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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47화 (47/202)

귀환무관 47화

안가로 들어온 백서휘는 화기(火氣)를 담은 지풍을 방 곳곳에 달린 홰에 날렸다.

화르륵!

어두웠던 밀실이 환해졌다.

“심문을 하기 전에 어떤 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게 좋을지 결정해야 할 것 같은데…….”

최우선순위로 둬야 하는 건 역시 정보를 사려고 한 놈이 누군지 알아내는 일이었다.

“그다음은 이제 죽이느냐와 살리느냐를 정하는 건가.”

후개를 죽일 경우엔 개방과의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개방의 모든 인원과 총력전을 벌이는 거?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다만 인생은 한 번뿐이고, 그 한 번은 누구에게나 유한했다.

그 유한한 시간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에 허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이놈을 살려야 돼.”

살리기만 해서는 일이 해결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공포를 심어주자.”

개방도 정보단체인 만큼 수호문과 자신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 있을 터였다.

“수호문의 문주라고 밝히고 협박하는 게 낫겠어.”

모든 결정을 내린 백서휘는 후개의 몸속에 자신의 진기를 집어넣어 미혼산을 모두 뽑아냈다.

다른 무림인들이 봤다면 깜짝 놀랄 만한 광경.

같은 사문이라면 몰라도 생판 모르는 자의 신체에 기운을 집어넣어 움직이는 건 두 사람 모두에게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 위험한 일을 백서휘는 아무렇지 않게 해냈는데도 평소와 같이 행동했다.

그에게는 조금 전에 한 일이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으음…….”

약기운이 빠지기 무섭게 후개가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났으면 의자에 앉아.”

백서휘가 중저음의 목소리로 명령했다.

후개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 누구냐!”

“앉으라고 말했다.”

후개는 등에 찬 대나무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그건 내가 할 소리다. 흐아앗!”

후개는 황금빛 봉기가 일렁이는 대나무 몽둥이로 백서휘의 미간을 노렸다.

“정보단체를 이끌 놈이 상황 파악을 더럽게 못 하네.”

백서휘는 속으로 혀를 차며 물 흐르듯 부드럽게 금나수를 펼쳤다.

후개는 순식간에 제압되어 의자에 강제로 앉게 되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돼?”

후개는 상대가 자기보다 고수란 사실을 깨달았다.

‘제기랄! 얼굴을 안 가렸잖아? 꼼짝없이 날 죽이겠네.’

어차피 죽을 목숨.

후개는 백서휘에게 절대 협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내게 뭔가를 요구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난 당신에게 협조할 생각이 없어. 그러니 쓸데없이 힘쓰지 말고 날 죽여.”

“네가 협조를 안 하면 법개랑 그 휘하 거지들 모두가 죽어. 그래도 말 안 할 건가?”

“하하! 나를 납치했다고 해서 그들 모두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왜? 못 이길 것 같아?”

“무공으로 제압한 게 아니라 약을 써서 날 납치한 거잖아. 그런 비열한 놈이 법개님과 다른 형제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이거라면 어때?”

백서휘는 검에 검환이 맺히는 걸 보여주었다.

후개의 두 눈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가 아는 무인 중에 검환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아는 가장 강자는 무림맹 맹주랑 사도련의 련주였고, 그 두 사람은 검강이 한계였다.

‘거기다 그자들은 늙었잖아. 눈앞에 있는 사람은 30대도 안 되어 보여!’

백서휘는 충격을 받아 아무 말 하지 못하는 후개를 비웃었다.

“다시 묻겠다. 협조할 거야? 말 거야?”

“혀, 협조하겠습니다.”

겁을 먹은 후개는 말투를 더 공손하게 바꾸어 말했다.

“정보단체의 후계자이니 알 거라 믿고 말하겠다. 나는 수호문의 당대 문주, 백서휘라고 한다.”

“헉!”

검환을 보일 때도 떨지 않았던 후개가 벌벌 떨기 시작했다.

“수호문이 뭐하는 문파인지 알고 있나 보군.”

“그, 그렇습니다.”

“어떻게 알았지?”

“바, 방주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기록이 있습니다. 후개에게도 읽히게 하는데 그 기록에…….”

“뭐라고 적혀 있는데?”

“수, 수호문의 문주를 조심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군. 수호문의 문주는 그렇다 치고 나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백서휘가 흥미롭다는 눈으로 후개를 바라봤다.

