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71화
일주일 후.
백서휘는 학무관의 남자 기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하니 오룡단이 남자 기숙사 앞에 나와서 몸을 풀고 있었다.
“준비됐지?”
“네!”
말과는 다르게 백서휘를 바라보는 모두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시험에 불합격했을 때 있을 일을 듣지 못해 불안한 모양이었다.
“다들 나를 따라오도록.”
백서휘는 오룡단과 함께 학무관의 연무장으로 이동했다.
“너희들이 가장 먼저 볼 시험은 내공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 저 바위를 들고 최대한 멀리 걸어가는 거다. 제갈선우 앞으로!”
“네!”
“시작해.”
“끄응차!”
제갈선우가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을 잔뜩 줬지만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갈선우 탈락! 다음은 황보정석이다. 나이 순서로 진행할 거니까 다음 차례 되면 재깍재깍 앞으로…….”
“관주님! 이의 있습니다!”
“이의?”
“인간이 들 수 없는 무게로 시험을 보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해?”
“네.”
백서휘는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바위 앞으로 걸어갔다.
눈앞에 보이는 바위의 무게는 약 삼백 근.
한창 수련할 때는 이것보다 훨씬 더 무거운 바위도 들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 바위는 백서휘에게 식후 운동 거리도 되지 않았다.
“잘 봐.”
오룡단은 두 눈만이 아니라 기감까지 총동원해서 지켜보기 시작했다.
백서휘는 바위를 가볍게 들어 올린 후 그들 주변을 돌아다녔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인간이 저런 근력을……!”
제갈선우가 놀람을 넘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서른 보라……. 바위 무게가 생각했던 것보다 가볍나 보군.”
“제갈 형은 저걸 못 옮긴 거야? 진짜 약골이네 푸하하하!”
“저건 저도 옮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당기준을 제외한 모두가 제갈선우를 비웃었다.
백서휘가 바위를 다시 원래 자리에 내려놓고 시험을 재개했다.
“다음.”
황보정석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걸어 나와 바위 앞에 섰다.
시험을 대비해 같이 단련한 덕분에 오룡단은 황보정석의 근력이 그들 중 가장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이 황보정석을 보는 눈빛에는 신뢰감과 기대감이 가득했다.
“시작해.”
“끙차!”
황보정석이 바위를 들고 힘겹게 걸음을 떼었다.
오룡단은 한 마음으로 그의 걸음 수를 세기 시작했다.
황보정석이 힘겹게 열 걸음을 걷고는 바위를 내려놨다.
“한 보, 두 보, 세 보……. 열 보?”
“겨우 열 보밖에 못 걸었다고?”
“어…….”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 나오자 다들 믿을 수 없단 표정을 지었다.
황보정석 본인도 충격이 컸는지 숨을 몰아쉬면서 바위를 뚫어지라 바라봤다.
“황보 형이 이 정도면 관주님은…….”
남궁민의 말에 다들 괴물을 보듯 백서휘를 바라봤다.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극히 적은 당기준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자, 다음!”
이후로 근력 시험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당기준은 다섯 보를, 모용진이 한 보를 걸었고 남궁민은 제갈선우처럼 바위를 들지 못했다.
“다음 시험은 여기서 저기 깃발이 있는 곳까지 최대한 빠르게 신법을 펼치는 거다. 시간제한이 있으니 온 힘을 다해 달려라.”
“제갈선우 앞으로.”
“네!”
“내가 깃발이 있는 곳에서 시작이라고 외치면 그때부터 달리면 돼.”
“네!”
백서휘는 깃발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서는 큰 소리로 ‘시작’이라고 외쳤다.
제갈선우는 근력 시험에서 있었던 일을 만회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뛰었다.
‘조금만 더 빠르게……!’
제갈선우는 깃발을 지나치자마자 숨을 몰아쉬며 백서휘를 바라봤다.
“제갈선우 탈락.”
“예?”
“황보정석 나오도록.”
“제가 왜 탈락입니까?”
“굼벵이 기어가듯 움직였으니 탈락이지.”
