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9화
다음 날.
공터로 금강무관의 관주와 두들겨 맞았던 아이들이 찾아 왔다.
그들의 눈에 어린 독기를 보니 항의하러 찾아온 게 분명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백서휘는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맞았다.
“당신이 자하무관의 관주요?”
“그렇다면?”
“그렇다면? 허허! 말이 좀 짧구려.”
“장유유서(長幼有序)에 논하기엔 우리 사이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지.”
“허어!”
금강무관의 관주가 달아오른 얼굴로 목까지 내려온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무슨 일로 온 건지나 말해.”
항의하러 왔다는 걸 다 알고 있지만, 혹시 몰라 질문을 던져봤다.
“우리 무관의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가 그쪽 소속이라고 해서 찾아왔다.”
“그쪽 소속 관원들을 괴롭혔다고? 뭔가 잘못 안 거 아닌가?”
“이 아이들의 상처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가?”
“관주니이임!”
금태평이 빠르게 달려오다 말고 멈춰 섰다.
“마침 잘 왔다. 이 무도한 놈들한테 네 얼굴을 보여줘 봐.”
금태평이 조심스레 곁으로 다가왔다.
한눈에 봐도 금강무관의 관원들보다 금태평이 입은 상처가 더 많고 깊었다.
“이 아이의 상처 보이나? 그쪽 아이들이 비겁하게 단체로 덤비는 바람에 생긴 상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명명백백한 일을 부정하는 걸 보면 관주부터가 아주 글러 먹었구나.”
“글러 먹었다고?”
“그래. 관주부터가 흑도 왈패보다 못하게 구니 관원들이 비겁하게 단체로 몰려와 애를 때리지.”
“왈패보다 못하다고? 그 말 취소해라.”
금강무관의 관주가 백서휘에게 봉을 겨누었다.
“경고하는데 끝까지 가고 싶은 게 아니라면 무기 거두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나한테 무기를 겨눈 놈들을 멀쩡히 살려둔 적이 없거든.”
“하하하! 허세가 대단하구나!”
“진짜 끝까지 가길 원하나?”
백서휘는 화를 억누르며 생각했던 대로 일을 진행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아는가? 그렇다면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금까지 걸어온 싸움을 피한 적이 없었다.”
“그럼 내가 싸움을 걸면 무조건 응하겠군?”
“그렇다.”
“무관의 명예를 걸고 싸우도록 하지.”
“명예?”
“싸워서 진 쪽이 현판을 내리는 거로 하자고.”
백서휘가 강하게 나오자 금강무관의 관주는 입을 닫았다.
‘계산 중이군.’
아니나 다를까.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금강무관의 관주가 입을 열었다.
“잃을 게 많은 이쪽과 아무것도 없는 그쪽의 싸움인 걸 알고 있으면서 그런 제안을 하는 건가?”
“우리가 지면 현판을 내리고 은원보를 주겠다.”
“은원보 하나?”
금강무관의 관주가 탐욕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여섯 개.”
“좋다. 그쪽과 싸우도록 하지. 지금 붙으면 되는 건가?”
“한 달 후 이곳에서 붙도록 하지.”
“규칙은?”
“암기와 독을 쓸 수 없는 것 정도로 하지.”
“아무나 나와서 붙자는 건가?”
백서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관원, 사범, 관주 순으로 대결을 펼치되, 관원전은 아직 아이들이니 목검으로 대결하는 것으로 하지.”
사실 백서휘의 실력이라면 아무도 몰래 금강무관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백서휘에게 필요한 것은 자하무관이 금강무관보다 뛰어나다는 명성이었다.
그리고 그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비무에서 금강무관을 이기는 것이 제일이었다.
그리고 백서휘의 꾐에 넘어간 금강무관 관주가 되물었다.
“두 번 이기는 쪽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건가?”
“그렇다.”
“재밌겠군.”
금강무관 관주의 입꼬리가 승천할 듯 휘어졌다.
“내가 말한 규칙과 대결에 동의하나?”
“규칙을 하나 추가하도록 하지. 목숨을 뺏는 일은 없도록.”
“좋다.”
“한 달 후에 보자고.”
금강무관의 관주가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공터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낀 백서휘는 금태평과 사합원으로 떠났다.
“관주님, 우리 무관엔 사범님이 없는데 왜 사범도 대결한다고 하신 거예요?”