“자, 자세히는 모르지만, 스승님에게 들어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화, 황실의 전복과 북해빙궁의 준동을 막고, 포달랍궁에서도…….”

면전에서 자신의 활약에 대해 들으니 괜히 민망해졌다.

백서휘는 헛기침을 해 후개에게 신호를 줬다.

후개는 눈치껏 말을 하다 그만두었다.

“뭐, 안다고 하니까 편하게 말하겠다. 일단 호남성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떤 일이든 신경 쓰지 말고, 나와 관련된 정보 딴 놈들한테 팔아먹지 마.”

“아, 알겠습니다.”

“그럼 점혈 풀어줄 테니까……. 아! 깜빡할 뻔했군. 하남성에서 내 정보 사려던 놈 있다고 들었는데, 그놈 이름이 뭐지?”

“그건 말할 수 없는…….”

“수호문 문주에 대한 기록을 읽어봤다며? 방주한테 나에 대해 듣기도 했고? 그럼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 텐데?”

“죄, 죄송합니다. 말하겠습니다. 하남성에서 문주님의 정보를 사려던 자는 각운이란 사람입니다.”

“각운?”

“십팔나한의 대형 격인 자입니다.”

“그놈에 대해 아는 거 다 말해봐.”

“일단 소림 소속이고, 속명은 주성일이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백서휘가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후개가 각운의 가족 관계에 대해 말했다.

“양친 모두 돌아가셨고, 동생 하나 남아 있습니다. 동생의 이름은 주성준으로 문주님이 계시는 장사에서 금강무관을…….”

각운이 자신에 대해 알아봤다는 게 이제야 이해가 됐다.

“이거 스님이면서 속세와의 연을 완전히 끊지 않은 거였구만. 하하하! 살려 보내준 걸 감사히 생각해야지 그걸 그대로 본산에 가서 형한테 일러?”

백서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다가 갑자기 정색했다.

“소, 소림에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를 해두겠습니다.”

“경고하지 말고 그냥 내 정보를 그놈한테만 팔아.”

“그러면 문주님을 공격하러 장사로 갈 겁니다.”

“그러라고 하는 거야.”

살기등등한 눈빛을 한 백서휘를 보고 후개는 온몸에 소름이 다 돋는 걸 느꼈다.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가 형제가 쌍으로 죽고 소림이 터져나가면 아주 재밌어지겠지? 안 그래?”

후개는 두려움 가득한 눈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객잔에서 풀어줄 테니까 법개한테는 방주한테 보고할 일이 생겼다고 하고 천진으로 돌아가.”

“그,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기서 있던 일은 방주한테만 보고해. 방주가 머리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지.”

“어디 어디까지 보고 해야 하는지 지정을 해주셔야…….”

“네가 기루간 것부터 다 보고해.”

“예?”

“자, 이제 눈 감았다가 뜨면 객잔일 거야.”

후개가 눈을 감았다 뜨니 진짜 객잔 앞에 와 있었다.

꿈인가 싶어 볼을 꼬집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 그에게 전음이 날아왔다.

『내가 밀실에서 말했던 대로 안 하면 중원에 있는 거지들 다 죽는다. 알아들었으면 고개 끄덕여.』

후개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백서휘는 그를 잠시 동안 지켜보다가 형주를 떠났다.

* * *

장사로 돌아온 백서휘는 다른 곳을 들르지 않고 바로 취죽교로 향했다.

나겁개는 삶에 의욕을 잃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다른 거지들은 반쯤 시체가 된 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겁개.”

백서휘의 중저음 목소리가 호남성 분타를 갈랐다.

“배, 백 관주다!”

“백 관주가 나타났다!”

호남성 분타가 공황 상태에 빠진 거지들로 인해 소란스러워졌다.

“다들 꺼져!”

백서휘의 일갈에 거지들이 기다렸다는 듯 호남성 분타를 빠져나갔다.

남은 거지는 나겁개 혼자뿐이었다.

“나겁개.”

“꺼져!”

“꺼지라고? 지금 나한테 한 말이야?”

“그래, 너! 백서휘! 너한테 한 말이다!”

나겁개는 벌떡 일어나서는 백서휘에게 삿대질했다.

“그런 언행 별로 좋지 않은데.”

“어린 새끼가 꼬박꼬박 반말했던 건 그럼 잘한 거냐?”

“그 어린 새끼가 지금 일을 무사히 해결하고 오는 길인데, 이래도 되는 건가? 응?”

백서휘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무사히 해결했다고? 그것도 네가? 거짓말하지 마!”

