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151.
걸인각성(乞人覺醒) - 거지의 깨달음 7
천보갑의 비밀
2부 서문
끝없는 우주.
빛이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그 속도를 가리켜 빛의 빠름, ‘광속(光速)’이라 한다.
우주의 길이를 표현할 때는 그 광대함으로 인해 광년(光年)이라는 단위를 사용하는데, 즉 1광년이라 하면 빛의 속도로 1년 동안 나아간 거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빛의 속도로 1년 동안을 가다니…….
1년이라면 1초가 대체 얼마가 모여야 1년이 되는 것인가? 대략 따져 보더라도 <60초×1,440분×365일=31,536,000초> 이다.
삼천백오십만 초가 넘는 똑딱똑딱 초가 지나야 하는 것이다. 즉, 똑딱 하는 그 순간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그 수고로움을 삼천백오십만 번을 넘게 해야만 도달하는 거리가 바로 1광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의 지름은 자그마치 10만 광년이라 하니 그 아득함이 상상이 가질 않는다.
10만 광년은 단어로 쉽게 써놓고 보니 단지 ‘10만 광년’이라는 네 글자로 표현할 수 있을는지 몰라도 실제로 표현할 수 없는 단어라고 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싶다.
한 세기(100년)가 지났다고 2000년을 맞는 지구가 얼마나 광분했던가. 천 년의 세월을 지나∼ 라는 말을 들으며 그 천년의 까마득함에 아득히 공상하는 우리에게 빛의 속도로 10만 년을 간다는 것은 억겁을 표현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치만 그 어마어마한 은하계조차 전체 우주를 통해 바라보자면 마을 한 귀퉁이 정도, 혹은 지구상에 떠 있는 -하지만 세계 지도에서는 너무 작아 찾아볼 수도 없는- 조그마한 섬보다 더 작은 것에 불과하다. 아니, 마을이나 섬으로 비유한 것은 대우주 안에 포함된 은하계를 과대평가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티끌 하나, 날아오르는 먼지 한 톨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광대한 대우주!
그러니까 빛을 타고 머리카락이 휘날리게 10만 년을 가도 다시 거기에서 적어도 그 짓을 천억 번 정도를 계속 이어가야 우주 전체를 가로지를 수 있을 만큼 광대한 곳. 300억 광년의 우주 길이, 대우주 안에 포함된 은하계의 수가 천억 개, 생각을 하려 해도 생각조차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곳이 바로 우주인 셈이다.
그럼 왜 작가는 <걸인각성 2부>를 시작함에 있어서 이렇듯 우주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단지 우주의 경이로움에 대한 막연한 찬사를 늘어놓고 우주 탐험을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따위의 말을 하고자 함은 결코 아니다.
근본은 그 광대하여 끝을 알 수 없는 우주를 통해 전 우주를 통틀어 가장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려 함이다. 이것은 걸인각성과 너무나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실은 걸인각성의 주제와 가장 적절히 어울리는 것이기도 -물론 이 부분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본 작가에게만큼은- 하다.
우주를 한자로 찾아보았다.
<우주=집 우(宇) 집 주(宙)> 묘하게도 두 단어가 다 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다르게 표현해 보자면 가정, 가족 등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자로 보자면,
<우주(=COSMOS):우주, 천체, 혹은 질서있는 체계, 완전체계, 질서, 조화>라고 표현되어 있다. 언뜻 한자와 다른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이나 가정이나 가족의 단위가 세상과 나라를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체계의 시작인 점을 미루어볼 때 어느 정도 맥을 같이한다 볼 수 있으리라.
특히 우주를 한자로 표현할 때 집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은 -어떤 곳에서는 宇는 공간이며 宙는 시간을 의미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에 와서 그런 과거의 문서를 해석했을 뿐이며 그때에 과연 공간과 시간의 의미를 말했을지는 의문이다. 이 자리에서 나는 쓰이고 있는 그대로를 적용하기로 했다- 유심히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의학에서는 우리 인간의 몸을 우주로 이해하고 의학을 적용키도 하는 것을 바라볼 때 사람, 그리고 최소 구성원 단위인 가족이야말로 우주를 이해함에 있어 가장 확신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우주의 그 크고 넓은 이치를 알고 싶어하지만 그 실체를 멀리서 찾으려 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너무 가까운 곳, 즉 가정과 가족 속에 엄청난 진리를 두고 있는데도 워낙 근저에 자리하다 보니 오히려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뭐, 그런 생각. 마치 손바닥을 눈에 너무 가까이 대면 손금조차 볼 수 없게 되고 오히려 새까만 물체로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듯이 우주의 그 원대한 이치가 너무 가까이에 숨쉬고 있어 느끼거나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부족하나마 걸인각성 외전에서는 바로 이런 우주 전체의 이치를 통해 가장 소중한 것을 가족 속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제1장 세 개의 호리병, 그리고 구주신개
그 맛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바보가 돼버리거나 늙어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쯤이라면 잊을 수 있을까? 그러기 전에는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호리병에 든 술을 얻어 마시면 되는 거니까. 오직 그것만이 나의 입맛을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비결이라 했지 않던가. 젠장, 그런데 과연 그게 가능하겠냐는 말이다.
