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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8화 (18/202)

귀환무관 18화

몇 날 며칠이 지나도 금태평은 무관을 찾아오지 않았다.

‘오늘도 안 오는 걸 보면 내 경고가 그리 큰 효과가 없었나 보네. 그놈에 대한 마음은 접고 공사에 집중하자.’

어느새 홍 씨 부자와 일꾼들이 백서휘 앞에 질서정연하게 도열했다.

백서휘는 매번 그랬던 것처럼 경고성 말을 내뱉었다.

“자재 빼돌리다 걸리면 사형이다.”

말 속에 살기가 섞였기에 일꾼들이 감히 거역하지 못했다.

“그럼 오늘도 열심히 일하도록!”

홍륜이 대표로 백서휘에게 인사하고는 일꾼들을 지휘했다.

백서휘는 무관과 조금 떨어진 곳에 의자를 펴고 앉았다.

‘오늘은 누굴 중점적으로 감시할까.’

홍륜이 직접 일꾼들을 뽑은 덕에 현장엔 괜찮은 자들만 모였다.

술을 좋아하는 자도 그리 없었고 자재에 손을 댄 자도 없었지만, 저도 모르게 의심하게 됐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암중단체를 쫓는데 쏟은 탓이리라.

그때.

‘응? 금태평?’

사고 예방과 도난 방지를 위해 넓혀진 기감에 금태평이 걸렸다.

금태평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오지 못하고 계속 망설이네. 이럴 때는 어른이 나서야겠지.’

백서휘는 구천현현보를 빠르게 밟아 금태평의 뒤에 나타났다.

자신이 갑자기 사라지자 금태평의 눈을 손으로 비볐다.

백서휘는 피식 웃으며 금태평의 어깨를 건드렸다.

금태평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과, 관주님.”

“여긴 무슨 일이야.”

“다, 다시 무관에 다니려고요.”

“그러기엔 너무 늦지 않았나?”

백서휘는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턱을 매만졌다.

“……늦었어요?”

“그래.”

“그럼 이제 저는 관주님의 가르침을 못 받는 거예요?”

“그래.”

“안녕히 계세요. 가르침 주셔서 감사했어요.”

금태평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농담이다. 농담.”

“그러면 저는…….”

“무공 가르쳐줄게.”

“진짜요?”

“그렇다니까.”

“다행이다.”

금태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그날 있었던 일로 형이 충격을 크게 받아서 상단 업무가 중단되고, 한동안 형을 보지 못했어요.”

실력 행사를 한 게 생각보다 효과가 컸던 모양이다.

‘아직 젊어서 검이 가진 위력을 모른 탓이겠지.’

그때의 경고는 늙고 경험 많은 대방에겐 통하지 않을 수였다.

“그러다 어제 갑자기 형이 저를 찾아와서는 묻더군요. 관주님이 믿을 만한 사람이냐고.”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는데?”

“믿을만하다고 했어요!”

“잘했네.”

백서휘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그렇게 대답도 하고 약속도 하니까 무관에 다니게 해주던데요.”

“약속?”

“관주님한테 가르침을 받아서 관주님보다 더 대단한 고수가 되겠다는 약속이요.”

“나보다 더 대단한 고수?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백서휘는 짧은 말로 금태평의 꿈을 무참히 뭉개 버렸다.

관주의 성격이 어떤지 아는 금태평은 지금의 말을 그냥 흘려 넘겼다.

“농담이 아니야. 나보다 더 대단한 고수는 없어.”

암중단체의 사람이면 몰라도 알려진 자 중에는 없는 게 확실했다.

“구파일방의 고수들과 비교해도 관주님이 뛰어나요?”

“내 나이대에서는 날 상대할 자가 없긴 하지.”

상대가 되려면 전대 혹은 전전대 고수가 자신처럼 천하제일의 무공 실력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내가 스승님한테 구박받으면서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수련했는데, 이런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는 건 말이 안 돼.’

백서휘는 스승을 따라간 이후로 무공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1초도 없었다.

먹으면서도 수련했고, 자면서도 수련했고, 심지어 뒷간에서 일을 보면서도 수련했다.

그러다 보니 오래 살지 않은 그의 인생에서도 무공을 수련한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많을 정도였다.

그래서 만약 비슷한 나이대에 자신보다 뛰어난 고수가 있다면 억울해서 못 살 것 같았다.

“그러면 관주님을 뛰어넘기 힘들겠네요…….”

“당연히 힘들지.”

“그러면 무공을 배우는 의미가 없는 것 같은데…….”

“왜 의미가 없어. 내가 믿음직한 무인으로 만들어주기로 했잖아. 절정 고수 정도만 돼도 대방을 지키는 데 무리는 없을 거야.”

