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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12화 (112/202)

귀환무관 112화

다음 날.

작전에 참여하는 인원들은 인시초(寅時初, 오전 3시~4시)부터 모였다.

남궁유운은 남궁민과 서로의 눈치를 보며 어색해했다.

‘빨리 따로 떨어지게 해야겠어.’

백서휘는 작전 참여 인원들에게 행동 지침과 주의 사항만 얘기해 주고 각자 알아서 잡아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흩어져!”

“네!”

백서휘는 장사에서 제일 높은 건물에 올라가 여덟 명을 지켜봤다.

계속 보다가 혹시라도 밀리는 곳이 나오면 지원하러 갈 생각이었다.

‘운학은 벌써 조우했군.’

고용주로 추정되는 이는 등짝에 건(乾)이라고 적힌 옷을 입고 운학을 상대했다.

운학은 연분홍빛 검기가 일렁이는 검을 휘두르며 기회를 엿봤다.

건의 남자가 당황하여 마구잡이로 검을 내질렀다.

‘승기를 잡았군.’

운학은 교묘하게 빈틈을 파고들어서는 검면(劍面)으로 건의 남자를 후려쳤다.

검면에 정통으로 맞은 건의 남자가 기절했다.

‘모용진을 빼면 다들 고용주란 놈들을 잡아가는 분위기야.’

백서휘는 모용진이 싸우는 걸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돌격해서 때려잡으면 되는 일을 왜 저렇게 어렵게 돌아가는 거지? 경지도 본인이 더 높잖아?”

금강거력신이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다 보니 모용진은 용기 있게 달려들지 못했다.

“도와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백서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모용진이 상대하는 곤(坤)의 남자가 가진 무력으로는 거력금강신을 뚫는 게 불가능했다.

갑자기 고수가 튀어나오지 않는 한 죽을 일이 없으니 수련 차원에서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지켜보겠단 생각으로 시각을 한계까지 증폭했다.

“저걸 저기서 저러면…… 하아~”

모용진이 상대의 움직임을 잘못 예측하는 바람에 곤의 남자에게 절호의 기회를 주고 말았다.

“하하하하! 죽어라!”

곤의 남자는 넓게 열어버린 모용진의 가슴에 검을 찔렀다.

죽음을 예감한 모용진이 눈을 질끈 감으며 장사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혜주 소저!!!”

피육과 검이 맞닿았는데 쇠와 쇠가 부딪힐 때 날법한 소리가 났다.

“응?”

당황스러웠던 곤의 남자가 베고 찌르고 별 지랄을 다 했지만, 모용진의 몸에 생채기 하나 만들지 못했다.

“왜 가슴이랑 배가 간지럽지? 저승 갈 땐 다 이러나?”

모용진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앞을 보니 곤의 남자가 모용진을 베고, 찌르고, 후려치고 있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으란 말이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설마 혜주 소저가 날 구해준…… 아! 거력금강신!”

뒤늦게 공능을 떠올린 모용진이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넌 이제 죽었다.”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모용진으로서는 더 꾸물거릴 이유가 없었다.

“너! 때문에! 혜주 소저도! 다시 못 보고! 죽을 뻔! 했잖아!”

모용진은 말을 하며 주먹을 끊어 쳤다.

거력이 담긴 그의 주먹질에 곤의 남자는 계속 뒤로 밀려났다.

“뭐야, 저 새끼 주먹질은 왜 이렇게 잘해?”

백서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권법이라고는 일 초 반 식도 안 배운 것 같은데 모용진의 주먹질은 일품이었다.

“저놈은 도대체 왜 검을 배운 거지?”

모용진은 주먹에 집중했다면 어린 나이에 성(城)을 대표하는 무인이 될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제대로 써먹으려면 주먹질을 가르쳐야겠어.”

백서휘가 어떤 권법을 가르칠까 고민하는 사이, 작전 참여 인원들이 연무장에 속속 돌아왔다.

“이런, 가르칠 권법을 고르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네.”

백서휘는 바로 학무관의 연무장으로 돌아갔다.

연무장에는 남궁혁과 남궁유운이 말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씨발! 방계는 사람 아니야? 왜 무시하는데? 타지에서 가문 사람 만난 거면 친절히 대해줄 수도 있잖아?”

“아니, 내가 조금 전에 친절히 말해 줬잖아. 같은 가문이라고 해서 꼭 친해야 하는 법은 없으니까, 그냥 서로 없는 사람 취급하자고.”

