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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05화 (105/202)

귀환무관 105화

‘끝났군.’

백서휘는 비무의 승자인 황보정석을 바라봤다.

한두 수 위의 고수를 이기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황보정석이 해냈다.

‘이번 일은 칭찬을 해줘도 되겠어.’

백서휘는 자기 수련장으로 떠나는 황보정석에게 전음을 날렸다.

『잘했다.』

관계 개선을 위해 계산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오늘의 황보정석은 훌륭했다.

황보정석이 감격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해도 못 찾으니까 얼른 수련이나 하러 가!』

백서휘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더 강해져서 가족들을 확실하게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되어줬으면…… 잠깐만, 이거?!’

황보정석만 강해지는 게 아니라 다른 오룡단원도 강해진다면?

자신의 부재 시에도 가족들이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설사 위협을 받더라도 자신이 가족들에게 소환되는 시간만 벌어주면 됐다.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을 떠올린 거지? 아니, 지금이라도 생각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백서휘는 어떤 식으로 오룡단을 가르칠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당연한 거지만 일단은 무공부터 가르쳐 줘야겠지.’

자신의 머릿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무공이 잠들어 있었다.

거의 모든 것이 이젠 없는 암중단체들에서 얻은 무공들이었다.

주인을 자처할 놈들을 모두 죽인 데다가 전체적으로 무공을 개조할 예정이니 가르쳐서 문제가 될 일은 없을 듯싶었다.

‘어떤 무공이 좋을까.’

백서휘는 심각한 얼굴로 네 사람에게 가르칠 무공을 고민했다.

‘당기준은 잠광환허술(潛光幻虛術)을 가르치는 게 좋겠어.’

잠광환허술은 빛이 있는 곳에서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환술 겸 은잠술이었다.

다른 무공도 아닌 환술 겸 은잠술을 가르치려고 고른 건 이미 당기준의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이었다.

독기를 이용하는 무공.

높은 수준의 단검술과 암기술.

뛰어난 보신경 실력.

이런 능력들과 잠광환허술이 합쳐지면 당기준의 전투 수행 능력이 폭발적으로 커지리라 예상됐다.

‘다음은 제갈선우인데…….’

제갈선우는 무력 면에서는 솔직히 큰 강점을 지니지 못했다.

그의 강점은 전투 지휘 능력과 공작 능력에서 나왔고, 둘 다 확실한 정보가 있는 게 좋았다.

‘정보를 얻는 능력이라…… 아! 일월안(日月顔)을 가르치면 되겠네.’

일월안은 안법(眼法)의 일종으로 대단한 공능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해와 달이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전장의 전체적인 정보를 빠르게 파악하게 해주고, 은잠술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나 환술처럼 눈을 속이는 것들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제갈선우가 일월안을 배우면 날개 달린 호랑이가 되겠지. 이제 다음은 남궁민인데…… 이놈은 뇌룡보(雷龍步) 말고는 답이 없겠어.’

뇌룡보는 공수 양면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과 유사시엔 몸을 안전하게 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보법으로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를 지니게 해준다.

‘이제 남은 건…….’

백서휘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용진에게 뭘 가르쳐야 할지 답이 안 나왔다.

그에게 재능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무가의 자제가 가질 만한 평균적인 재능은 있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무공을 듬성듬성 배운 게 문제였다.

아주 쉬운 건 모르면서 그것보다 상승의 무리에 대해서는 알고, 상승의 무리에 대해 조금도 모르면서 아주 쉬운 건 알았다.

그렇다 보니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가늠이 안 됐다.

‘그래도 지금 다시 기초부터 나름 차근차근 쌓고 있긴 한데…….’

모용진이 기초부터 어느 정도 완성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건 백서휘에게 너무 지난한 일이었다.

‘다른 놈들처럼 가진 능력들의 동반 상승효과를 노리지 말고 그냥 목숨을 안전하게 보전하는 쪽으로 가자.’

백서휘는 잠시간의 고민 끝에 모용진에게 가르칠 무공을 결정했다.

가르칠 무공은 거력금강신(巨力金剛身)이란 근력을 강화해 주고 피부가 질겨지고 단단하게 해주는 공능이 있었다.

‘이제 네 사람의 특성에 맞게 무공을 개조해 볼까.’