“구, 굼벵이라니요. 저 정도면 충분히 빠른 겁니다.”
“내 기준엔 아니니까 돌아가.”
제갈선우가 다른 단원이 있는 곳으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시작!”
황보정석은 제갈선우보다 훨씬 더 느리게 달리는 바람에 결승점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탈락했다.
뒤이어 당기준의 차례가 되었다.
“시작!”
당가의 비전 신법이라고 할 수 있는 추뢰신법(追雷身法)이 당기준의 발끝에서 펼쳐졌다.
휙휙휙!
바람을 가르며 호쾌하게 나아가는 당기준을 보며 다들 이번에는 통과자가 나올 거라 생각했다.
“당기준 통과!”
이후로 모용진과 남궁민이 도전했지만 황보정석과 같은 결과를 맞았다.
“이걸 왜 통과 못 하는지 모르겠네. 이게 어렵나?”
백서휘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생각할 땐 못해도 세 명은 통과를 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나온 결과는?
당기준을 제외한 전원 탈락이었다.
“어렵습니다.”
“이게?”
“네.”
백서휘는 오룡단의 면면을 살펴봤다.
다들 제갈선우의 말에 공감하는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너희들 실력이 형편없는 것 같은데.”
“절대 아닙니다.”
“그래, 뭐 그렇다 치자고.”
뒤이어서 내공을 다루는 능력을 시험 봤지만 남궁민과 당기준을 제외한 모두가 탈락했다.
“마지막 시험을 보기 전에 딱 일 각만 쉬겠다. 뒷간 갈 사람은 지금 갔다 오도록 해.”
“네!”
백서휘가 어딘가로 사라지고 오룡단만이 남았다.
모용진은 제갈선우를 상대로 눈치 없이 깐족거리기 시작했다.
“제갈 형이랑 저만 시험을 하나도 통과 못 했다는 거 알고 있으시죠?”
“하하! 그래도 내가 모용 동생보다는 더 나으니까 동류 취급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에이~ 동류 취급을 하지 말라니요. 이미 우리는 동류에요. 아, 탈락자 동료라고 해야 하나? 하하하.”
“모용 동생, 적당히 해.”
“뭘 적당히…….”
챙!
제갈선우가 모용진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그, 그만 하겠습니다.”
잠깐의 소란이 끝나고 백서휘가 연무장으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자그마한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제갈선우! 나와서 이 안에 든 병들을 하나씩 단원들한테 나눠줘.”
“네.”
처음 시험을 볼 때와 다르게 제갈선우의 목소리엔 맥이 없었다.
백서휘는 모든 시험에 탈락해서 그런 거란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자기 탓이지, 뭐.’
제갈선우는 저잣거리에 도는 무공을 혼자서 끙끙거리며 익힌 삼류 낭인이 아니라,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무공을 사부 밑에서 체계적으로 무공을 배운 무인이었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약하다는 건 제갈선우 본인이 열심히 수련을 안 했다는 뜻이었다.
“다 나눠줬습니다.”
“짧게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네!”
“한 식경 안에 나한테 병 안에 든 돼지 피를 묻히면 돼. 이전 시험에서 보여준 모습과 마지막 시험에서 보여준 활약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투입되는 일을 정할 거니까 이 악물고 시험에 임하는 게 좋을 거야.”
“투입되는 일이 어떤 건지 추측할 수 있게 단서 하나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안 좋은 평가를 받을수록 더럽고, 험한 일을 하게 된다고 알고 있으면 돼.”
제갈선우는 머리 좋은 자답게 꼴찌의 업무가 무엇인지 바로 눈치챘다.
그때 백서휘가 품속에서 모래시계를 하나 꺼냈다.
“이 모래시계를 뒤집어서 협탁에 올려놓으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오룡단 모두가 자세를 낮추고 천과 백서휘를 번갈아 봤다.
백서휘는 피식하고 웃더니 모래시계를 뒤집어 협탁에 올려놨다.
그 순간, 여섯 남자가 질풍처럼 움직였다.