“후개랑 만나서 잘 해결했지.”

“하하! 넌 이제 끝났어. 형제들이 후개를 죽인 널 용서치 않을 거다! 하하하하!”

“죽였다고는 안 했는데?”

“불구로 만들어도 똑같아. 방주를 공격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불구로 만들었다고도 안 했어.”

“그, 그러면 어떻게 해결을……?”

후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널 위해 평화적으로 처리했지.”

“날 위해?”

“원청이 하청을 안 챙기면 누가 챙기겠냐는 마음으로 해결했는데, 지금 그렇게 한 걸 매우 후회 중이야. 하청이 이렇게 배은망덕한 새끼인 줄 몰랐거든.”

“미, 미안하오! 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오. 그, 그냥 본단의 감사에서 살길이 없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언행이 날카로워졌소.”

“어때? 지금은 살길이 보여?”

“사, 살려주시오! 내가 다 잘못했소! 다시는 당신에게 까불지 않겠소!”

나겁개가 백서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그냥 깨끗하게 교육받자.”

“사, 살려……!”

백서휘는 근골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나겁개를 두들겨 팼다.

“할 일이 남아서 여기서 끝내는 줄 알아.”

백서휘는 무관을 향해 응룡비천신법을 펼쳤다.

‘다들 잘 있겠지?’

익숙한 길이고 신법도 전력으로 펼친 덕에 무관에 도착하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기합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안에 사람이 있단 뜻인데……. 흐흐흐! 깜짝 놀라게 해줘야지.’

백서휘는 은형잠종술로 기척을 숨기고 실내수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금태평과 방소유, 서공호가 무공을 수련하고 있는 게 보였다.

‘어? 저놈은 왜 다른 무공을 수련하고 있지? 화산파 준비반에 들어갈 놈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이상하다 싶어 계속 관찰하다 보니 서강호가 펼치는 검법이 화산파의 무공 중 하나란 걸 알게 됐다.

‘동작이 크고 힘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검법인가 보네.’

팔다리가 길쭉길쭉하고 덩치가 좋은 서강호에게 잘 어울리는 무공이었다.

‘제대로 펼치려면 지금보다 더 힘이 세야겠어.’

그때 운학이 서강호의 수련을 중지시켰다.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백서휘는 실내수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기척을 느낀 운학이 문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그를 발견했다.

“어? 관주님? 돌아오셨군요!”

“와! 관주님!”

“진짜네?”

운학과 아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떠날 때 금방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백서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금방일 줄은 몰랐습니다.”

“가까운 곳이니까 오가는 건 금방이지. 그보다 강호 수련은 왜 중지시킨 거야?”

“처음부터 다시 시키려고 중지시켰습니다. 이유는 관주님도 아시겠지만, 초식의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서요.”

“지금 상태로는 수백 번을 반복해도 네가 원하는 자세가 안 나올 거야.”

“그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네가 너무 욕심을 부렸어.”

“예?”

“강호는 무공 수련에 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놈이야. 그런 놈한테 지금 완벽한 자세를 취할 걸 강요하고 있잖아.”

운학이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화산파에 입문할 아이란 생각에 필요 이상으로 과한 걸 요구한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어.”

“반성하겠습니다.”

백서휘의 시선이 운학에서 서강호 쪽으로 옮겨갔다.

“서강호!”

“네?”

“아까 무공을 펼치는 걸 보니 근력이 부족해보이더라. 지금부터 근력 운동을 중점적으로 해.”

“지금도 초식을 펼치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운학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초식을 펼치는 건 당연한 거고, 그 이상을 생각해야지.”

“그 이상이라면…….”

“실전 말고는 없지.”

장내의 분위기가 급격히 무거워졌다.

“더 지적할 부분이 있지만, 오늘은 일단 넘어가겠어.”

“관주님.”

서강호가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왜?”

“그 지적할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지금 알아도 바로 고칠 수는 없어.”

“알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도움이 될 겁니다.”

백서휘는 잠시간의 고민 끝에 작은 가르침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네가 배우는 무공은 큰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고 동작마다 힘을 싣게 되어 있다는 거 알고 있지?”

“네.”

“알고 있다니 내가 내는 문제도 잘 풀겠네.”

“열심히 풀겠습니다.”

“조금 전에 말한 특징을 가진 무공들은 공통된 약점을 지녀. 그게 뭔 줄 알아?”

백서휘가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서강호를 바라봤다.

‘네 오성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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