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42.
제11장 개방에 들다
지타주 오선교의 거처로 하운 지역을 중심으로 한 당주급 인사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긴급 회의를 목적으로 지타주로부터 부름을 받은 터였다. 한 명 한 명 도착한 당주들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게 구지경외자가 먼저 와서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는 구지경외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친분 같은 것이 아니라 거지 노릇이나 하고 개들과 어울려 다니는 괴이한 놈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아직 지타주가 들어오지 않은 가운데 오 당주 추혼이 말을 걸었다.
“이봐. 구지경외자! 여긴 뭐 하러 온 것이냐? 이곳에까지 밥을 얻어먹으러 온 것은 아니겠지?”
꿔다놓은 보리 자루마냥 퀭하니 구석에서 딴청을 피우고 있던 표영이 머리를 긁어대며 답했다.
“저도 개방에서 활동을 해볼까 하는 마음에 오게 되었답니다.”
표영의 말에 먼저 당도한 세 명의 당주는 깔깔대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 젖혔다. 그들은 우스갯소리로만 여길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로도 생각지 않았다.
“썩 괜찮은 농담인걸. 이번 건 먹혔어. 하하하.”
“하긴 이놈이 이곳에 밥을 얻으러 온 것은 아닐 것이네. 듣자하니 주식(主食)으로 개밥을 먹고 부식(副食)으로 일반 가정에서 얻은 것을 먹는다고 하지 않던가 말일세.”
“클클, 미친놈 같으니라구.”
당주들은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까 염려했었다. 무슨 모임이나 회의든 그걸 기다리는 시간이란 여간 따분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시기도 적절하게 구지경외자가 있어 가지고 놀며 시간 때우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었다.
한참을 농담 따먹기를 하며 이야기를 나눌 때 계속해서 한 명 한 명 당주들이 도착했다. 뒤에 온 네 명의 당주들도 모두 한결같이 놀려먹기에 정신이 없었다. 유쾌한 웃음이 방 안 가득 울려 퍼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호응하듯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간들을 보냈다.
“하하하, 오늘 모임엔 이진구 당주도 올까?”
사 당주 정막경이 주제를 바꿔 이진구 당주에 대한 말을 꺼내자 칠 당주 고헌이 말을 받았다.
“예끼, 이 사람아. 당주가 뭔가. 이젠 지타주님이라고 불러야지.”
이진구라는 인물은 과거 표영도 본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때 개방의 사정이 어떠한지 살피고자 마을에 내려왔을 때 잔악하게 상대를 짓밟았던 이가 바로 이진구였다. 하지만 지금 표영으로서는 이름만으로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하, 그렇군. 내가 실수했네그려. 아마 이진구 지타주께서 오셔서 구지경외자를 보았다면 노발대발했을 텐데 그것을 보지 못해 아쉽네그려.”
“정말 자네 말이 그럴싸하군. 그래서 지타주를 칭하길 백결(白潔)서생이라고 부르지 않은가. 개방에서 백결서생이라는 별호를 가진 이가 나오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맞네, 맞어.”
“하하하… 하하하…….”
칠 당주 고헌의 말에 여러 당주들은 탁자를 두드리며 깔깔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진구 지타주의 깔끔함은 거의 병적이라고 할 만했기 때문이었다. 그 증세를 살펴보자면 하루에 세수는 10번 이상을 했으며 매일매일 옷을 갈아입는 데다가 조금이라도 이물질이 묻어 있으면 반드시 옷을 갈아입는 등 결벽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유난을 떨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진구였기에 이렇듯 가까이 구지경외자를 보게 되면 어떤 발작을 일으킬지 상상만으로도 이들 모두는 즐거웠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가 이진구를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깔끔함과 동시에 성격이 워낙 까 탈스러운 데다가 잔인함까지 갖추고 있어 한번 눈에서 벗어나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보복을 하는 성격이라 모두들 두려워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인맥이 총타의 팔장로 중 집법장로와 인척 관계에 있다 보니 당주로 있을 때부터 지타주조차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한편 한쪽에서 멍한 눈으로 딴 곳을 응시하던 표영은 속으로 기가 막혔다. 개방에서 백결서생이라는 별호가 나온 것을 자랑으로 여기다니… 그저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지금 표영은 개방에 입방하기 위해 여기에 있었지만 실제로는 개방의 방주가 아닌가. 수하들이라고 할 수 있는 당주들이 깔깔대고 있는 것이 속으론 못마땅했다.
