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52장 (153/199)

 # 152

152.

하북칠살은 하북에서 이름을 얻기 시작해 악명이 퍼져 나가게 되었는데, 같은 핏줄을 타고 나지는 않았지만 서로 한 핏줄보다 더한 열정을 지니자며 의기투합해 뭉쳐 다녔다.

그들 중 우두머리는 40대 후반의 강인한 인상을 지닌 부백경이었다. 그는 상당히 괴이쩍은 인물이었는데, 그의 별호가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것으로 그의 과거를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적반하장 부백경은 침묵을 깨고 참았던 분노를 뜨거운 심장으로 외쳤다.

“야이, 새끼들아∼ 거기 서지 못해∼ 야, 새끼들아∼!”

그는 너무 어이가 없어 화도 못 내고 있던 상황을 곱씹어보다가 그래도 못 참겠는지 이미 속절없이 떠나 버린 호위들이 사라진 곳을 향해 사방으로 침을 튀기며 외쳐댔다.

“이 나쁜 놈들아! 네놈들이 그러고도 남은 생을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으냐∼ 하늘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놈들아∼ 이 무심한 놈들……!”

솔직히 나쁜 것으로 치자면 어찌 도망간 서문세가의 호위들이 부백경과 비교될 수 있겠는가.

물론 호위들도 무책임한 행동을 보인 것이 사실이었지만 천벌 운운하며 저주를 퍼붓기엔 부백경의 그동안의 행적은 너무도 악랄해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과 같은 습격만 하더라도 서문세가의 안주인 주지청을 사로잡아 못된 짓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던가 말이다. 하지만 그는 역시 적반하장이라는 별호에 걸맞게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서문 가주가 네놈들에게 꼬박꼬박 밥을 먹여주었단 말이지∼ 불쌍하다, 불쌍해∼ 아주 배운 놈들 하고 많이 가진 놈들이 더하다니까. 에이, 퉤∼.”

부백경은 악을 버럭버럭 질러대자 어느 정도 차가 가라앉아 그제야 주위를 돌아볼 여력이 생겼다. 하지만 열 받는 일은 안타깝게도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부스럭부스럭.

흙더미가 쓸리는 소리에 하북칠살은 소리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마차를 몰던 늙은 마부가 하북칠살의 눈길을 피해 몰래 높은 언덕을 넘어가려다 발이 미끄러져 주르르 밀려났다가 다시 허둥대며 올라가고 다시 주르르 밀려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마부는 백발이 성성했으며 6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그는 뒤쪽에서 뭔지 모를 심상치 않은 시선이 닿는 것을 느껴 오르던 몸짓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하북칠살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 복면을 쓴 상태였지만 그들의 눈빛은 살 떨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순 마부는 몸을 돌리고 오른손으로 머리를 긁으며 멋쩍은 미소를 보냈다.

배시시∼

천고의 명언이 있잖은가, ‘웃는 낯에 침 뱉지 못 한다’고.

이길 만한 능력도 재주도 없는 마부가 지금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천고의 명언뿐이었다. 간신히 서문세가에 대한 실망을 삭이고 있던 부백경과 그 아우들은 기가 막혔다.

“허허… 거참…….”

“말세구먼, 말세여.”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

“서문세가의 앞날이 훤하군.”

“저것들을 믿고… 쯧쯧쯧.”

“역겹다, 역겨워.”

어떻게든 마차를 몰고 조금이라도 도망쳐야 할 마부의 사명은 잊은 채 오로지 한 몸 살아보겠다고 언덕을 넘으려는 모습은 구역질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중얼거림 중에도 늙은 마부는 연신 멋쩍은 웃음을 날리며 언덕을 기어오르려 안간힘을 썼다.

‘음마, 저거 보게… 계속 저러네.’

부백경이 기가 막혀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짧게 말했다.

“늙은이를 데려와라.”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두 사람이 신법을 펼쳐 마부 쪽으로 다가가 붙들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십시오∼. 저는 도망치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곧바로 마부는 양팔이 잡힌 채 숨이 넘어갈 듯 변명했다.

“전 그저 다리가 근질거려 언덕에 비벼보려고 했던 것뿐이라고요. 무릎 쪽이 가려울 때는 이렇게 올라가다가 주르르 미끄러지고, 또 올라가다 미끄러지면 아주 시원해지거든요. 진짜라니까요.”

역시 마부는 하북칠살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도무지 이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지어내다니…….’

세상천지에 널리고 널린 수많은 변명 중에서 마부가 생각해 낸 변명은 정말 너무나 유치했다.