하늘에 달이 뜰 때까지 백서휘는 네 가지 무공을 계속해서 수정하고 보완했다.

그 결과, 신체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일월안과 거력금강신은 안전을 위해 무공 구조를 재구축했고, 잠광환허술과 뇌룡보는 크게 위험할 일이 없어서 많이 손대지 않았다.

‘새벽에 몸을 풀러 모였을 때 말을 꺼내면 되겠지.’

혹사한 머리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던 백서휘는 잠을 청했다.

다음 날.

해가 떠오르기 직전에 일어난 백서휘는 오룡단이 함께 몸을 푸는 곳으로 향했다.

그가 공터에 등장하자 오룡단원이 몸을 풀다 말고 정중히 인사했다.

“몸 풀면서 들어.”

“네!”

“오늘부터 너희들의 수련 방법을 확 바꾸려고 한다.”

변화가 생긴단 말에 오룡단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백서휘에게로 향했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강해지는 방법엔 두 가지 방법이 있어. 하나는 약점을 보완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강점을 강화하는 거지.”

말은 두 가지만 있다고 했지만 사실 강해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다.

마지막 하나는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강화하는 앞서 나온 두 가지 방법을 섞은 거였다.

문제는 그 마지막 방법은 백서휘처럼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 있는 이에게만 허락한 방법이라는 거였다.

평범한 재능을 가진 자가 세 번째 방법으로 강해지려고 하면 이도 저도 안 될 가능성이 9할 9푼 9리였다.

“나는 지금껏 해왔던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을 버리고 너희들이 가진 강점만을 강화하려고 한다.”

몸을 풀다 말고 제갈선우가 질문이 있는지 손을 들었다.

“뭐가 궁금한 거지?”

“마음을 바꾸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너희들의 성장 속도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지지부진해서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서다.”

백서휘의 일침에 황보정석을 제외한 모든 오룡단원들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두 번째는 공들여 약점을 보완하는 건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야. 시간이 많고 평생 산속에서 수련할 마음이 있다면 약점을 보완하는 게 맞아. 근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시간 소모가 적은 방법인 개개인의 강점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 게 맞다.”

묵묵히 듣고 있던 황보정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너희들의 빨리 강해질수록 내 가족이 안전해지기 때문이야.”

사실 이게 가장 중요했다.

자신이 멀리 떠났을 때 갑자기 적이라도 나타났을 때 오룡단이 약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가족들은 납치를 당하든, 죽든 하게 될 거다.

‘하지만 강하면 다르지.’

자신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 거나 적들을 격퇴할 수 있을 터였다.

“저희의 강점을 어떤 식으로 강화하실 건지 궁금합니다.”

“일단은 너희들에게 새로운 무공을 가르칠 생각이다.”

오룡단원이 몸을 풀다 말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미 무공을 익힌 황보정석도 놀랄 정도였다.

백서휘는 헛기침을 하는 척 입을 가렸다.

그러고는 황보정석을 향해 은밀히 전음을 날렸다.

『앞으로 너를 다시 가르치는 척할 건데 그때 눈치껏 연기 잘하는 게 좋을 거야.』

황보정석이 백서휘와 눈을 맞추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 배운다는 무공은 똑같은 종류의 무공인 겁니까?”

“조금 전에 뭘 들은 거야. 개개인의 강점을 강화한다니까.”

“그, 그러면 배우는 무공이 모두 다른…….”

“그래. 다 달라.”

다 다르다는 말에 오룡단원들이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백서휘는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자, 이제 대충 설명이 끝났으니 가르칠 무공이 뭔지 알려주겠다. 황보정석이 배울 무공은 명왕폭류도법이고, 당기준이 배울 무공은…….”

앞으로 배울 무공에 관해 설명하고 질문을 받아주다 보니 어느새 식사할 시간이 되었다.

백서휘와 오룡단은 식사를 하면서도 수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공은 그럼 일대일로 가르치실 겁니까?”

“단체로 가르치는 것도 고민해 보긴 했지. 근데 이상한 버릇이 들지 않게 하려면 집중적으로 한 명만 가르치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날마다 한 명씩 가르치려고 하는 거야.”

“그럼 월요일은 누구, 화요일은 누구 이런 식으로 가르치시는 겁니까?”

“그렇게 가는데 순서는 나이순으로.”

