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58화
등봉을 벗어난 백서휘와 우염상은 빠르게 마차를 몰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조양.
하남성과 호북성 사이에 있는 곳이었다.
“다른 데 들리지 말고 객잔부터 가자꾸나.”
“안 그래도 그러려고 그랬어.”
마부석에 앉은 백서휘는 마차를 천천히 몰며 주위를 둘러봤다.
‘어라?’
시장으로 보이는 곳에 들어섰는데 가게를 연 곳이 하나도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기감에 일단의 무인들이 이리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백서휘는 마차를 멈추고 무인들을 기다렸다.
“벌써 객잔을 찾은……. 헉!”
짐칸 밖으로 나오던 안염성이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설마 소림에서 우리를…….”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안으로 들어가 있어.”
“그, 그래야겠다.”
백서휘는 우염상이 다시 짐칸에 들어간 걸 확인하고는 무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뭐 하는 놈들이지?’
무인들은 하나 같이 오른쪽 팔뚝에 ‘맹(盟)’이라고 적힌 파란 완장을 두르고 있었다.
완장에 적힌 글자로 추정컨대, 이들은 무림맹에 소속된 무인들인 것 같았다.
‘우 노괴 말처럼 정말 우리를 기다린 건가?’
무림맹의 주요 일원인 소림사에서 소란을 피우긴 했지만, 그건 자신과 소림과의 문제지 맹 차원에서 다룰 문제는 절대 아니었다.
‘피를 그만 보자고 했으니 우리를 치려고 기다린 건 아닐 거야.’
혜공이란 자는 자신이 규격 외의 강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자였다.
그런 사람이 자신과 전쟁을 벌여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 왜 저렇게 많이 몰려다니는 거지?’
의문에 대한 답은 금방 나왔다.
이번엔 뒤쪽에서 한 무리의 무인들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들은 팔뚝에 ‘련(聯)’이라고 쓰인 빨간 완장을 두르고 있었다.
‘사도련의 무인들이군.’
무림맹과 사도련의 무인들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백서휘는 둘을 경계하며 마차를 한쪽 구석으로 몰았다.
‘살기?’
두 무리의 무인들이 마차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금방이라도 무기를 뽑아 들고 서로에게 달려들 것 같았다.
‘이놈들 왜 이러는 거지?’
그때 하오문의 문주가 해주었던 이야기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선하령 인근에서 무림맹과 사도련 사이에 큰 싸움이 있었다고 했어.’
하오문의 문주는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어 자신에게 조심하라고 말한 것 같았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한데?’
단순히 무림맹과 사도련의 사이가 나빠서라기엔 두 무리가 내뿜는 살기가 너무 강렬했다.
서로에게 직접적인 원한을 가질 만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수준의 살기였다.
그때였다.
양측에서 한 명씩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다섯 장(약 15m)의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내 아들을 죽인 범인을 넘겨라!”
“이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쪽에선 당신의 아들을 죽인 적이 없소. 오히려 당신 쪽 사람들이 내 동생을 죽였지.”
“뭐라?”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지금이라도 내 동생을 죽인 범인을 내놓으시오. 그럼 우리는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리다.”
약관을 갓 넘긴 듯한 남자가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내 아들을 죽인 놈을 내놔! 그러면 살려 보내주마.”
“당신이 말했던 그 날, 우리 쪽 무인은 혈랑문이 있는 쪽으로 오줌조차 싸지 않았소.”
“그날 그곳에서 임가장의 무인을 본 자가 있다는 데도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는구나.”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지 중년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뻔뻔한 건 당신이오. 혈랑문 특유의 무공 흔적이 내 동생의 시신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걸 당신도 봤잖소.”
“우리의 것과 비슷하지만 다른 무공이다.”
“이래서 내가 당신이 뻔뻔하다고 하는 것이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어주지. ‘독문무공’인데 비슷하다는 게 말이나 되오?”
“세상은 넓고 무공은 많다. 우리와 비슷한 흔적을 남기는 무공은 얼마든지 있어!”
“이런 철면피 같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마지막 경고를 무시한 걸 후회하게 해주겠소.”
“내가 할 말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무리로 돌아가서 전투를 치를 준비를 했다.
백서휘는 싸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한쪽 구석으로 마차를 몰았다.
“항복은 받지 않는다. 저놈들을 모조리 죽여!”
“인면수심(人面獸心)을 지닌 저놈들을 처단해라!”
무림맹과 사도련 소속의 무인들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상대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으며 무기를 휘둘렀다.
철과 철이 맞부딪혔을 때 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끄아아악!”
“사, 살려……!”
무인들은 무간지옥에 빠진 자들처럼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고 신음을 흘렸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전장의 광기로 눈이 돌아간 무인들이 소속을 가리지 않고 백서휘를 공격했다.
아군과 같은 완장을 두르지 않아서 일단 무기부터 휘두르고 본 것 같았다.
백서휘는 공격을 받아내며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정확히 뭐가 이상한 건지는 그도 모르지만 육감이 계속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경고했다.
‘내가 끼어들 만한 일이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고……. 이놈들을 어떻게 할지나 생각하자.’
성격대로 행동한다면 덤빈 무인들만 죽이는 게 아니라 세력까지 몰살시켜야했다.
‘어떡할까.’
무인들이 어떤 심정으로 공격했는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기에 백서휘는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가라!”
쾅!
굉음과 함께 무인들이 각자의 진영으로 날아갔다.
무기에만 힘을 집중시킨 탓에 무인들은 다치지도 않았다.
날아간 무인들은 한참 동안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지금 어떤 상황에 부닥쳤는지 깨달은 자들은 다시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서로에게 원한이 깊은가? 진짜 죽자 살자 싸우네.’