하북칠살은 다시 한 번 불가의 해탈에 버금가는 무상함을 느끼며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이지 아까 멋쩍은 미소를 지을 때부터 알아 왔어야 했었다.

늙은 마부는 짐짝처럼 질질 끌려와 부백경 앞에 이르렀고, 잔뜩 간 덩어리가 움츠러든 표정으로 눈알을 두리번거렸다.

그의 눈빛에는 어떻게든 이 험난한 역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가슴 절절한 의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처절한 눈빛에 두목 부백경이 혀를 찼다.

“끌끌끌… 서문세가를 보잘것없이 생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호위들은 제 한 목숨 부지하겠노라고 힘 한번 쓰지 않고 줄행랑치고 마부라고 하는 놈도 호시탐탐 도망갈 생각만 하니 서문세가가 강호에 존재하는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부백경의 목소리에는 영웅호걸의 기운마저 펄펄 풍겨날 지경이었다.

뭔가 바뀌어도 상당히 바뀐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는데, 짐짓 혼자 비통에 젖어 외치는 듯 보였으나 실제 속뜻은 다른 곳에 있었다.

부백경이 실제 정의의 사도와 같이 외침은 마차 안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을 서문세가의 안주인이 들어주길 바라는 뜻이 강력히 숨겨져 있었다.

“그렇다. 역시 나의 생각은 옳았다. 이리도 썩어빠진 곳에 어찌 미녀를 머물게 할 수 있겠는가. 오직 영웅만이 미녀를 차지할 자격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백옥 빛 마차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세상 어느 누가 있어 그대를 맞이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제부터 그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영원히 지켜주겠노라.”

이 말인즉, 부백경이 수하이자 아우인 이들을 데리고 서문세가의 마차를 습격한 까닭이었다.

주지청의 미모는 아까도 언급되었던 바와 같이 아직도 10년 전과 그리 큰 차이가 없을 만큼 빼어났다.

하북칠살은 약 두 달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고 그들의 목표는 완전 범죄였다. 근자에 들어 사파의 세력이 약화되어 감에 따라 크게 활동을 하지 않던 부백경 일당이 세인들에게 잊힐까 두려워서인지, 결국 이렇게 나서게 된 것이다.

하북칠살은 주지청이 봉황사라는 사찰에 매달 한 차례씩 불공을 드리러 왕래한다는 것을 알아내고 돌아가는 길 중 가장 인적이 드문 곳을 파악해 오늘 드디어 행동을 보인 것이었다.

실제 마차를 호위하는 무사들 정도야 하북칠살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은 뻔했고 그들을 깨끗이 죽여야 했으나 뜻밖에도 호위 무사들이 자신들만 살겠다고 도망쳐 버리는 예상 밖의 일에 지금은 어느 정도 맥이 빠져 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상태로 도망간 녀석들은 차마 이런 사실조차도 말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고 쫓아가 죽일 가치조차 느끼지 않는 그들이었다.

심지어 하북칠살은 마차 안에서 떨고 있을 주 부인이 불쌍하게 여겨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서문세가인들이 내지르는 염장은 한도 없었고 끝도 없었다. 부백경이 마차 안에 있는 주 부인을 가리켜 ‘내가 그대를 아내로 맞아들이겠다’라고 말했을 때 부백경과 마차 사이에는 묘하게도 잡혀온 늙은 마부가 자리하고 있는 상태였다.

쿠궁!

‘날… 아내로 맞아들이겠다니… 이럴 수가……!’

마부는 그 말을 자신에게 하는 소리인 줄 알고 눈을 휘둥그레 뜨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내뱉었다.

“네에? 어, 어찌 이 늙은이를 아내로 들이신단 말입니까? 저는 남자입니다. 게다가 늙어서 힘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잠자리도 부실합니다요.”

늙은 마부는 곧 울어버리기라도 할 듯 심각하기만 했다.

그 말에 부백경과 여섯 명의 아우들은 ‘황당함의 호수’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수영도 어지간히 자신 있는데도 이 황당함의 호수에서는 몸이 잘 움직여지질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인간을 뽑는 경연 대회를 한다면 단연 발군의 실력으로 늙은 마부는 1위를 차지할 것이 당연해 보였다.

늙은 마부는 지금 죽을지 살지도 모른 채 전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내뱉고 있는 것이다.

부백경은 너무 어이가 없는지라 길고 긴 한숨과 함께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유난히 높고 맑았다.

‘이걸 여기서 그냥 죽여 말아……. 하늘이 참 파랗군.’