“다들 무기에 돼지 피를 발라!”
오룡단 모두가 제갈선우의 말을 따라 무기에 피를 발랐다.
백서휘는 제갈선우에 대한 평가를 상향 조정했다.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무기의 길이를 이용할 방법을 생각했다니, 제법이야.’
물론 백서휘가 움직이는 속도를 생각하면 그냥 뿌리는 거든, 무기를 이용하는 거든 어려운 건 매한가지였다.
휙휙휙!
무기가 사방팔방에서 들어왔지만 백서휘에게 닿은 건 하나도 없었다.
죽어도 꼴찌가 되기 싫었던 제갈선우는 필사적으로 방법을 짜냈다.
‘너무 빨라! 못 따라잡겠어! 무기가 닿으려면 최소한……. 잠깐! 무기? 우리가 아니라 무기만이라도 관주를 따라잡으면 되잖아.’
제갈선우는 당기준을 찾기 위해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당 동생!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암기 가진 거 있나?”
“그건 왜 묻는 거지?”
“있어? 없어?”
“있다.”
“그럼 어서 돼지 피를 묻혀서…….”
“거절하지.”
“왜?”
“목숨이 위험한 것도 아니고, 내가 꼴찌를 할 일도 없을 테니까.”
제갈선우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다른 단원들을 쳐다봤다.
“이쪽도 없어.”
“저도.”
“나도 없어.”
제갈선우는 슬쩍 고개를 돌려 모래시계를 봤다.
‘이 할밖에 안 남았잖아?’
갑자기 코끝에서 뒷간 냄새가 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때 제갈선우는 백서휘의 움직임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왜 반격을 안 하는 거지?’
반격해서 한 명씩 기절시켜도 할 말이 없는 처지였다.
‘우리가 너무 형편없어서 일부러 반격을 안 하는 건가. 좋아, 이걸 이용하자.’
굴욕적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쓸 방법은 다 써봐야 했다.
제갈선우는 단원들에게 전음으로 작전을 설명했다.
『오행진(五行陣)으로 압박하다가 신호를 주면, 동귀어진할 기세로 달려들어서 끌어안기만 하면 돼. 할 거야? 말 거야?』
단원 모두가 제갈선우의 작전을 따르겠다는 말을 전했다.
‘가장 강력한 당기준을 전위에 세우고…….’
제갈선우는 오행진을 어떻게 구성할지 생각하는 와중에 모용진에게서 전음이 날아왔다.
『근데 제갈 형, 오행진이란 거 어떻게 하는 거야?』
『모용 동생, 설마 무공 수련할 때 삼재진, 오행진, 칠성진 같은 거 안 배웠어?』
『배웠던 것 같기도 하고 안 배운 것 같기도 하고……. 잘, 기억이 안 나네.』
제갈선우는 울화통이 터져 욕을 내뱉으려고 했다.
그때 거짓말처럼 최종 시험이 막을 내렸다.
“시험 끝. 지금부터 묻히는 피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땀 빼지 말고 멈춰.”
제갈선우는 낙담한 얼굴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전 시험에서 통과를 한 번씩 한 단원들이 그를 위로했다.
“제갈 형이랑 나랑은 전생에 뭐가 있었나 봐요. 이렇게 끝까지 같이 가게 될 줄…….”
지금 제갈선우에겐 깐족거리는 모용진에게 욕할 기운도 없었다.
그래서 멍하니 보고만 있는데 백서휘가 근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시험 아직 안 끝났다. 다들 자리로 돌아가.”
오룡단 모두가 화들짝 놀라며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지금부터 평가 결과를 발표하겠다. 두 번 말 안 할 거니까 잘 들어라. 당기준 상! 황보정석 중! 남궁민 하! 제갈선우 하! 모용진 최하!”
넋이 나가 있던 제갈선우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관주님! 저처럼 시험을 아무것도 통과 못 했는데 제갈 형이 왜 ‘하’에요?”
“마지막 시험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고 평가한다고 했잖아. 아무것도 안 한 너랑 다르게 제갈선우는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고.”
