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44.
“네? 네. 전 집에 가는 길인데… 무슨 일이시죠?”
어느새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어머니께서 늘 큰길로 다니라고 하셨는데… 조금 일찍 가려고 골목으로 들어와서 이런 봉변을 당하는구나.’
그는 오늘 친구네 집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을 읽다 이제야 돌아가는 중이었다. 두려움에 떨며 전전긍긍하는 서생에게 송비가 주먹을 어루만지며 이죽거렸다.
“우리가 너를 부른 것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을 체험케 하고자 함이야.”
“암, 그렇고말고.”
두철심이 옆에서 박자를 맞춰주었다.
“주, 중요한 것이라뇨?”
“이런이런, 쯧쯧. 배웠다는 녀석이 그것도 모르고 있다니…….”
송비가 연신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흐흐흐, 그건 바로 말이야. 상.부.상.조.(相扶相助)야. 알겠어? 상부상조.”
“아, 네… 사, 상부상조… 아, 아주 좋은 말이죠. 그럼요.”
서생은 비로소 말뜻을 간파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소매 속에서 돈을 꺼냈다.
“저 이것밖에 없거든요. 죄송해요.”
송비는 새가 먹이를 채듯 돈을 낚아챈 후 손 위에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껄껄거렸다.
“음, 그래도 아주 예의가 바른 서생이로군. 그렇지 않은가, 철심이?”
“후후, 그러게 말일세. 미련한 줄 알았더니 그래도 머리가 크게 나쁜 편은 아니군.”
“음… 그런데 말이야, 상부상조를 하기엔 양이 너무 적군. 이 정도로는 길을 지날 수가 없지 않겠어? 이거 어떻게 한담.”
서생은 실제로 더 이상 가진 게 없었다.
“그것뿐입니다. 제가 두 분을 속여 조금 드린 것이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암, 믿고말고. 나도 상부상조를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정도는 척 보면 알 수 있지. 허나 내 말의 요지는 좌우당간 돈이 모자라다는 것이야.”
“그, 그럼 어떻게…….”
“방법이 없진 않아. 그것도 아주 쉽지. 대개 이럴 땐 우리 세계에서는 나머지 몫만큼 몸으로 때우는 게 보통이지. 클클클.”
뚜드득- 뚜드득-
송비와 두철심은 협박용으로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서생은 주먹을 바라보고 그만 하얗게 질려 버렸다. 주먹이 어쩌나 큰지 맞는 날엔 뼈조차 남아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몰랐다. 아마 잘못이 있다면 힘이 없는 것이 잘못이리라. 약자가 강자 앞에 서면 어떤 논리조차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힘이란 잘못 사용되면 이렇듯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태연히 연출하기도 하는 것이다.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서생을 보며 둘은 킬킬댔다.
“킥킥킥, 이거 마음 약해지게 왜 이러나. 이런 것도 다 커 나가는 데 필요한 교훈이려니 생각하고 몇 대 맞으면 되는 거야. 염려할 것까진 없다구.”
뚜드득- 뚜득-
송비와 두철심은 준비 운동 겸 손을 풀었다.
“이런 말도 있잖아. 쇠도 불에 달구어졌다가 망치로 맞은 뒤에 더욱 견고해지듯이 사람의 몸이나 뼈도 한번씩 부러지고 멍들고 어긋났다가 다시 회복되었을 때 더욱 튼튼해진다. 후후후, 근데 이 말을 누가했는지는 생각이 안 나는군. 유명한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말야. 클클.”
서생은 잠시 후 뼈가 부러질 생각에 형용 못할 공포에 휩싸여 그저 맥없이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그때였다.
“야, 야. 거기 두 놈! 애 데리고 뭐 하는 거야?”
송비와 두철심은 소리 난 쪽을 바라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훗, 구지경외자로군.’
혹시나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고심했는데 제때 등장해 준 것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너는 구지경외자가 아니냐. 거지새끼가 왜 남의 사업을 참견하느냐? 네놈이 개방에 들었다고 이제 무서운 것이 없어졌나 보구나.”
표영은 건들건들거리며 다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짜식들, 내가 아까부터 듣고 있었다만 계속 듣고 있자니 참을 수가 없더구나. 다 큰 놈들이 어린애를 데리고 뭐 하는 짓이냐? 이런 개만도 못한 놈들 같으니.”
송비와 두철심은 구지경외자가 이렇게 세게 나올 줄은 몰랐던지라 어이없어 말문이 막혔다.
“허허허…….”
“허, 나참.”
표영은 두 건달이야 어떻든 간에 고개를 돌려 서생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뒷일은 내가 감당할 테니 어서 집으로 가보시구려. 늦으면 부모님이 걱정하실 테니까 말이오.”
서생은 뜻하지 않은 구세주의 출연에 어리둥절했다. 비록 거지였지만 말하는 폼이 꽤 힘을 쓰는 것 같았다.
“저, 정말 가도 되나요?”
