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3장 (44/199)

 # 43

43.

“아, 아닙니다.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는 겁니까? 절대로! 절대로 부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넘쳐 나서 다른 곳으로 몇 명을 보내야 할 판입니다.”

“음, 그래?”

오선교가 추혼에게서 눈을 떼고 다른 당주들을 쭈욱 바라보자 모두는 변명하기에 바빴다.

“칠 당은 충분합니다. 지타주님.”

“저희도 그렇습니다.”

“저희도…….”

그들 모두는 하나같이 구지경외자와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같이 있게 되면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오 당에 인원이 모자란 것 같군. 추혼 당주, 앞으로 표영을 잘 관리해 주도록. 혹시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때그때 나에게 보고하도록 하라.”

“네?! 그, 그건 말도…….”

추혼이 변명의 말을 끄집어냈지만 오선교의 고함으로 인해 이어지지 못했다.

“두 번 다시 이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면 하극상(下剋上)으로 간주하도록 할 테니 알아서 하도록.”

그렇게 단단히 못을 박은 후 오선교는 표영을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추 당주는 좋은 사람이니 앞으로 부족한 것을 배워가며 잘 적응해 가도록 하거라.”

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모실 상관에게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당주님의 밥은 확실히 얻어오도록 할 테니 밥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고, 고, 고맙네…….”

오 당주 추혼은 땀만 삐질삐질 흘렸다.

***

당주들이 모두 돌아간 늦은 밤. 오선교의 거처에 이진구가 찾아왔다. 그는 오선교를 대면하기 무섭게 다짜고짜 쏴붙였다.

“오늘 이야기를 다 들었소이다. 도대체 분타주님과 당신은 머리에 뭐가 들어 있는 것이오?”

이제 30대 초반의 나이인 이진구의 행동과 말은 상당 부분 싸가지가 결여되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 당주로 있을 때만 해도 존대를 했건만 이제 갓 지타주로 임명되었다고 해서 맞먹고 있는 것이다. 같은 직급을 가졌다고 해도 선임자에 대한 예우를 갖추어야 하는 것은 기본 도리다. 게다가 나이 차가 10년이 날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진구는 그저 같은 직급을 가진 동료로만 여길 뿐이었다. 오선교는 인사말도 없이 시비조로 뱉어내는 말에 울화가 치밀었다.

“이런 시건방진 녀석 같으니… 어디서 감히 큰소리냐? 나이도 어린 놈이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내 말에 무슨 잘못된 것이라도 있단 말이오? 이 일이 큰소리칠 일이 아니라면 큰소리칠 일이 무엇이 있겠소. 그리고 이 일에 왜 나이를 들먹이는 것이오.”

마치 두 마리의 호랑이가 마주 보며 으르렁거리듯 둘은 핏대를 세웠다.

“개방의 집법장로가 네놈의 숙부인 점을 믿고서 겁을 잃어버렸구나.”

“할 말이 없으니 말을 돌리려 하지 마시오. 당신과 나, 같은 지타주로서 내가 못할 말이 무엇이 있단 말이오.”

이진구는 째진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살기 어린 말투로 말을 이었다.

“이 일은 납득할 수 없소. 우리 개방은 거지들을 받아들이는 곳이 아니란 말이외다. 강호의 인재를 받아들이고 나날이 발전해 가는 다른 구대문파, 오대세가와의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한낱 거지로서의 삶으로는 안 된다고 방주님께서도 누차 말씀하신 것을 잊어버린 게요? 방의 목표는 최고의 방파가 됨이건만 방의 길과 반대되는 행동을 함은 도대체 무슨 의미요. 당신들은 역모라도 꾸미겠다는 것이오? 과거 오의파의 길을 주장하던 이들은 모두 개방을 떠났건만 어쩌하여 다시 추접스러운 구지경외자를 받아들여 물을 흐려놓으려 하느냐는 것이오. 내 결코 이 일을 그냥 보아 넘기진 않겠소이다!”

“뱀대가리 같이 생긴 놈아. 입이 있다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냐! 누구를 모함하려 드느냐. 역모라니!”

“뱀대가리고? 이 눈깔 병신이 못하는 말이 없구나!”

이진구가 눈깔 병신이라고 한 것은 두 눈 밑에 자리한 검붉은 반점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오선교가 말한 뱀대가리라는 말은 이진구의 얼굴 형태와 눈이 꼭 뱀을 연상시키는 형상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용모를 헐뜯는 가운데 분위기는 살벌한 지경에 이르렀다. 당장에라도 주먹이 교차할 것 같은 상황에서 이진구가 흥! 소리를 내며 돌아섰다.

