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72화
뱀피로 된 옷을 입은 여자가 빠른 속도로 달려와 문을 열었다.
“언니, 본교와…….”
“익화사.”
“네?”
“종을 울리고 들어오라고 말했을 텐데?”
타오를 듯한 적발을 가진 여성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언니.”
“됐다. 오늘은 무슨 일로 나를 찾았느냐.”
“본교와 혼천회란 곳이 손을 잡았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에요?”
“한시적으로 동맹을 맺은 거다.”
적발의 여자는 말을 마치고 차를 호로록 마셨다.
“상제(上帝)님은 어째서 그런 곳과 손을 잡으신 거죠?”
“수호문의 문주를 잡기 위해서는 다른 곳과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 아마 이 생각은 우리만이 아니라 다들 하고 있을 거야.”
“왜 힘을 합쳐요? 그놈이 강하다지만 우리 힘만으로도 충분히 물리칠 수 있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요. 당장 저만 해도 ‘이공간’으로 그놈을 끌어들이면…….”
“그래, 그곳에서라면 그놈을 이길 수도 있겠지. 근데 실패하면 어쩌려고 그런 말을 하는 거냐? 그놈에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거야? 괜히 본교와 다른 곳들이 혼천회가 힘을 합치는 줄 아느냐?”
“혼자라면 그런 가능성이 있겠지만, 명사(鳴蛇)와 함께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길 수 있어요!”
“내 밑에 있는 일곱 명 중 가장 약하잖느냐. 명사와 함께라고 해도 힘들 거야.”
자존심이 상했는지 익화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적발의 여성이 익화사를 달래기 시작했다.
“우리는 세가 적은 집단이라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 자칫 잘못해서 네가 잘못되면 나는…….”
“절대 잘못될 일 없다는 걸 제가 보여드릴게요.”
익화사가 두 눈을 똑바로 보며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 * *
‘이놈들이 일을 잘하고 있나?’
본격적으로 일에 투입 시킨 이후로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백서휘는 높다란 건물에 올라가 주위를 빙 둘러봤다.
모용진을 제외한 모두가 근방에서 일을 하는 중이었다.
‘모용단은 뒷간에서 똥이라도 푸고 있나?’
백서휘는 모용진에게 묵념하고는 당기준과 황보정석에게로 향했다.
당기준과 황보정석은 현상 수배지가 붙은 담벼락을 보며 고심 중이었다.
‘괜찮은 선택을 했군.’
현상금 사냥은 포쾌를 돕지 않으면서 챙길 건 다 챙길 수 있는 아주 좋은 전략이었다.
‘그런데 이 두 놈이 추종술(追從術)을 익혔던가? 안 익혔으면 실패할 확률이 꽤 높을 텐데?’
부정적으로 보는 건 수호문 문주로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나쁜 놈들은 죽이는 것보다 찾아내는 게 더 어려웠다.
현상금 사냥 역시 체포하는 일보다 추적하는 일의 비중이 훨씬 더 컸다.
‘하오문에서 받은 정보에는 적혀있지 않았는데.’
두 사람의 과거를 생각하면 배웠을 것 같진 않았다.
일단 당기준은 다른 사람과 분리된 채로 자라서 익힐 기회가 없었을 거고, 황보정석은 과거에 소가주 후보 중 하나라 배울 일이 없었을 거다.
‘그래도 이 짓을 한 지 몇 주 됐으니 추종술의 기초 정도는 알게 됐겠지?’
나중에 누군가를 추적하는 일에 두 사람을 써먹어도 될 것 같았다.
그때 담벼락을 보며 침묵하던 황보정석이 입을 열었다.
“어떤 놈으로 할래?”
“이놈.”
“그놈 말고 다른 놈으로 하는 게 어때?”
“아니, 이놈 말고는 안 돼.”
“그럴 만한 이유가 있나?”
“이놈을 잡으면 관주가 좋아할 것 같아서 잡는 거다.”
황보정석은 살짝 감겨있던 눈을 크게 떠 이상한 놈 보듯 당기준을 바라봤다.
“뭐 잘못 먹었어? 그놈 좋아할 만한 일을 왜 해.”
“포상을 줄 수도 있으니까.”
“포상은 주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준다고 하더라도 별것도 아닌 거 주고 생색낼 게 뻔해.”
황보정석에게 욕 아닌 욕을 들은 백서휘는 은형잠종술을 해제할지 말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관주가 도박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줄지도 몰라.”
“진짜 그렇게 되면 좋긴 한데 그럴 리가 없잖아. 잠깐만, 뭔가 좀 이상하네. 갑자기 왜 이래? 너 원래 이런 놈 아니잖아.”
“왜 이러는지 말하면 저놈을 잡을 건가?”