목이 날아가거나 가슴에 바람구멍이 나기 전까지 무인들은 무기를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더 놀라운 건 도망가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쯤에서 안 끝내면 양쪽 다 죽을 것 같은데…….’
자신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지 무리를 이끄는 자들이 서로를 노렸다.
‘사도련 쪽이 이기겠군.’
무공을 익힌 기간이 짧은 청년이 상대적으로 불리했다.
아니나 다를까.
중년 남자의 검에 약관을 갓 넘긴 듯한 청년의 가슴이 꿰뚫렸다.
“크어억! 제갈세가가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얼마든지 오라고 해!”
검을 뽑은 중년 남자는 무림맹 무사들을 차근차근 죽여나갔다.
한 다경이 지나자 시장 바닥에 서 있는 무인은 사도련 쪽만 남았다.
“우리가 승리했다!”
“우와아아아아!”
“사도련이여 영원하라!”
“영원하라!”
백서휘는 기뻐하는 사도련 쪽 무인들을 뒤로하고 마차를 다른 곳으로 몰았다.
중년 남자는 무림맹과 관련이 없어 보여 백서휘를 그냥 보내주었다.
다음 날.
백서휘와 우염상은 조양을 떠나 장사로 향했다.
중간중간 여독을 풀기 위해 여러 곳을 들렀다.
들른 곳마다 무림맹 쪽 문파와 사도련 쪽 문파가 전쟁을 벌였다.
‘뭔가 이상하다.’
상황이 너무 작위적이었다.
누군가 두 세력을 충돌하도록 몰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모르는 암중단체가 있고 그들이 정사대전을 유도하고 있다면?’
단서가 하나도 없어 당장 찾아내서 괴멸시키는 건 힘들 것 같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진지하게 고민하니 떠오르는 방법이 있었다.
아랫놈들이 산발적으로 싸우는 건 막기 힘들지만, 무림맹주와 사도련주가 부딪히는 건 종리연을 이용해서 막을 수 있었다.
‘윗놈들이 싸우는 걸 막으면 아랫놈들도 눈치를 보게 되어 있어.’
백서휘는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을 때를 노려 뒤에 있을지 모르는 암중단체를 추적할 생각이었다.
‘학무관을 여는 일은 잠시 미뤄야겠군.’
백서휘는 수호문의 당대 문주였다.
그에게 암중단체를 막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우 노괴한테는 미안하지만 장사까지 최소한으로 휴식하면서 가야겠어.’
* * *
장사에 들어선 백서휘는 사합원에 들르지 않고 무관으로 향했다.
마차의 짐칸에서 우염상이 흘리는 신음이 들려왔다.
“좀만 가면 되니까 참아.”
채찍질을 열심히 하니 말이 빠르게 달렸다.
그럴수록 우염상의 신음도 커졌지만 백서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에겐 지금 종리연을 찾는 것만큼 급한 일이 없었다.
미친 듯이 말에 채찍질한 덕분에 금방 자하무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쉬고 있어.”
우염상은 기절했는지 대답도 하지 못했다.
백서휘는 마차를 세워두고 자하무관 안으로 들어갔다.
운학이 쉬는 날인지 종리연이 관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 관주님?”
“수업 여기서 끝내.”
“네? 수업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요?”
“급한 일이야.”
“아, 알았어요. 끝낼게요.”
관원들을 내보내고 무관에 백서휘와 종리연 둘이 남았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미안한데 너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제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요? 왜요?”
“정사대전(正邪大戰)이 일어나게 생겼으니까.”
“제, 제가 뭐라고 정사대전이 일어나요.”
종리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사도련주의 딸이잖아.”
“그, 그걸 어떻게…….”
“그게 지금 중요해?”
“중요해요.”
“후~ 소화가 말해줬어. 궁금증 풀렸으면 빨리 짐이나 챙겨.”
“……싫어요.”
“뭐?”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정사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그런 말이 입에서 나와?”
“정사대전이 안 일어날 수도 있잖아요.”
“아니, 일어나.”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시는데요?”
“이곳으로 오면서 본 게 있으니까.”
“뭘 봤는데요?”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소년,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 앞에서 강간당하는 여자, 상전의 명령을 따라 일만 했을 뿐인데 그 죄로 죽는 하인들…….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지나쳐 온 곳은 그랬어. 정사대전이 일어나면 내가 봐온 것들보다 훨씬 더 심한 일이 일어나겠지. 그것도 중원 전역에.”
종리연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 이번에 돌아가게 되면 다시는 밖으로 못 나올지도 몰라요.”
“그래서 지금 안 가겠다는 거야?”
“네.”
“수혈을 짚어서 갈 수도 있어.”
“진짜 그러실 거예요?”
“그래.”
“그냥 모른 척해주시면 안 돼요?”
“안 돼.”
종리연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정이 없는 건 아니라 백서휘의 가슴이 살짝 찌릿해져 왔다.
“……내가 책임지고 널 빼주면 그때는 갈래?”
“절 빼준다고요? 어떻게요?”
“지금 사도련주는 네가 납치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증거가 있다는데 그건 모르겠고.”
“제, 제가 멀쩡히 살아 있다는 모습만 보여주면…….”
“그때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지.”
“……진짜 빼내주신다고 약속하면 갈게요.”
“좋아, 짐 싸.”
종리연이 기숙사에 있던 짐을 챙겨서 무관으로 왔다.
“짐칸에 타.”
“으쌰! 꺄아아악!”
“왜?”
“짐칸에 시체가……!”
“다 죽은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야.”
“사, 살아 있다고요?”
“마차를 계속 타고 와서 그런 거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타.”
백서휘가 어린 애를 달래듯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네…….”
“그럼 출발한다! 으랴!”
세 사람이 탄 마차는 사도련의 총단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