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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61화 (61/202)

귀환무관 61화

“어떡하긴, 나도 뽑아야지.”

백서휘는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아 들었다.

“뽑는 게 전부인가?”

“뭐, 더 해야 할 게 남아 있나?”

종리혁이 백서휘를 비웃으며 쥐고 있는 탈명검에 핏빛 검강을 만들어냈다.

‘아직 완전한 화경의 경지가 아니군.’

백서휘는 불완전한 검강을 보자마자 종리혁의 경지를 꿰뚫어 봤다.

“검강이라…….”

“원한다면 검강이 아니라 검기로만 상대해줄 수도 있다.”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선심 쓰듯 말하는 그를 보니 백서휘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뭐가 그렇게 웃기지?”

“그냥 웃기네.”

백서휘가 능글맞게 미소 지으며 검에 천천히 내력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검이 부르르 몸을 떨며 울기 시작했다.

우우웅!

검명(劍鳴)은 검과 무인이 서로 공명할 줄 알아야만 펼칠 수 있는 기예 중의 기예.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종리혁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굳혔다.

“……그걸로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알아.”

불완전한 검강으로 어떻게든 기선을 제압하려는 종리혁이 우스우면서 안쓰러웠다.

백서휘는 진지한 얼굴로 검에 진기를 더 많이 담아냈다.

푸른빛 아지랑이가 검날에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겨우 검기 따위로…….”

“끝까지 봐.”

아지랑이는 푸른 실이 되어 검날을 둘러쌌다.

그 모습이 꼭 누에가 실을 토해내 만든 고치 같았다.

“검사?”

검날에 둘린 실이 점점 많아지면서 영롱한 푸른빛을 발산했다.

고치를 찢고 나와 나비가 되듯 푸른빛 검사는 어느새 검강이 되어 있었다.

검강은 백서휘가 든 검을 감싸며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검강…….”

“그래, 이게 진짜 검강이다.”

백서휘가 만들어낸 검강은 그 자체로 완전했다.

불완전한 깨달음을 보완하기 위해 내력을 있는 대로 때려 박아 만든 종리혁의 검강과는 차원이 달랐다.

종리혁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챘지만 애써 무시했다.

“이 정도면 반말해도 되지 않아?”

“인정할 수 없다.”

종리연은 완전하지 않아서 그렇지 화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경지인 만큼 보는 눈이 일반적인 무인하고 달랐다.

그런데도 억지를 부리는 걸 보면 떼를 쓰는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왜 인정하지 못하는 거지?”

“그건 네가 실전에서 쓰지 못 할 기술을 연마하는 가짜이기 때문이다.”

“가짜? 그건 그쪽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 불완전한 검강에 죽은 놈이 있긴 해?”

“불완전하다고?”

“그런 검강으로는 그 어떤 것도 베지 못해.”

“내게 그딴 말을 지껄일 실력이 되는지 어디 한 번 보자꾸나!”

종리혁은 눈썹을 역팔자로 그리며 백서휘에게 달려들었다.

쐐애애애액!

핏빛 검이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들었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 게 왜 중요한지 알려주마!’

백서휘는 뒤로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 나와서는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굉음과 함께 종리혁이 저 멀리 날아갔다.

탈명검을 감쌌던 검강은 솟아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내가 말했잖아. 그 검강으로는 그 어떤 것도 베지 못할 거라고.”

“이놈!”

종리혁은 다시 한번 번개처럼 빠르게 달려가 검을 내리그었다.

백서휘는 그의 검이 코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왜 웃고 있는 거지?’

공격을 막지 못해 공황 상태에 빠져야 할 백서휘가 종리혁을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종리혁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백서휘가 들고 있던 검을 올려 쳤다.

종리혁은 느리디느린 그의 검으로는 절대로 자기 공격을 막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혔다.

‘어떻게?’

종리혁의 머리는 답을 찾아내기 위해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나 같은 고수를 상대로 후발선지의 묘리를 쓰는 게 가능하다고?’

종리혁은 무림맹의 수장인 한지흠과 천하제일인을 다투는 사이였다.

그런 종리혁에게 후발선지의 묘리로 방어를 한다?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었다.

그런데 백서휘는 그 미친 짓을 우습지 않게 해냈다.

이건 그가 동등한 수준이거나 그 이상의 고수여야만 가능했다.

‘말도 안 돼.’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미 당한 터라 부정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어린 나이에 고수가 된 건지 감도 안 잡혔다.