남궁유운이 한기가 느껴지는 말투로 말했다.

남궁혁이 피가 안 통할 정도로 세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너는 성만 ‘남궁 씨’잖아? 냉정하게 말하면 연을 완전히 끊었으니 같은 가문이 아니지. 이게 무슨 소리인 줄 알아? 너랑 나랑은 이제 직계, 방계 구별도 없이 그냥 ‘남남’이란 소리야.”

“남남이면 더 예의를 지켜줘야지! 그게 사람 도리 아냐?”

“예의도 지킬 상황에서나 지키는 거지. 피곤해 죽을 것 같은 사람한테 와서 인사하면 뭐 ‘얼싸안고 아이고 좋아라’도 할 줄 알았어?”

“할 수 있지!”

“그건 네 입장이고. 나는 너랑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 네가 친 사고 때문에 나까지 피해 본 것도 있고, 아, 됐다! 더는 말 걸지 마. 짜증 나니까. 이래서 안 마주치려고 했는데. 에휴~”

남궁혁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관주님께 인사하고 바로 가든가 해야지. 언제…… 어라? 언제 오셨어요?”

“좀 전에 왔다.”

백서휘는 남궁혁과 남궁유운을 번갈아 가며 봤다.

“참고로 말하는데 저는 싸울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다 저놈이랑 관……. 아니, 아무튼 저놈 잘못이에요.”

“뭐가 문제인 건데?”

“어제 생각이 많아서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습니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오랜만에 칼춤까지 췄더니 피곤하기도 하고 저놈이랑은 엮이는 게 싫어서 가만히 그냥 있었어요.”

“가만히 있었는데 왜 싸움이 나?”

“저놈이 갑자기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대충 반응해 줬더니 제대로 반응해달라고 길길이 날뛰는데…… 에휴~ 친절하게 계속 말을 해주는데도 못 알아듣고…….”

“사실이야?”

백서휘가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눈으로 남궁혁을 바라봤다.

“그냥 같은 가문 사람이니까 반가워서 인사한 건데, 그걸 무시하니까 제가 빡돌잖아요.”

“일단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같은 가문이란 건 틀렸어. 그리고 내가 언제 인사를 무시했어. 고개 까딱거려줬잖아.”

남궁유운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아주 잔뜩 섞여 있었다.

“친절히 대해 줄 수는 없었나?”

“저놈이 사고 치는 걸 본 입장에서는 살갑게 대하기 힘들어요.”

“사고?”

“그건 저놈한테 물으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관주님 봤으니 이만 들어가 볼게요.”

남궁유운이 백서휘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연무장에서 사라졌다.

“사고에 대한 건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그때 듣겠다.”

“네…….”

백서휘는 고용주란 놈들을 하나하나 깨워서 정보를 모았다.

“그 암상이 세웠다는 그 순환형 돈벌이 계획 좀 물어보자. 첫 번째 단계가 빙독이 든 단환으로 중독자를 양산하는 거 맞아?”

“마, 맞습니다.”

“두 번째 단계가 중독자들에게서 끝까지 돈을 뽑아내는 거고?”

“마, 맞습니다.”

“세 번째 단계가…….”

“중독자들에게서 선천진기를 갈취하는 겁니다.”

“그다음은?”

“선천진기를 담아서 특별한 단환을 만듭니다.”

“그다음은?”

“파, 팝니다.”

“누구한테?”

“저, 절반은 어떤 곳에 상납하는데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모릅니다. 그냥 이곳에서 빙독을 공급받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어디다 쓰는데?”

“고관대작들과 부자들에게 팝니다.”

“단환을 판다고? 효과가 어떤데?”

“노, 노화를 거스를 수 있습니다.”

믿기지 않는 말에 백서휘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

“뭐? 자세히 설명해 봐.”

“사, 사람마다 다릅니다만, 적게는 3년에서 많게는 10년까지 젊어질 수 있습니다.”

“그대로 영원히 유지되는 거야?”

“유, 유지하려면 계속 단환을 먹어야 합니다.”

“부자들 돈을 엄청나게 뜯어냈겠군.”

“네.”

“이게 호남성에서만 일어나는 일인가?”

“그,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 말해놓고 이제 와서 뒤로 빼는 건 좋지 않아. 이러면 분근착골을 또 걸 수밖에 없다고.”

백서휘는 말을 하면서 살기를 유형화시켰다.

“저, 정말 모릅니다. 이것 이상의 정보는 지부장님만 알고 있어요.”