“다쳐서 쉬고 있어서 그렇지 사범은 있어.”
“우리 무관에 사범님이 있었어요?”
“지금 가서 소개해줄게.”
백서휘와 금태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합원에 도착했다.
어느새 상처가 다 나은 백은하는 집의 중심에 있는 마당에서 검술 수련을 하고 있었다.
‘음……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네.’
아버지가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해서 백은하는 혼자 수련한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나쁜 버릇이 너무 많이 들어 지금에 와서는 고치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사범전에서 이기려면 그래도 고쳐야 돼.’
물론 한 달 만에 나쁜 버릇을 고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만약 시간이 부족해 비무에서 질 것 같으면 자신이 몰래 도와줄 생각이었다.
‘불리해지면 안 들키게 지풍을 비무 상대에게 날려주면 되겠지.’
백서휘는 생각을 정리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나.”
“응? 이 시간에 웬일이야? 공사 감독하고 무공 가르치느라 바쁜 거 아니었어?”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 왔어.”
“무슨 부탁?”
백서휘는 금태평이 다섯 명과 싸운 일부터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짧게 축약해 설명해줬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금강무관의 사범과 비무를 해야 한다는 거야?”
“응.”
“그걸 말도 안 하고 결정하면 어떡해!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관주만 못한 거지 사범은 이길 수 있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무관을 키우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어.”
백서휘의 말에 백은하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 비무를 하겠어.”
“고마워.”
“수련은 그럼 언제부터 하는 건데?”
“당장 오늘부터 해야지.”
“언제부터 언제까지?”
“온종일.”
“그럼 식사는…….”
“그런 부분은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수련에만 집중해.”
“……알았어.”
“그럼 시작해볼까.”
백서휘는 백은하에게 종베기를 연습시키고, 자신은 금태평을 가르쳤다.
“내공심법을 알려줄 거다.”
“드, 드디어!”
“그래, 드디어 내공심법을 배우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뒤돌아서 가부좌 틀고 앉아.”
“네!”
금태평은 시원하게 대답하고는 백서휘가 말한 그대로를 행했다.
“두근거리고 흥분될 거야. 그걸 좀 진정시키고 있어.”
“네!”
백서휘는 머릿속으로 금태평에게 가르치면 괜찮을 만한 심법들을 떠올렸다.
‘너무 유명한 문파의 무공은 안 돼.’
암중단체의 비고와 돈이 담긴 금고를 수없이 털었다.
그 덕분에 그들이 은밀하게 모은 다른 문파의 무공에 대해서는 빠삭했다.
‘구파일방은 유출된 걸 알면 난리가 날 테니까 안 되고, 오대 세가 거? 이건 더 위험해. 특히 당가는…….’
백서휘는 고민 끝에 어떤 내공심법을 가르칠지 정했다.
“네게 가르칠 무공은 화엄법륜공(華嚴法輪功)이다.”
“예? 화엄법륜공이요? 좋은 무공인가요?”
“그럭저럭 쓸만해.”
“그런가요?”
사실 화엄법륜공은 백서휘가 암중단체에서 털었던 불가(佛家)의 내공심법 중 하나로 한때 소림이 탐을 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무공을 잘 모르는 금태평은 그저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의구심을 가질 뿐이었다.
만약 화엄법륜공을 아는 자가 들었다면 땅을 치며 분개할 일이었다.
“잠자코 들어. 무관 이름이 자하무관이면서 왜 화산파 속가제자들이 배우는 무공을 가르치지 않나 의아할 거야. 근데 다 이유가 있다. 일단 너는 재능이 크게 없는데 그나마 근골은 그럭저럭 쓸만해.”
백서휘의 화법에 익숙해진 탓에 금태평은 감정이 상하지 않았다.
“몸이 좋다는 장점을 살리고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최대한 이용하려면 권각술을 배우는 게 좋다. 화엄법륜공은 몸과 정신을 튼튼하게 만들어 권각술을 수련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저, 질문이요!”
“뭔데?”
“관주님은 검을 쓰는데 왜 저는 권각술을…….”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네 장점을 살리려면 권각술을 배워야 한다니까.”
“그러면 저는 그 내공심법을 배운 다음에 권각술을 배우게 되는 건가요?”