“긍정적으로 생각은 해볼 수 있지.”
“……사람을 죽이고 싶다.”
당기준의 눈빛에 살기가 감돌았다.
“미친놈!”
“관주 몰래 골패 만드는 인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정곡을 찔린 황보정석은 얼굴을 굳히며 입을 닫았다.
백서휘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맹세를 어긴 걸로 쳐야 하나?’
골패를 만들기만 했지 본격적으로 도박을 한 게 아니긴 했다.
‘경고하고 굴리는 거로 끝내야겠군.’
지옥 훈련이 기다리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 황보정석이 입을 열었다.
“……좋아, 그놈 잡기로 하지. 대신 각오는 해야 할 거야.”
“각오?”
“최근에 실종된 사람들 거의 모두가 저놈 때문이란 소리가 있어.”
“그게 어쨌다는 거지?”
“그 실종된 사람 중엔 너랑 나보다 뛰어난 무인도 한 명 섞여 있어서 그래.”
“그거라면 상관없다. 독은 고수, 하수를 가리지 않으니까.”
“찾는 건? 그것도 각오가 되어 있어?”
“그런 걸 각오까지 해야 하나?”
“지금도 정체를 몰라서 이놈 저놈하고 있잖아. 이놈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일 수도 있고, 혼자서 사람들을 납치하는 게 아니라 여럿이서 납치하는 걸 수도 있어. 지금처럼 단서가 희박한 상황에서 잡으려면 개고생해도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해.”
“저놈을 잡기로 마음먹었을 때 이미 그런 각오는 했다.”
“나는 그런 각오가 안 되어 있는데?”
“그럼 지금 해.”
“후~ 좋아, 잡자. 잡아.”
“또 각오할 게 남아 있나?”
“아니, 없어. 이제 그놈을 잡으러 가기만 하면 돼.”
황보정석과 당기준이 현상수배지를 챙겨 다른 곳으로 떠났다.
‘추종술 배운 놈들도 못 잡은 걸 저놈들이 한 번에 잡지는 못할 테니 당분간은 다른 놈들 따라다녀도 괜찮겠지.’
그때 남궁민과 개들이 게시판 근처에 있는 세 사람을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뒤이어 제갈선우가 나타나더니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뛰어갔다.
‘이번엔 저놈들을 따라가 보자.’
백서휘는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응룡비천신법을 펼쳤다.
‘저기 보이는군.’
남궁민이 검을 뽑아 휘두르는 모습이 백서휘의 눈에 들어왔다.
“죽어!”
“안 돼!”
제갈선우는 다급한 얼굴로 남궁민을 향해 검집을 던졌다.
캉!
찢어지는 듯한 소리에 개들이 깜짝 놀라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남궁민이 역팔자 눈썹을 하고 제갈선우를 바라봤다.
“뭐야! 미쳤어? 왜 막고 지랄이야!”
“남궁 동생을 구해주려고 막은 거야.”
“날 구한다고?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혹시라도 남궁 동생이 칼질을 잘못해서 복실이를 죽이기라도 했어 봐. 관주가 어떻게 나올지 상상이 돼?”
“겨우 개를 죽인 거로?”
“남궁 동생은 우리가 지금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나보네.”
“우리가 개고생하는 게 보기 좋아서 시키는 거겠지.”
“우리를 뿌리부터 바꾸고 무관 인식을 더 좋게 만들려고 지금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걸 거야.”
제갈선우는 백서휘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우리가 부탁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걸 넘어서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면 사람들에게 무관 인식이 어떻게 될까?”
“……나빠지겠지.”
“그걸 관주가 좋아할까?”
남궁민은 대답하지 못하고 아랫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다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안 좋아하겠지?”
“안 좋아한다고요? 뭘요? 어라? 개들은 또 다 어딜 간 거지?”
제갈선우는 혼란스러워하는 남궁민을 보며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조금만 쉬자.”
“네.”
두 사람은 바닥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복실이 살아 있긴 할까요?”
“아까 남궁 동생을 쫓던 개 중에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개가 있었잖아. 그 개가 복실이겠지.”
“생김새만 비슷하고 다른 개 같던데.”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있나?”
“목줄이 너무 낡았더라고요.”
제갈선우는 복실이를 닮은 개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남궁민의 말처럼 확실히 목줄이 많이 낡아서 최근에 사라진 개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진짜 복실이는 어디를 간 걸까?”
“누군가에게 잡아먹히지 않았을까요?”
“음……. 확인을 좀 해볼까?”
“어떻게요?”
“따라와 봐.”
제갈선우와 남궁민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취죽교로 향했다.
백서휘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들의 뒤를 밟았다.
“개방도들이 범인인 거예요?”
