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53장 (154/199)

 # 153

153.

“헉헉!”

앞을 보고 뛰어도 시원찮을 판에 뒤를 연신 돌아보다 보니 제대로 달릴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마부는 튀어나온 돌부리를 보지 못하고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쿵!

소리만 들어도 어지간히 충격이 있을 법했다.

하북칠살은 저것이 언제까지 지랄을 할 것인지 신기한 듯, 혹은 미치겠다는 듯 바라보았다.

한동안 죽은 듯 움직이지 않던 마부는 어깨를 꿈틀대더니 꾸역꾸역 일어섰다. 마부는 다시금 돌아보며 씩 웃으며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손을 흔들고는 황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찌나 위태롭게 달리는지 하북칠살 모두의 마음속에 ‘제발 넘어지지나 말아라’라는 응원을 불러일으킬 지경이었다.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부백경은 마부의 모습이 끝내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으아악! 으악∼ 아아악∼!”

잠시 동안 방방 뛰며, 발로 땅을 거세게 짓밟으며 울부짖었다. 온몸이 근질거려 미칠 것만 같았다.

한참이나 뛰며 발악하던 부백경은 문득 마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여인에게 생각이 미쳤다. 그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중얼거리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그녀가 다 보고 있지 않은가, 체통을 지켜야 한다. 암, 그렇고말고. 본연의 임무다, 본연의 임무. 본연의 임무를 잊어선 안 된다.

저놈들은 모두 본연의 의무를 잃었다. 난 절대 잊어선 안 된다. 나는 조금도 마음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본연의 임무!!’

주문은 효과가 있는 듯했다. 부백경은 자세를 바로잡고 숨을 몰아쉰 후 허망해진 마음을 떨쳐 버리고 본래의 취지를 북돋았다.

“크하하하하… 본연의 임무다∼.”

그는 웃음소리와 함께 우울한 심정을 날려 버리고 본연의 임무를 떠올렸다.

본연의 임무, 그것은 바로 서문세가의 안주인 주지청을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이는 일이었다. 별호인 적반하장이라는 말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그는 잽싸게 기분을 전환시켰다.

굳이 답답한 서문세가의 호위들과 마부의 일을 가지고 한숨짓고 있을 순 없었다.

“자, 모두 복면을 벗도록 해라.”

만에 하나 신분이 노출될 것에 염려해 복면을 쓴 것이었으나 이제 아무도 방해하는 자가 없었다.

아름다운 여인 앞에서 거부감과 두려움을 안겨줄 복면을 보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부백경과 여섯 아우들이 일제히 복면을 벗었다. 얼굴들이 세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복면은 역시 혐오스럽지.’

부백경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드러난 얼굴들은 부백경의 걱정이 하나마나 한 짓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험악함이란…….

안타깝게도 차라리 영원토록 복면을 쓰고 있는 것이 더 멋지고 사내답게 보일 터였다. 그중 특히 부백경의 용모는 압권이었다.

그의 얼굴엔 불쑥 튀어나온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는데, 어지간히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는 곳들은 다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눈과 관자놀이, 그리고 광대뼈, 입술, 심지어 이마와 뒤통수까지 튀어나온 상태였다.

아마도 황제가 부백경을 보았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그대는 강호의 안녕과 중원의 번영을 위해 죽는 그날까지 복면을 하도록 하라. 내 특별히 그댈 위해 눈 주위에 황금 테두리가 되어 있는 복면을 선물하겠다. 참으로 다시 봐도 그대의 얼굴은 살아 있는 재앙이로고…….

“으하하하……!”

부백경은 활기 찬 웃음을 토하고 두 손을 깍지 끼어 앞으로 두 번 밀고 위로 쭉 밀어 올려 몸을 풀어 활기 찬 동작을 선보인 후 음흉한 눈빛으로 마차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백옥빛 마차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투시안으로 변해 있었다.

버언쩍.

투명 창이 열리면서 너풀거리는 선녀의 옷을 입고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흔히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기분인가 보구나.’

그는 심호흡을 하며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시인이 된다고 했던가. 부백경은 헛기침을 한 후 곧바로 시를 지어 읊기 시작했다.

수줍은 듯 웅크리고 앉은 그대의 모습은 선녀와 같구려.

그 어느 누가 있어 당신에 비하겠으며

세상의 어떤 빛이 있어 그대의 눈빛과 견줄 수 있겠소.

하늘거리는 옷자락은

나의 몸을 감싸고

나와 그대를 하나 되게 하니,

이렇게 영원히 그대와 함께하고 싶구려.

저 하늘을 보오.

오늘 우리의 만남을 환영하듯

맑고 화창하지 않소이까?

좋구려.

우리 이제 영원히

함께하여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그렇게 살아갑시다.

영원히 말이외다.

이제껏 시(詩)라고는 단 한 번도 읊어본 적이 없는 부백경으로서 이 정도 읊은 것만으로도 사실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제히 하북칠살 아우들의 박수가 터졌다.

짝짝짝짝짝…….

“대단하십니다, 형님!”

“이러다 앞으로 시인으로 전향하시는 거 아닙니까? 감동 먹었습니다요.”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두보와 이태백이 울고 가겠습니다요.”

“형수님도 안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계실 겁니다.”

어느덧 마차 안의 주 부인은 부백경의 아내로 정식 등록된 듯 형수로 불려져 버렸다.

“우후∼ 우후후∼.”

찬사 일색에 부백경은 가슴이 뿌듯해지며 손을 들어 답례했다. 그는 다시금 환상 투시안으로 마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물론 그의 머리가 조작해 낸 얼토당토않은 영상이었지만 아름다운 시(?)에 감동했는지 부인의 얼굴은 거의 맛이 간 듯했다.