‘저런 것들이 개방을 움직여 가고 있으니 꼴이 말이 아니로구나. 내 장차 모든 것을 뜯어고쳐 주마.’
당주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옆문이 삐그덕 하고 열리며 지타주 오선교(吳璿嶠)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마흔 살이 넘은 나이로 강호에서는 쌍목자(雙目者)로 불리웠다. 그 이유는 그의 외모의 특징 때문이었다. 눈 밑으로 두 개의 검붉은 점이 눈 크기로 넓게 퍼져 있어 멀리서라도 보노라면 눈이 네 개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특징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은 위압적으로 느끼며 자신들도 모르게 움츠러들게 되곤 했다. 하지만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오선교가 상당히 친절한 사람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선교는 제일 상석에 않아 눈썹을 꿈틀대며 모두를 한차례 둘러보더니 말했다.
“다 모인 건가?”
그는 차례로 살피다가 눈에 이채를 띠고 물었다.
“이진구는 오지 않았나?”
“오지 않았습니다만…….”
오 당주 추혼의 말에 오선교는 인상을 찌그러뜨렸다.
‘시건방진 녀석 같으니라구.’
이진구는 현재 본인이 담당하고 있던 당에 대한 인수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인수 인계 절차가 끝나는 대로 하북의 경헌 지역 지타주로 옮겨갈 예정이다.
오선교는 평소에 이진구를 눈엣가시처럼 싫어했는지라 하는 일마다 짜증스럽게 느꼈다. 지금 오지 않아 짜증을 냈지만 아마 이 자리에 참석했더라면 그것조차 결코 좋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오선교는 쩝쩝 하고 쓴 입을 다신 후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 이렇게 당주들을 보자고 한 것은 이번에 새로이 개방에 든 형제를 소개시켜 주기 위함이다.”
여러 당주들로서는 이례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껏 방에 새로운 형제를 받아들일 때 당주들이 모두 모여 회의 같은 것을 한 적이 없었던 까닭이다. 그들은 모두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오선교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어느 누구 하나 결코 그 형제가 표영을 가리키는 말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런 생각 자체를 철저히 배제했다. 기대에 찬 눈으로 지켜보는 당주들을 오선교는 쭈욱 훑어보았다.
“원래 이 일은 묵 분타주님께서 직접 말씀을 하시려고 했지만 총타에서 갑작스럽게 연락이 오는 바람에 급히 돌아가시어 내가 대신 그 뜻을 전달하게 되었다. 분타주께서 새로 거두어들이라고 한 형제는 여기 앉아 있는 구지경외자다.”
오선교가 표영을 가리키며 말하자 7명의 당주들은 각기 하던 동작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건 마치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것 같았다.
일순 처소에 적막이 감돌았다. 앞에 놓인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다가 멈춰 선 자, 뜨악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목젖을 벌렁거리는 이, 눈을 크게 치켜뜨고 실핏줄을 여실히 드러내는 자 등등… 모든 세계가 고정돼 버린 것만 같았다. 지타주 오선교는 그런 광경에 예상했었다는 듯 껄껄거렸다.
“하하하, 모두들 대대적으로 환영해 주는군. 자, 인사하게나.”
표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의 몰골과 수줍은 미소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은 것이었지만 표영은 태연자약하게 수줍음을 드러냈다.
“표영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지타주님을 비롯해 당주님들을 본받아 훌륭한 거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험험, 기념으로 저의 생활 신조를 말해 드리겠습니다. 그건… 좀 더 거지같이, 좀 더 추접하게, 좀 더 집요하게랍니다. 사실 거지의 총본부인 개방의 앞선 분들에 비한다면 턱없이 모자라는 구걸 실력입니다요.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선배님들과 같이 구걸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헤에∼”
거창한 소갯말에 오선교는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하지만 박수를 치는 이는 오직 그 혼자뿐이었다. 다른 당주들은 비로소 정지됨에서 풀려나 싸늘히 굳은 얼굴로 목소리를 높여 반발했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개방이 거지들의 소굴은 아니잖습니까?”
“강호인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 겁니다.”
“한 사람으로 인해 개방의 명성을 깨뜨리는 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오의파로서의 개방이 아니잖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화살이 빗발치듯 퍼부어지는 비난은 오선교가 두 눈에 불끈 힘을 주고 버럭 고함을 지른 후에야 진정되었다.
