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4장 (35/199)

 # 34

34.

이제 열다섯 살인 조량은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침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상 위에는 초췌한 몰골의 젊은 거지가 마치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조량은 홀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치요산(恥寥山) 중턱에 살고 있었는데 며칠 전 약초를 캐러 갔다가 숲 속에 쓰러진 거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조량은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덩치는 어느 어른 못지않게 컸고 힘도 그 또래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장사였다.

만약 누구라도 얼굴을 보지 않고 뒷모습만을 본다면 모두들 건장한 청년으로 여길 것이 분명했다.

“누나, 이 거지님은 영영 깨어나지 않는 건 아닐까? 괜히 데려와서 송장 치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

조량은 옆에 앉아 있는 누나 조영을 향해 물었다. 덩치는 곰처럼 컸지만 목소리는 아이처럼 종알거리는 것이 어울리지 않아 보였지만 오히려 그것이 조량을 귀엽게 만들었다. 조량보다 세 살 많은 누나 조영은 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다 동생의 말에 눈을 흘기며 조용히 나무랐다.

“그런 말 하면 못 써. 너는 죽어가는 사람을 데려와 복을 받을 일을 하구선 다시 말로 그 복을 달아나게 하려는 것이니. 어머니께서 잘 간호하라 하셨으니 조급하게 굴지 말고 기다려 보자꾸나.”

나이에 비해 성숙한 조영은 어머니의 성품을 닮아 차분하고 지혜로웠다.

“알았어. 난 그냥 꼼짝도 하지 않기에 답답해서 한 소리였다구.”

조량은 입을 삐죽거리며 꿍하게 답했지만 누나의 말이라면 언제나 꼬박꼬박 잘 듣는 편이었고 마음은 순진무구한 어린아이 같은 심성 그대로였다.

‘누나의 말처럼 이대로 거지님이 죽는다면 힘들게 업고 온 정성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겠지. 거지님아, 어서 일어나요.’

침상에 누워 있는 젊은 거지는 표영이었다. 조량의 집은 엽지혼의 동굴과는 십 리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혼란한 마음에 걷고 또 걸어 산 하나를 넘은 것이었다. 표영이 구함을 얻고 누워 있은 지 삼 일이 지났다. 아직까지 정기가 흐트러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그런 표영을 조량의 가족들은 자기 식구처럼 정성껏 간호해 주고 있었다. 이제 지루해진 조량이 몸이 근질거려 안달을 하다가 문득 침상을 바라보더니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말했다.

“누나, 거지님이 꿈틀거렸어.”

뜨개질을 멈춘 조영도 보았는지 얼른 자리를 일어섰다.

“정말? 어서 어머니를 모셔와야겠다.”

조영은 기쁜 마음으로 밖으로 나갔고 조량이 표영에게 다가섰다.

“거지님아! 힘내요. 어서 깨어나서 열심히 구걸하고 다니셔야죠.”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표영이 신음성을 발했다.

“으음…….”

표영은 몇 번 신음 소리를 내더니 흐릿한 시선으로 서서히 눈을 떴다.

‘여긴 어디지? 내가 죽은 걸까?’

점점 눈에 초점이 잡히며 사물이 뚜렷해지자 가구며 옷가지, 집기들이 눈에 띄었다.

‘죽은 것은 아니로구나.’

“하하하! 정신이 드나요. 거지님?”

큰 웃음소리에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거구의 소년이 활짝 웃고 있었다. 표영이 멍한 표정 중에 의문스런 얼굴을 하자 조량이 얼른 답했다.

“하하, 이곳이 어딘지 궁금하신가 보죠? 여긴 저희 집이랍니다. 저는 처음에 거지님이 길바닥에 쓰러져 있기에 자고 있는 줄 알았지 뭐예요. 근데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가까이 가보니 숨 쉬는 것이 너무 약하지 뭐겠어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이곳으로 모셔온 것이랍니다.”

표영은 두 팔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꼬마야. 괜한 짓을 했구나.’

표영의 상태는 천년하수오와 묵각혈망의 내단의 영향으로 최악의 상황까지는 치닫지 않았지만 심기가 흐트러져 기가 얽히고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성 어린 간호 덕분에 몸의 기능들이 어느 정도는 회복된 상태였다. 하지만 몸은 그렇다고 해도 마음까지 치유된 것은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깊은 절망과 우울함이 표영을 휩싸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이군요.”

조량의 모친인 연가려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40대 후반의 단아한 외모를 지녔는데 목소리와 외모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교양이 배어 나오는 모습이었다. 연가려가 물그릇을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

“우선 목이 마를 테니 목부터 축이도록 하세요. 아들이 캐온 약초 중에 강활(羌活)을 넣은 거랍니다.”

