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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64화 (64/202)

귀환무관 64화

“지, 진짜로 맹주님 아니, 맹주가 혈루단 소속이 맞습니까?”

“사도련의 공작 책임자를 맡았던 놈이 한 말이야. 그것만으로도 확인해볼 이유는 충분하지.”

제갈진천이 꽤 긴 시간 동안 생각하다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표적으로 삼기에 맹주는 너무 거물입니다. 아버지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신패를 걸었잖아. 그래도 못 움직이겠다는 거야?”

“저는 움직이겠지만 그걸로 만족하실 겁니까? 저는 무림맹에 미관말직도 없는데?”

“제갈세가의 가주를 움직이려면 결정적 증거를 가져오라, 이거야?”

“예.”

“좋아, 그 증거 가져오지.”

백서휘가 밖으로 나가자 우염상과 종리연이 따라나섰다.

“두 사람은 여기서 날 기다려.”

“같이 안 가고요?”

“나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해.”

백서휘는 무림맹의 본단이 있는 무한을 향해 전력으로 비천응룡신법을 펼쳤다.

고문을 통해 얻은 정보에 의하면, 유석은 보름날이 뜰 때마다 하백상의 서신을 받았다고 했다.

그 말은 보름이 되었을 때 도착할 수 있도록 하백상 측에서 미리 전서구를 보냈단 뜻이었다.

호북성 무한에서 강서성 남창까지의 거리는 대략 920리.

받은 훈련과 종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에 1,000리를 가는 전서구도 있었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해 생각하면 최소 하루 내지는 이틀 전엔 무조건 전서구를 보냈다고 봐야 한다.

‘전서구를 보내기 사나흘 전에 무림맹 안으로 잠입해야 하는데…….’

보름달이 떴던 날이 언제인지 떠올리니 아흐레 전이었다.

‘한번 계산해볼까.’

응룡비천신법을 전력으로 펼쳤으니 무림맹 본단에 도착하는 건 얼마 안 걸렸다.

이걸 하루로 잡고 본단 안으로 잠입해서 버티는 시간을 나흘 정도로 잡으면 될 것 같았다.

‘딱 좋군.’

백서휘는 하루가 거의 끝나갈 때쯤 무한에 도착했다.

자신이 이곳에 온 걸 아무도 몰라야 하기에 객잔을 잡지도 않았다.

‘하오문에 갈까?’

백서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곳의 하오문은 무림맹에서 이미 파악이 끝난 곳이었다.

지부장은 여전히 하오문 소속의 인물이라 걱정되지 않지만, 밑에 놈들은 달랐다.

정보가 유출되는 걸 방지하려면 다른 사람과 아예 마주치지 않는 편이 좋을 듯싶었다.

백서휘는 은형잠종술을 쓴 채 무림맹 안으로 잠입했다.

처음에는 내부의 구조를 몰라 헤맸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익숙해졌다.

나흘 후.

‘도대체 전서구를 언제 보내려는 거야!’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하백상은 사도련 쪽에 연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사도련에서 있던 일을 들킨 것 같지는 않아. 설마, 유석이 내게 거짓말을 한 건가?’

감각을 증폭시킨 상태에서 분근착골을 견디는 인물이 있단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백서휘의 경험으로 봐도 십이면 십, 백이면 백 모두 진실만을 말했다.

유석 역시 자기가 알고 있는 진실을 말했을 것이다.

백서휘는 유석이 하백상에 대해 말했던 모든 걸 떠올려봤다.

‘정도련 측 공작 책임자인 동시에 이 작전을 계획한 놈이라고 했어.’

머릿속에 무림을 멸절시키겠단 생각밖에 없는 놈이 명숙 노릇을 하는 걸 보니 배알이 꼴렸다.

‘좋은 사람인 척하느라 아주 고생이 많네.’

백서휘가 속으로 비아냥거리고 있을 때, 하백상이 다과회를 끝내고 자기 거처로 돌아갔다.

‘보내라! 보내라! 보내라!’

하늘이 백서휘의 염원을 들어준 걸까?