“절정 고수요? 제가 정말 그렇게 대단해질 수 있어요?”

“그래.”

백서휘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금태평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부터 수련하면…… 어? 왜 무관이 이렇게 된 거예요? 설마, 무너지기라도 한 거예요?”

“아니, 증축 공사 중.”

“그럼 저는 어디서 수련해요.”

“바로 이 근처에 공터 있잖아. 증축 공사하는 동안은 거기서 수련할 거야.”

“예? 진짜요?”

“따라와.”

백서휘는 휘적휘적 근처에 있는 공터로 향했다.

금태평은 그를 빠른 걸음으로 뒤따라갔다.

“공터에 도착하는 대로 배운 걸 복습하는 시간을 가질 거니까 머릿속으로 배웠던 걸 생각해둬.”

“네.”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 있는 공터에 도착했다.

“내가 그만할 때까지 배운 거 그대로 펼쳐봐. 처음은 견제용.”

“네!”

금태평이 자세를 잡고 서서 앞을 노려봤다.

백서휘는 위아래로 그를 훑어보며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살폈다.

‘흥분했네. 자기 나름대로 수련한 걸 보여줄 생각에 들뜬 건 알겠는데 시범할 때마저 그래선 안 되지.’

금태평이 피가 안 통할 정도로 세게 쥔 왼손을 빠르게 앞으로 내뻗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꽤 괜찮은 공격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백서휘에겐 전혀 아니었다.

‘달걀을 들 듯이 가볍게 쥐라고 했는데 힘껏 쥐었네? 내가 안 봐준 사이에 아주 안 좋은 버릇이 들었잖아? 누구 짓이지?’

뭣도 모르는 하수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지금처럼 실력이 퇴화한 것 같았다.

“그만.”

금태평이 동작을 멈추고 백서휘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꼭 칭찬을 바라는 눈빛 같았다.

“나머지는 안 봐도 되겠어.”

“그만큼 잘했나요?”

“아니, 안 봐준 사이에 이 정도로 네 실력이 떨어질 줄 몰랐다. 도대체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예?”

“혼자 수련한 거 맞아?”

“……상단 소속의 무사들한테 가르쳐달라고 했어요.”

백서휘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너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마보 시작.”

백서휘가 두 번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 성격을 이미 알고 있는 금태평은 고민하지 않고 공터에 들어서자마자 마보 자세를 취했다.

“앞으로 다른 수련하지 말고 마보만 해.”

“경이나 보법도 수련하지 말아요?”

“그래. 아, 마보 자세도 엉망이네. 다리 더 벌리고, 무릎 더 굽히고, 엉덩이 좀 더 낮춰. 손은 일직선으로 곧게 뻗고…….”

답답했던 백서휘는 손수 금태평의 자세를 조정해주었다.

“그러고 계속 있는 거야. 알았어?”

“네.”

금태평이 마보를 계속하는 와중에 금강무관에 다니는 아이들이 공터 앞을 지나갔다.

“뭐야, 저 병신은.”

“쟤 무관 다닌다고 하지 않았나?”

“그 무관 무너졌다나 봐. 그래서 다시 짓는데.”

“언젠간 그럴 줄 알았다니까.”

“쓰레기 같은 무관치고는 너무 오래 버텼어. 안 그래?”

“맞아, 금방 무너질 줄 알았는데 꽤 오래 가더라.”

아이들 사이에 있는 금태평을 괴롭히던 놈들이 험담하며 지나갔다.

‘저놈들을 진짜 죽여야 하나?’

자하무관은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산.

금태평을 욕하는 건 참아도 무관을 욕보이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심지어 욕을 한 놈들은 붉은색 무관복을 입고 있었다.

오자신을 바보 취급했던 금강무관의 무관복이 붉은색이었다.

‘은밀하게 불구를 만들거나…….’

백서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암중단체가 아닌 일반 무인들을 상대하니 너무 단순해졌어.’

원래의 자신이었다면 냉정하게 저들을 이용할 생각을 했을 거다.

그런데 근래에 무력으로 일을 처리한 게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주먹이나 칼부터 쓰게 됐다.

‘냉정하게 계산적으로…….’

어떻게 하면 금강무관의 관원들을 이용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 쓰던 가닥이 남아 있는지 머리를 조금 굴렸다고 금방 답이 나왔다.

‘개방이 난상토론 해서 내린 결론으로 그림을 그려보자.’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법.

판만 잘 짜면 금강무관을 발아래 두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한번 밑그림을 그려볼까.’

계획을 다 짜니 금태평이 엉엉 울고 있었다.

백서휘는 속내를 감추고 차가운 태도를 보였다.

“질질 짤 체력이 아직도 있어? 마보 제대로 안 했나 보네?”

