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07화
“전장의 정보를 습득할 때는 두 눈을 다 쓰고 환술이나 은잠술을 꿰뚫어 봐야 할 때는 한쪽 눈에 진기를 집중해야 해. 환술을 꿰뚫어 보려면 태양의 눈에…… 이런,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난 거지.”
풀벌레와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둘러봤다.
저번처럼 수업에 집중하다 보니 밤이 된 걸 이제야 알았다.
“너랑 수업하면 항상 이렇다니까.”
“하하.”
제갈선우가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질문하고 싶은 건 더 없는 거지?”
“질문은 없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수업을 끝내자.”
“알겠…… 아! 질문은 아닌데 관주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뭔데? 수업 관련해서 건의하고 싶은 거야?”
“아, 그쪽과 관련된 질문은 아닙니다.”
“그럼?”
“그 다른 게 아니라 단원 중 하나에 관해서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그게…….”
제갈선우가 말을 하다 말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가 하려는 말이 궁금해진 백서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냥 속 시원하게 다 말하겠습니다. 남궁혁이 남궁민으로 돌아오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알아. 나 때문에 생긴 일이거든.”
“예? 관주님 때문에요?”
백서휘는 제갈선우에게 남궁민과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제갈선우가 침음성을 흘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계속 입술만 달싹거렸다.
“그냥 속 시원히 말해.”
“……남궁민의 인격은 완전히 소멸된 겁니까?”
“그건 아닐 거야. 속에서 계속 지켜본다고 그랬거든.”
“그럼 그 남궁민의 인격을 다시 불러내서 주 인격으로 삼으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야 할 만한 이유가 있나?”
“남궁혁이 다른 단원들과 너무 많은 갈등을 빚어서 그렇습니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충돌하는데 말리는 게 아주 고역입니다.”
“음…….”
“이제는 다른 단원들한테 미안해 죽겠습니다. 당장 며칠 전만 해도 그 개새끼, 아니, 남궁혁이 황보 동생에게 막말을 하는 바람에 크게 싸움이 일어날 뻔했습니다.”
웬만해선 욕을 하지 않는 제갈선우가 ‘그 개새끼’라고까지 한 것을 보면 남궁혁의 만행이 심각하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민을 좀 해볼 문제 같군.”
“고민보다는 해결이 필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만…….”
제갈선우가 눈치를 보며 남궁혁이 문제란 사실을 강조했다.
“일단은 알았으니까 가봐.”
“네.”
백서휘는 바위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다.
‘얼마나 패악을 부리길래 제갈선우가 저러고 황보정석이 싸우려 한 거지?’
황보정석은 되도록 둥글게 살기를 원하는 놈이었다.
그래서 그가 싸우려고 했다는 사실에 솔직히 조금 놀랐다.
‘일단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확인해야겠어.’
백서휘는 은형잠종술을 쓰고 오룡단이 모이는 곳으로 갔다.
늦은 밤이라 남궁혁을 제외한 모두가 잠들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다.
남궁혁은 구석에서 열심히 뇌룡보를 수련하는 중이었다.
“남궁 동생, 우리 이제 자야 해서 그러는데 다른 데 가서 수련하면 안 돼?”
황보정석이 좋게 좋게 타이르려고 했다.
그런데 남궁혁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뇌룡보를 밟아나갔다.
그의 신형이 한순간 사라졌다가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게 아닌 것 같은데…… 흡!”
다시 한번 사라지더니 좀 더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남궁혁이 나타났다.
전광(電光)이 몸에서 이는데도 아무렇지 않은지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궁 동생, 우리 이제 자야 한다니까?”
“수련하느라 바빠. 말 걸지 마.”
“아니, 다른 사람처럼 자든가, 다른 곳에서 수련하든가 하라고.”
“난 여기가 맘에 드는데?”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니까.”
“그럼 몸을 좀 더 피곤하게 만들어.”
“이 새끼야! 잠 잘 거 아니면 좀 꺼지라고!”
모용진이 끼어들어서 욕을 미친 듯이 내뱉었다.
“아! 알았어. 가면 되잖아.”
황보정석과 모용진이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며 분노를 꾹 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되게 뭐라고 그러네. 무인이 수련하러 왔으면 잠 줄여가면서 수련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야! 너만 무인이야? 다들 열심히 수련해서 피곤하니까 그런 거 아니야!”
옆에서 잘 참고 있던 제갈선우까지 소리치자 남궁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심각하긴 하군. 좀 더 관찰해보자.’
백서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남궁혁을 계속 지켜봤다.
‘제갈선우가 왜 나한테 말을 했는지 알 것 같군.’
