 합니다.”

“다쳤다고? 누가?”

“이, 이 친구가…….”

금의위는 불량품을 고르다 다친 일꾼의 목을 베어 버려다.

스각!

일꾼의 목은 원통한 눈빛을 한 채 바닥을 굴러다녔다.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불량품을 고르던 일꾼들은 그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못했다.

“이제 문제없지?”

금의위가 한 명, 한 명에게 눈을 맞추었다.

일꾼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하던 일 계속해.”

“……네.”

금의위는 다시 순찰하러 떠났다.

일꾼들은 잡담 따윈 하지 않고 자기 일을 충실히 하였다.

백서휘는 무림을 통제할 무기를 개발하는데 어째서 소문 하나 나지 않았던 건지 알아차렸다.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면 금의위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기에 그런 것이었다.

‘무기를 개발하는 장인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하는 일꾼들은 파리 목숨보다도 못한 것 같네.’

백서휘는 속으로 혀를 차며 양품과 불량품을 구별하는 일이 끝나기를 바랐다.

사고 이후로 열심히 자기 할 일들만 한 덕분일까?

양품과 불량품을 구분하는 일은 백서휘의 예상보다 빠르게 끝이 났다.

“……일 다 끝났으니 돌아가자.”

“장칠은 어쩌고?”

“데려가봤자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이미 죽은 데다 장례를 치러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네.”

“두고 가자. 그러면 다른 사람이 와서 치우든, 화장을 시키든 할 거야.”

“그래…….”

일꾼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힘겹게 떼며 양품을 가지고 떠났다.

백서휘는 은밀히 그들의 뒤에 따라붙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

되도록 양품을 모아두는 창고나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이 목적지이기를 바랐다.

‘운이 좋네.’

일꾼들은 거대한 건물이 여러 개 있는 곳으로 왔다.

미적 감각이 조금도 없이 그냥 단순하게 지은 걸 보면 창고인 듯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꾼들이 건물의 문을 여니 창고에는 그득그득 암기가 쌓여 있었다.

백서휘는 연구 인력과 자료들을 없앤 다음에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와 불을 지르리라 결심했다.

‘이제 어딜 가려나. 숙소?’

일꾼들은 터덜터덜한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금의위와 황군이 철통으로 지키는 동굴이었다.

황군도 황군이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다른 금의위와 근육의 발달 정도나 기세, 눈빛 등이 달랐다.

여태 봐왔던 자중 가장 강한 자들을 여기에 박아둔 걸 보면 소오태산의 최중요시설은 이곳 같았다.

‘그 말은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이란 뜻이지.’

백서휘는 일꾼에게 붙어 동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군.’

백서휘는 동굴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사실은 이곳을 파괴하면 황제와 세 사람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란 것이었다.

그만큼 이곳의 규모는 방대하고 전문적이었다.

‘청소를 시작해 볼까.’

백서휘는 천지회 잔당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출입구를 부숴 이곳의 인간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쿠구구궁!

마지막 출입구가 막히는 걸 확인한 후 백서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가 향한 곳은 연구 개발에 참여한 장인들이 있는 곳이었다.

확실하게 기술이 있는 자들이어서 그런지 일꾼들과는 일하는 환경부터가 달랐다.

‘일하는 것도 오늘까지지.’

쐐애애액!

검이 이쪽저 쪽으로 날아다니며 장인들의 목을 베고 가슴을 꿰뚫었다.

무공도 모르는 자들을 학살한다는 게 꺼림칙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들을 죽이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게 되니…….’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이지만 그대로 놔두면 탄압이 시작될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장인 중 몇몇이 백서휘를 향해 가지고 있던 암기를 겨누었다.

탕!

격발음이 들리며 암기에서 튀어나온 장침이 백서휘를 노렸다.

‘묵룡갑의 성능을 시험해 볼까?’

백서휘는 일부러 ‘신순’도 발동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걸 본 장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캉!

장침은 날아오던 속도 그대로 튕겨 나가 땅에 떨어졌다.

장인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마, 말도 안 돼. 어찌 갑옷 따위로 이 암기를…….”

“그냥 갑옷이 아니라 만년한철과 운철을 섞어 만든 거거든.”

사실을 듣게 되니 장인의 얼굴에 진한 절망이 드리워졌다.

‘만년한철과 운철이 섞이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보네.’

눈앞의 장인은 화령철장이라 불리는 우염상만 못해도 지식과 경험이 엄청난 것 같았다.

‘그래도 죽어야지.’

백서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장인의 머리를 향해 지풍을 날렸다.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장인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다 죽었나?’

기감을 발동해 죽은 척하는 자가 있는지 확인해 봤다.

‘다 죽인 거 맞네.’

백서휘는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검이 빠른 속도로 날아와 그의 손에 안착했다.

“이제 다음 장소로 가볼까.”

백서휘는 연구 시설에 있는 자들을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침착하게 죽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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