“그래. 내공심법이 어느 정도 몸에 익으면 호랑이를 본 따 만든 권각술인 호왕무(虎王舞)를 배우게 될 거다. 자, 이제 어떤 식으로 가르칠지 알려줬으니 바로 수업에 들어가겠다.”
“네!”
“혈도에 대한 수업은 이미 했고 시험도 봤으니 그냥 넘어가겠다.”
“그, 그래도 내공심법을 배우기 전에 한 번 더 복습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주화입마란 거에 걸리면 죽을 수도 있다는데…….”
금태평이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읊어봐.”
“신회, 태양, 구미, 유문, 상완…….”
“틀린 거 없으니 바로 실전으로 들어가 구결과 진기의 이동 경로를 설명하겠다.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 만큼, 몇 번을 물어도 설명해줄 테니까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야 돼. 안 그러면 네가 말한 주화입마에 걸릴지도 몰라.”
“네…….”
백서휘는 명문혈에 장심을 가져다 댔다.
어디서 들은 게 있는지 금태평은 입을 조개처럼 앙다물었다.
『마음에 걸림이 없고(心無罣礙) 걸림이 없으므로(無罣碍故) 공포도 없다(無有恐怖)…….』
백서휘는 전음으로 구결을 설명하며 진기를 이동시켰다.
금태평은 속으로 구결을 곱씹으며 운기 경로를 외웠다.
‘오늘은 이쯤에서 멈춰야겠다.’
백서휘는 도와주는 걸 그만두었다.
‘어라?’
금태평은 자신이 도와주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운기를 했다.
‘재능이 눈곱만큼은 있었구나.’
한 달 후에 있을 관원전에서 금태평이 승리하겠다는 확실히 들었다.
백서휘는 금태평의 호법을 서며 백은하의 자세를 전음으로 지적했다.
『화산의 검은 변(變)과 환(幻)의 검이야. 검병(劍柄, 검의 자루 부분)을 그렇게 세게 파지하면 검의 움직임이 딱딱해져서 상대의 눈을 속일 수 없게 돼.』
백은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파지법을 백서휘가 알려준 대로 바꾸었다.
* * *
세월유수(歲月流水)라 했던가.
한 달이란 시간은 물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일류와 이류 수준의 무인이었던 백은하는 확실한 일류가 되었고, 금태평은 호왕무를 능숙하게 펼칠 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진짜 이길 수 있을까?”
“우리가 완승할 거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말을 하는 백서휘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가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어?”
“두 사람을 믿으니까.”
지난 밤, 금강무관에 숨어들어 어떤 전략으로 나올지, 얼마나 강한 상대가 나올지 등을 확인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끄응.”
“정 걱정되면 내가 도와줄까?”
“어떻게?”
“중간에 전음으로 어떤 식으로 싸워야 할지 알려줄게.”
“그래도 돼?”
“규칙은 암기와 독을 쓸 수 없다는 거랑 목숨을 뺏으면 안 된다는 거야.”
“그래도 좀 비겁하지 않나?”
“정정당당하게 이기고 싶으면 그래도 돼. 두 사람 다 그럴 실력이 되니까.”
“……진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거 맞죠?”
조용히 있던 금태평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변수가 없다면 그렇겠지.”
승리를 확신하는 백서휘의 태도에 백은하와 금태평은 짓눌렀던 긴장감이 조금이지만 사라지는 걸 느꼈다.
‘언제 오는…… 아, 지금 오고 있군.’
금강무관에서 이리로 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감에 잡혔다.
내공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 섞인 걸 보면 관원들의 부모나 구경꾼이 좀 섞인 것 같았다.
‘우르르 끌고 온 걸 보면 승리를 확신하는 모양이네.’
백서휘는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당할 금강무관의 관주와 사범, 관원에 애도를 표했다.
“드디어 왔네.”
“그러게요.”
한 달이나 같이 보냈는데도 백은하와 금태평은 상당히 어색한 분위기를 풍겼다.
‘수련만 해서 교분을 나눌 시간이 없긴 했지.’
백서휘는 피식 웃으며 두 사람과 자신의 손을 모았다.
“손을 왜?”
두 사람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사기 좀 고취시키고 가자고. 내가 ‘자하무관의 승리를 위하여!’라고 하면 ‘위하여!’라고 외쳐.”
“알았어.”
“네!”
“자하무관의 승리를 위하여!”
백서휘가 세 사람의 손을 맞잡은 상태로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위하여!”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복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