하백상의 처소에서 매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매의 발목에는 자그마한 통이 달려 있었다.

‘전서구가 아니라 전서응이잖아?’

백서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지금은 흥분할 때가 아니었다.

하백상은 지금 호위무사가 있는데도 전서구를 이용했다.

이 말은 맹에서 하백상을 제어하기 위해 뽑은 호위무사들까지 혈루단의 손길이 아주 진하게 닿았단 뜻이었다.

나중에 하백상만이 아니라 호위무사들도 다 죽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은밀히 매를 뒤따라갔다.

‘함녕(咸寧) 방향으로 가는 거보니까 사도련 쪽에 보내는 거 맞네.’

무한과 완전히 멀어졌을 때 백서휘는 폴짝 뛰어 전서응을 낚아챘다.

삐에에엑!

기절시켜야 하는데 날짐승이라 훈혈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백서휘는 살기를 아주 진하게 내뿜었다.

전서응의 눈이 뒤집히더니 이내 혼절해버렸다.

“자, 이제 서신을 봐볼까.”

서신에는 무림멸절 계획을 시행하라는 명령과 함께 작전 성공 이후에 황궁을 전복해야겠다는 암시가 담긴 글이 적혀 있었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고? 병신들.”

백서휘는 서신과 전서응을 챙겨 제갈세가로 돌아왔다.

“자, 증거.”

“이게 뭡니까?”

“맹주가 사도련 쪽에 보낸 서신이랑 전서응이야. 처소에서 날아간 거니까 확실할 거야.”

“한번 읽어봐도 되겠습니까?”

백서휘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진천이 빠른 속도로 서신을 읽기 시작했다.

“이, 이거 정말 맹주의 처소에서 나온 겁니까?”

“진짜야.”

“음…….”

“거짓말 같으면 가주를 불러서 필적을 확인해보든가.”

“아버님께 바로 연통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맹에 있으면 우리가 그리로 가도 될 것 같은데? 그게 속전속결로 더 편할 것도 같고.”

같은 성에 있었기에 이동에는 딱히 부담이 없었다.

제갈진천이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버님의 안전 문제도 있고, 보안을 요하는 일이기도 하니 본가에서 상의를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제갈진천은 사람을 시켜 제갈중헌에게 서신을 전했다.

나흘 후, 흙먼지가 잔뜩 묻은 백색의 마차와 무인들이 제갈세가 앞에 들어섰다.

“도착했습니다.”

새하얀 학창의를 입은 중년의 남자가 마차에서 빠르게 내렸다.

문 앞을 지키던 위사들이 그의 얼굴을 보고 대문을 열어젖혔다.

“진천이는 어디 있느냐?”

“나흘 전에 세가를 찾아온 손님과 함께 내원의 별관에 있을 겁니다.”

“손님을 외원의 객당이 아니라 별관에 머물게 했다고?”

“예.”

제갈중헌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외원의 객당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먼지가 잔뜩 묻은 무인들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원의 별관에 도착했다.

때맞춰 제갈진천과 백서휘 일행이 밖으로 나왔다.

“오셨습니까?”

“지급을 요하는 일이라기엔 너무 침착하구나.”

“침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 억지로 괜찮은 척하고 있는 겁니다.”

제갈중헌은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눈으로 제갈진천을 바라봤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서 해야겠지?”

“네.”

“그럼 들어가자꾸나.”

제갈중헌이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제갈진천이 무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들어라! 지금부터는 나나 아버지의 명령 없이는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

“충!”

무사들이 별관을 둘러싼 후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훑어봤다.

제갈중헌과 제갈진천, 백서휘 일행이 별관 안에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소개하겠습니다. 이쪽은 제갈세가의 가주이자 무림맹의 총군사로 성은 제갈, 이름은 중 자, 헌 자를 쓰고 계십니다.”

“제갈중헌이라 하오.”

“이쪽은…….”

제갈진천은 ‘자하무관’이라고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보다 못한 백서휘가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했다.

“자하무관의 백서휘라고 한다.”

“만나서 반갑소. 제갈중헌이라 하오.”

