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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59화 (59/202)

귀환무관 59화

무림맹이 있는 호북성과 사도련이 있는 강서성을 중심으로 소규모 국지전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두 성을 둘러싼 곳만이 아니라 중원 전역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시대의 흐름이라면?’

뒤에 암중단체가 있다고 확신하지만 사람 일이란 건 또 몰랐다.

아닐 경우도 미리미리 대비해놓아야만 했다.

‘근데 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막지?’

천하제일인이라 자부하는 자신조차도 억지로 늦추는 것이 전부였다.

일개 인간이 시대의 흐름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어차피 일어날 전쟁이라면 가만히 놔두는 것이 좋겠지. 정말 심해지면 황실에서도 개입할 테니까.’

그때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계속 이동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은 생각 같았다.

백서휘는 마부석에서 일어나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까맣게 탄 전각이 여러 채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천막에서 자는 것보다는 다 무너질 것 같더라도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자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은데…….’

까맣게 탄 전각이 모여 있는 곳으로 마차를 몰았다.

가까운 곳에 있어 도착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역시 멸문당한 곳인가.’

반쯤 떨어져 나간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래서 문파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윽!”

시체 썩는 냄새에 코끝이 아려 왔다.

입에서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때 짐칸에 있던 우염상과 종리연이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 윽! 이건 또 무슨 냄새야.”

구시렁거리는 우염상과 다르게 종리연은 말없이 코를 막았다.

백서휘가 안쪽으로 들어가자 두 사람도 멀찍이 뒤따라갔다.

안쪽엔 시체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다시 돌아나가려는데 어린아이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백서휘는 얼굴을 굳히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무림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지 올해로 10년.

그동안 구주팔황이 좁다 하고 돌아다녔지만 어린아이의 죽음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꽃을 활짝 피우지 못한 채 죽는 걸 보면 언제나 가슴이 미어지게 아파져 왔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자신만 이렇게 느끼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우염상과 종리연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보고 있었다.

“가자.”

계속 보고만 있을 수도 없기에 백서휘는 두 사람을 재촉했다.

우염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마차로 돌아갔다.

“가자니까.”

종리연은 엉엉 울며 다시 짐칸에 올랐다.

“출발한다.”

백서휘는 비를 피할 곳을 다시 찾아 헤맸다.

* * *

세 사람은 장수(樟樹)를 빠져나와 남창(南昌)으로 향했다.

백서휘는 느긋한 마음으로 마차를 몰았다.

그때 뒤에서 여자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서휘는 속으로 욕을 하며 마른세수를 몇 차례 하였다.

며칠 전에 어린아이의 시체를 본 이후로 종리연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무슨 심정인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여정을 함께하는 동료의 입장에서 솔직히 좀 피곤했다.

백서휘가 마부석에서 뛰어내려서는 뒤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흑흑흑!”

“그만 좀 울지 그래.”

자신의 말이 도화선이 되기라도 한 걸까?

종리연은 조금 전보다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괜히 뭐라고 그랬나. 아니야.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백서휘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왜 그런지는 알겠는데 우는 건 이쯤에서 그만 하자.”

“……계속 생각이 나요.”

“누군가 죽은 걸 본 게 처음이야? 아니잖아?”

“저 때문에 죽은 아이를 본 건 처음이에요.”

“너 때문에? 그게 왜 너 때문이야. 다른 놈이 죽인 건데.”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잖아요. 이 모든 게.”

종리연은 생각 없이 가출했던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때 담을 넘지 않고 참았으면 지금과 같은 일은…….”

“너 아니었어도 일어났을 일이니까 괜한 죄책감 느끼지 마.”

“저 아니었어도 일어났다고요? 그럴 리가 없어요.”

“아직 확실하진 않은데 사람들이 싸우도록 조종하는 놈들이 있어.”

“흑막이 있다는 거예요?”

백서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데요?”