자신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줄도 모르고 마부는 여전히 자신을 미녀라고 칭하고, 또한 아내로 맞아들이겠다고 한 줄 아는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마, 만일 제가 그리 필요하시고 정녕… 대인께서 원하신다면… 이 가냘픈 한 몸 바쳐… 읍!”

늙은 마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인내심을 갖고 듣고 있던 부백경이 검지를 쭉 뻗어 마부의 입술을 막은 까닭이다. 늙은 마부의 얼굴에 부끄러움인지 송구스러움인지 옅으나마 홍조가 떠올랐다.

부백경은 이어 다른 쪽 손을 번쩍 들었다. 이제 가볍게 내려치기만 하면 일장에 마부의 머리통은 여름날의 수박처럼 깨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부백경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휴우∼ 그냥 가라 가, 미친놈아. 내 마음 변하기 전에 썩 꺼져라.”

부백경으로서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죽일 만한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살인을 하더라도 적절한 동기가 부여되어야 하는 법이다. 이렇게 죽였다가는 도리어 죽인 후에 허망함에 사로잡혀 한동안 밥맛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늙은 마부는 자신의 귀를 후벼 파며 혹시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물었다.

“네? 그냥 가라고구요? 정말입니까요? 네?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기쁠 수가……!”

마부의 물음은 계속됐다.

“괜찮겠습니까요? 제 한 몸 바칠… 캑!”

짝-

소리가 마부의 뺨에서 터져 나왔다. 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대들듯이 묻고 있는 마부를 보며 부백경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뺨을 한 대 갈겨 버린 것이다.

“제발 그만 하고 좀 가란 말이다∼!”

뺨을 얻어맞고 철퍼덕 소리와 함께 땅을 뒹군 늙은 마부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번개같이 일어나 일일이 하북칠살 모두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요, 감사합니다요. 복 받으실 겁니다요…….”

그러다 마부는 마차 옆으로 가더니 작은 소리로 안을 향해 중얼거렸다. 나름대로 마부 딴에는 소곤거린다고 하는 것이었지만 하북칠살 같은 고수들이 듣지 못할 리 만무했다.

“마님, 수고하십시오. 전 재수가 좋아서 이만 갑니다요.”

도대체 뭘 수고하라는 것인지, 뭐 잘한 것이 있다고 저러는지 하북칠살은 오히려 자신들의 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이제 뜻밖의 습격자들의 공격을 받고 외간 남자에게 능욕을 당하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건만 대체 뭘 수고하란 말인가!

하북칠살은 각기 마음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나려 했다. 그건 그들이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정의감 같은 분노였다.

자신들도 나름대로 악행을 저지르는 데 최선을 다했지만 서문세가의 인간들은 인간 같지도 않았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악당이고 포악한 무리들이라고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었다.

적어도 수하요, 가복이라고 한다면 이 정도는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차라리 저를 죽이시고 주인마님은 그냥 보내주십시오. 이 늙은이는 서문세가로부터 큰 은혜를 받고 이날까지 살아왔습니다.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으나 마님이 욕되게 된다면 어찌 살아 있은들 의미가 있겠습니까.

물론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부백경을 비롯한 하북칠살이 박수 갈채를 보내며 마부의 머리를 쓰다듬을 리는 만무하겠지만 상식 이하의 행동에 마음 한구석이 시려왔다.

‘정말이지 이 세상은 의리와 정이 사라지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구나. 최소한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큼은 온 힘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부백경은 적반하장이라는 별호답게 마음 깊이 분노하며 굳은 결의를 다졌다.

어느새 늙은 마부는 아까 오르려다 미끄러졌던 언덕 쪽으로 힘차게 달려가 혼신의 힘을 다해 기어오르려 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 올랐나 싶으면 마지막 순간에 꼭 힘이 다해 주르르 미끄러졌고, 몇 번을 그렇게 하다가 힘이 드는지 밑에서 숨을 헐떡거렸다. 그러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을 의식함인지 마부는 부백경과 그 일당에게 손을 한번 들어 반가운 표시를 하고서 다시금 언덕을 기어올랐다.

그 광경은 애써 마음을 추슬렀던 부백경의 심경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뒤쪽에 난 길로 그냥 도망치면 사실 편안히 도망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언덕을 넘으려 하는 것이 기가 막혔던 것이다.

심지어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마부는 두 번 정도 더 실패를 맛본 후에 비로소 뒤쪽으로 달아날 생각을 한 건지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는 뛰면서 혹시 뒤쫓아 올 것이 염려되었는지 연신 뒤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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