“조용히 못할까! 누구 앞에서 큰소리를 치는 것이냐!”
하지만 여전히 당주들의 얼굴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오선교의 말이 이어졌다.
“분타주께서 아무 생각도 없이 결정하셨을 것 같으냐! 내 여기 분타주께서 남기신 서신을 읽어줄 테니 모두 잘 새겨듣도록 하라.”
오선교는 소맷자락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펼치고선 읽어나갔다.
“지타주를 비롯하여 모든 당주들에게 알린다. 구지경외자를 형제로 받아들임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 서신을 남긴다. 현재 개방은 강호의 거대 문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미 10년 전부터 정의파의 길을 가며 구걸을 한다든지 일반 사람들을 돌아본다든지 하는 일은 접은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그저 개방이라는 이름은 말뿐, 실제로는 무림문파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본 타주는 허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구지경외자를 방의 형제로 받아들임은 지나간 과거에 대한 유물을 남겨두고자 함이다. 이로써 개방이 최초 거지 집단이었던 점을 상기시키고 기념한다는 의미를 갖고자 한다. 진짜 거지 같은 행동을 하는 형제가 한 명 정도는 상징적으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뜻에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즉, 개방 내의 문화재 같은 거라고 보면 될 것이다. 본 타주의 의도를 곡해하여 과거 오의파로의 회귀를 꾀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과장된 의문을 갖지 말라. 구지경외자 한 명으로 개방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개방이 보잘것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니 모두는 괴이한 시선으로 구지경외자를 바라보지 말고 방의 형제로서 진심으로 대하길 바란다. 그의 소속은 부족한 당에 넣도록 하라. 현재로썬 마땅한 조가 없으니 추걸조라는 명칭으로 활동케 하라. 혹여 이에 불만을 가진 이가 있다면 본 타주에게 직접 찾아와 이야기하도록 하라. 모두에게 삶의 축복이 함께하길 빈다.”
묵백의 서신에서 부족한 당에 표영을 넣으라고 했으니 여기서 잠깐 개방의 조직 구조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구성은 이러했다.
개방은 크게 총타와 분타, 그 밑으로 당(黨)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타는 각 성에 한 개씩 두었으며 분타 밑으로 지타를 두었는데 성의 크기에 따라서 7개에서 많게는 15개 정도로 이루어졌다. 거기에서 다시 지타 밑으로 10여 개의 당을 두었는데 각 당주 밑으로는 네 개의 조가 형성되어 있다. 조는 각자의 역할을 따라 나누어졌는데 세부적인 구성은 이러하다.
타구조(打狗組):무력 담당.
은영조(隱影組):정보 담당.
파발조(播發組):연락 담당.
재행조(財行組):행정 담당.
이러한 구성 중 개방 제자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은 단인 타구조(打狗組)였다. 타구조는 위에서 살펴보았듯 무력을 담당한다. 즉, 강호에 문제가 생겼거나 알력이 발생했을 때 해결사 같은 임무를 띠고 실력 행사를 하곤 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무공을 가장 빨리 전수받을 마음에 모두들 타구조에 들길 원했다. 하지만 타구조에는 엄격한 심사 아래 자질이 우수한 제자들만을 선별했기에 마음만 있다고 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에 뽑히게 된다면 고속 승진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타구조 다음으로 인기가 높은 곳은 은영조(隱影組)다. 이곳은 무림 정세를 파악하고 정보를 분석하는 일을 주로 했기에 제자 중 두뇌가 우수한 인재들이 속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파발조(播發組)는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고, 재행조(財行組)는 행정 부분과 재정 부분에 참여하며 모든 절차상의 문제나 재정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을 수행했다.
일단 누구든 개방 제자로 들어오게 되면 그의 근골과 자질을 살펴 그에 맞는 조에 편입시키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표영이 들어갈 만한 마땅한 곳이 없었기에 추걸조라는 것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서신의 내용을 들은 당주들은 아까와 같은 발작은 일으키지 않았지만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게다가 부족한 당에 충원한다는 말로 인해 혹시나 하는 불안감까지 생겨났다.
불안함에 떠는 당주들 중 오 당주 추혼을 바라보며 오선교가 조용히 말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전에 추혼, 자네가 인원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던 것 같은데…….”
내심 불안해하던 오 당주 추혼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