강활은 사지통(四肢痛) 등 몸살에 효험이 뛰어난 약재였다.

‘좋은 사람들이로구나.’

표영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시한 후 그릇을 받아 들었다. 물을 마시려고 그릇을 들여다보는데 고인 물이 출렁이며 사부의 모습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화사하게 웃는 사부의 얼굴을 대하자 가슴이 저려오며 울컥하자 눈물이 그릇 안으로 떨어졌다.

연가려는 눈물을 흘리는 표영을 보고 차분히 위로해 주었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었나 봅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답니다.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마세요. 물을 마신 후 미음을 준비해 두었으니 들도록 해요. 그리고 당분간 몸이 좋아질 때까지 이곳에서 머물도록 하세요. 부담 같은 것은 가질 필요 없답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니까요.”

표영은 그 말에 다시금 울컥하고 눈물을 쏟았다. 가장 소중한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던 까닭이다.

표영이 깨어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고 기력은 어느 정도 회복되어 갔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어느 정도일 뿐이었다. 만병의 근원은 마음이라 하지 않던가. 죽음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영으로서는 마치 큰 바위가 가슴을 누르고 있는 듯 답답하기만 했다.

“이봐요. 밖에 산책 나가지 않을래요?”

“거지님. 함께 바람이나 쐬러 가시죠.”

조영, 조량 두 남매는 늘 침상에서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게 안타까워 이렇게 말을 걸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표영은 작게 미소만 짓고 고개를 가로저어 사양했다. 표영의 눈은 사물을 볼 수 있음은 예전과 똑같았으나 그 안에 절망이 서려 있어 밝은 호의마저 죽은 듯 비춰질 뿐이었다.

‘결국 이들도 언젠가는 죽겠지.’

모든 삶이 그저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그럴 때면 아직 어린 조량은 쀼루퉁해졌다.

“치, 거지님도 참. 산책이라도 하면 몸이 좋아질 텐데 계속 누워만 있네.”

조량은 어머니와 누나가 거지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해도 그때마다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선 정작 표영을 대할 땐 꼬박꼬박 거지님이라고 불렀다. 표영은 모두가 잘 대해 주었지만 이젠 서서히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이 집에 오래 머물렀구나. 말은 하지 않아도 이들도 힘들겠지. 내일 아침엔 떠나도록 하자.’

해질 무렵, 표영은 침상에 앉아 창밖으로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힘있게 솟아오른 태양도 그 강한 빛을 거두고 스러져 가고 있었다.

‘아침에 빛나던 이슬도 끝내 마르고, 활짝 핀 아름다운 꽃도 시들며, 태양도 저렇듯 저물어가는구나.’

그렇게 허무한 망상에 젖어 있을 때 창가에서 두 남매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 크게 말하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자세히 귓가에 파고들었다. 표영의 청력은 무공을 익히기 전과는 비할 수 없이 발달한 터였다.

“누나, 아버지는 이제 정말 볼 수 없는 거야? 다시 오실 순 없는 걸까?”

남동생 조량의 목소리는 약간 침울했다. 오늘따라 6개월 전에 떠난 아버지가 보고파진 것이다. 조량의 아버지 조무천은 원래 지방 관리였다. 하지만 비리와 권력에 눈먼 상부의 관리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가산을 정리하여 이곳에서 가족과 자연을 벗삼기로 하고 옮겨오게 되었다. 그런 조무천이 2년 전부터 갑자기 지병이 생겨 얼마 전 세상을 뜬 것이었다. 동생의 질문에 조영은 조량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따스하게 말했다.

“량아, 아버지는 저기 하늘로 가셨다고 이야기 했잖니. 한번 하늘에 올라가시게 되면 우리가 깨어 있을 땐 내려오지 않으셔. 단지 잠들어 있을 때만 내려오신단다. 그땐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고 우리의 손도 잡아주시지.”

“흥, 거짓말치지 마.”

“정말이래두.”

“전에도 누나 말을 듣고 내가 밤에 잠자는 척하며 아버지를 기다렸지만 한 번도 내려오시는 걸 보지 못했는걸.”

치기 어린 조량의 말에 조영이 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건 당연하지.”

“뭐가?”

“너는 잠자는 척만 했을 뿐이지 진짜 잠든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그건 그저 눈만 감고 있는 것이니 당연히 그때는 내려오지 않으신 거야.”

“음… 그러니까 누나 말은 내가 깊이 잠들어 있을 땐 다녀가신다 이 말이야?”

“그렇구말구. 그리고 하늘에는 신비한 큰 거울이 있어서 매일 그 거울로 아버지께선 우리를 보고 계신단다.”

조량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도 보고 계실까?”

“그럼, 당연하지.”

