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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45화 (45/202)

귀환무관 45화

백서휘는 백은하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정하진이 심각한 표정을 하고 두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내가 오전에 했던 말 기억하는가?”

“사고가 있었지만, 합리적인 보상으로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다던 그 이야기 말입니까?”

“……아까 손님들이 있어 자세히 말을 못 했네. 그 일 아주 깔끔하게 처리되지는 않았어.”

정하진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거라면 더 주고 끝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돈을 요구한 게 아니야. 그자는 교육의 기회를 요구하고 있어.”

“혹시 그자에게 학무관의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백서휘는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정하진이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손사래 쳤다.

“그럼 그자가 어떻게 ‘교육의 기회’란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던 겁니까?”

“건물의 설계를 보고 유추했다고 하더군.”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교육기관을 짓는단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던 겁니까? 위장도 사업체로 하고 있고, 실제로 다른 인부들도 사업체로 알고 있을 텐데요.”

“교육기관이 아니라고 부정할 때의 내 반응을 보고 확신했다는군. 이점에 대해서는 정말 너무 미안해서 할 말이 없네. 깜냥이 없는데 책임자의 자리에 오른 내 잘못이야…….”

정하진은 태생적으로 정직한 사람이라 거짓을 말하거나 비밀을 숨기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동반자로 삼은 이유가 역으로 단점으로 작용한 거네.’

숨기지 못한 정하진의 잘못도 있지만, 사람 기용을 잘못한 자신의 잘못도 있었다.

“고개 드십시오. 매형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자가 약삭빨라서 눈치챌 수 있었던 겁니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일단은 그자와 만나봐야겠습니다. 그자 어디 삽니까?”

“취죽교 근처에 있는 빈민가에 살고 있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제가 가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미안하네. 못난 나 때문에 처남인 자네가 고생만 하는구만.”

정하진은 백서휘의 양손을 붙잡고 단어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민망해진 백서휘는 인사를 하고 황급히 사합원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 백서휘는 취죽교 쪽으로 향했다.

무슨 일인지 나겁개가 눈치를 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자신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학무관을 알아차린 자를 찾는 게 우선이었다.

백서휘는 나겁개를 뒤로 하고 빈민가 안으로 들어갔다.

빈민가는 확실히 일반적인 곳하고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이런 빈민가를 한 번도 안 와본 것도 아니고…….’

백서휘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만큼이나 익숙하게 행동했다.

‘여기 어디에 있을 텐데……. 찾았다.’

교육의 기회를 요구한 자는 판잣집 중에서도 가장 낡고 부서질 것 같은 곳에 살고 있었다.

건물 만드는 사람이 이런 곳에 산다는 게 뭔가 역설적이었다.

백서휘는 먼저 기감으로 건물 안에 사람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누워있군.’

허탕 칠 일은 없겠다고 생각하며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쿨럭쿨럭! 누구요?”

“너한테 돈 주던 사람.”

남자는 눈치가 빠른지 바로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쿨럭! 무슨 일로 오셨소?”

“돈이 아닌 다른 걸 요구한다고 해서 와봤다.”

“그거 때문이라면 잘 왔소. 마침 나도 할 말이 있었거든.”

남자가 문을 활짝 열어주자 백서휘는 판잣집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어디에 앉으면 되지?”

쓰레기투성이라 앉을 만한 곳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떡할까 고민하는데 남자가 다가와 발로 쓱쓱 쓰레기를 좌우로 밀었다.

“앉으시오.”

“고맙군.”

“별말씀을.”

남자가 다시 자기 자리로 절뚝이며 걸어가는데 왼쪽 소매가 펄럭거렸다.

“다쳤다는 부위가 어디지?”

“팔을 잃었소. 다리는 태어날 때부터 절었고.”

다쳤다는 게 아니라 잃었다는 말이 백서휘의 가슴에 쿡, 하고 박혔다.

‘저 몸으로 무공을 배울 수 있을까?’

배울 순 있어도 제대로 해내는 건 불가능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백서휘는 동정 어린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내가 무공을 배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배울 순 있지. 근데 제대로 해내지는 못할 거야.”

“맞소. 나는 무공을 배워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거요.”

