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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13화 (113/202)

귀환무관 113화

암상은 자신의 검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절대 못 막아.’

백서휘는 반 바퀴를 회전해 찌르기를 피했다.

그리고 비어 있는 암상의 복부에 좌장을 힘차게 내뻗었다.

펑!

가죽 공 터지는 소리가 나며 암상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음…….”

초절정 경지에 오른 고수치고는 무력의 수준이 너무 떨어졌다.

겁을 먹는 바람에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았다.

‘뭐, 본인 무력의 두 배, 세 배를 발휘한다고 해서 날 이길 가능성이 생기냐면 그건 또 아니지만…….’

백서휘는 암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암상은 신음을 흘리며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흐윽!”

“일어나봤자 도망도 못 갈 텐데 뭐하러 일어나려고 그래. 뭐, 계속 싸워보시려고?”

백서휘가 검을 어깨에 걸친 채 껄렁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나, 날 죽이면 중원의 모든 암상이 당신과의 거래를 거부할 거야. 계속해서 암살자도 보낼 거고…….”

“암상이 연합체란 걸 뻔히 아는데, 뭐, 거래를 거부하고 암살자를 보내? 끽해야 너희 계파 쪽만 그렇겠지. 그것도 몇 번 큰 거래 해주면 암살자니, 뭐니 보내서 방해하는 건 그만둘 테고. 표정이 왜 그래? 아! 내가 너무 정확히 꿰뚫어 봤나?”

암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따 신문할 때 보자고.”

백서휘는 암상의 훈혈을 짚어 기절시켰다.

“배낭엔 뭐가 들었으려나.”

꽉 조여놓은 배낭의 끈을 풀어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배낭 안엔 단환과 금원보, 기밀서류 등이 들어 있었다.

수확이 생각보다 더 괜찮았다.

백서휘는 배낭과 암상을 양쪽 옆구리에 낀 채 학무관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학무관에는 오룡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가 암상입니까?”

“그래.”

백서휘는 바닥에 배낭을 내려놓고 암상은 던졌다.

잠을 자는 거였다면 아파서 신음을 흘리며 깨어났겠지만 지금 그녀는 기절한 상태였다.

그 탓인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숨만 고르게 쉬었다.

“신문을 시작해야겠군.”

백서휘는 암상의 무장을 해제한 후 걸었던 점혈을 풀었다.

암상은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생전 처음 보는 남자들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무기는커녕 아무것도 집히지 않았다.

“한 지역을 총괄하는 사람이 상황 파악하는 게 너무 느린 거 아닌가?”

“헉!”

“날 알고 있는 게 맞았군.”

백서휘는 암상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쭈그려 앉았다.

“나에 대해 어떻게 알았는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말해.”

“어, 어쩌다 보니 알게 됐어요.”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이번에 명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백서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손을 내뻗어 암상의 목을 졸랐다.

“죽어. 알았어?”

암상이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백서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춘환(回春丸)을 상납하는 곳에서 주의해야 할 인물이라면서 정보를 줬어요. 아는 건 당신이 수호문…….”

“좋아, 그건 거기까지만 말하고. 이제 상납하는 곳 이름이랑 뭐 하는 곳인지 말해 봐.”

“상납하는 곳의 이름은…… 그르륵!”

암상이 갑자기 게거품을 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고(蠱)를 심어놨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자 백서휘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탁탁탁!

아홉 군데의 혈도를 점혈하고 기운을 주입한 후 강제로 움직여 고를 찾아다녔다.

‘고가 없어?’

이상하다 싶어 다시 한번 살펴봤지만, 결과는 역시 같았다.

‘뭐 때문에 갑자기 게거품을 문 거지?’

백서휘는 한참 있다가 깨어난 암상에게 질문을 여러 개 던졌다.

어떤 식으로 질문을 하든 상관없었다.

상납하는 곳에 관한 정보를 내뱉으려고만 하면 암상은 게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몇 번 반복하니 확실하게 뭔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고가 아니었으니 술법이 걸렸다고밖에 볼 수 없는데…….’

술법에 문외한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전문가는 아니었다.

‘목인걸에게 물어봐야겠어. 대가는 아들의 근황이면 충분하겠지.’