표영은 침상에서 조용히 들리는 둘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들도 마음의 상처를 입었구나.’

걱정 근심 없어 보이던 이 가족들이 고작 6개월 전에 아버지를 잃었다는 것은 표영에겐 뜻밖이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에 파문이 일며 두 남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조영의 말이 이어졌다.

“하늘엔 아버지의 친구 분들도 많이 있지 않겠니. 만약에 우리가 착하게 지내면 아버진 하늘에서 큰 거울로 우리를 보시면서 다른 분들께 이렇게 자랑하실 거야. ‘자, 봐. 우리 아들일세. 얼마나 훌륭한지 보란 말이네’ 하고 말이야. 하지만 우리가 어머니 말씀도 듣지 않고 나쁜 짓만 골라 하면 아버진 하늘에서 더 이상 거울로 우리의 모습을 보시려 하지 않으실 거야. 다른 이들에게 부끄러울 테니 말이야. 그러니 너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고 아무렇게나 행동해서는 안 돼. 알겠지?”

“응, 누나. 난 언제나 아버지가 거울을 보며 자랑스러워할 아들이 될게.”

표영은 남매의 대화에 얼음처럼 굳어버린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 역시 우리 량이는 착하구나. 근데 량아, 네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단다.”

“그게 뭔데?”

“아버지는 떠나셨지만 이 세상에 남겨놓으신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니?”

“어? 그런 게 있었어? 왜 내겐 이제야 말하는 거야?”

“너도 그 보물은 이미 잘 알고 있는걸.”

“피, 거짓말. 난 들어본 적도 없다구.”

조량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 쀼루퉁해졌다.

“호호… 량아. 잘 들으렴. 아버지가 남기신 보물은 바로 너와 이 누나야. 아버지가 제일 아끼신 것은 금이나 은, 보석 같은 것이 아니란다. 아버지는 떠나셨지만 보물 같은 너와 나를 세상에 남겨두고 가셨잖니. 우리로 인해 아버지는 세상에 남아 계신 거란다. 우리는 아버지의 핏줄을 이어받았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지 않니.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있잖아. 그러니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속엔 아버지가 계신 것이나 다름없어. 우리 안에 아버지의 사랑이 머물고 아버지의 가르침이 우리의 행동을 통해 세상에 나타나거든. 그러니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지만 우리를 통해 살아가시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말이야. 그치만 우리가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꾸만 나쁜 길로만 빠진다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아버지를 찾을 수는 없을 거야.”

“응, 그거였어? 하하, 나도 아버지가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네.”

“우리 량이는 역시 똑똑하다니까. 호호호.”

“하하하하.”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표영의 마음엔 큰 파도가 일었다. 사실 두 남매의 대화는 그리 대수로울 것은 없었다. 누가 듣더라도 그냥 씨익 웃고 지나갈 만한 이야기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표영에게 있어서 둘의 대화는 심마를 열고 나올 열쇠와 같았다.

“우리 안에 아버지의 사랑이 머물고 아버지의 가르침이 우리의 행동을 통해 세상에 나타나잖니.”

누나 조영의 목소리가 귓가에 머물며 윙윙거렸다.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흔적을 남긴다. 그는 떠난 것이 아니라 흔적으로 남아 지켜본다. 나에겐 누구의 흔적이 있는가. 사부의 흔적……. 사부가 내게 남기고 싶어 했던, 그래서 나와 함께하고 싶어 했던 것이 있지 않던가.’

침상에 앉아 두 무릎에 머리를 파묻은 채 표영은 깨달음에 서서히 다가갔다. 사부의 음성이 수없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늘은 말이야. 참으로 마음이 넓기도 하시지. 이 늙은이가 말년을 쓸쓸하게 보낼 것을 염려하신 나머지 하늘은 너를 보내주지 않으셨더냐. 난 너를 만난 것만으로도 그저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의 꺼지지 않은 희망은 바로 너다.”

“네가 진정으로 날 위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면… 하루 속히 훌륭한 무인의 모습을 갖추거라.”

“형, 가지 마.”

“허허… 녀석, 울고 있는 게냐. 넌 좀 더 모질어져야겠구나.”

표영은 가슴 깊은 곳에서 탁한 덩어리가 치솟아오름을 느꼈다. 그 덩어리는 표영의 가슴을 세차게 울리다가 기도를 타고 올라왔다.

울컥.

입에서 검붉은 핏덩어리가 토해져 침상을 물들었고 그 충격에 허물어지듯이 표영은 쓰러졌다. 하지만 쓰러진 표영의 얼굴은 조량의 집에서 보낸 어떤 날과도 달리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구원의 밧줄을 잡고 나락을 벗어나 생명에 대한 각성을 이룬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