“이 일은 내 결코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아시오. 조만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최후엔 총타에 보고할 것이오. 그때 가서 후회해 봐야 때가 늦은 것임을 잊지 마시오!”

오선교는 분노에 쌓여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당장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놈 같으니…….’

이진구가 비웃음을 남기며 떠나자 오선교는 주먹으로 탁자를 깨부숴 버렸다.

허운 지역의 개방 제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구지경외자가 방의 형제로 들어온 것은 불가사의함으로 다가왔다. 그들에게 있어서 구지경외자는 그저 ‘웃기는 놈’, ‘약간 맛이 간 놈’, ‘세상에서 제일 추접한 놈’, ‘아주 재밌는 놈’, ‘좀 특이한 놈’으로 통용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이 괴이한 구지경외자가 동료가 된 것이니 모두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들 모두는 그동안 구지경외자를 바라보며 얼마나 우스갯소리를 해댔는지 모른다.

‘우린 늘 구지경외자에게 감사해야만 하네.’

‘왜지?’

‘저 녀석은 우리에게 사람이 저리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잖는가.’

‘하하, 그렇군. 거지도 거지 나름이지. 저게 사람의 모양이랄 수 있겠나.’

‘만약에 구지경외자가 우리 개방에 들어왔다면 그날 부로 우린 오의파가 돼버리고 말 걸세.’

‘예끼, 이 친구야.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게나. 부정 타네, 부정 타.’

‘하하하…….’

이러한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되어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개방 제자들은 서넛만 모이노라면 구지경외자에 대한 이야기로 길게 탄식했다.

“개방이 불쌍한 거지들을 돌보는 곳도 아닌데 이거 너무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네.”

“그러게 말이야. 세상 사람들이 우릴 보고 뭐라고 할지 벌써부터 걱정되는군.”

“분타주님의 추천이라 어쩔 수 없지만 왠지 입맛이 쓰네그려.”

“제일 먼저 목욕부터 하라고 해야겠어.”

“이 사람들아, 자꾸 그런 소리 하지들 말게나. 분타주님께서 각별히 아끼신다는 소문이 있어. 분타주님께서 지타주님께 특별히 말씀하시길,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놔두라고 하셨다더군.”

“그나마 우린 오 당이 아니니 다행이야. 오 당은 거의 초상집 분위기더구먼.”

“말도 말게. 추 당주는 앓아누웠다고 하지 않던가.”

“말세야, 말세.”

대부분의 개방인들의 이런 의식 구조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의파로 살아온 때문이었다. 이미 거기에 길들여진 상태라 거지 집단이라는 인식보다는 무림방파로서의 의식이 더욱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분타주의 추천으로 들어왔다는 구지경외자 표영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고울 수가 없었다.

제12장 양아치 소탕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 뒷짐을 진 채 백의를 입은 한 사람과 그 뒤쪽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놈을 없애 주어야겠다.”

뒷짐 진 백의인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매우 음침하여 뱀이 풀숲에서 쉭쉭거리는 소리 같았다.

“누구입니까?”

뒤쪽에 두 사람은 약간은 의외라는 듯 물었다.

“구지경외자.”

“음, 그는 개방의 제자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런데도 저희들이 손을 대도 되겠습니까?”

“상관없다. 뒷일은 내가 책임지겠다.”

“어느 정도까지 진행해야 합니까?”

“운신치 못할 만큼 착실히 병신으로 만들어놓아라. 혹시 그 와중에 죽어버린다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묻어버리도록.”

“알겠습니다. 그러나 뒤에 일이 생기면 저희들을 살펴주셔야 합니다.”

그 말에 음침한 목소리의 백의인이 돌아서며 날카로운 눈빛을 빛냈다. 차가운 눈빛은 두 사람을 질리게 만들었고 자라의 목처럼 움츠러들었다. 그들은 이 사람이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는 고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손 한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날아갈 것이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후사는 두둑이 할 것이니 기대해도 좋다.”

“삼 일 이내에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좋다.”

그때 구름에 가려진 달이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 인해 세 사람의 모습이 노출되었다. 째진 눈에 뱀 형상의 머리를 지닌 백의인. 그는 바로 이진구였다.

