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52.
제2장 소문에 소문이
허운 지력에서 가장 이름 높은 의국(지금의 병원)인 온초방에 오랜만에 시끌벅적한 환자의 고함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의국의 이름이 온초방인 것은 이곳을 운영하는 의원의 이름이 온초(瑥礎)였기 때문이다.
의원 온초는 60세가 넘은 나이로 뛰어난 의술을 지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후덕한 성품과 인자한 마음을 지녀 허운 지역뿐만 아니라 여러 주변 지역에까지도 널리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환자를 대함에 있어서 아주 각별한 마음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의원들 중엔 조금은 거만하게 환자를 대하며 그 상처와 질병에만 손을 쓰는 이가 있기도 하지만 온초는 환자의 마음에 남은 아픔도 어루만져 주는 진정한 의원의 길을 걷고 있었다.
“구지경외자…… 으윽… 안 돼! 따라오지 마! 따라오지 말란 말이야! 왜 날 죽이려고 하는 거냐……!”
온초방을 뒤흔드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동굴에서 처절한 나날들을 보낸 이진구였다. 그는 온초방의 병실 한쪽에 누워 연신 식은땀을 흘리며 헛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는데 눈이 까뒤집히고 흰자위만 드러낸 것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어느덧 동굴에서 곤욕스러운 생활과 사람들 앞에 감추고 싶은 치부를 드러내 버리고 혼절한 뒤 온초방으로 옮겨온 지 7일이 지났다. 하지만 그가 받은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아직까지 혼미한 상태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헉헉… 난 먹지 않을래… 먹지 않을 거야… 난 절대 먹을 수 없어…….”
그로선 영양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몸도 몸이지만 실질적으로 정신적 상처가 너무도 컸다. 그동안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먹은 쥐와 박쥐들, 그리고 수많은 때와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들을 먹었기에 몸은 동굴을 떠났지만 마음만큼은 아직 다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흐흐흐… 이제 조금밖에 남지 않았는 걸……. 어이구, 아까워∼ 흐흐흐…….”
뭐가 그리 아까운지 웃음기를 띠며 재잘거리다가 갑자기 비명을 질러댔다.
“으아악! 이럴 순 없어!!”
이렇듯 이진구는 꿈속에서 동굴에서의 고통을 재현하며 수없이 나락에서 떨어지고 또 솟아올랐다가 또 떨어지길 반복했다.
“으윽…….”
이번엔 때독과 똥독에 절여진 위(胃)가 뒤틀려 오는지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냈다. 침상 앞에서 지켜보던 의원 온초는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했다.
‘소문대로 큰 충격을 받은 게 분명하구나. 그런데 왜 자꾸 구지경외자에 대해 헛소리를 지르는 것일까?’
의원 온초가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볼 때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대여섯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본 온초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들 오십시오.”
그들은 개방 분타주 묵백과 지타주 오선교, 그리고 세 명의 당주들이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차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묵백의 질문에 온초가 정중히 답변했다.
“침(針)으로 몸을 다스려 이틀 전보다는 좀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깨어나진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대충 이삼 일 내로 어떤 변화가 있을 듯합니다.”
“다행입니다. 온 의원님의 수고가 크십니다.”
온초가 손을 내저었다.
“의원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수고라니요. 그건 의원에 대한 모독입니다.”
“하하하, 그렇게 되나요.”
정겨운 대화가 오고 갈 때 이진구의 헛소리가 병실을 울렸다.
“구지경외자… 너, 넌 정체가 뭐냐. 왜 날 죽이려고 하느냐? 날 가만 내버려 둬. 으윽… 살려줘∼.”
이진구는 꿈속에서 몽둥이를 쥔 표영에게 쫓기고 있는 중이었다.
“너, 너 같은 고수가 왜 개방에 들어온 것이냐? 아악∼ 그건 먹을 수 없어. 제발… 제발…….”
안타까운 소리를 지르는 이진구는 쫓기다가 끝내 잡혀 박쥐의 몸통을 억지로 입 안에 들인 상태였다. 묵백을 비롯한 개방인들은 이진구를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이거 생각보다 심각한걸.’
‘하긴 백결서생이라던 사람이 그런 꼬락서니를 만천하에 드러냈으니 그럴 법도 하지. 쯧쯧쯧.’
‘근데 왜 자꾸 구지경외자를 부르는 걸까?’
‘자신의 모습이 구지경외자와 비슷해져서 저러는 걸까.’
묵백은 이진구를 바라보며 양미간을 찡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에 싫어하는 구석이 많았지만 초라한 몰골을 보노라니 연민의 정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진구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온 의원과 몇 마디를 나눈 후에 병실을 나섰다.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염려 마십시오. 필생의 힘을 다해 치료에 노력하겠습니다. 정신을 차리게 되면 아랫사람을 통해 연락을 드리도록 하지요.”