“그럼, 어서 가도록 하세요.”
젊은 서생은 두 건달의 눈치를 살폈다. 얼이 나간 듯 입을 벌리고 있는지라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후닥닥 일어나 부리나케 뛰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원래 멈춰서는 안 되지만 들리는 목소리가 어쩌나 간곡하게 마음을 파고들던지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불렀던 이는 표영이었다.
“네?!”
뒤돌아보는 서생을 향해 표영이 한쪽 눈을 찡긋 하고서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하세요.”
“네? 네…….”
서생은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간신히 대답하고는 다시 부리나케 집으로 뛰었다.
송비와 두철심은 서생이 도망갈 때 표영을 앞뒤에서 포위했다.
“거지 놈이 간덩이가 부었구나. 클클.”
“오늘 또 송장 치르게 생겼군.”
위협적인 말에 표영은 아까와는 달리 허리를 굽신거렸다.
“아고아고, 건달님들은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셔야 합니다요. 제가 잠깐 정신이 나갔던 것 같습니다요. 전 그냥 단지 폼 한번 잡아보고 싶어서… 헤에∼”
표영은 이제 막 개방에 들었기에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이런 양아치들도 언젠가는 손을 봐줘야 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흥, 이제 와서 빌어본들 봐줄 성싶으냐? 어림없는 수작 부리지 말아라.”
“네놈 정도는 쥐도 새도 모르게 묻어버리면 그만인 게야. 클클.”
표영은 더욱 굽신거리며 온갖 아양을 다 떨며 말했다. 도무지 지금 차림새가 아양하고는 맞지 않았지만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럼요, 그럼요. 제가 잘못했으니 두 분의 마음을 마땅히 풀어드려야 합죠. 아까 저 서생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돈 대신 몸으로 때우라고 하신 것 같은데 저도 몸으로 때우겠습니다요. 음, 한 백 대 정도만 맞으면 되겠습니까요?”
그 말에 송비와 두철심은 일이 착착 풀려 나가는 것이 여간 기분 좋은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들이 목표한 바는 표영이었다. 두목인 일각두와 양조포가 세운 구체적인 계획은 이러했다.
1. 구지경외자의 집 근처에서 잠복한다.
2. 아무나 어수룩한 이가 지나면 삥을 뜯는다.
3. 그 소란스러움에 구지경외자가 끼어들면 그것을 빌미로 시비를 건다.
4. 싸우다가 지는 척하며 두목과 조직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구지경외자를 유인한다.
5. 거기서 확실히 매장한다.
사실 조잡한 계획이고 조금 어지러운 계획이었지만 각두파와 조포파가 나름대로 머리를 쓴다고 써서 만든 것이었다. 이들에게는 최선책이었던 것이다. 이미 세 번째까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네 번째를 단계로 넘어가려 했기에 송비와 두철심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후후, 이 정도면 굳이 두목님과 전 대원들이 모일 필요조차도 없었잖은가. 이런 허접한 놈을 없애는데 너무 걱정이 지나쳤던 거야. 혹시나 싸움 실력이 뛰어날 줄로 생각한 것은 오산도 큰 오산이었군.’
“흐흐흐, 알아서 기니 편하긴 하구나. 좋다, 이곳은 사람들이 그래도 왕래가 있는 편이니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하자.”
송비의 말에 표영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맞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요. 어디서 맞으나 마찬가지니 그냥 여기서 맞도록 하겠습니다요.”
표영은 말을 끝내고 걸음을 옮겨 근처에 있는 나무에 매미처럼 꼭 달라붙었다. 그건 마치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접착제로 붙여놓은 것처럼 전혀 빈틈이 보이지 않는 자세였다.
“자, 패세요.”
송비와 두철심은 어이가 없었다.
‘살다살다 이런 미친놈은 처음 보는군.’
‘이거 완전히 똘아이 아냐.’
둘은 일단 이렇게 되었으니 우선 매질을 가해 기절시킨 다음에 계획된 곳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주먹과 발길질을 인정사정없이 가했다.
“이 새끼, 죽어라∼”
“건방진 녀석 같으니라구!”
퍼퍽. 퍼퍼퍽.
연속 공격이 가해지며 무자비한 폭력이 표영의 몸으로 향했다. 허나 표영에게 있어서 이 정도의 공격은 마치 솜방망이로 두들기는 수준에 불과했다. 만약 호신강기를 조절하지 않았다면 때리는 두 놈의 몸이 벌써 날아갔을 터였다. 하지만 온갖 아픈 척을 다 하며 끙끙거렸다.
“으윽… 어억… 커억…….”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맞은 숫자를 세는 것도 잊지 않았다.
“25대, 으윽… 29대, 으아악… 40대, 사람 살려… 58대… 어거걱…….”
거의 80대 가까이 후려 팼지만 여전히 나무에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송비와 두철심은 울화가 치밀었다.
“이 자식아, 떨어져… 떨어지란 말야!”