살짝 내성적이라서 그렇지 남궁민의 사회성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에 반해 남궁혁은 거침이 없는 대신 타인을 생각하는 모습이 없었다.
그는 무공 말고는 다른 건 어떻게 되든 좋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오룡단원과 마찰을 빚었고 그로 인해 남궁혁에게 원한을 품을 정도였다.
‘계속 이대로 두면 남궁혁이 살해당할지도 모르겠어.’
다들 무인이라 법보다 칼이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살인에 거부감이 없어 좀만 더 자극을 받으면 오룡단원은 남궁민을 죽이진 않더라도 목에 칼을 들이밀 가능성이 있었다.
‘해결 방법은 둘 중 하나겠군. 남궁혁을 제대로 교육하거나 남궁민을 불러오거나.’
솔직한 심정으로 남궁혁을 교육하는 쪽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남궁민이 무공에 재능이 조금도 없는 것처럼, 남궁혁에겐 사람을 상대하는 재주가 조금도 없었으니까.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을 못 하는 놈이니 교육해서 인간답게 만드는 건 통하지 않겠지.’
지금 자신 앞에서 순응하고 충성하는 것도 무공을 가르치고 더 강하기 때문이었다.
둘 다 없어지면 남궁혁은 자신한테도 개차반으로 굴지도 몰랐다.
‘그럼 교육은 포기하고…… 그냥 남궁민을 주 인격으로 만들어야겠어.’
백서휘는 오룡단원에게 남궁혁을 보면 자신에게 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궁혁이 자신의 수련장으로 찾아왔다.
“뇌룡보 연습하는 거 봐주시려고 부른 것 같은데 지금 여기서 펼치면 되겠습니까?”
“아니, 그거 때문에 부른 거 아니야.”
“그럼 뭐 때문에 부르신 건지……?”
부른 목적이 무공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고 하니 남궁혁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무공, 전투, 폭력, 피 이런 것 말고는 진짜 관심을 두지 않는군.’
인격이 나뉘기 전에 가지고 있던 폭력성과 잔혹성 같은 것이 모두 남궁혁이란 존재에게 집중돼서 그런 것 같았다.
“요즘 문제가 많던데?”
“제 뇌룡보예요?”
“아니, 무공 말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말이야.”
“별 이상 없는데요?”
“별 이상이 없다고?”
“네.”
백서휘는 한숨을 작게 내쉰 후 다시 한번 남궁민 말고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있지 말고 남궁민 좀 나오라고 해봐.”
“걔를 왜요?”
계속 주 인격으로 활동하는 게 맘에 들었는지 남궁혁은 노골적인 거부감을 보였다.
“말대답하지 말고 빨리 남궁민 나오라고 해.”
“싫은…….”
백서휘의 몸에서 살기가 유형화되어 피어올랐다.
공감 능력이 없는 남궁혁도 알 수밖에 없는 위험 신호였다.
그는 황급히 장막 뒤에 있는 남궁민을 불러 주 인격으로 다시 내세웠다.
“……저는 왜 부르신 거예요?”
“남궁민 맞지?”
“네, 남궁민 맞아요.”
“아무래도 네가 예전처럼 주 인격이 되어줘야겠다.”
“예?”
“앞으로 남궁혁은 나한테 뇌룡보를 배울 때랑 혼자서 무공수련 할 때, 전투가 벌어졌을 때 이런 때만 나오게 해.”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너도 안에서 남궁혁이 한 짓을 봤잖아. 그럼 내가 왜 이러는지 알 텐데?”
“아!”
“검성이고 나발이고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이 불편해하니까 앞으로는 사람 상대하는 일 있을 때는 네가 나서고, 무공을 배우거나 펼쳐야 할 때는 남궁혁을 주 인격으로 내세워. 이거 어기면 너나 남궁혁이나 둘 다 가만 안 둘 거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내린 명령을 지키는 게 좋을 거야. 알았어?”
남궁혁이 다시 날뛸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백서휘는 글자 하나하나에 살기를 꾹꾹 눌러 담아 말했다.
“히익! 네…….”
“가봐.”
남궁민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리나케 사라졌다.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으니 이젠 내 수련에 집중해야겠다.”
‘일어나.’
의념을 발휘하니 단전에 조용히 있던 독령이 활동을 시작했다.
『부르셨습니까.』
‘신순(神盾)을 수련하려고 불렀다.’
신순은 기감으로 공격을 감지한 이후에 기시(氣矢)를 날려 적의 공격을 요격하는 기술이었다.
‘일단은 준비 운동부터 하자.’
『네.』
백서휘는 오른손을 쭉 내뻗어 잎사귀가 많이 달린 나무를 후려쳤다.