묵백 등이 떠나고 나서도 이진구의 헛소리는 계속되었다.
이진구의 비참한 동굴 생활에 대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다. 허운 지역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으로까지 소식은 빠르게 전해졌다. 급기야 강호 무림 사정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까지도 이 일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얘깃거리가 되었다.
사실 이처럼 소문이 급속히 전해지게 된 데는 동굴 참상을 바라본 이들 중에 개방인들 외에 다른 무림인들이 많았던 까닭이었다.
그날 동굴 앞에선 무림인들은 혹시나 비급과 산삼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긴장을 하고 살펴보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정작 드러난 현실은 지독한 허무함과 함께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기억되고 말았다.
그런 기막힌 이야기를 어찌 다른 이에게 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마 성인군자라도 몰래 말을 하지 않기란 힘들 것이리라.
“난 처음에 웬 쓰레기 더미가 놓여 있나 했지 뭔가. 근데 놀랍게도 쓰레기 더미가 스스로 일어나더란 말일세. 클클클… 그게 알고 봤더니 그 쓰레기 더미가 이진구였어. 급기야 그 쓰레기가 비명을 지르더구먼. 클클클.”
“동굴에 간 것을 난 후회하진 않네. 비록 비급이나 산삼을 얻진 못했지만 돈 주고도 구경하지 못할 것을 봤으니 말이야.”
“생명이란 참으로 위대한 것임을 느꼈지.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긴다는 무림인이라도 동굴에 갇히면 그렇게라도 살아보려고 하지 않겠나 싶었어. 하지만 그는 차라리 발견되지 않고 죽는 게 나을 번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들더군. 이제 무슨 낯짝으로 강호를 활보할 수 있겠냔 말이네.”
“혹시 아나. 나중에라도 인피면구를 쓰고 강호를 다닐지. 그땐 무면인(無面人)으로 나타날 걸세. 하하하.”
“그것도 일리가 있군.”
이처럼 많은 이들은 이진구를 통해 통쾌함 같은 것을 느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원래 간악한 구석이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 이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진리임이 분명하다. 남이 잘되는 것은 입을 꾹 다물고 심지어 잊으려 하지만 남의 불행이나 단점, 혹은 허물 같은 것은 겉으로 드러내진 않아도 뿌듯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오죽했으면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나왔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진구의 처참한 몰골은 듣는 이들 모두에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런 동굴 참변에 대한 이야기가 이진구가 아닌 보통 사람에게 일어난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혹시라도 생명의 소중함과 감동적인 이야기로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허나 이진구는 평소 자신의 무공과 개방의 힘을 믿고서 사람들을 무시했었고 은근히 원수를 많이 남긴 터라 동정이나 감동 따위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이들은 노골적으로 미친놈이라고 껄껄대며 즐거워했다. 심지어 같은 소속인 개방인들조차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걱정하는 듯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은근히 잘됐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인해 이진구에겐 새로운 별호가 붙게 되었으니 그건 이름하여 ‘걸인지존’. 이제 백결서생이 걸인의 지존으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걸인지존 이진구에 대한 이야기는 주루의 술좌석이나 길거리에서 단연 최고의 주제였고 각집에도 심심할 때 애용되는 훌륭한 웃음의 재료가 되었다.
“쥐를 생짜로 뜯어 먹고 버텼다지 아마. 대단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이 사람아, 막상 그런 상황에 닥치면 뭘 못하겠나. 다 살자고 하는 짓이니 뭐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지.”
“흥,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동안 백결서생이라며 얼마나 고고한 척했었나. 그러나 이제 그 본색이 드러난 것이 아니냐고. 그러게 사람이란 평소에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하는 거야.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업신여긴 대가를 받은 게지.”
“그나저나 쥐뿐만이 아니라던걸. 듣기론 자기 신발까지 뜯어 먹었다면서? 그때 본 사람들이 신발밑창만 남은 것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고 하더군. 앞으론 우리도 신은 역시 좀 값나가는 것으로 신고 다녀야 할 모양이야.”
“하하하, 그렇군. 하지만 그러기 전에 평소에 이빨을 좀 더 튼튼하게 할 필요가 있을걸.”
“하하하… 하하하…….”
“신발까지는 뭐 누구나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 근데 입 주위에 묻은 정체불명의 것들은 정말 못 봐주겠더군.”
“하하하, 하하하. 나도 그걸 꼭 봤어야 하는데 정말 아쉬워. 아쉽단 말이야.”