“그, 그러면 제가 꼴찌인 거네요?”
“그래, 네가 꼴찌다. 앞으로 최고로 더럽고 험한 일을 하면 돼.”
“어, 어떤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오늘부터 자하무관, 학무관, 만복상단의 뒷간 관리를 맡으면 된다.”
“뒷간 관리요?”
“모용 동생은 똥이나 푸란 소리야.”
제갈선우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룡단원들은 울상을 짓는 모용진을 보며 크게 웃었다.
백서휘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 큰소리로 외쳤다.
“다들 주목!”
오룡단원은 군기가 바짝 든 신병처럼 황급히 차렷 자세를 취하고 백서휘를 바라봤다.
“제갈선우와 남궁민이 투입될 일에 대해 알려주겠다.”
제갈선우는 부처와 원시천존, 조상신까지 찾으며 쉬운 일이 걸리길 기도했다.
“제갈선우와 남궁민이 할 일은 간단해. 그냥 장사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양민들의 소소한 불만 사항을 해결해주는 일을 하면 돼.”
“불만 사항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네가 생각하는 전부.”
“그걸 좀 확실하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잃어버린 개를 찾아주는 거나 항아리에 물을 길어다 주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들 말이야.”
“아, 그런 일들을 말씀하시는 거였군요.”
“할 만한 일이지?”
백서휘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할 만한 일……. 이죠. 할 만한 일…….”
“긍정적으로 생각해. 너희들이 언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겠어. 안 그래?”
백서휘는 말을 하면서 오룡단원의 면면을 살폈다.
모두가 조개처럼 입을 꽉 다 물었다.
그중에서 가장 심한 건 역시 모용진이었다.
‘업보라고 생각해라.’
같이 지낸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모용진의 성격은 파악이 됐다.
모용진은 눈치가 없고, 무식하며, 화를 잘 내고, 까불거리길 잘했다.
볼 때마다 그를 제외한 네 명이랑은 다른 의미로 골머리를 좀 앓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당기준과 황보정석이 투입될 일을 발표할 텐데…….”
백서휘가 살짝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황보정석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히, 힘든 일입니까?”
“쉽긴 한데 인식은 별로인 일이라서.”
“저희에 대한 인식이 원래 그렇게 좋지 않아서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발표한다?”
“네.”
“당기준과 황보정석은 포쾌들을 도와 장사의 치안을 좋게 만들도록 해.”
황보정석은 백서휘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가 왜 고민했는지 알게 됐다.
“관주님도 아시겠지만 상당한 수의 포쾌가 치안을 유지하는 건 뒷전으로 미루고, 더러운 일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당장 떠오르는 나쁜 짓만 해도…….”
포쾌는 치안을 유지하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하는 직업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관리들의 뇌물수수를 돕고, 피해자에게 급행료를 뜯기도 하며, 흑도들의 뒤를 봐주는 등,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직업에 대한 인식이 나빠 명문가라고 칭하는 곳에서는 포쾌가 되면 안 된다는 가규가 있기도 했다.
“아니, 그 일들을 굳이 나열할 필요는 없어. 여기 있는 모두가 아는 문제이긴 하니까.”
“그럼 포쾌들을 돕지 않아도…….”
“그래, 안 도와도 돼. 대신 태업하는 포쾌들의 몫까지 일해서 장사의 치안을 좋게 만들어.”
“네!”
“자, 이제 투입되는 일이 뭔지 정했으니 공통으로 지켜야 할 규칙을 말해줄게. 첫 번째, 다들 무관복을 입은 상태에서 일하는데 모용진은 입지 마. 두 번째, 욕을 하지 않는다. 세 번째, 장사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히…….”
백서휘는 무관에 대한 인상을 나쁘게 만드는 요소를 금지했다.
“이제 공지할 건 다 공지했다. 궁금한 점 있으면 지금 말해. 나중에 찾와어서 물어보지 말고.”
계속 기다리는 데도 질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없는 것 같네. 모두 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