백서휘는 암상을 구류하고 포목점을 들렀다.

목인걸의 하나뿐인 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여전히 포목점에서 일하고 있군.’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목인걸 아들의 얼굴에 침울한 기색이 역력하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지 물어봐야겠다.’

백서휘는 천을 고르는 척하다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똥 씹은 얼굴을 한 이유가 있나?”

“예?”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냐고.”

“표정을 어떻게 짓건 그건 제 맘 아닙니까?”

“아니, 궁금해서 그런 거니까 왜 그런지 말해 봐.”

“제가 그래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빼면 네 아버지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걸?”

“……저희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목인걸은 아직 살아 있다. 반쯤 죽은 거나 다름없긴 하지만.”

“아, 아버지가 살아 있다니 그게 무슨…… 헉!”

깜짝 놀란 목인걸의 아들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렇게 잠입해 있으면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죽어!”

목인걸의 아들이 계산대 밑에 숨겨둔 반도(半刀)를 꺼내 백서휘를 향해 휘둘렀다.

백서휘는 반도의 날에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압도적인 실력이 차이에서나 보일 수 있는 공수탈백인이란 기예였다.

목인걸의 아들은 도를 다시 빼내 공격하기 위해 낑낑거리며 애를 썼다.

“목인걸을 만나게 해줄까?”

“나도 저승으로 보내겠단 말이냐? 오냐! 보내봐라! 얼마든지 가주마!”

“진짜로 만나게 해주겠단 소리다.”

“보내라니까!”

“답답하군. 너 그냥 잠깐 기절해 있어라.”

백서휘는 목인걸 아들의 훈혈을 짚어 점혈한 후 방으로 데려왔다.

그다음 목인걸 아들에게 손을 댄 채로 괴력난신의 책장을 넘겼다.

한 남자의 인영과 휘황찬란한 옥좌가 보였다.

“찾아올 일 없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선물을 가져왔다.”

“선물? 헉! 현석이? 혀, 현석아!”

“그렇게 소리쳐 봤자 몰라. 기절시켜 놨거든.”

“내, 내 아들을 가지고 인질극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뭐, 비슷하지.”

“원하는 게 뭐냐!”

“비밀을 말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술법에 대해서 알려줘.”

“그런 술법들은 머리에 작용하기 때문에 하나같이 높은 난도를 가지고 있다. 최고 수준의 술법 지식과 의술 지식 없이는 배우기도 힘들뿐더러…….”

“술법을 해제시킬 수만 있으면 돼.”

“그것 역시 답은 같다.”

“그럼 술법에 걸린 자를 데리고 오면 해제해 줄 수는 있나?”

“술법에 따라 다르다.”

“잠깐 기다려.”

“아, 아들은 두고…….”

“그건 나중에 거래가 끝나면 그렇게 할게.”

백서휘는 목현석을 데리고 원래 세계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타난 그는 한쪽 옆구리에 암상을 끼고 있었다.

“술법에 걸린 자가 그 여자인가?”

“어.”

“살펴보도록 하지.”

목인걸은 눈을 감은 후 암상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그가 두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음…… 이건 풀 수 없다.”

“네가 못 푸는 술법도 있어?”

“나랑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주술사가 술법을 걸어놓았다. 풀려고 시도하면 숨기고 있는 비밀 일부를 들을 수는 있겠지만, 이 여자는 반드시 죽고 만다.”

“그렇게 해줘.”

백서휘는 냉혹한 걸 넘어 무감정한 말투로 말했다.

“다시 말한다. 술법을 해제하면 여자는 반드시 죽는다.“

“죽든 말든 상관없으니까 술법이나 빨리 풀어봐.”

“나중에 날 원망하지 마라.”

“그래.”

“술법이 해제되는 시간은 5초 남짓이다. 그동안 궁금한 걸 물어보면 된다.”

“겨우 5초? 시간을 더 늘릴 수는 없어?”

“없다.”

“제기랄, 어쩔 수 없지. 해제해 봐.”

목인걸은 조금 전처럼 눈을 감고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진언을 빠른 속도로 읊었다.

우우우웅!