이진구가 떠난 뒤 명령을 받은 둘은 그 자리에 머물러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다. 이들은 허운 지역의 폭력배 두목으로 이름은 양조포와 일각두였다. 허운 지역에는 두 개의 큰 조직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조직이란 무림에 뛰어든 문파나 방파를 일컬음이 아니라 뒷골목 불량배 집단을 일컫는 것으로 서쪽은 각두파가 동쪽은 조포파가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각두파는 두목의 이름이 일각두였기에 그 이름을 딴 것이었고 조포파는 양조포라는 두목의 이름을 따서 조포파라 부르게 된 것이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실로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주로 서당이나 서원에서 글을 배우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호주머니를 털거나 가끔씩 도둑질로 근근이 연명하며 지내곤 했던 것이다. 큰 기루나 주점의 이권에 개입하는 것이 더 짭짤한 수입을 보장해 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허나 그런 곳은 무림인들이 암암리에 장악하고 있는 터라 곁눈질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그럼, 이런 양아치들이 무림인들 사이에서 어찌 생명력을 가지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무림인으로서는 뒷골목 패거리들에게 손을 쓴다는 것 자체가 체면을 구기는 일이라 여긴 데다 더 큰 이익을 쫓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 여력이 없는 까닭이었다.

“이봐, 양조포. 자네 생각은 어떤가?”

질문을 던진 이는 각두파의 두목 일각두였다. 그는 오른 뺨에 길게 칼에 찢긴 자국을 가지고 있었는데 인상을 쓰자 더욱 흉악스럽게 보였다. 그 말에 조포파의 두목 양조포도 이맛살을 찌푸렸다.

“글쎄 말이네. 개방에서는 구지경외자를 제자로 받아들이고서 왜 그를 죽이려고 하는지 모르겠군.”

이들이 원래부터 이렇게 서로 머리를 맞댈 만큼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둘의 친목은 이진구가 암암리에 하찮은 일을 시키면서 비롯되었다. 그런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서로를 아껴가며 열심히 처리해 가는 그들이었다. 질문을 던졌던 일각두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혹시 이건 함정이 아닐까? 이번 기회에 우리 건달들을 쓸어버리려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네.”

그 말에 양조포는 흠칫했지만 살며시 고개를 내저었다.

“음… 그건 그렇지 않을 걸세. 굳이 이런 방법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를 제압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테니까 말이야. 게다가 개방은 우리 같은 무리들은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잖은가. 아마 구지경외자가 개인적으로 죄를 지은 것이겠지. 그러니까 우리 손을 빌려서 처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나. 나중에 탈이 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테니 말일세.”

“그렇군. 만일 그런 상황이라면 이번 일은 의외로 쉽게 매듭지어지겠는걸. 구지경외자야 개만 잘 잡을 뿐이지 무공을 익힌 게 아니잖은가. 하지만 이 일은 마음에 썩 내키진 않아. 구지경외자는 아주 재밌는 녀석이었는데 말일세.”

일각두의 연민 어린 말에 양조포는 냉막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런 연민에 젖어서야 되겠나. 마음을 모질게 먹어야 하네. 대충 병신만 만들어놨다가는 나중에 우리에게 불리해질 수도 있어. 그러니 손을 쓸 때 확실히 숨통을 끊어놓아야 할 거야. 그런 다음 야산에다 적당히 묻어버린다면 실종 사건으로 생각하거나 구지경외자가 개방이 싫어서 도망간 것으로 생각하지 않겠나.”

“음… 좋네. 우리 애들을 내일 모두 소집하도록 하겠네.”

“나도 그렇게 함세.”

둘은 그렇게 다짐하고 각자의 거처로 향했다.

각두파의 조직원 둘은 으슥한 길목에서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은 표영의 거처로부터 지척에 위치한 곳이었다.

달은 비록 반달이었지만 구름 한 점 없다 보니 조직원 송비와 두철심은 나무 그늘에 몸을 묻은 채 은신했다.

“그럴싸한 먹이가 안 나타나는걸.”

“그러게 말이야. 이러다 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네.”

“좀 더 기다려 보세. 지나가는 놈들이 아예 없진 않을 것이네.”

이제나저제나 초조하게 기다리던 둘의 시야에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서생이 잡혔다. 둘은 속으로 뛸 듯이 기뻐하며 냉큼 모습을 드러냈다.

“어이, 친구.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나?”

“클클클… 집에 가는 길인가?”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건들거리는 말투를 건네는 두 사람을 보며 서생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쳤다.

‘뭐, 뭐지… 이런, 잘못 걸렸구나.’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험상궂은 얼굴은 결코 쉽게 놓아줄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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