“지부장 위치랑 단환 만드는 공방 위치를 말해.”

“두, 둘이 같습니다.”

“그건 좋군. 어디지?”

“대장간 거리 가기 직전에 있는 붉은 굴뚝이 있는 집입니다.”

백서휘는 오룡단에게 잡아 온 놈들을 모두 죽이란 명령을 내리고 연무장을 떠났다.

‘계속 거기 있어라! 제발!’

한 명도 빠짐없이 연락이 안 되는 걸 이상하게 느껴 잠적했다면 지금보다 고생을 더 해야 한다.

그것이 싫었던 백서휘는 제발 그 붉은 굴뚝이 있는 집에 지부장이 있기를 기도했다.

응룡비천신법을 전력으로 펼친 덕에 빠르게 목표했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긴가.’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이지만 여러 가지 기관진식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뚫고가려고 발을 내디디는 순간, 대문이 열리면서 암상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나왔다.

암상은 자기 몸만큼이나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다.

“부하들이 연락이 안 되는데 구출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도주를 해?”

바쁘게 걸어가던 암상이 멈춰 서서 고개를 슬쩍 돌려봤다.

“헉! 배, 백서휘?”

“나를 알아?”

암상을 무조건 잡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도, 도망가야 돼.”

암상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신법을 펼쳤다.

‘어떻게 안 거지? 암상이면 하오문이랑 거래를 자주해서 안 건가?’

의문을 품은 백서휘는 응룡비천신법으로 암상에게 따라붙었다.

거리가 좁혀지자마자 그는 암상을 향해 지풍을 날렸다.

암상 본인은 곡예에 가까운 몸놀림으로 지풍을 피하는데 성공했지만 배낭은 그렇지 못했다.

어깨끈이 끊어지면서 배낭이 떨어졌다.

암상은 배낭을 다시 주워갈까 말까 아주 잠시 고민했다가 도주하는 걸 선택했다.

백서휘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한 손으로 지풍을 날렸다.

휙휙휙휙휙!

암상이 보법을 밟으며 피한 후 품속에서 연막탄을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 땅에 던졌다.

순식간에 연기가 퍼지며 암상의 모습이 감춰졌다.

암상은 은잠술을 펼쳐서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이동하는데 연막 너머에서 사람 형상의 윤곽이 보였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시나?”

더는 방법이 없다고 느낀 암상은 연막 속에서 다량의 암기를 날렸다.

기사(氣絲)가 휘감긴 암기들이 만천화우처럼 빼곡하게 공간을 점유하며 날아갔다.

백서휘는 아무런 방어 자세를 취하지 않고 가만히 노려보기만 했다.

“호호! 무림에서 방심하면 죽는……. 어?”

그때 백서휘의 전신 혈도에서 빠져나온 기시가 암기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카카카카카카카카카캉!

“이, 이게 무슨……?”

“신순이라는 거다.”

암상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능력이니 그녀가 지금 같은 감정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더 할 게 남아 있나?”

암상의 상황 판단은 빠르고 결단력 있었다.

암기가 더는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송곳과 유사하게 생긴 무기를 꺼내 들었다.

‘찌르기의 효과를 극대화한 무기인가?’

기문병기(奇門兵器)를 쓰는 상대는 무기의 의존도가 너무 높았다.

그래서 무기의 약점을 찾아내게 되면 그대로 생명력도 다하게 된다.

암상의 ‘끝’도 다른 기문병기 사용자와 같으리라 예상됐다.

‘잠깐 어울려 줘볼까.’

백서휘는 검을 뽑아서는 검첨을 암상에게 겨누었다.

이 행동 자체만으로도 그녀에겐 큰 압박이 되었다.

“안 들어올 건가?”

백서휘가 비웃는 얼굴로 손을 까딱거렸다.

아주 정석적인 도발이라 암상이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다.

바로 안 달려드는 걸 보면 성격이 폭급한 쪽은 아닌 것 같았다.

유심히 살펴보니 그녀의 표정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도 아닌 게 분명했다.

“겁이 많군.”

암상은 잠깐 발끈했으나 덤비지 않았다.

어떤 짓을 해도 먹히니 요리하기 쉬울 것 같았다.

“내가 간다.”

백서휘가 구천현현보를 밟아 거리를 좁혔다.

뭘 해야 할지 몰랐던 암상은 일단 팔부터 내뻗고 봤다.

‘걸려들었어!’

백서휘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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