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46화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어? 아까 말한 그 문제 때문인가?”
멍하니 바닥을 보고 있던 나겁개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백서휘가 짝다리를 짚은 채 서 있었다.
“그렇소.”
“도대체 그 문제가 뭔데?”
“그 문제에 대해 말하기 전에 할 말이 있소. 이번 일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 잘못한 거요.”
“내가 뭘 잘못했는데?”
“당신과 관련된 정보를 다른 곳에 넘기지 말라고 했잖소.”
“그게 문제를 일으킨 건가?”
“천진에 있는 본단에서 알아차리는 바람에 문제 수준이 아니라 대형 사고가 터졌소.”
“어쩌다?”
“하남성 분타에서 계속 요청이 들어왔었소.”
“하남성에 있는 누군가가 내 정보를 사려고 했나 보군. 그게 누군지 알고 있나?”
“소림 쪽 인물이라고만 알고 있소.”
“소림이라고? 갑자기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소림과는 선연도, 악연도 맺지 않았다.
그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일 만한 이유가 없었다.
이름과 사는 곳도 몰라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소림은 관심을 보이고, 내가 호남성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어떻게 된 일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소림이 나한테 왜 관심을 보이는지 알고 있나?”
“모르오.”
“알고 있는 건 뭔데?”
“본단에서 정보 통제를 해서 알고 있는 건 별로 없소. 지금 말해준 것도 친구에게 사정해서 얻은 거요.”
“좋아, 정리해보자. 소림 혹은 소림과 연관이 있는 자가 내 정보를 얻기 위해 너한테 요청을 했고, 너는 그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어. 맞아?”
“맞소. 그들의 요청을 계속 무시했지. 그랬더니 본단에서 감사단을 출발시켰다는 연락이 왔소. 감사단장으로는 후개(後丐)가 오고…….”
후개는 다음 대 방주의 자리에 오를 자로 무공이 출중하고, 품행에 문제가 없으며, 사리 분별을 잘하는 자만이 될 수 있었다.
“후개를 보낼 정도면 이 문제를 개방에서 심각하게 여기고 있단 건데…….”
“정보를 의도적으로 감추고, 거기다 도움이 필요한 형제의 요청을 무시한 거니 당연한 반응이오.”
“감사단장인 후개만 신경 쓰면 되나?”
나겁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개는 아직 애송이에 불과하오. 경계해야 할 대상은 후개를 보조할 목적으로 오는 법개(法丐)와 그 휘하의 거지들이오.”
법개는 방규에 정통하고 방내 사장에 훤해야만 될 수 있는 자리로 개방 내에서 집법(執法)을 담당한다.
“후개에 법개면 상당히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은데…….”
백서휘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그, 그들을 죽이면 더 귀찮아지는 일이 생길 거요.”
“후개 때문에?”
“그렇소. 후개는 개방의 미래나 다름없는 존재요. 혹여라도 죽이게 되면 방주를 죽인 것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거요.”
“총력전이라도 펼치나 보지?”
“모든 방도가 이곳으로 달려올 거요. 그렇게 되면 당신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죽을 수밖에 없소.”
“죽는 건 내가 아니라 ‘모든 방도’야.”
“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나겁개가 미친놈 보듯 백서휘를 바라봤다.
그가 아는 백서휘의 무력 수준은 절정의 경지.
타구봉진을 펼칠 것도 없이 개방 휘하에 있는 광견단과 투견단, 번견단만 파견해도 정리가 됐다.
그런 놈이 개방의 거지들을 죽이니, 살리니 하는 것이 나겁개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진심이다.”
“허어!”
“원한다면 여기서 맛보기를 보여줄 수 있어.”
“지금 이곳 호남성 분타를 제압했다고 본방을 우습게 보는 것 같은데, 그러면 아니 되오. 당신 수준의 무위로는 이곳으로 오는 법개와 그 휘하 거지들도 감당 못 할 거요.”
“그건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백서휘는 무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오문의 호남성 지부에 들렀다.
“개방 감사단에 대한 정보를 줘.”
미리 준비라도 하고 있었는지 유소화는 바로 정보를 가져왔다.
‘개방 감사단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감사 대상이 모르게 하기 위해 평범한 무림인들처럼 옷을 입고, 시간 차를 두고 인원을 나눠서 움직이며…….’
백서휘는 정보들을 빠르게 읽고 유소화에게 질문을 던졌다.
“개방 감사단이 장사에 도착할 거라고 예상되는 시간이 언제지?”
“열나흘 후로 예상돼요.”
