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관-108화 (108/202)

귀환무관 108화

[“그래서 내가 그 사기 친 놈 손목을 붙잡고 도끼로 내려찍으려는데 그때…….”

두두두두두!

모용진은 친구들에게 말을 하다 말고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고급스러운 장식의 마차가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었다.

“심양(沈陽)에 저런 생김새를 가진 마차가 있었나?”

의문을 가지고 중얼거리는데, 마차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면서 모용진 앞에 있는 흙탕물을 지나쳤다.

촤아아아악!

모용진은 황급히 보법을 밟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흙탕물이 그의 하얀 옷을 갈색으로 물들였다.

“씨발! 어떤 새끼인지는 몰라도 가만 안 둘…….”

마차에서 화려한 궁장을 입은 여자가 문을 열고 달려 나왔다.

모용진은 여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죄송해요!”

“어…….”

여자는 하얀 손수건을 꺼내 흙탕물이 묻은 부분을 정성스레 닦아주었다.

“아가씨, 대인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일은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 일단 주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어, 그게……. 알았어요! 부탁해요!”

여자가 죄송하다고 말하고 주루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다 뭔가가 생각났는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옷에 대한 배상은 선연상단에 가서 ‘선혜주’란 이름을 대면 드릴 거예요! 다시 한번 죄송해요!”

“내 운명이다…….”

모용진은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선혜주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속삭였다.

그때 고용인으로 추측되는 자가 품속에서 돈주머니를 꺼냈다.

“옷에 대한 배상은 상단에 갈 필요 없이 제가 드리겠습니다. 얼마면 되겠습니까?”

모용진은 됐다고 손짓하고는 넋이 나간 얼굴로 주루로 들어갔다.

주루 안을 둘러봤지만 선혜주는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간 거지…….”

“뭐가 어딜 가. 야, 됐고 내가 이번엔 살 테니까 오늘 죽을 때까지 마시는 거야. 알았어?”

“분명 여기…….”

“야! 얼른 이리 오라니까!”

모용진은 친구와 함께 쓰러질 때까지 술을 진탕 마셨다.

그리고 다음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호남성 장사로 향하는 마차 안에 있었다.]

“그게 전부예요?”

남궁민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응, 이게 전부야.”

“그럼 그 선혜주란 이름을 가진 소저랑 모용 형 사이에 뭐가 있지는 않았던 거네요?”

“혜주 소저와 내가 결혼할 운명이란 걸 느꼈다니까.”

“그, 그래요.”

괜히 민망해진 모용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시 수련이나 하자. 이번에도 도와줄 수 있지?”

“저도 수련을 해야 돼서 이번만 도와드릴게요.”

“알았어.”

모용진과 남궁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먼지를 털었다.

“가자.”

두 사람이 조금 전까지 앉아 있었던 바위 주변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나무와 풀들이 무지갯빛 가루로 변하며 주위로 흩어지더니 당기준이 나타났다.

당기준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슬쩍 보고는 백서휘가 있는 수련장으로 향했다.

수련장에 도착하니 백서휘는 세상 그 누구보다 편하게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콰아아앙!

당기준의 머리 위에서 귀청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그가 귀를 막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

커다란 바위가 당기준의 머리를 향해 추락 중이었다.

흠칫 놀란 그는 빠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백서휘가 무심한 얼굴로 어서 말하라고 손짓했다.

“머리 위에 바위가……!”

“별거 아니니까 하려던 보고 계속해.”

“저게 어떻게 별 게 아닙니까! 지금 관주님 머리 위로 바위가 떨어지고 있다니까요!”

“조금 시끄러울 뿐이지 다칠 일은 없어. 그러니까 그냥 큰 목소리로 보고해.”

“일단 안전한 이쪽으로 빨리 오시면 제가 보고를……. 어? 어? 어?”

꼼짝없이 백서휘가 압사당할 거라고 당기준이 예상했을 때, 백서휘의 몸에서 나온 기의 화살들이 바위를 산산조각 냈다.

쐑쐑쐑쐑쐑쐑─!

처음으로 신순을 본 당기준은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백서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무심하게 손을 휘둘렀다.

허공에 떠 있던 검이 옆에 있는 절벽을 부수고 바위를 밑으로 떨어뜨렸다.

다시 한번 이어지는 신순의 시연.

당기주은 만천화우(滿天花雨)를 펼쳐도 백서휘에게 닿는 암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을 거란 걸 직감했다.

“널 알아보는 놈이 있었어?”

“제갈선우만 알아보고 나머지는 주위에 제가 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찾는 쪽보다 숨는 쪽이 더 유리한 데도 들켰다는 건 네 성취가 낮다는 뜻이니까 반성해.”

“네.”

“제갈선우 말고 다른 놈들이 가진 문제들은?”

“이전보다 황보정석의 기도가 안정되고 차분해진 걸 보면 소성(小成)을 이룬 거로 추측됩니다.”