한편 이진구의 비참한 동굴 사건을 판매 전략으로 이용한 곳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만두를 전문으로 파는 천월 만두점(天月饅頭店)과 가죽신을 주로 판매하는 우마(牛馬) 신발점이었다.
천월 만두점에서는 가게 앞쪽에 특별 전시용으로 때만두를 만들어두어 진열해 놓았는데 예상외로 대단한 반응이 일며 평상시 매출의 네 배를 거두어들이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만두집을 찾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감탄하며 그 이야기를 주제로 껄껄댔다.
“희한하단 말이야. 대체 누가 때만두를 넣어주었을까? 동굴 안에서 직접 만들어 먹을 수는 없지 않았겠나.”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야. 누군지는 몰라도 대단한 작품 아닌가. 어느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말일세.”
“내 생각엔 아마 목욕탕을 운영하는 사람 중 한 명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닐까 싶네. 남아도는 게 때니까 말일세.”
“그렇다면 이번 일을 통해 때를 잘 밀고 다니라는 경고란 말인가? 아하하.”
물론 만두 가게에서 만두를 먹는 사람들이 이렇듯 조롱만 일삼는 것은 아니었다. 40세의 중년 가장(家長)인 유번은 때만두를 전시하는 천월 만두점 주인에게 큰 소리로 따지기도 했다.
“먹는 음식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장난을 쳐도 되는 것이오? 동굴 안에서 힘들게 목숨을 지키려 한 점을 장삿속으로 이용하다니… 정말 돼먹지 못한 사람이군.”
천월 만두점 주인 도인경은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장난이나 장삿속이 아니라 그저 세상엔 참 별의별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의도였을 뿐이랍니다.”
“흥! 끝까지 변명을 늘어놓겠다는 것이군. 한 사람의 고통이 어찌 사업 수단으로 둔갑할 수 있단 말이오.”
유번은 길길이 날뛴 후 분노한 기색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집으로 향하는 그의 표정은 아까 천월 만두점에서 보였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뭔가 기대와 흥분에 가득한 모습이 역력해 보인 것이다. 그는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바로 목욕하기 시작했다. 그는 때를 정성껏 밀었고 혹시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봐 그 때들을 곱게 잘 모아두었다.
‘바로 이것이로군.’
그는 목욕을 마치고 때를 두툼하게 모아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훗, 사실 나도 해보고 싶었다고. 낄낄낄… 이거 정말 의외로 재밌는걸.’
유번은 낄낄대며 때만두를 만들었고 급기야 온 가족을 불러 모아 만두를 빚기에 이르렀다.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저녁시간이었다. 이런 유번의 행태는 특별난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 반발하던 이들 중엔 대다수가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드러내 놓고 웃진 못했지만 정작 자기 집에서는 호박씨를 까며 기뻐한 것이다.
가죽 신발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우마 신발점에도 사람들은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우마 신발점 주인은 엄청난 성원에 기쁜 나머지 가족 숫자대로 구입한 사람들에게는 할인을 해주는 등 대단한 열의를 가지고 판매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껏 이 장사만 20년을 넘게 했지만 요즘처럼 손님을 많이 받아보기는 그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인 여묵은 번창하는 사업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내 반드시 이 고마움을 갚아야겠다.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가. 만약에 그가 때만두만 먹고 가죽 신발을 뜯어 먹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어? 휴∼ 만약 그랬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구나.’
주인 여묵이 이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한쪽에선 가죽 신발을 구입한 이들끼리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다.
“내가 집에 가서 실험을 해봤지 뭔가.”
“오, 그래? 무슨 실험인데?”
“가죽신을 물에 펄펄 끓인 후 개에게 먹여봤다네. 과연 소화를 잘 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였지.”
“허허… 거참. 자네도 할 일 되게 없었군. 근데 결과는 어떻던가.”
“이 친구, 자네도 궁금하면서 뭘 그러나. 험험… 글쎄, 그게 말이야. 증세가 심각해지더군.”
“어느 정돈데 그래?”
“한 삼 일 정도는 설사를 쭉쭉 하지 뭔가. 난 소리가 하도 요란해서 밖에 비가 오는 줄 착각할 정도였다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집 복실이가 좀 토실토실하잖은가. 근데 삼 일 사이에 살이 쪽 빠졌다네. 내년 여름 복날에 먹으려고 했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하하하, 그럼 걸인지존 이진구는 동굴에서 욕깨나 봤겠는걸. 개가 그 정도이니 사람이야 오죽했겠는가.”
“하하, 정말 그렇군. 쫙쫙쫙∼ 하하하…….”
그 외에도 때만두를 개에게 먹여본 사람, 박쥐 장난감을 구입하겠다는 사람, 이진구가 갇힌 동굴에 견학을 가는 사람 등등 별의별 일들이 이진구로 인해 유행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