“그건 아직 몰라. 그리고 설령 흑막이 없더라도 지금 일어나는 일은 시대의 흐름일 가능성이 더 크니까 쓸데없이 죄책감 느껴서 흐느끼고 그러지 마. 알았어?”

“……네.”

백서휘는 다시 마부석으로 돌아와 마차를 몰았다.

‘조금 있으면 도착인데 바로 사도련으로 가? 아니면 정보를 좀 더 모을까?’

종리혁이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다른 마음을 먹고 증거를 조작한 게 아니라면 그 증거를 가져다준 놈이 흑막과 연관 있을 가능성이 가장 커.’

백서휘는 사도련 대신 하오문의 강서성 지부로 먼저 가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두 시간이 좀 넘게 흘렀을 때, 세 사람이 탄 마차가 남창에 들어섰다.

“면사 같은 거 없어?”

“있긴 한데, 왜요?”

“다른 놈이 네 얼굴 알아보면 피곤해지니까 얼른 써.”

“네.”

주위를 둘러보며 하오문의 표식이 그려진 곳을 찾았다.

‘어디 있지……. 아! 저기 있군.’

낡고 작은 객잔의 2층 벽에 하오문의 표식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는 걸 발견했다.

백서휘는 우염상에게 마차와 종리연을 맡기고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무공을 배운 놈이……. 점소이밖에 없네. 저놈이 하오문도겠군.’

백서휘는 점소이에게 다가가 넌지시 말을 걸었다.

“묻노니, 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

“죄송합니다. 하도 안 쓰다 보니 암호를 까먹었습니다.”

백서휘는 속으로 혀를 차며 점소이에게 하오문의 강서성 지부까지 안내하게 했다.

“이쪽은?”

강서성 지부장이 점소이와 백서휘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귀빈님이십니다.”

“귀빈? 그게 누……. 헉!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이쪽으로 오실 거란 생각 자체를 못 해서…….”

“변명은 그쯤하고 정보를 좀 받았으면 하는데.”

“어떤 정보를 말씀하시는 건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사도련주한테 있다는 증거가 뭔지 알고 싶다.”

“련주의 딸을 무림맹이 납치한 게 분명하다는 그 증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거.”

“그거라면 별거 아닙니다. 헤헤.”

“뭔데?”

“사도련주의 부인이 죽기 전에 딸에게 남긴 유품인데…….”

“유품인데 별 게 아니라고?”

백서휘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강서성 지부장을 이상한 놈 보듯 바라봤다.

“사도련주의 부인이 남기고 간 게 워낙 많아서 그렇습니다. 헤헤.”

“유품이 많다는 건가?”

“예, 팔찌도 많고, 목걸이도 많고, 반지도 많고……. 아무튼 남긴 게 되게 많습니다.”

“그러면 증거로서 신빙성이 아예 없는 거 아닌가?”

“신빙성이 아예 없는 건 또 아닌 게 한동안 어떤 목걸이 하나만 하고 다녔는데, 하필 련주의 딸이 없어진 날 그 목걸이가 끊어진 채로 방에 나뒹굴고 있었답니다.”

“그 목걸이에 특징이 있나?”

“적옥(赤玉)으로 만들었고 줄은 금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다른 증거는 없고?”

“네.”

“내가 알아야 할 만한 정보는 더 없는 건가?”

백서휘가 품속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하나 있긴 한데 특급 정보라 돈을 열 냥보다 더 주셔야 합니다. 헤헤!”

강서성 지부장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얼마길래?”

“음……. 금자 한 아니, 귀빈이시니, 은자 열 냥만 주십시오. 헤헤.”

“조금 전의 정보까지 다 해서?”

“아! 그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정보고 실수도 했고 하니,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그럼 열 냥만 건네면 되는 건가?”

“네.”

백서휘는 강서성 지부장에게 은자 열 냥을 건넸다.

“이걸 듣고 다른 데 가서 이야기하시면 안 됩니다.”

“이곳에 같이 온 동료한테도 하면 안 되나?”

“그게……. 어……. 다른 곳에만 안 들어가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헤헤.”