- 하북칠살 대형 부백경
***
감숙성 중부에 위치한 풍중산은 그 여느 때와 다름없이 푸르름을 자랑했고 그 위로는 한 덩어리 구름이 지나며 운치를 더해주었다.
거기에 더한 감흥을 부르려 함일까!
풍중산의 소하봉 중턱 길을 따라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백옥빛의 마차가 유유히 이동하는데 그 앞과 뒤로 다섯 명씩 두 무리로 무사들이 말을 타고 호위하고 있었다.
혹여 그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는 자가 있다면 그의 입에선 절로 ‘오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구나’라고 감탄사를 터뜨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차 행렬은 단지 풍취만 느끼게 하는 것만은 결코 아니었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호위 무사들의 눈빛은 번갯빛처럼 예리했고 몸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은 부드러웠지만 주변의 어떤 돌발 사태에서도 곧바로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은 고무공 같은 탄력을 감추고 있었다.
또한 풍겨나는 기상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예사로운 인물들이 아님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심지어 말을 끄는 늙은 마부의 몸에서조차 무언가 범상치 않은 기도가 엿보일 정도였으니 그것만으로도 마차 안의 인물이 얼마나 대단할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과연 이들은 누구이며 마차 안에는 누가 타고 있는 것인가?
호위와 마차가 산의 굽잇길을 돌 때였다. 마차가 틀어지며 방향을 바꿀 때 햇살이 마차 정면을 비추자 마차 앞에 금으로 조각해 높은 글자가 번쩍 하고 빛을 반사했다. 거기에 호위 무사들과 마부의 기상이 왜 그리 대단한지 그 해답이 적혀져 있었다.
서문세가.
무림칠대세가(武林七代世家) 중 한 곳이며 과거 삼백 년 전 일검탈혼(一劍奪魂)이라는 별호로 강호를 진동시킨 서문우의 가문이었다. 비록 작금에 이르러는 뛰어난 무인이 등장하질 않아 남궁세가나 제갈세가 등에 비해 그 명성이 초라한 건 사실이었지만 아직까지 그 자존심만큼은 대단할 터였다.
지금 호위들이 모시고 가고 있는 이는 서문세가의 안주인인 주지청이었다.
그녀는 과거 천하제일미로 칭송을 받았는데 지금 30대 중반의 나이였으나 아직도 그 미모의 빼어남은 보는 이들의 눈을 황홀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서문세가의 가주 서문황이 주지청을 아내로 맞아들이게 되었을 때 그는 천하의 모든 사내들의 연적이 되었으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주지청은 지금 봉황사라는 사찰에 들러 불공을 드린 후 세가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하늘은 그녀에게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주셨지만 그 외의 모든 것마저 외모처럼 완벽한 것만은 아니었다. 장미에도 가시가 있고 햇빛이 비추는 찬란함 뒷면엔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법이다.
혼인한 지 10년이 넘어선 지금까지 자녀를 낳지 못하고 있었다.
한 여인에서 아내가 되었을 때 가장 얻고 싶은 것은 자식이기에 그녀는 불공을 드리길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아름다울수록, 또한 그녀가 낳을 아이가 서문세가에 꼭 필요한 존재일수록 호위들의 무공은 강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지금 호위하는 이들은 서문세가에서 내로라하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차가 길을 돌면서 서문세가의 금장식이 빛을 뿌리고 호위무사들과 마부의 눈에 햇살이 정면으로 비춰졌다.
‘이럴 때 누군가가 기습해 온다면 매우 그럴싸하겠는걸. 나라면 분명 이런 곳에 매복했을 것이다.’
제일 앞쪽에서 진행하던 호위 무사들의 우두머리인 철엽(鐵葉)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른쪽은 바위들로 높게 돌벽을 이루고 있었고, 왼쪽으로는 수풀이 우거진 상태였다.
