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5장 (16/199)

 # 15

15.

“하하하하! 그것 때문에 오셨군요. 진작 말씀을 하시지. 하하하… 물론 제가 개들을 좀 때리기는 했답니다. 이건 저희 사부님께서 알려주신 말씀입니다만 옛말부터 이런 명언이 전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개와 북어는 삼 일에 한 번씩 패라. 그래야 삼삼해진다.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하하, 저는 단지 개 주인님들께서 개를 패는 데 있어 시간도 부족하고 수고로워하실 것 같아 대신 좀 손을 쓴 것이랍니다.”

표영은 자신이 생각해도 대견하다는 듯, 혹은 큰 업적이라도 쌓은 것처럼 당당했다.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개 주인들은 농락당하고 있다 여기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모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면서 곧 달려들 기세였다.

표영은 일이 생각보다 심각함을 비로소 느꼈다.

‘어라, 이거 진짜 화났나 본데… 어떻게 하지… 음… 그래, 그게 좋겠군.’

표영으로서는 이들과 다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어떻게든 설득시켜야 하는 것이다.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며 입을 열었다.

“화를 가라앉히고 잠시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이번엔 또 무슨 소리를 지껄이려고 하는 것이냐? 시답잖은 소리 하려거든 애당초 말을 꺼내지 마라. 네놈이 맞아야 할 매만 더욱 늘어날 테니까 말이다.”

“음… 제가 생각하기엔 피해를 입은 것은 분명 여러분들이 아니고 개들입니다. 그러니 먼저 개들이 저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지, 아니면 전혀 불만이 없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순서이지 않겠습니까. 정작 맞은 개들이 아무 문제를 삼지 않는다면 굳이 여러분들이 나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개 주인들은 뭔가 말이 안 맞는 것 같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논리적인 말이라 당장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표영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저 개들은 모두 이곳에 주인이 있을 터이니 제게 불만이 있다면 명령을 내려보십시오. 지금 당장 저를 물어뜯으라고 말입니다.”

개 주인들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개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는 셈이기도 하고 자신들이 굳이 손을 쓰지 않아도 되니 일석이조(一石二鳥)일 것 같았다.

모두는 ‘이젠 넌 죽은 목숨이다’라는 듯이 흐흐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장 개들의 숫자는 200마리를 상회하고 있으니 한 번씩만 문다 해도 200번을 물리는 것이다. 조금은 가혹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결국 구견구타자가 원한 것이니 뒷날 후회한들 소용없을 것이었다.

“좋다, 네놈의 소원대로 해주마.”

대표 모천각이 뒤를 돌아 모두에게 말했다.

“자, 어서들 우리 모두 각자 개들에게 명령을 내리십시다.”

그러자 개 주인들은 신바람을 내며 옆에 데리고 있던 개들을 독려하며 물어뜯으라고 명령했다.

“가서 물어버려라. 멍멍아.”

“저놈의 주둥아리를 물어, 알았지?”

“제대로 못하면 밥 없는 줄 알어.”

각기 물어뜯으라는 말을 내뱉자 사방이 시끌벅적하게 변했다. 그때 표영은 개들을 쭈우욱∼ 훑어본 다음 자리에 누웠다.

“자, 그럼 알아서들 하세요. 전 이만 잠이나 자렵니다.”

개 주인들은 저 녀석이 이젠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고 목숨을 포기한 것이라 생각하고 의기양양해졌다.

‘흐흐흐… 바보 같은 녀석, 한번 봐달라고 용서라도 빌 것이지 괜한 자존심으로 인해 목숨만 날리게 되었구나.’

“자, 가라∼!”

일제히 소리 높여 개 주인들이 외쳤다. 하지만 으르렁거리며 달려가 발톱과 이빨로 마구 물어뜯어 버릴 것이라고 강력히 예상했건만 정작 개들은 먼 산만을 멀뚱멀뚱 쳐다보며 딴짓을 하고 있었다. 지금 무슨 일 있었어? 라는 행동들이었다.

‘허거거걱! 뭐냐, 대체…….’

개 주인들은 황당함에 사로잡혀 손짓발짓하며 온갖 괴성을 질러댔다.