그 순간 나무에서 나뭇잎이 소낙비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백서휘는 전신의 혈도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걸 느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혈도를 통해 밖으로 나온 기시가 나뭇잎들을 격했다.
쐑쐑쐑쐑─!
1초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거의 모든 나뭇잎이 기시에 맞아 사라졌다.
‘바로 수련에 들어가도 되겠지?’
『문제없습니다.』
채석장처럼 생긴 곳으로 가서는 어검술을 발휘해 석벽을 부쉈다.
허공에서 크고 무거운 바위들이 엄청난 속도로 떨어졌다.
백서휘는 그 밑에 서 있는데도 무섭지 않은지 웃고 있었다.
신순의 범위에 들어오자 기시가 바위들을 때렸다.
쐑쐑쐑─!
준비운동 했던 때와 다르게 기시에 담긴 힘이 꽤 위력적이었다.
바위가 불규칙적으로 쪼개지며 돌로 변했다.
다시 기시가 밖으로 나와서는 돌을 때렸다.
쐑쐑쐑쐑쐑쐑─!
기시로 인해 돌은 자갈로, 자갈은 다시 모래로 변했다.
‘위력에 대한 감을 아직도 못 잡는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백서휘가 독령이 감을 잡을 때까지 신순을 수련했다.
* * *
“그니까 모용 형한테 채찍질하라는 거죠?”
모용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민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꼭 해야 하는 거예요?”
“관주님이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받으라고 해서 그런 건데 못하겠으면 줘.”
“아니, 할게요. 하는데요. 아무리 외공을 수련해도 그렇지 채찍질은 좀 그렇지 않아요? 사람이 말도 아니고.”
“그냥 일반 나무 몽둥이로는 느낌이 안 와서 그러니까 네가 좀 도와줘.”
“후~ 알았어요. 저기 서봐요.”
“아프다고 하는 건 그냥 계속 때려도 되는데 내가 ‘선혜주’라는 말을 하면 멈춰야 돼.”
“선혜주가 누군데요? 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어떻게 생겼어요? 뭐 하는 사람이에요?”
“아! 그건 못 말하니까…….”
“알았어요. 안 물어볼게요. 대신 이것만 대답해 줘요. 혜주야! 혹은 혜주 낭자! 혜주 소저! 이런 거는요? 이런 곳도 멈춰야 돼요?”
“아니, 딱 ‘선혜주’라고 소리칠 때만멈추면 돼.”
모용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알았어요.”
“일단은 등만 해줘.”
“네.”
모용진이 비장한 얼굴로 상의를 벗어 던졌다.
그다음 벽에 손을 짚은 채 턱짓했다.
남궁민은 여전히 찝찝한 얼굴로 채찍을 든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갑니다!”
“어!”
쐐애애애액!
남궁진이 휘두른 채찍이 모용진의 등짝에 새빨간 빗금을 만들었다.
“흐윽! 혜주 소저! 나 죽어!”
“어…….”
“그러고 있지 말고 계속 때려!”
“가요!”
“어.”
쐐애애액!
채찍이 이전보다 약하게 모용진을 때렸다.
“끄으윽! 더 세게!”
“알았어요.”
쐐애애애애액!
“혜주 낭자! 흐으윽!”
모용진은 지지부진한 무공의 성취를 높이기 위해 눈물을 머금으며 채찍질을 참았다.
남궁민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묵묵히 채찍질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모용진의 등짝은 빗살무늬토기처럼 빗금이 여기저기 가 있었다.
“갑니…….”
“서, 선혜주!”
쐐애애액!
“아! 모용 형! 미안해요! 이미 휘둘러 버렸어요!”
“커어억!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호법 좀 서줘 봐.”
“네.”
모용진이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아 금강기(金剛氣)를 운용했다.
그러자 등짝에 생긴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갔다.
남궁민은 호법을 서면서 신기한 눈으로 그를 관찰했다.
“헉헉! 살 것 같다.”
“괜찮아요?”
“어, 그래. 괜찮아.”
말과는 다르게 모용진의 얼굴은 굉장히 초췌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그 선혜주란 여자 때문에?”
남궁민이 모용진 옆에 앉으며 질문을 던졌다.
“……어.”
“도대체 어떤 여자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말할 수 없어.”
“수련 도와준 사람한테는 조금은 알려줘야죠.”
“그런가? 그래, 뭐 관주님도 알고 계시고 하니 어느 정도는 얘기해도 되겠지. 혜주 소저에 대해 말하려면 첫 만남부터 말해야 해. 우리의 첫 만남이 어떻게 시작됐냐면…….”
몸이 약해지니 마음도 약해진 걸까?
모용진은 평소라면 남에게 절대로 하지 않았을 얘기를 남궁민에게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