“진짜 잡아먹힌 게 맞다면 높은 확률로 그렇겠지. 타구봉법이란 무공이 있을 정도로 개 잡아먹는 걸 다들 좋아하니까.”
제갈선우와 남궁민이 취죽교 밑을 내려다봤다.
개방도들은 낮잠을 즐기거나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야, 저놈들은.”
“처음 보는 녀석들인데?”
“얼마 전에 분타주가 말했던 걔들이야.”
“아 그 세가에서 쫓겨났다던?”
제갈선우와 남궁민은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형제들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제 궁금증을 풀어줄 분 어디 안 계십니까!”
개방의 이결개가 껄렁껄렁한 걸음으로 걸어왔다.
그를 바라보는 백서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전에 내가 두들겨 팼던 놈 아닌가? 얼마 전까지 일결개였는데? 언제 이결개가 된 거지?’
자신이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사이에 진급한 모양이었다.
“뭐가 궁금해? 무림? 상계? 아니면 세가 내부의 일?”
“그런 쪽을 물어보려고 온 게 아닙니다.”
“그럼?”
“최근에 개를 잡아먹은 분이 있나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아! 또 왔네. 개 잡아먹은 거 우리 아니니까 좀 꺼져.”
“진짜 안 잡아먹으셨습니까?”
“진짜 없으니까 좀 가! 개 잡아먹을 놈이 우리만 있냐? 아니잖아!”
“그래도 가장 많이 잡아먹는 건 개방도들이 맞잖습니까.”
“우리는 주인 없는 것들만 먹어. 그것도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음……. 그럼 다른 질문을 하겠습니다. 형제님들 말고 다른 사람이 개를 잡아먹는 걸 목격한 적 있습니까?”
“잡아먹은 걸 본 건 아니고 야밤에 정체 모를 인간이 개랑 고양이들을 잡아가는 걸 봤다고는 하더라고. 신빙성이 조금도 없는 놈이 한 말이지만…….”
백서휘의 눈이 반짝였다.
‘잠깐, 이거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사람과 개, 고양이가 날마다 사라지는데 범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
어쩌면 두 범행의 주체가 같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일단 돌아가자.’
백서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관으로 돌아갔다.
‘갑옷을 입을까? 아니야. 그냥 평소처럼 가자.’
허리에 혁대를 하고 위에 피풍의를 걸쳤다.
삿갓까지 푹 눌러쓰고 밖으로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완전히 어두워지면 놈이든, 놈들이든 본색을 드러내겠지.’
백서휘는 높은 곳에 올라가 근방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구름이 달을 가려 더욱 어두워지자 포대를 든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그들에게서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그냥 약초꾼이나 땅꾼인 줄 알았다.
이상함을 느낀 건 그들이 한데 모여 동시에 무언가를 입에 넣은 걸 본 후부터였다.
‘뭐 하는 놈들이지? 어라?’
갑자기 포대를 든 사람들의 눈이 밤에 돌아다니는 짐승들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셋이서 한 조로 몰려다니면서 개와 고양이, 혼자 다니는 사람들을 죽여 포대에 담았다.
어찌나 움직임이 빠르고 은밀한지 사람 하나를 소리 없이 죽이는데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어디에 써먹으려고 사람이랑 동물 사체를 챙기는 거지? 사이한 무공을 익히려고 그러나?’
백서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남자 셋을 감시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그들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고 몸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신음까지 흘리는 걸 보면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지는 힘은 아닌 듯했다.
‘사교 쪽 암중단체 같은데…….’
어떤 종류의 암중단체일지 추측하고 있는데 감시하고 있던 세 남자가 포대를 들고 어딘가로 걸어갔다.
‘쫓는다.’
세 남자가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빈민가의 버려진 집이었다.
조금 기다리니 포대를 든 사람들이 한 조씩 버려진 집 앞으로 모였다.
그때 집 안에서 정체 모를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안으로 들어오세요.”
“네.”
포대를 든 사람들이 버려진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백서휘는 조심스럽게 그들을 뒤따라갔다.
안에는 뱀피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웃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익화사님, 다들 모였습니다.”
“알고 있어요.”
“오늘 마련한 ‘먹이’들이 다른 날보다 많은데…….”
“고마워요. 여러분. 정말 잘하셨어요.”
“그런 인사를 들으려는 게 아니라 그 약이 충분한지 묻고 싶어서…….”
“저도 명사의 먹이를 많이 마련한 걸 고맙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익화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제가 애타게 기다리는 분을 여러분이 데려오셔서 고맙다고 한 거예요.”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익화사를 바라봤다.
“아! 여러분은 안 보이시는구나. 저기 저분이 제가 기다리던 분이에요.”
익화사가 정확히 백서휘 쪽을 검지로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