“……제, 제대로 할게요.”

금태평은 눈물을 닦고 다시 마보 자세를 취하는 데 집중했다.

* * *

“내가 예전에 했던 말을 생각하면서 견제용 공격을 한 번 펼쳐봐.”

“네.”

금태평은 달걀을 감싼 것처럼 오른손을 쥐고 가볍게 내뻗었다.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다시 가르침을 받은 이래 처음으로 났다.

“견제용은 제법 괜찮아졌네. 이제는 경을 담아서 허공을 때려봐.”

금태평은 이번에 잘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생각했다.

부담감이 그의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자연스럽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전체적으로 몸이 굳었다.

백서휘는 이 사실을 다 꿰뚫어 보고 있음에도 금태평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부딪혀야 아는 것도 있어.’

금태평이 다리에서부터 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경이 어느새 허벅지를 타고 올라와 골반을 지나쳐서 허리에 이르렀다.

‘여기서 잘해야 제대로 된 가르침을 다시 받을 수 있어!’

부담감으로 딱딱하게 굳은 몸이 결국 사고를 쳤다.

금태평은 허리를 잘못된 강도와 각도로 비틀었다.

그 탓에 허리에서 제일 커졌어야 할 경이 등까지 왔는데도 골반을 지나칠 때와 위력이 비슷했다.

‘시, 실수했다.’

주먹으로 올 때까지 열심히 경을 키워봤지만 조금 커지다 말았다.

‘망했어!’

금태평이 절망 가득한 얼굴로 경이 담긴 주먹을 내뻗었다.

‘형편없는 정권 찌……. 하! 드디어 오는군.’

넓혀놓은 기감에서 아이들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지난 2주 동안의 놀림과 자신이 혼낸 것 때문에 금태평의 속에는 화가 쌓일 대로 쌓여 있었다.

백서휘는 멍석만 깔아주면 알아서 판이 만들어지리라고 생각했다.

‘슬쩍 빠져 줘야지.’

백서휘가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었다.

“잠깐 공사 현장에 갔다 올 테니까 마보 자세 취하고 있어.”

“네.”

“애들이 놀린다고 마보 자세 풀고 싸우고 그러면 혼날 줄 알아.”

“네.”

“진짜 싸우면 안 돼.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알았어?”

“네.”

백서휘가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고 사라졌다.

금태평은 침울한 얼굴로 마보 자세를 취했다.

그때 뒤쪽에서 남자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새끼 또 저러고 있네.”

“마보바보네.”

“크크큭! 어감이 웃기네.”

“어이! 마보바보!”

“어? 무시하는데?”

“감히 날 무시해?”

금태평을 괴롭혔던 아이 중 하나가 주먹보다 조금 작은 돌을 던졌다.

금태평은 돌을 맞아도 몸을 조금 움찔할 뿐이었다.

‘참아야 돼. 참자. 참…….’

그때 괴롭혔던 놈의 무관 친구가 금태평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쟤가 다니는 무관은 병신 같은 것만 가르치네. 관주가 병신이라서 그런가?”

“너 지금 뭐라고 그랬냐?”

금태평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마보를 풀었다.

“너네 관주 병신이라고 그랬다. 왜 꼬와? 꼬우면 나랑 한 판 뜨던가!”

“이 새끼가!”

눈이 뒤집힌 금태평이 빠르게 달려가 마구잡이로 주먹을 날렸다.

금강무관의 관원은 배웠던 대로 양팔을 교차시켜 방어했다.

금태평은 방어 자세를 취한 상대에게 주먹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퍼버버벅!

“으으윽!”

“도와야 하는 거 아니야?”

“저러다 지겠어!”

금강무관의 관원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기회다! 다리가 비었어!’

금태평은 다리를 축으로 삼은 후 허리로 경을 만들어 발차기를 날렸다.

“아악!”

하단 방어를 생각 못 했던 금강무관의 관원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안 되겠다! 이 새끼 조져!”

“죽어!”

다섯 명의 아이들이 금태평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금태평은 침착하게 급소를 방어하며 아이들을 견제했다.

한편 공사 현장에 간 척하며 몰래 금태평을 지켜보던 백서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지, 그렇게 주먹을 달걀 쥐듯이 가볍게 쥐고 때려야 돼.’

실전에 들어가니 금태평은 기특하게도 나쁜 버릇없이 잘 싸웠다.

‘이, 이런…….’

계획과는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금강무관의 아이들이 못 싸워도 너무 못 싸웠다.

‘저번에 태평이가 복수할 때보다 두 명이 늘었는데 형편없이 밀리잖아? 도대체 금강무관의 관주는 뭘 가르치는 거야. 이러면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잖아.’

백서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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