“어서 가서 물지 못해∼!”

“이눔의 시키들아, 정신 차리란 말이다!”

“죽고 싶어∼”

그러자 개들은 비로소 정신을 차린 듯 맹렬한 기세로 달려갔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방향이었다. 모든 개들이 표영과는 반대 방향에 있는 집으로 뛰어가 버린 것이다.

사람들의 시야에서 개들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개 주인들은 구견구타자와 개들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입을 쩍∼ 벌리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때 그들의 귀로 구견구타자의 귀찮은 기색이 담긴 음성이 들려왔다.

“어서들 집에 돌아가세요. 개들은 저한테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잖아요.”

맥이 탁 풀렸다. 개 주인들은 어쩔 수 없었다. 터벅터벅 돌아가는 길에 모두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표영이 삼 개월째에 접어들었을 때는 당창 지역으로 옮긴 뒤였다. 당창의 한 공터에 다다른 표영은 견왕봉을 들고 손에 탁탁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공터에는 약 오십여 마리의 개들이 불안한 기색을 여실히 드러낸 채 초조히 표영의 행동을 살피고 오늘 무사히 살아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표영은 모든 개들을 한차례 훑어본 후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겨가며 말했다.

“제군들, 많이 기다렸나. 내가 요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신경이 여간 날카로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꺼번에 일을 끝내고 오랜만에 잠을 청해볼까 생각 중이니 이 몽둥이에 피를 묻히는 일이 없도록 알아서 행동하도록. 알겠나?”

낑낑…….

개들은 일제히 몸을 부르르 떨며 끙끙거렸다.

실제로 표영은 요 근래 타구일일(打狗日日)을 연마하면서 흉악육식 때보다 여유있던 성격을 많이 잃은 상태였다. 지나친 폭력이 몸에 배다 보니 성격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정도 급해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오십여 마리를 한꺼번에 처리한 다음에 푹 좀 쉬어보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얍! 간다∼!”

표영이 개떼들 사이로 다다닥 달려가 견왕봉을 휘둘렸다. 이미 개떼들은 전의(戰意)를 상실한 상태였기에 그저 빨리 끝내주기만을 바랄 뿐 반항 따윈 생각조차 못했다. 잠시 후 모든 개떼들은 대 자로, 혹은 모로 뻗어 숨만 깔딱거리게 되었다.

“음하하하하……!”

표영은 득의한 웃음을 터뜨리며 나무 그늘 아래로 향했다.

“아, 이제 좀 쉬자.”

표영이 잠든 후 개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일어나 자기들끼리 작은 소리로 ‘월월’거리며 서로를 위로한 후 일부는 집으로 돌아갔고 그중 덩치가 제법 되는 대여섯 마리의 개들은 표영 근처에서 절뚝거리며 호위를 섰다. 호법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이렇게 표영이 타구일일을 완성하는 날까지 몽둥이는 쉼없이 개털과 개살들을 누볐고 개들의 몸뚱이는 편안할 날이 없었다.

제12장 구혈잠혈의 공포

사부 원구협의 집에 있는 개들은 몸서리를 쳤다. 50여 마리나 되는 개들이 거죽만 남긴 채 주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모조리 피를 뽑힌 채 죽은 것이다. 언제 자기 차례가 될지 모르는 상황인지라 그 공포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이렇게 빼낸 뜨끈뜨끈한 개의 피는 욕조 통 안에 가득 담겨지게 되었다. 두 사람 정도는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욕조 통에 담겨진 개의 피는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어∼ 어∼”

대개 욕탕에 가면 나이 든 노인들이 뜨거운 물 안에서 시원함을 표현하며 ‘어∼ 어∼’ 하듯이 표영은 연신 소리 내고 있었다.

“뜨뜻하구나, 조오오타…….”

보통 사람 같으면 개의 피가 모아져 있는 모습만 보더라도 혐오감에 몸을 떨 일이리라. 그러나 표영은 그동안 타구일일의 단계를 거치게 되면서 워낙에 고생을 많이 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젠 편히 몸만 담그고 있으면 되는 것이니 콧노래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 과정만 지나면 견왕지로를 거의 완성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므로 개방이 한층 가까이 오는 것이니 희망에 차 있었다.