“남궁민은?”

“인격 문제는 잘 해결된 것 같습니다. 다만, 주 인격을 다시 나눈 이후로 뇌룡보의 숙련도가 떨어지기라도 한 건지, 제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그 속도가 느려지고, 진로 변경에서 실수하는 면이 잦아졌습니다.”

“모용진은 어때?”

“열심히 수련하고는 있지만 관주님이 말씀하신 혈한(血汗)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걸 봐서는 석 달 이내에 6성에 올라 소성을 이루는 건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

백서휘가 진중한 얼굴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공의 성취도를 시험하는 건 일주일 후로 하면 다들 불만은 없겠지. 문제는 악록산을 내려갈 시기를 잡는 건데…….’

하산할 때가 다가오니 이상하게 생각이 많아졌다.

오룡단과 자신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이번에 얻은 것들까지.

앞으로 벌어질 일과도 관계가 있다 보니 고민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여러 문제들을 나 몰라라 내팽개치면 피해를 보는 건 자신이었다.

‘맘 같아서는 오룡단 모두가 절정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빡세게 굴리고 싶은데…….’

모든 일을 원하는 대로만 끌고 갈 수는 없었다.

어떨 때는 하기 싫더라도 포기를 해야만 했다.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어쩔 수 없지.’

더는 학무관의 일을 미룰 수 없고, 축융으로 인해 부서진 집도 다시 지어야만 했다.

‘일주일 후에 시험을 보고 통과하는 놈이 반수가 나오면 그때 그냥 하산해야겠다.’

제갈선우와 황보정석, 당기준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걸 확인했기 때문에 사실상 그냥 하산할 거라고 결정을 내린 거나 다름없었다.

“일주일 후에 시험 볼 거라고 애들한테 전해.”

“시험이라면…….”

“무공을 잘 익혔는지를 중점적으로 보면서 종합적인 무력을 평가할 거야.”

“따로 더 전할 말씀은 없으십니까?”

“통과하는 사람이 반수 이상 나오면 그때 장사로 돌아갈 거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당기준은 다른 오룡단원들에게 백서휘의 공지를 전파했다.

* * *

일주일 후.

평소라면 각자 개인 수련을 하느라 바쁜 시간에 백서휘와 오룡단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룡단은 긴장한 얼굴로 백서휘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시험은 나이가 적은 사람부터 먼저 본다. 남궁민, 아니, 남궁혁 앞으로!”

앞으로 걸어 나오면서 남궁민의 인격이 들어가고 남궁혁의 인격이 전면에 등장했다.

시험을 보지 않는 다른 이들이 거리를 벌려 백서휘와 남궁혁이 싸울 공간을 만들어 줬다.

‘눈빛이 아주 반항적이네?’

남궁혁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남궁민으로 주 인격을 바꾼 게 그의 심기를 뒤틀리게 만든 것 같았다.

‘오랜만에 재교육이 필요하겠어.’

백서휘는 오른손은 뒷짐을 지고 도발의 의미를 담아 왼손을 까딱거렸다.

남궁혁이 검을 뽑아 들며 검집을 옆으로 던졌다.

괴성을 내지르며 뇌룡보의 방위를 밟더니 갑자기 그의 신형이 전광(電光)과 함께 사라졌다.

파지지직!

다시 그의 신형이 나타난 건 백서휘의 우측이었다.

‘검기를 쓴다고?’

조금 불안정하긴 하지만 남궁혁의 검에는 푸른빛 검기가 휘감겨 있었다.

백서휘는 몸을 옆으로 젖히는 것만으로 가볍게 공격을 피했다.

파지지직!

다시 전광과 함께 사라지더니 이번엔 백서휘의 좌측에서 나타났다.

백서휘는 별안간 들어오는 공격을 침착하게 내력을 조금 담은 손으로 쳐냈다.

그때 남궁혁의 검에 담겨 있던 ‘뇌기(雷氣)’가 손을 타고 그의 몸 안에 침입했다.

‘뇌기? 얘가 이걸 어떻게……. 아! 얘 남궁세가 놈이었지.’

남궁세가의 가전 무공 중 ‘천뢰기(天雷氣)’란 심법을 익히면 지금처럼 검기에 뇌기가 일게 된다.

‘이전까지는 일류 초입이라 제대로 검기를 다루지 못해서 천뢰기의 공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건가 보네.’

절정의 벽을 바라보는 일류가 되면서 검기에 뇌기를 섞어 쓸 줄 알게 된 것 같았다.

‘잠깐! 이 자식 뇌룡보보다 검술 수련을 더 많이 했잖아?’

검을 휘두르는 자세부터가 이전의 남궁혁과 달랐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래도 자기 나름대로 수련을 해 성장했다는 게 기특했다.

‘기특한 건 기특한 거고 교육받을 건 교육받아야지.’