그늘에 있다가 귀퉁이를 돌면서 햇살을 정면으로 받게 되는 지점인 걸 감안할 때 수풀에 몸을 숨기고 기습을 한다면 이보다 더 기습하기에 좋은 장소는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방향이 전환되어 앞쪽의 기습에 뒤쪽의 호위들과의 협공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형상인지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철엽은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어느덧 매우 그럴싸하다는 느낌에 막 입을 열어 부하들에게 경고를 보내려 했다.
“조… 헉……!”
조심하라는 말의 첫 마디만을 뱉어낸 후 철엽은 호흡을 삼켜야만 했다. 왼쪽 우거진 수풀에서 7, 8개의 검은 그림자가 솟구쳐 올랐기 때문이다.
슈슈슉-!
얼굴부터 발목까지 복면에 흑의로 두른 습격자들은 맹렬한 기세로 살기를 드러냈다.
서문세가의 호위 무사들은 철엽을 제외하고는 미처 짐작조차 못한 상황인지라 모두들 경악성을 토해냈고 놀란 말을 정지시키며 매서운 기세로 뻗어오는 검세를 피하느라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시쉭∼.
차창!
휘이이잉-
검기가 쏘아지고 검들이 부딪쳤고 놀란 말들이 앞발을 들며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 몰라 하며 일대 혼란이 일었다.
크헝…….
제일 앞쪽에 철엽이 타고 있던 백마의 목이 기습자 중 한 명의 검에 의해 날아갔다. 목이 날아간 백마는 미처 울부짖음도 다 끝내지 못했고 쑤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피분수를 뿜어냈다.
그 주위에 있던 다른 말들은 혼란 중에 있다가 피가 튀는 모습에 더욱 놀라 미친 듯이 날뛰었다.
철엽은 말안장을 발판 삼아 위로 도약해 자신에게까지 번져오는 검세를 피하고 땅으로 착지했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을 분석할 만한 여유는 없었다. 그러기엔 현실로 다가오는 검은 너무도 빨랐다.
-누구냐?
-무슨 일 때문에 우릴 공격하는 것이냐?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어.
등등의 말 따위는 단 한 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눈이라도 한 번 깜빡인다면 목이 날아갈 것이라 생각하는지 그저 눈을 크게 뜨고 대적할 뿐이었다.
차창! 창창-!
검과 검이 부딪치며 검세가 사방을 회오리쳤다. 마차 뒤쪽에 있던 네 명의 호위들도 어느새 합류했지만 우두머리인 철엽은 이미 흑의인들의 실력이 월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제 결단을 해야 했다.
‘정말 이 방법은 사용하지 않으려 했건만 정녕 이렇게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으음… 어쩔 수 없구나. 이 방법밖엔…….”
철엽은 검으로 복면인들의 공격을 간신히 막으면서 비장한 각오를 되새겼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머뭇거린다면 부하들은 모두 심장에 구멍이 뚫리거나 말머리가 날아간 것처럼 부하들의 목이 날아갈 것은 분명해 보였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오직 최후의 비책만이 있을 뿐.
철엽은 거칠게 검을 휘둘러 상대를 약간 떨어뜨려 놓은 후 한소리 기합성을 터뜨렸다.
“이입∼ 진천∼!”
그와 동시에 그의 왼손은 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그리고 어느 샌가 손엔 둥그런 붉은 구슬 같은 것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여지없이 구슬을 복면인들 사이로 던졌다.
흑의복면인들 중 누군가의 입에서 경악에 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피해라! 진천뢰다!”
그 말은 엄청난 효력을 발휘했다. 진천뢰는 애들이 구슬치기할 때 사용하거나 노리개로 사용할 만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붉은 구슬처럼 생긴 최대의 살상 무기로 외부로부터 충격을 받으면 폭발하게 되는데, 거의 방원 5장(17미터) 정도까지는 폐허를 만들어 버릴 만큼 위력적인 대량살상무기인 것이다.
실제 흑의복면인들 중에 어느 누구도 진천뢰를 본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강호인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 형상과 위력은 낱낱이 들어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 사부나 그들 전대 고수들의 입에서 전해 내려온 것이었다.
그때마다 사부와 전대고수들은 심각한 눈빛과 진지한 어조로, 혹은 공포를 애써 감추려고 했던 것도 그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기인 화전자 설총은 기이한 인물이었지, 암……그를 끝으로 진천뢰를 제조하는 법을 아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안타까운 면도 있지만 강호를 위해선 잘된 일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실전되었다고 안심할 순 없다. 언제나 붉은 구슬을 꺼내는 자가 있다면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알겠느냐?”