‘더 싸웠다가는 길보다 흉이 많겠어. 여기서 이 상황을……. 헉! 오, 온다!’

중검(重劍)의 극의에 달한 공격이 종리혁을 향해 날아들었다.

검에 담긴 힘이 어찌나 강한지 주변 공간이 왜곡되어 보였다.

종리혁의 얼굴이 석고상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이, 이걸 맞상대하면 무조건 내상이다.’

종리혁은 공격을 피하기 위해 보법을 미친 듯이 밟았다.

그럼에도 백서휘의 검이 따라오는 것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일그러짐이 더 심해지고 있잖아!’

조금 전에 펼친 공격이 최대치의 힘을 담은 게 아니었단 뜻이었다.

종리혁은 지금 자존심을 챙길 때가 아니란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쯤에서 끝내지.”

백서휘는 말없이 계속 검을 휘둘렀다.

종리혁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끝내자니까!”

“진짜 끝내길 원한다면 그 말이 아니라 다른 말을 해야지.”

종리혁은 실마리를 듣고 바로 백서휘가 원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항복이라고 말하라는 거냐?”

“그래.”

종리혁은 다섯 살에 칼을 쥔 이래로 항복이란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약한 소리조차 내지 않는 나한테 지금 항복하라고 강요하다니!’

마음은 분노로 끓어오르는데 머리엔 또 차가운 이성이 깃들었다.

머리가 회전하며 계산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냥 항복을 말하는 게 공격을 맞고 기절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 항복하겠다!”

바로 코앞에서 백서휘의 검이 멈추자 종리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 그럼 그 향단이라는 년한테 가보자고. 뭐해? 안내 안 하고?”

“말이 너무 짧은…….”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인데.”

백서휘가 쥐고 있던 검을 다시 목에 겨누자 종리혁이 백서휘와 종리연 앞으로 빠르게 걸어 나왔다.

“안내하지.”

“어디로 가야 하는데?”

“이리로.”

종리혁이 앞장서서 백서휘와 종리연을 시녀가 연금되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연기를 잘하는 편인가?”

“연기? 못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왜 하는 거지?”

“그 향단이란 년의 입에서 진실이 나오게 하려고.”

“음……. 네 장단에 맞춰주기만 하면 되는 거냐?”

“그래.”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일단 하나만 확실히 하고 가자고. 나는 당신이 종리연을 찾기 위해 특별히 초청한 무사인 거야. 알았어?”

“알았다.”

두 사람은 어떤 식으로 연기할지 상의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녀가 연금되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무사들이 종리연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녀에게 들킬 걸 염려한 종리혁은 무사들에게 전음을 날려 소란을 피우지 말도록 주의를 시켰다.

“우리 둘이 먼저 들어가 볼 테니까 이놈들이랑 같이 저쪽에 가 있어.”

“네.”

“부르면 와야 한다.”

“알겠어요.”

백서휘는 종리혁에게 눈으로 신호를 주었다.

종리혁이 무사에게 열쇠를 넘겨받아 자물쇠로 잠긴 문을 열었다.

철컥!

쿵!

문이 열리고 방의 내부가 드러났다.

“음…….”

저도 모르게 침음성이 나올 정도로 방은 단출했다.

낡은 침상 하나말고는 가구라고 할 만한 물건이 없었다.

창살이 달린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던 시녀의 시선이 이리로 향한다.

“련주님을 뵙습니다.”

종리혁은 당장에라도 시녀를 쳐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꾹 참았다.

“이 친구가 네게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너를 찾았다.”

“이분은 누구신가요?”

“연이를 찾기 위해 특별히 초청한 무인이다.”

“나는 대막적호(大漠赤狐) 금운학이라고 한다. 그날 있었던 일을 내게도 설명해다오.”

백서휘는 일부러 강서성에서 한참 먼 곳에 있는 지명이 담긴 별호와 아는 사람의 이름을 섞어 가짜 신분을 즉석에서 만들어냈다.

“그날 저는 다과를 가져다드리려고 아가씨 방에 들어갔어요. 방은 난장판이 되어 있고 아가씨는 검은 복면에 검은 무복을 입은 무리가 데려가려 하고 있었어요. 납치를 막기 위해 제가 덤벼들었……. 흑흑흑!”

일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몰랐다면 깜빡 속을 정도로 시녀는 연기를 잘했다.

“울지 말고 계속해.”