“그럼 제가 가장 먼저 그 일월안이란 걸 배우게 되겠군요.”

“그래, 이따가 밥 먹고 소화가 다 되면 내가 있는 공터로 오면 돼.”

“궁금한 게 있습니다.”

황보정석이 손을 들며 말했다.

“뭔데?”

“제갈 형이 가르침을 받는 동안 저희는 뭘 하면 됩니까?”

“이따가 설명하려고 했는데 이야기 나왔으니 지금 할게. 네가 배울 명왕폭류도법은 큰 힘을 쓸수록 신체에 무리가 많이 가는 무공이야. 그러니 내공을 쓰지 않고 몸을 단련해라. 다음은 당기준!”

“네.”

당기준이 식사를 하다 말고 백짓장처럼 창백한 얼굴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내상은 어느 정도 회복됐지?”

“일주일은 갈 것 같습니다.”

“그러면 너는 다른 수련을 하지 않고 내상을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알겠습니다.”

“모용진!”

“네!”

모용진은 새로운 무공을 익힌다는 사실에 흥분했는지 코를 벌렁거렸다.

“너는……. 그냥 있어라.”

“아무런 수련도 하지 않고요?”

“황보정석을 따라서 육체를 단련하는 게 좋긴 한데 네가 그걸 잘할 것 같지 않아.”

“자, 잘할 수 있어요!”

“그럼 황보정석이랑 같은 수련을 하되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돼. 알았어?”

“네.”

“마지막으로 남궁민!”

“네?”

“너는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을 기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어떻게 훈련하는지는 황보정석한테 물어봐.”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이요? 그건 왜 필요한 거예요? 보법을 배우는 거잖아요.”

“동체 시력은 뇌룡보의 속도를 눈이 따라가질 못해서 수련하는 거고, 반사 신경은 공격하거나, 방어하거나 할 때 너무 빨리 적에게 도달하거나 피하게 되는 바람에 적응이 안 될 때가 있다. 그래서 단련하는 거야.”

“아!”

“질문 있는 사람은 나중에 나랑 일대일로 상대할 때, 그때 해라.”

백서휘는 식기를 대충 씻은 후 항상 수련하는 공터로 갔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제갈선우가 그를 찾아왔다.

“적당히 아무 데나 앉아.”

제갈선우는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앉았다.

“무공을 가르치기 전에 네게 무조건 대답해야 하는 질문을 던질 거다.”

“……‘무조건’이면 심각하고 무거운 쪽의 질문인 겁니까?”

“그건 사람에 따라 달라.”

“음…… 그러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물어보셔도 됩니다.”

“첫 번째 질문이다. 정말로 지금보다 강해지고 싶나?”

“무인으로서 강해지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두 번째 질문이다. 강해지고 싶은 이유는?”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아니, 무인으로서, 오룡단의 단장으로서 이런 게 아니라 ‘인간 제갈선우’로서 그러한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는 거야.”

“그러면 제가 강해지고 싶은 이유는 없습니다.”

“정말?”

“제가 강해져서 뭘 하겠습니까.”

제갈선우의 목소리에는 허망함과 공허함이 가득 섞여 있었다.

“복수하고 싶지 않아?”

“……관주님이 내린 명령대로 저는 은원을 모두 잊었습니다.”

“가문과 연을 끊기 전에도 은원이나 바라던 게 없었나?”

“갑자기 이런 질문을 왜 하시는 겁니까?”

“네가 가진 욕망을 알고 싶어서.”

“저는 욕망이 없습니다.”

“욕망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제일 욕망에 미쳐 있는 법이지.”

제갈선우가 무언가를 말하려다 삼켜 버렸다.

그가 다시 말을 꺼낸 건 약 반각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제가 가긴 욕망을 왜 물어보시려는 건지 알려주십시오.”

“강해지기 위해서는 그만큼 강력한 욕망이 필요한 법이거든.”

“그러면 관주님은 그 강력한 욕망 덕분에 강해지신 겁니까?”

“그래.”

두 사람 사이에 오랜 시간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백서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끈질기게 제갈선우를 기다렸다.

제갈선우는 고민을 끝내고는 한숨을 땅이 꺼져라 쉬었다.

“……좋습니다. 말씀드리도록 하죠. 제 욕망이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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