제갈중헌은 백서휘가 높임말을 하지 않는데도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신기하군.’

백서휘가 흥미로운 눈으로 제갈중헌을 바라봤다.

“이쪽 두 분은 이름과 소속이 어떻게 되지?”

“이쪽은…….”

“두 사람 다 말해도 돼.”

“이쪽에 있는 분 사도련 련주의 따님으로 종리연이란 이름을 쓰고 계십니다. 현재 소속은 자하무관입니다.”

“이쪽에 계신 노야는?”

“이름은 우에 이름은 염상을 쓰시는 분으로 화령철장이란 별호를 가지고 계십니다.”

“오! 화령철장!”

“현재 소속은 자하…….”

“자하무관 아니야. 이번 일 끝나면 서장으로 떠날 거거든.”

백서후의 말에 제갈중헌의 눈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아, 그렇군요. 제가 실수할 뻔했습니다.”

“소개 끝났으니 앉아도 되지?”

“아, 네, 얼마든지 앉으셔도 됩니다.”

모두 의자에 착석한 후 제갈진천을 바라봤다.

“이제 내게 설명을 좀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제갈진천은 며칠 동안 머릿속으로 정리했던 내용을 제갈중헌에게 설명했다.

“……네 말은 맹주님 아니, 맹주가 무림의 멸망을 바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 이 말이냐?”

“예.”

“증거는?”

“여깄습니다.”

제갈지천은 가지고 있던 맹주의 서신을 제갈중헌에게 내밀었다.

“이 따라 할 수 없는 오묘한 필체……. 정말 맹주가 쓴 서신이 맞구나.”

제갈중헌은 지근거리에서 일했던 자답게 하백상의 글씨체를 바로 알아봤다.

“네.”

제갈중헌은 길게 자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맹 내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시오?”

“제갈진천에게 어느 정도 들었어. 구파일방, 오대세가, 중소문파 이렇게 세 파벌로 나뉘어 있다며.”

“맹주는 그 중소문파 파벌의 수장이오. 그를 잘못 처리하면 무림맹은 세 개로 쪼개질지도 모르오.”

“이미 쪼개진 상태 아닌가?”

“아직은 합쳐져 있소. 그리고 본인은 사도련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계속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 중이오.”

“이런저런 얘기 하면서 복잡하게 가지 말고 단순하게 가자고. 그래서 하백상 죽일 거야, 말 거야?”

“……죽일 거요.”

“어떻게 죽일 건데?”

“무력으로 잡는 게 가장 좋지만 그게 힘든 듯하니 날을 잡아 암살해야 할 것 같소.”

“그러지 말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자고. 내가 맹주를 죽일게.”

“당문의 힘을 빌려……. 제대로 못 들은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말씀해주겠소?”

“내가 맹주를 죽이겠다니까.”

“……맹주는 화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오.”

백서휘는 말없이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아 제갈중헌의 눈앞에 내밀었다.

검에는 커다란 검환이 여러 개 맺혀 있었다.

“거, 검환!”

“이거면 충분하지?”

“추, 충분하다 못해 넘치오.”

“그럼 맹주를 잡을 판을 짜 봐.”

백서휘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 * *

잠룡지(潛龍池)라 불리는 연못 근처에는 작은 정자가 있었다.

그 정자에 제갈중헌과 하백상이 자리를 잡고 앉아 차를 마셨다.

“맹주님께 소개해드릴 무인이 있습니다.”

“다과 시간을 갖자고 한 건 그 자 때문입니까?”

“예, 앞으로 있을 사도련과의 싸움에서 큰 활약을 보여줄 인물입니다.”

“군사께서 이렇게 확언하듯 얘기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럴 만한 가치를 지닌 자입니다. 얼마 전에 맹을 잠시 떠난 것도 이 자를 보러 간 겁니다.”

“호오! 기대되는군요. 어디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

“나와 같이 온 무사를 불러주게.”

제갈중헌이 허공에 대고 외쳤다.

숨어 있던 호위 무사가 스르륵 나타나더니 하백상을 쳐다봤다.

“불러오게.”

“충!”