“흑흑흑! 덤벼들었는데 몇 번 손을 쓰지도 못하고 상처를 입고 말았어요. 그래도 참고 계속 싸웠지만 실력의 차이가 너무 나서 아가씨를 되찾을 수 없었어요. 죄송해요. 흑흑흑흑!”

“목걸이는 언제 끊어진 거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 정체불명의 무인들이 사라지고, 한 다경 정도 기절했어요. 그리고 깨어나자마자 련주님께 보고했고요.”

“그게 전부란 거지?”

“네.”

백서휘는 허점을 찾아내려는 판관처럼 계속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상한 건 시녀는 짜증 내지 않고 조금도 틀리지 않고 똑같이 진술했다.

‘진술의 허점을 찾는 건 힘들겠어.’

지금의 판도를 바꿀 존재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종리연을 이리로 데려와.』

『그러지.』

종리혁이 잠깐 나갔다가 종리연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을 본 시녀는 잠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를 찾으셨네요.”

“그래.”

“우리에게 해줄 얘기 없나?”

“해줄 얘기는 없어요.”

시녀는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것들은 진짜 행동 양식이 안 바뀐단 말이야.’

지켜보고 있던 백서휘가 지풍을 날려 시녀의 아혈과 마혈을 점혈했다.

그다음 뚜벅뚜벅 걸어가 시녀의 입을 벌렸다.

‘어금니겠지.’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것처럼 양쪽 어금니에 독단이 있었다.

백서휘는 양쪽 어금니를 손으로 뽑아 종리연에게 맡겼다.

“이는 왜 뽑은 거예요?”

“궁금하면 자세히 관찰을 해 봐. 그럼 답이 나올 거야.”

“아!”

“보여?”

“이가 좀 이상해요. 뭐가 박혀 있는 것 같은데…….”

“독단이야.”

“헉!”

종리연은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어금니를 놓쳤다.

백서휘는 무심한 얼굴로 시녀의 옷을 벗겼다.

“뭐, 뭐 하시는 거예요?”

“그냥 지켜보거라.”

“네…….”

백서휘는 여체를 보았음에도 흥분하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옷을 뒤적거리며 정보가 될만한 것들을 찾을 뿐이었다.

‘딱히 없군.’

고문하는 것 말고는 정보를 알아낼 방법이 없어 보였다.

“딸 데리고 나가 있어.”

“뭘 하려고?”

“남은 방법이 하나밖에 없다는 걸 당신도 알잖아.”

“음……. 알았다. 나가도록 하지.”

눈치 빠른 종리혁은 백서휘가 시녀에게 고문하려 한다는 걸 눈치채고 종리연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시작해야겠다.”

감각과 고통을 모두 증폭시키는 약물을 시녀의 입에 한 방울 떨어뜨렸다.

그다음 시녀의 아혈을 풀어주고 의자에 앉아 그녀를 지켜봤다.

“네 뒤에 누가 있는지 말하면 고문하지 않고 여기서 끝낼 거야.”

시녀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침묵을 고수했다.

“말하기 싫은가 보네.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역의 기운을 몸에 흘려보내자 시녀가 움찔움찔했다.

백서휘가 무슨 짓을 할지 아는 모양이었다.

“말만 하면 몸 안에 흘려 넣은 진기들 다 회수할 거야. 명심해.”

역의 기운은 혈맥을 타고 다니면서 전신의 모든 혈도에 정착했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진기의 움직임이 느려지면서 돌아가는 방향이 바뀌려 했다.

처음에는 잘 참던 시녀가 처음으로 신음을 흘렸다.

백서휘는 득달같이 달려가 달콤한 말로 유혹했지만, 그녀는 넘어가지 않았다.

“흐으윽! 끄윽!”

“뒤에 누가 있는지만 말하면 편해질 수 있어. 아는 걸 다 말하지 않아도 돼.”

“끼야아악!”

“너한테 명령을 내린 사람 이름을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삼뇌서생(三腦書生) 유석!”

“유석이 누구지?”

“끄아으으윽! 제가 아는 건 몇 개 되지도 않아요. 유석 그 사람이 저보다 많이 알 거예요! 흐으윽! 다 말했으니까 이제 편하게 해줘요!”

“그러지.”

백서휘는 사혈을 짚어 시녀를 죽이고 밖으로 나왔다.

“삼뇌서생 유석이 누구지?”

“그놈을 왜 찾는 거지?”

“누군지나 말해.”

“……유석은 내 지낭이다.”

백서휘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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