“그러지.”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백서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얘기하라고 손짓했다.

“지금으로부터 사흘 후에 사도련의 무사들이 무림맹을 향해 출진할 예정입니다.”

은자 열 냥이라고 줄여 말해서 그렇고 그런 정보일 줄 알았는데 특급정보가 맞았다.

“명분은 역시 딸을 납치했다는 거겠지?”

“그것도 있고, 사도련 쪽에서 가만히 있는데 무림맹 쪽에서 먼저 적살문(赤殺門)을 멸문시켰다는 명분도 있습니다.”

“적살문?”

“사도련주의 측근이 속해 있는 문파입니다. 딸을 납치했다는 게 련주의 개인적인 감정이 얽힌 것이라면, 적살문 멸문은 사도련 전체의 감정을 건드린 것이라 전쟁은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나게 생겼습니다.”

“음…….”

백서휘는 이번 일에 자신이 나서지 않았을 때 일어날 만한 일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많은 사람이 죽을 거야.’

중원에 사는 절대다수의 생존을 위해서는 정사대전이 일어나는 걸 막는 게 맞았다.

‘최대한 일을 빠르게 진행해야겠어.’

백서휘는 강서성 지부장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다시 객잔으로 돌아가니 우염상과 종리연이 없었다.

‘어디로 간 거지?’

그때 점소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손님들은 객실로 올라갔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지?”

“올라가서 가장 먼저 보이는 방이 노인 분이 묵는 곳이고 그 좌측이 련주님…….”

“죽고 싶은가?”

챙!

백서휘가 검을 뽑아 점소이에게 겨누었다.

“죄, 죄송합니다.”

“어떻게 알았지?”

“……모, 목소리를 듣고 알아차렸습니다.”

“목소리?”

“예, 예전에 나들이 나오셨을 때, 시녀랑 얘기하는 걸 우연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알아본 사람은 너뿐인가?”

“네.”

“이곳에 있다는 정보가 새어 나가면 범인은 너란 거네?”

“사, 살려주십시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부장에게도 말하면 안 돼.”

“그, 그러겠습니다.”

“가봐.”

“네!”

점소이가 겁먹은 얼굴로 어딘가로 사라졌다.

백서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사도련의 총단이 있는 남창이었다.

얼굴을 가리더라도 점소이처럼 알아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정체가 탄로 나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겠어.’

백서휘는 2층으로 올라가 종리연과 우염상의 방 사이에 섰다.

헛기침을 몇 번 하니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너 이리로 와.”

“왜요?”

“할 얘기가 있으니까.”

세 사람이 자그마한 방에 모여 앉았다.

“할 말이 뭐예요?”

“사흘 후에 사도련에서 무림맹으로 출진한다고 한다.”

“네?”

“일단 명분은 두 가지다. 무림맹에서 너를 납치했다는 것과 적살문을 기습공격해 멸문시켰다는 것.”

“……저, 적살문을요?”

“왜? 아는 사람이 있나?”

종리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유감이다.”

“……흑흑흑! 범인은 무림맹이 확실한 거예요?”

“그건 몰라. 진짜 무림맹이 했을 수도 있고, 흑막이 그랬을 수도 있지. 그보다 너 가출할 때 목걸이를 하고 있었어?”

“흑흑흑! 아니요. 왜요?”

“사도련 쪽에서 널 납치했다는 증거로 내민 물건이 네가 그쯤에 자주하고 다녔다는 적옥 목걸이라는데? 네 어머니가 남겼다는?”

“그 목걸이, 가출하기 일주일 전에 사라졌었어요. 흑흑흑!”

“그래?”

백서휘는 까끌까끌하게 자란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없어졌던 목걸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납치의 증거로 활용된다?’

종리연의 이야기를 들으니 확실히 의심스러운 냄새가 났다.

‘이 지랄맞은 정국을 만든 놈이 사도련 내에도 있어.’

백서휘의 눈빛이 잘 벼린 칼날처럼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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