목인걸의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암상의 머리에 전부 흡수되었다.

“지금!”

“회춘환을 상납하는 곳의 이름이랑 뭐 하는 곳인지 말해.”

“이름은 혼천회고 수호문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르르륵!”

암상은 피거품을 물며 쓰러져서는 한동안 경련을 일으키다 죽었다.

“혼천회라…….”

목인걸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소리를 백서휘가 들었다.

“혼천회란 곳에 대해 알고 있어?”

“자세히는 모르고 수호문을 없애기 위해 만든 연합체라는 것만 알고 있다.”

“어떻게 알았어?”

“천지회가 흥성했을 시절에 연합하자는 제안을 받았었다.”

“알고 있는 게 진짜 그게 전부야?”

“그래.”

“아들 목숨이 걸려 있어. 진실되게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진짜 전부다.”

“음…….”

백서휘가 침음성을 흘리며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 * *

청수하게 생긴 젊은 학사가 무거운 얼굴로 동굴로 들어갔다.

한참을 안으로 들어간 그는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철문 앞에 섰다.

쿵쿵!

젊은 학사가 문을 힘껏 두드렸다.

문에 달린 작은 감시창이 열렸다.

“방문 목적을 말씀해 주십시오.”

“회주님이 부르셔서 왔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젊은 학사는 빠르게 걸어오며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단정하게 했다.

쿠쿠쿠쿠쿵!

기계음이 들리며 만년한철로 이루어진 거대한 철문이 열렸다.

“고맙소.”

“별말씀을.”

젊은 학사는 문을 지키는 무사에게 고개를 까닥거린 후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잠시 후, 아주 커다란 연무장이 나왔다.

커다란 연무장의 바닥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글자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젊은 학사는 그 글자와 문양을 밟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중심 쪽으로 걸어갔다.

연무장의 중심에는 학사와 비슷한 연배의 남자가 백의를 입은 채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었다.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부족하다.”

“무엇이 말입니까?”

“절망! 공포! 혼돈! 파멸! 불안! 분노! 우울! 모든 것이 부족해! 이래서는 중원 전체의 부정력(否定力)을 계속 흡수한다고 하더라도 승천(昇天)할 수 없다!”

백의를 입은 남자의 몸에서 묵빛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러한 광경이 익숙한 학사는 바로 머리를 조아렸다.

“……더 많은 부정력을 얻기 위해 공작을 계속 시도하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흡수하는 양은 이전과 똑같이 적은 것이냐?”

“당대 수호문의 문주인 백서휘 때문입니다. 그놈이 부정력을 모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부정력을 모으는 일만 아니면 바로 달려가서 그놈의 목을 칠 텐데…….”

“화가 나시더라도 참아야 합니다.”

“알고 있다. 대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후~ 혹시 중원 전역이 아니라 그놈에게 직접 공작하는 계획은 없느냐?”

“오대마가(五大魔家)를 이용한 공작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오대마가? 그 십대마가였다가 백서휘 손에 반이 멸문한 떨거지들?”

“예.”

“그놈들도 백면이 본회로 영입했느냐?”

백의를 입은 남자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음과 동시에 묵빛 기운이 사라졌다.

“영입 시도는 했으나 그쪽에서 거절했습니다.”

“건방진 놈들, 아직도 과거의 영화에 사로잡혀 있구나…….”

“그래서 그들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공작 계획을 허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떤 공작인지 설명해다오.”

“오대마가 중 손가(孫家)의 후계자가 지금 강호를 몰래 주유 중입니다. 이놈에 대한 정보를 무림맹에 뿌린 후, 무림맹에 심어놓은 첩자들에게 장사로 몰라고 지시할 겁니다.”

“몰면서 야단법석을 피우면 그놈도 반응할 수밖에 없겠구나.”

“그렇습니다.”

“그다음엔 어쩔 생각이냐?”

“손가의 후계자를 죽이게 되면 자연히 그 손가의 가주도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손가 놈들의 폭급한 성격을 생각하면 무조건 움직이겠구나. 좋은 계획이다. 그대로 실행하라!”

“예!”

젊은 학사는 백의를 입은 남자에게 정중히 인사하고는 동굴을 바삐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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