“이레쯤에는 어디쯤 와 있을까?”
“형주(荊州)요.”
“형주라…….”
백서휘는 장사와 형주를 두고 속으로 저울질해봤다.
‘근거지인 장사 쪽이 장점이 많긴 해.’
방소유의 아버지이자 이곳 지현인 방효성의 도움을 받으면, 감사단의 출입을 통제하고, 시비가 붙었을 때 유리한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
‘치명적인 단점은 근거지인 만큼 감사단을 죽였을 때 의심을 크게 받게 된다는 건데…….’
형주에서 감시단의 목을 쓱싹하면 용의선상에 올라가는 걸 피할 방법이 있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면 의심을 덜 받을 수 있지.’
백서휘의 응룡비천신법은 상식을 뛰어넘는 속도로 달리는 걸 가능하게 해준다.
유령신투 같이 신법이 빠르기로 손에 꼽히는 이도 그에게는 상대가 안 됐다.
이 점을 이용한다면 감사단을 죽였다는 의심받았을 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박하면 된다.
‘좋아, 형주로 간다.’
백서휘는 준비하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지?”
“오늘 정보는 돈을 안 주셔도 돼요.”
“개방도들을 죽이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도 공짜인가?”
“그놈들을 다 죽일 가능성도 있잖아요.”
“뭐, 좋아. 공짜라고 하는데 억지로 거부할 필요는 없지. 고맙다.”
“별말씀을…….”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다.”
백서휘는 식구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장비를 챙겨 호북성 형주로 향했다.
* * *
‘따로따로 나눠서 온다고 했었지?’
백서휘는 형주로 들어오면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길목에서 후개와 법개를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두 남자는 오지 않았다.
형주를 지나친다는 유소화의 예측이 잘못된 게 분명했다.
‘장사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다시 객잔으로 돌아가려는데, 젊은 남자와 중년의 남자가 무복을 입고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저 놈들인가?’
호남성 지부에서 두 사람의 용모파기를 봤는데도 확신이 안 섰다.
‘아닌 것 같……. 어? 저건!’
백서휘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두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온 길쭉한 대나무 몽둥이.
개방이 자랑하는 봉법을 쓸 때 사용하는 몽둥이가 분명했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어.’
백서휘는 닭살이 돋은 팔을 쓸어내리며 은형잠종술을 펼쳤다.
후개와 법개가 그의 앞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갔다.
‘뒤를 밟는다.’
백서휘는 거리를 두고 후개와 법개를 따라갔다.
미행당하는 걸 모르는 두 사람은 아주 정직하게 움직였다.
“다른 형제들은 이미 도착했다고 하셨죠?”
“모두는 아니야. 셋은 현지 사정을 조사해야 해서 먼저 출발했다.”
“그럼 몇이나 그 객잔에 있는 거죠?”
“아홉.”
“다른 사람이나 단체에서 눈치채진 않았겠죠?”
“변장을 시킨 데다 둘, 셋, 넷으로 무리를 찢어놔서 들킬 일은 절대 없을 거다.”
법개의 대답을 들은 백서휘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전문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거지가 아니라 그런가? 하오문을 너무 우습게 보네.’
다른 거지들이라면 몰라도 후개와 법개 같은 고위직들은 얼굴이 알려져 있었다.
이 둘을 집중적으로 추적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의 움직임도 알게 된다.
‘뭐, 저렇게 방심하면 나야 나쁠 건 없지.’
법개와 후개가 입구에 처진 주렴을 걷으며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미행은 이쯤에서 끝내자.’
백서휘는 객잔을 중심으로 두고 기감을 천천히 넓혀갔다.
객실 곳곳에서 무인들이 감지됐다.
뿜어지는 기세와 근골의 발달 부위가 그들 모두 비슷했다.
같은 문파에서 동고동락하며 수련했다는 증거였다.
‘어떻게 할까? 객잔을 통째로 무너뜨려? 아니면 확 불을 질러? 이것도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 죽여야 잘 죽였을까 고민하는 와중에 후개가 객잔 밖으로 나왔다.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걸 보면 몰래 나온 것 같았다.
‘따라가야 하나?’
후개와 법개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머리에 달린 가치는 방주 자리가 예정된 후개 쪽이 훨씬 더 높았다.
‘가치가 높으니까 죽이는 게 아니라 납치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좋아, 죽일 때 죽이더라도 일단 따라가서 납치한다.’
처음에 미행했던 것처럼 거리를 두고 후개를 쫓았다.
후개가 향한 곳은 형주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 있는 기루였다.
‘저기는 하오문 소속의 기루인데?’