백서휘가 정권을 가벼우면서 빠르게 끊어 쳤다.

전광을 여기저기서 일으키며 달려오던 남궁혁이 오체투지 자세를 취했다.

“우웨엑!”

“이게 끝은 아니겠지?”

백서휘가 쭈그려 앉아 남궁혁의 머리를 콕콕 건드렸다.

먹었던 걸 다 토해낸 남궁혁이 검을 쭉 내뻗었다.

검날이 백서휘의 두 손가락에 잡혔다.

공수탈백인(空手奪白刃).

무력 차이도 차이지만 팔이나 손가락이 잘릴 수 있어 웬만큼 담력이 강하지 않고서는 시도하기 힘든 기예였다.

그런 기예를 백서휘는 아무렇지 않게 해댔다.

남궁혁은 그런 그의 태도에 지독한 굴욕감을 느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백서휘의 두 손가락에 잡힌 검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끄으으윽!”

백서휘의 두 손가락과 검날은 접착제로 고정해 놓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황보 동생은 저거 빼낼 수 있겠어?”

“못 빼낼 것 같습니다. 남궁혁 저놈 근력이 저보다 많이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무인 아닙니까. 근데 지금 관주님 보십시오. 손가락이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 정도 수준이면 제 근력보다 못해도 서너 배는 더 뛰어날 겁니다.”

제갈선우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로?”

“예.”

“아니, 이번에 그 폭류란 걸 견뎌낸다고 단련도 했잖아. 그러면 비벼볼 만하지 않아?”

“힘들 것 같습니다.”

황보정석이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런…….”

“장난은 이쯤 할게.”

백서휘는 검날을 잡고 있던 두 손가락을 놓았다.

힘을 이기지 못한 남궁혁이 넘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음부터는 눈에 힘 풀고 다니는 거다?”

백서휘가 나지막하게 말하며 남궁혁이 기절하지 않을 정도로만 때렸다.

“사, 살려주세요! 커어어억!”

“끝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어.”

“끄으윽! 잘못했어요.”

“어허!”

“아아악!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결국 남궁혁은 누적된 피해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했다.

“이 정도면 다음부터는 눈을 그렇게 반항적으로 뜨진 않겠지. 다음은 모용진!”

거력금강신은 신체를 학대할수록 성취가 좋아지는 기이한 무공.

모용진은 남궁혁보다 더 많이 맞는 것이 예정됐다고 봐야 했다.

모용진이 백서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저는 시험을 안 보고 싶은데 기권 가능한가요?”

“안 돼.”

“그러면 저는…….”

공포에 질린 모용진은 반대편으로 도망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탁!

그런데 느껴지지 않아야 할 손길이 목덜미에서 느껴졌다.

모용진은 몸을 덜덜 떨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백서휘가 입꼬리가 광대까지 닿을 것처럼 크게 웃고 있었다.

“시험 봐야지?”

“사, 살려…….”

“맞기 시작한 지 반 각쯤 흘렀을 때부터 정말 죽을 것 같으면 ‘선혜주’라고 말해. 그 이전에는 불러도 안 멈출 거야. 알았어?”

“네…….”

“하나에 시작한다. 셋, 둘, 하나!”

백서휘는 ‘어떻게 이런 공격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종다양하게 모용진을 때렸다.

“커어억! 선혜주! 끄으윽! 선혜주! 선혜주! 켁켁켁! 선혜주!”

“아직 반 각 안 지났다.”

“사, 살려……. 선혜주! 잘못했……. 선혜주! 이러다 저 죽습……. 선혜주! 그르르륵! 선혜주! 진 진짜로 죽……. 선혜주!”

정확히 반 각이 흐를 때까지 백서휘는 모용진을 구타했다.

“그래, 이거지. 이렇게 두들겨 맞아야 혈한이 나오지.”

“서, 서, 선혜주!”

백서휘가 모용진을 때리는 걸 드디어 멈추었다.

“자, 잠깐만, 혈한이요? 그러면 제가 드디어…….”

“그래, 네 거력금강공의 성취가 3성이 넘었다는 뜻이다.”

“마, 말도 안 돼.”

“6성의 성취에 이르면 내가 그 선유상단의 선혜주란 여자애랑 만남을 진행해 주지.”

“와아아아아아!”

“다음 사람도 시험 봐야 하니까 저쪽으로 가.”

“네! 하하하하!”

모용진이 실실 웃으며 남궁혁을 부축해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은 황보정석!”

“관주님! 황보정석이 아니라 당기준 차례입니다!”

제갈선우가 손을 머리 위로 들며 말했다.

“당기준이랑 너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시험을 치를 예정이니까 일단은 대기하고 있어.”

제갈선우와 당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보정석, 저리로 가서 서.”

“네!”

“하나에 시작한다. 셋, 둘, 하나!”

백서휘와 황보정석이 서로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