이렇게 들어왔던 진천뢰! 바로 그 진천뢰가 눈앞에 나타났으니 뛰어난 무공 실력을 갖춘 흑의복면인들이라도 달리 침착해야 한다든지 깊이 생각해서 피한다든지 하는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 이상으로 신법을 발휘해 분분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물론 서문세가의 호위들도 몸을 뺀 것은 당연지사였다.
잠시 후……
콰광-!
놀랍게도 지축을 흔드는 굉음, 폭발로 인해 불어 닥치는 거센 바람… 따윈 어디에도,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고∼ 요한 침묵만이 주변을 맴돌 뿐이었다.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폭발을 기대했던 흑의 목면인들은 기다리고 기다려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정적만이 감돌자 의아함에 가득 찼다. 하지만 아직 확인하기엔 두려움이 앞섰다.
‘불발인가?’
‘불발일 때가 더 무서운 법이지.’
‘이거 너무 늦게 터지는 거 아냐?’
궁금함이 두려움을 끝내 이겨내자 그들은 머리를 빠끔히 내밀고 살피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중앙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진천뢰라고 착각했던 노리개 붉은 구슬이 화사한 미소를(?) 짓고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와 함께 그들은 멀리 뽀얀 먼지를 일으키는 광경이 언뜻 시선에 잡히는 것을 느끼고 그쪽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서문세가라고 거창하게 금장으로 새겨진 백옥 빛 마차를- 훌훌 팽개치고 멀리 신바람을 내며 줄행랑을 치는 열 명의 호위들의 뒷모습이 아스라이 보였다.
다다다닥…….
어찌나 열과 성의를 다해 지극정성으로 도망치는지 일곱 명의 복면 습격자들은 이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입조차 벌리지 못하고 게슴츠레하게 가만히 그쪽만 바라보았다.
이젠 어느새 그들의 모습은 점으로 보였다가 아예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들이 일으킨 먼지조차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때서야 흑의 복면인들은 대충 상황을 파악했고 지금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마차를 한번 쳐다보다가 호위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또다시 진천뢰라고 속았던 붉은 노리개 구슬을 바라보았다.
장시간의 침묵 속에 그들 각자는 ‘호위’의 사전적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호위란 무엇인가?
따라다니며 곁에서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자들.
죽기를 각오하고 자신이 모시는 이를 위해 한 몸 아까워하지 않아야 할 자들.
이것이 강호상의 일반적인 ‘호위’의 뜻이다.
일곱 습격자들은 하나같이 분노에 사로잡혀 치를 떨었다.
비록 호위들이 도망가지 않았다면 당연히 자신들이 목숨을 앗았을 테지만 지금 현재 드러난 상황을 대하고 있자니 사돈 남 말 하듯 괜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장난감 같은 붉은 구슬(아까는 위급한 상황인지라 위협적으로 느꼈으나 지금은 애교스럽게 햇살에 반짝되는 것이 영락없이 장난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검이 곧 나라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호위 무사들이 던지고 간 주변에 흐트러진 검들. 그리고 맥없이 호위를 잃고 정지해 버린 백옥 빛 마차…….
휘이잉∼
흑의 복면인들에게로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옷자락을 휘감아 돌았다.
원래대로 하자면 기습을 성공적으로 마쳐 기쁨에 들뜨고 마차 안의 미녀를 얻을 생각에 침을 흘려야 하겠지만 왠지 모를 허탈감에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한동안 그렇게 서로 아무 말도 못하고 호위들이 사라져 간 곳만을 바라보며 깊은 회한에 잠겼다.
불가의 제자들이 수없는 나날 불경을 외우고 공을 쌓아 느낄 법한 인생무상의 이치가 가슴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시간은 매우 짧았지만 느낌상 세상이 멈춰 버린 듯, 혹은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만 같았다.
휘이잉∼
‘정말… 너무도… 열심히 도망가 버렸구나.’
어이없기도 했고…
‘뭐, 저런 것들이 다 있냐.’
한숨이 새어 나왔으며…
‘서문 가주와 마차 안에 있을 주 부인이 불쌍하구나.’
연민마저 피어났고…
‘너희가 진정… 호위냐? 죽을힘을 다해 맞서 싸워 그 한 몸 희생해야 하는 놈들이……!’
분노마저 느껴졌다.
끝내 서문세가의 호위들이 사라져 간곳에는 먼지마저 없어졌고 그 여운마저 잦아들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습격자들은 어느 정도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럼 과연 이들은 무엇인가?
이들은 사실상 원래 ‘복면을 한 일곱 흑의인들’이라는 말보다 더 어울리는 별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북칠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