‘이토록 멋진 말을 생각해 내다니, 나란 놈은 너무 멋지지 않은가.’

스스로도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며 마냥 군침이 돌았다.

그때 일곱째 보만응이 헤헤거리며 말했다.

“형님! 벌써부터 입 가장자리로 침이 흐르고 있습니다요. 장난 아닌데요? 헤헤.”

부백경이 흠칫하며 웃음을 멈추었다. 살기가 온몸에 짜르르 번졌다.

찌릿. 찌지짓.

보만응의 말은 너무 정확하게 표현되고 말아 부백경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이럴 경우엔 사실 너무 정확하게 표현하게 되면 기분을 깰 확률이 높은 것이다. 특히 연장자에게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저 새낄 그냥 콱∼.’

하지만 부백경은 간신히 참으며 살기를 거두었다.

“만응! 넌 저쪽에 찌그러져 있어라.”

그의 행동 성향상 다른 때 같았으면 여지없이 날라차기 정도로 면상을 갈겨 버렸겠지만, 오늘 보아온 일들이 계속 찜찜했던지라 또 잡칠 우려가 있기에 간단히 주의만 주었다.

이제 대망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 아니던가 말이다. 작은 일에 마음 쓸 때가 아니었다.

그는 가만히 마차로 접근했다.

적과 대치하며 생사가 오가는 순간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용기를 지닌 부백경이었지만 지금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과연 얼마나 아름다울까, 벌써부터 온몸에 흥분이 이는구나.’

그는 오른 소매로 질질거리는 침을 닦고서 마차의 문 앞에 이르러 손잡이를 잡았다.

코로 이제까지 맡아보지 못했던 기묘한 향기가 밀려들었다.

어찌 보면 퀴퀴한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신비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향기였다.

‘향기도 죽이는구나.’

역시 천하제일미로 추앙받던 여인은 뭔가 달라도 달랐다.

“자, 이제 내가 그대의 보호자가 되어주겠다.”

부백경이 ‘∼되어주겠다’라는 말의 다 자와 함께 마차의 문을 잡아당겼다. 그는 그런 짧은 순간에도 보호자라는 말을 매우 잘 선택한 것이라 확신했다. 그녀를 첫 대면함에 있어서 이보다 더 믿음을 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이미 서문세가의 내로라하는 호위들은 줄행랑을 쳤고 마부도 온갖 지랄(?)을 떨다가 도망가 버렸다. 그는 서문세가의 가주라 해도 크게 두렵지 않았으며 그녀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다.

벌컥-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는 것은 아주 찰나였지만 그 시간은 부백경에게 있어 달팽이가 높은 산을 넘는 것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살짝 치켜뜬 눈은 두려움과 모종의 기대가 뒤섞여 있을 것이며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겠지. 내 따뜻하게 안아주겠소. 자, 아무런 염려…….”

부백경의 생각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 아니, 결코 이어질 수가 없었다. 현실이 그것을 용납지 않은 것이다.

“으게게- 커허헉!”

그는 감탄사 대신 괴이한 경악성과 신음을 뱉어내고 주춤거리며 서너 걸음 물러섰다.

그는 의혹으로 가득 찬 눈을 하면서 자꾸만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부정하려 했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었다.

부백경의 반응에 하북칠살의 아우들은 혹시나 암기나 단도에 기습을 당한 것은 아닌가 싶어 일제히 부백경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일순 마차 안을 바라보았고 그들 또한 부백경이 그러했던 것처럼 마치 암기라도 맞은 듯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형님! 무슨 일이십… 허걱……!”

“괜찮으십니… 까악∼.”

“무슨 일이기에… 허거거걱!”

“이건 대체 뭐냐… 마술이냐?”

그들의 반응은 말 그대로 경악이었다. 그건 바로 마차 안에 있어야 할 주지청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웬 떨거지 하나가 앉은 채로 씩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거지는 한쪽 눈마저 찡끗거리는 것이 가히 엽기 그 자체였다. 마차에 다가갔을 때 풍긴 퀴퀴한 냄새는 바로 거지의 몸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마차 안의 원래 향긋한 내음과 거지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기묘하게 결합해 그런 냄새가 풍겨난 것이 분명했다.

“아하하… 오호호호호… 자기야∼ 많이 기다렸었어?”

그 추접스러움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대사가 아닐 수 없었다. 더욱 부백경의 창자를 긁어놓은 것은 ‘자기야∼ 많이 기다렸었어?’라는 말을 여성스럽게 꾸미지도 않은 채로 거지가 말했다는 점이었다.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남자 목소리 그대로 말했는데 꿈에서조차 듣기 싫은 소리라 할만 했다. 그 목소리에 담긴 뜻은 마치 부백경이 아름다운 여인을 기다리며 마음 졸였던 것이 아니라 거지같은 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부글부글…….

부백경의 분노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지경으로 끓어올랐다. 이제까지 화가 머리끝까지 차고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왔던 그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젠 그 누구도 어떤 상황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분노가 치밀었다.

“으아악∼!”

광분하며 절규하는 가운데 부백경 주위는 일순간 피바다로 일렁였다. 그 피바다 위에는 유유히 마차 한 대가 배라도 된 듯이 유유히 떠 있었고 그 맞은편에 바다 위를 둥실 뜬 채로 부백경이 자리했다. 오직 부백경의 마음엔 마차 안에 있는 거지를 피바다에 빠뜨려 죽이고야 말겠다는 생각만이 가득 차올랐다.

그는 이 순간 이성을 상실한 한 마리 짐승이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