“뭘 잘못 먹었냐, 이놈아! 어서 떨어지지 못해!”
퍼퍽. 퍼퍽. 퍽퍽퍽.
“82대, 으윽… 87대… 엄마야… 93대, 흑흑… 99대… 으악… 100대.”
드디어 100대가 채워졌다. 그렇게 맞고도 전혀 나무에서 떼어내지 못한 송비와 두철심은 은근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의외로 끈질긴 놈인 것이다. 조급해진 둘은 주변에서 몽둥이를 쥐어 들고 달려들었다.
“100대 다 맞았습니다요. 이제 다 끝난… 아악!”
표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젠 몽둥이질이 가해졌다.
퍼퍼퍼퍼퍽- 퍼퍽- 퍽퍽-
“이제… 으아악… 그만… 윽! 때리세요……. 130대… 커어억! 138대… 으윽…….”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이 울부짖음 속에서도 숫자를 세는 구지경외자가 이젠 치가 떨렸다.
‘이 새낀 정말 지독한 놈이로구나.’
송비는 한쪽에서 물러나 두철심이 몽둥이질을 하고 있는 걸 보며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몽둥이로는 안 되겠어. 내 이 자식을…….’
그는 눈에 불을 켜고 짱돌을 찾았다. 근처에 한눈에 보기에도 단단하기 그지없는 짱돌이 보였다. 사람 머리통 두 개만 한 크기였는데 맞았다가는 최소한 사망일 것이 분명했다.
‘내 이놈을 살려서 데려가지 못하면 죽여서라도 데려가야겠다.’
송비는 ‘영차’ 소리를 내며 짱돌을 들어 올리고 표영에게 다가갔다. 몽둥이질에 여념이 없던 두철심도 그 광경에 질겁을 하고 물러섰다.
“이 새까∼ 죽어∼!”
짱돌은 여지없이 표영의 머리통을 찍었다. 송비는 ‘퍽!’ 하고 수박 깨지는 소리를 기대하며 느긋해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퍽’이 아닌 ‘콰광’이라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그와 함께 짱돌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뭐, 뭐야. 이건…….”
“이 새끼 완전히 돌대가리 아냐. 설마 철두공이라도 익혔단 말인가?!”
그건 표영의 호신강기가 머리를 보호하자 짱돌이 반탄력에 의해 깨져 버린 것이었다. 송비와 두철심은 짱돌을 맞고도 여전히 나무에 매달려 있는 표영에게 다가가 몸을 살폈다.
“이 새끼 살아 있잖아.”
“그럴 리가… 음… 거지새끼들은 명이 길기도 하군.”
“그러게, 기절한 것 같은데?”
“계획된 시간에서 거의 일 식경이나 지났어.”
“자자, 어서 떼어내서 데려가세.”
“그래.”
표영은 계속해서 비명 소리만 지른다고 일이 끝날 것 같지 않자 속 편하게 혼절한 시늉을 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둘은 조급한 마음을 달래며 표영을 뜯어내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노릇인지 전혀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화석처럼 굳어버린 듯 혹은 나무와 한 몸이 돼버린 것 같았다.
“으차차!”
“뭐, 뭐야.”
두 발을 나무에 대고 잡아 뜯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길 다시 일 식경(약 30분)이 지났다. 둘은 제풀에 지쳐 주저앉고야 말았다.
“이씨…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추접한 것뿐만 아니라 아주 악착 같은 놈일세. 기절을 해도 어째 이렇게 더럽냐는 거야.”
“이봐,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지 않나?”
“큰일이군. 이번 일은 개방의 이진구 님께서 각별히 두목님께 명하셨다고 했는데 말이야.”
혼절한 척하며 대화를 듣던 표영의 귀가 번쩍 뜨였다.
‘이진구라니… 이번에 새로 지타주로 발령났다는 사람 아닌가. 음, 대체 무슨 속셈일까. 그래, 내가 정의파의 길과 다르기 때문에 소리소문없이 죽여 버릴 심산인 게로구나. 후후, 그렇게는 안 되지. 감히 지타주 주제에 방주를 죽이려 들다니… 가소로운 놈.’
표영이 나름대로 일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때도 둘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음, 이진구 님은 한번 화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잖는가 말이네. 전에도 두목님이 일을 조금 늦게 처리하는 바람에 왼팔을 부러뜨려 버리지 않았나.”
“하지만 어쩌겠나. 이놈은 완전히 찰거머리 아닌가. 그럼 일단 두목님께 상황 보고를 드린 후 지원을 받아서 다시 오던지 하세.”
“그러지.”
송비와 두철심은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한 것에 화가 치미는지 나무에 매달린 표영의 뒤통수를 연달아 갈긴 후 자리를 떴다. 표영은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짐을 확인한 후 비로소 나무에서 내려섰다.
‘음… 좋아, 이번 기회에 양아치들을 정화시키는 것이 낫겠어.’
생각을 정리한 표영은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하며 어디론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