후개는 2층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백서휘는 근처에 있는 다른 건물의 지붕에 올라가 그를 관찰했다.
‘뭐하러 온 거지? 거지와 기루는 어울리지 않는데…….’
거지라고 해서 술을 못 마시는 건 아니지만 비싼 돈을 들여가며 기루까지 오는 이유가 있어 보였다.
‘하오문 쪽에 심어둔 비밀정보원이나 접선할 사람이 따로 있나?’
예상은 반 각이 채 지나기 전에 깨졌다.
후개는 기녀와 놀려고 기루에 온 것이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백서휘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더는 못 보겠다.’
백서휘는 기루로 들어가 하오문 표식을 한 점소이를 찾았다.
“어이!”
“부르셨습니까!”
하오문 표식을 한 점소이가 백서휘에게 꾸벅 인사했다.
“묻노니, 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
“웃을 뿐, 답은 않고 마음이 한가롭네.”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
“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네.”
모든 암구호가 맞아떨어지자 점소이의 눈이 커다래졌다.
“귀빈께서 여긴 어찌…….”
“혹시 형주에도 하오문의 안가가 있나?”
“안가가 있긴 한데……. 왜 찾으시는지 물어도 될까요?”
“거기로 저놈을 데려가려고.”
백서휘는 기루 2층에 있는 후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자가 누구인지는 말씀하실 수 없겠죠?”
“미래에 용두방주가 될 자.”
“저, 정말이요?”
“그래.”
“저자가 잘못돼서 전쟁이 일어나면…….”
“문주의 제자는 죽이길 원하던데?”
“제자 중 어떤 분을 말씀하시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유소화.”
“그분은 주전파라서 그런 거예요. 주화파인 제자 분도 많아요.”
“나는 ‘전쟁이 나든, 나지 않든 상관없다는’ 파니까 안가 위치나 알려줘.”
“그건 제 권한을 넘는 일인데요?”
“정 못 말하겠으면 무한에 있는 지부장 불러오던가.”
“지금 당장 무한을 어떻게 가요.”
“못 가겠으면 그냥 안가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줘.”
“새, 생각을 좀 하면 안 될까요?”
“그럴 시간 없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점소이는 백서휘에게 안가의 위치와 들어가는 방법, 주의점 등을 알려줬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
“아니, 잠깐만 멈춰봐.”
“네?”
“생각해보니까 저놈을 데리고 자연스럽게 기루를 빠져나오려면 네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아.”
“제, 제 도움이요?”
“일단 두 가지 일에서 네 도움이 필요해. 미혼산을 탄 술을 저놈한테 가져다주는 일이랑 저놈을 기루 뒤편으로 데려오는 일.”
“모, 못하겠어요.”
“술에 미혼산 타서 바가지 뒤집어씌우는 건 너희도 자주 하는 일이잖아. 그걸 저놈한테 하는 거야.”
“그래도 후개한테 하는 건 좀…….”
“보수로 은자 열 냥을 주면?”
점소이의 눈동자에 탐욕이 어렸다.
“성공 보수는요?”
“무사히 데려오면 열다섯 냥 더 주지.”
“좋아요. 그 조건이면 할게요.”
백서휘는 은자 열 개와 혁대에 달린 주머니에서 꺼낸 미혼산을 점소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됐지?”
“네!”
점소이가 활짝 웃으며 기운차게 대답했다.
“이따 보자고.”
“네!”
백서휘는 실실 웃으며 기루의 뒤편으로 갔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점소이가 후개를 업고 기루 뒤편으로 쭈뼛쭈뼛 왔다.
“성공 보수 이리로 던져주세요.”
점소이가 이쪽으로 잘 오다 말고 멈춰 서서 말했다.
“그냥 와서 받아.”
“귀빈께서 저를 죽일 수도 있잖아요.”
“그 거리에 있다고 내가 못 죽일 것 같아? 같잖은 짓 하지 말고 그냥 와서 받아.”
“이쪽으로 던져주세요.”
“그래, 받아라.”
백서휘는 은자 스무 냥을 점소이 쪽으로 던졌다.
점소이는 주머니 없이 그냥 은자로 던질 줄은 몰랐는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백서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후개 쪽으로 다가갔다.
점소이는 자기를 죽이려고 생각했는지 기루 안쪽으로 도망갔다.
“이상한 부분에서 겁을 내네.”
어이없다고 생각하며 백서휘는 후개를 둘러업었다.
기루와 좀 멀어지니 점소이가 눈치를 보며 나와 은자를 다 주워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