“그런데 왜 배움의 기회를 달라고 한 거지? 알고 있다면서?”

“나는 그렇지만 내 아들은 다르오. 팔도 둘 다 있고! 다리도 나처럼 절지 않소! 거기다 똑똑하기까지 하지.”

“몇 살이지?”

“열다섯이오.”

“미안하지만 열다섯이면 너무 늦었어. 고수로 키우고 싶었으면 더 일찍 무공을 배우게 했어야지.”

열넷이면 혈도가 이미 많이 막혀 있고, 근골의 성장 한계치도 정해졌을 것이다.

“왜 그러고 싶지 않았겠소. 나도 빨리 배우게 하고 싶었소. 빌어먹을! 이놈의 빌어먹을! 돈만 아니었다면 소림이든! 무당이든! 화산이든 다 데려갔을 거요.”

“머리가 좋다고 했던가?”

“아주 좋소.”

“그럼 무공 말고 상단에서 일하게 하는 게 나을 거야. 원한다면 내가 만복상단에 꽂아줄 수도 있어.”

남자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무공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건가?”

“그렇소. 무공이 아니면 안 되오. 내 아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공을 배워서 고수가 돼야 하오.”

“고수는 당신이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 본인이 열망해야지.”

“만나면 알겠지만, 본인도 열망하고 있소.”

“음……. 좋아, 만나보고 결정하지. 싹수가 글러 먹었으면 강제로라도 돈을 쥐여줄 테니까 그렇게 알아.”

“지금쯤이면 도화루에서 재료 손질을 하고 있을 거요.”

“도화루에서 일한다고?”

“그렇소.”

“좋아, 한번 가보도록 하지.”

백서휘는 빈민가를 나와 취죽교 위를 걸어갔다.

그때 나겁개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뭐 때문에 길을 막는 거야?”

“하, 하고 싶은 말이 있소.”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모르겠는데 오늘은 바쁘니까 그 얘기는 나중에 하자고.”

백서휘는 나겁개를 지나쳐 가려 했다.

“나, 나중에 언제 말이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최, 최대한 빨리 대화할수록 좋은 문제요.”

“그럼 내일 하던가.”

“그, 그럼 이 이야기는 내일 꼭 하는 거요. 당신이 미룬 거니까 내 잘못 아니오. 나중에 왜 그랬냐고 화내지 마시오.”

나겁개는 횡설수설 말을 하다가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백서휘는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고는 도화루를 향해 응룡비천신법을 펼쳤다.

‘일단은 그놈 싹수부터 확인한다.’

거리가 그리 멀지도 않고 신법까지 펼쳤기에 도화루엔 금방 도착했다.

도화루 앞을 빗자루로 쓸던 점소이가 백서휘를 보고 허리를 꾸벅 숙였다.

“오셨습니까? 오늘은 제가 아니라 다른 놈이 안내할 겁니다.”

“오늘은 거기 가려고 온 거 아니야.”

“그러면 무슨 일로 오신 건지?”

“여기 주방에서 일하는 애 보러 왔어. 열다섯 살짜리인데…….”

“강호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그럴 애가 아닌데 왜 그랬는지…….”

백서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다른 놈이 대신 사과를 하지? 그것도 다른 놈도 아니고 하오문의 문도인 놈이? 심성이 좋은 놈이라 도와주는 건가?’

오면서 기대라고는 조금도 안 했는데 처음으로 기대감이 생겼다.

“혼내려는 거 아니니까 이리로 불러와 봐.”

“그럼 믿고 불러오겠습니다.”

백서휘가 고개를 끄덕이자 점소이가 다 자란 어른처럼 키가 큰 아이를 데려왔다.

“이름이 뭐지?”

“서강호라고 합니다.”

서강호는 형형한 눈빛으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고수가 되고 싶나?”

“네.”

“이유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지금보다 나은 삶? 어떤 삶을 말하는 거지?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살면서 삼처사첩과 사랑을 나누고, 끼니마다 산해진미를 먹는, 뭐 이런 삶을 원하는 건가?”

“그런 삶도 살면 좋겠지만 제가 말하는 더 나은 삶과는 다릅니다.”