맹주의 호위무사가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백서휘를 불러왔다.

백서휘는 검을 맹주의 호위무사에게 맡기고 정자를 향해 걸어갔다.

“저자가 군사께서 칭찬한 그 무인 맞습니까?”

“그 무인 맞습니다. 별호는 대막적호, 이름은 금운학이라고 합니다. 인사하시게.”

정자로 다가온 백서휘가 사도련에서 썼던 가명을 무림맹에서도 쓰며 포권을 했다.

“금운학이라고 합니다.”

맹주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됩니까?”

“예.”

“군사께서 이자에게 사기를 당한 듯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자는 군사께서 생각하는 것만큼 강한 자가 아닙니다.”

제갈중헌이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백서휘에게 눈짓했다.

백서휘는 그와 미리 약속했던 말을 꺼냈다.

“제 실력을 보지도 않았는데 맹주께서는 어찌 그리 자신하십니까?”

“산 위에 있는 자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자가 얼 만큼 올라왔는지가 훤히 보인다네.”

“꼭 정상에 오른 것처럼 말하네?”

“허허! 말이 좀 짧구나.”

하백상은 바로 말을 놓았다.

“아직 나도 정상이 한참 남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것도 아닌 놈이 정상에 오른 것처럼 말하니까 말이 나도 모르게 짧게 나오네.”

“아무것도 아닌 놈이라고? 어린놈이 오만방자하기 그지 없구나.”

“내 성격이 원래 더럽긴 해.”

백서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군사는 어찌 이런 놈을 소개할 생각을 한 겁니까?”

“이런 자리가 필요해서 그런 건데, 마음에 안 드나 보오?”

무림맹에 잠입한 자들의 명단을 소란 없이 확보하려면 최소한의 무인이 있는 자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제갈중헌은 뛰어난 무인을 소개한다는 명분으로 하백상과 호위무사만 있는 자리를 일부러 만들었다.

“사도련과의 싸움을 앞두고 모반을 일으키다니 미쳤소?”

“그 싸움을 만든 게 당신이잖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려. 사도련이 먼저 싸움을 걸었단 사실을 잊은 거요?”

“하하! 끝까지 발뺌하다니……. 사도련이 아니라 ‘혈루단’이잖소.”

제갈중헌이 정색하며 말하자 하백상이 강호 12대 명검 중 하나인 한운검(閑雲劍)을 빼 들었다.

숨어 있던 호위무사들이 모두 튀어나왔다.

“어떻게 알았지? 아! 저번에 급히 세가로 돌아갔던 게 내 정체를 알아서 그런 건가?”

“그렇소.”

하백상이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본 후 먹었던 차를 토해냈다.

“독은 쓰지 않았소.”

“다른 무인들은 어디 있지?”

“이곳에는 없소.”

“나를 상대하는 데 독도 안 쓰고 무인도 부르지 않았다? 천기수사(天機秀士)란 별호가 아깝군.”

“이자를 이곳에 데려오는 것으로 나는 내 일을 마쳤소.”

제갈중헌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하백상이 검강이 둘린 한운검을 백서휘를 향해 휘둘렀다.

백서휘가 뒤쪽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호위무사 손에 있던 검이 저절로 검집에서 뽑히더니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탁!

백서휘는 검을 잡자마자 뽑아 빠른 속도로 휘둘렀다.

검강이 둘린 검과 검이 맞부딪히며 굉음을 냈다.

충격을 받은 두 사람의 몸이 뒤로 튕겨 날아갔다.

두 사람은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천근추를 써 균형을 잡은 후, 가볍게 땅에 착지했다.

탁!

하백상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자 호위무사들이 자연스럽게 그를 감쌌다.

“검강을 쓸 줄이야. 자신만만하던 이유가 있었군. 실력을 감춘 건가?”

“당연히 감추지. 네가 날 경계해서 도망가면 안 되잖아.”

“그 정도 실력은 안 되는 것 같은데…….”

“내 검을 받아보면 알겠지.”

백서휘가 검강이 둘린 검을 저 멀리 있는 하백상과 호위무사들을 향해 쏘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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