“그 더 나은 삶이 뭔지 말해봐.”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순한 외모와 다르게 서강호의 눈빛에는 독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삶이라…….”

백서휘는 팔짱을 끼고 서강호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부실하게 먹은 것치고는 서강호의 근골은 말도 안 되게 좋았다.

그리고 오성 역시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는 부분이지만 말하는 걸 보면 평범한 수준은 넘는 것 같았다.

‘뭐, 제자로 삼을 것도 아니고, 그냥 무공 조금 가르쳐주는 거니 합격시켜도 되겠지.’

백서휘는 팔짱을 풀고 시선을 점소이 쪽으로 옮겼다.

“얘 데려가도 되나?”

“어, 그게……. 그러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근데 이 사실을 새로 오신 지부장님이나 부지부장님께 보고해도 되겠습니까?”

“보고해도 돼.”

“그럼 보고하겠습니다.”

점소이가 꾸벅 인사를 하고는 밀실로 뛰어갔다.

“따라와.”

“네?”

“따라오라고.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특별히 이번만 두 번 말한 거야.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어.”

“네.”

백서휘와 서강호는 취죽교를 지나 빈민촌에 돌입했고 곧 서강호의 집에 도착했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근데 손님이…….”

“알고 있다. 내가 부탁했거든. 흐흐! 쿨럭쿨럭쿨럭!”

서강호의 아버지는 피가 섞인 기침을 계속 했다.

서강호는 당황하지 않고 주방에서 약을 가져와 그에게 먹였다.

‘이런 상황이 익숙해 보이는군. 어쩌면 그 내일이란 게 저놈 아버지의 내일을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어.’

한참 동안 기침을 하던 서강호의 아버지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결정하셨소?”

“했다.”

“어떻게 하실 거요?”

“적전제자가 아니라 관원 중의 하나로는 받을 수 있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소. 무공을 가르쳐주겠다는 거요? 못 가르쳐주겠다는 거요?”

“가르쳐주겠지만 내가 다 봐주지는 못할 거야. 대신,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받지 않겠다. 아니, 지원해주지.”

“지원?”

“성실하게 무공을 배운다면 지금 이놈이 받는 월급의 두 배를 지급하지.”

“좋소. 그렇게 해주시오. 그럼 내가 없어도 먹고살 걱정 없이 무공을 배우겠지.”

“꼭 죽을 것처럼 말하는군.”

“죽으니까 죽을 것처럼 말하는 거 아니겠소?”

“죽는다고?”

“그렇소. 난 이미 죽을 날을 받아놨소. 흐흐흐!”

“죽을 날을 받았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지?”

백서휘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죽기 전에 아버지 노릇 한번 했으니까 웃을 수 있는 거요. 처음이거든.”

“지금까지는 안 했단 건가?”

서강호의 아버지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부끄럽지만 술이랑 도박에 빠져 사느라 아버지 노릇을 못 했소. 아니, 안 했소. 안 한 게 맞소. 그런데 죽을 날이 되니까 눈에 밟혀서 그냥은 못 죽겠단 생각이 들더구려. 그래서 죽기 전에 돈이라도 조금 남겨주고 가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는데 사고가 터졌소. 그리고, 팔을 잃었지.”

“미안하게 됐다.”

“아니, 미안해하지 마시오. 어차피 죽을 몸 아니오. 그런 몸으로 저놈의 생계와 미래를 해결했으면 남는 장사지.”

서강호가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래서 말하는 건데 고맙소. 덕분에 여한 없이 죽을 수 있을 것 같소이다. 흐흐흐.”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도 당신에게 통보했고, 용건도 더 없으니, 나는 이만 가보겠다.”

“잘 가시고 내 아들이 다 성장할 때까지는 내가 갈 곳으로 오지 마시오.”

“그러지.”

백서휘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며 빈민가를 빠져나왔다.

‘더 생각하면 우울해질 테니 아버지에 관한 생각은 이쯤 하자.’

취죽교에 가까워졌을 때 나겁개가 심각한 얼굴로 서 있는 모습을 포착했다.

‘내일 대화하는 것보다는 오늘 대화하는 게 더 낫겠지.’

백서휘는 나겁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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