피는 몸 안에 있을 때와는 달리 밖으로 나오면 빠르게 굳어 버린다. 개 피 역시 일 다경(약 15분)도 채 되지 않아 차츰 딱딱하게 응고되어 갔다.

그 속에서 표영은 석고를 뜨듯 굳어져 갔다. 원래는 하루 세 번, 오전 오후 저녁으로 각기 한 시진씩만 몸을 담그고 있어야 하지만 표영은 놀랍게도 하루 웬 종일 그곳에서 나오질 않았다.

식사도 욕조통 안에서 해결했다. 나오는 때라곤 피를 갈아주는 시간 때뿐이었다. 그때는 잠시 나왔다가 몸에 굳어져 있는 피를 떨쳐 내고 욕조 통을 깨끗이 헹구게 되었는데 그 일이 끝나면 바로 다시 들어갔다. 그때만 되면 집안에 있는 개들은 경기를 일으켰다. 원구협이 피를 갈아주는 시간은 개들에게 있어서 두려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도 있었다. 개 피를 뽑느라 죽어간 개의 숫자가 200여 마리에 이르자 원구협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그것은 바로 헌혈이었다.

“똑바로 줄 맞추지 못해! 거기 검둥이 너, 옆으로 튀어나왔잖아.”

욕조통을 향해 100여 마리의 개가 늘어선 광경은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마리씩 욕조통 앞에 이르게 되면 원구협은 개의 다리를 잡고 칼로 째 피를 짜냈다. 개들은 고통스러웠지만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고마웠던 것이다.

어느덧 구혈잠혈의 공포의 석 달 과정이 끝을 맺었다. 이제까지 죽어간 개의 숫자는 총 250여 마리. 그로 인해 표영의 몸에서는 타구일일 때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살기를 내뿜게 되었다. 그 위력은 대단했다. 나타난 현상으로는 표영의 근처에 이르기만 해도 모든 개들이 오줌을 지리는가 하면 기절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아직은 살기를 조절하거나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없는 상태여서 그저 일방적으로 뻗어나갈 뿐이었기 때문이다.

“제자야, 이제 마지막 7단계 심신평정만 남겨두게 되었구나. 그러기 전 구혈잠혈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직접 보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너는 이곳에서 열흘 정도 길에 자리한 추령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오너라.”

“그냥 돌고만 오면 되나요, 사부님?”

“그래, 그저 느긋하게 돌고만 와라.”

“네, 사부님.”

열흘 뒤.

추령 마을의 모든 개들은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 나타난 증상은 다양했다. 식욕 부진, 의기소침, 설사, 급체, 변비, 멈추지 않는 딸꾹질, 소화 장애, 헛것이 보이는 것 등이었다.

돌아온 표영과 사부 원구협이 마주 앉았다.

“무엇을 보았느냐?”

“모두 자지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원구협의 눈이 일렁거리며 표영의 손을 팍 쥐었다.

“장하다.”

구혈잠혈을 마친 후 표영은 휴식 기간 없이 마지막 단계인 심신평정에 들어갔다. 심신평정을 이루기 위해서 두 달간은 봉천산(奉天山) 계곡에 있는 비천폭포 밑에서 물살을 맞으며 보냈다. 강하게 내리꽂히는 물살은 머리와 어깨를 때리며 정신과 온몸을 맑게 해주었고 그동안 몸 안에 쌓인 살기(殺氣)와 탁기(濁氣)를 순화시켜 주었다. 그렇게 거센 물살을 맞으며 표영은 사부의 음성을 떠올렸다.

“너는 그동안 타구일일과 구혈잠혈을 익히면서 지나친 살기가 몸에 배어 있게 되었다. 폭포를 맞으면서 살의(殺意)는 버리고 오직 넓은 포용력과 사랑의 마음을 갖도록 하여라. 그랬을 때라야 이제까지의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게 되어 진정한 견왕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말씀도 떠올랐다.

“심신평정에서 얻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으니 일명 섭안공(攝眼功)이라 한다. 이 공부는 눈빛 속에서 여러 가지 개들이 두려워 할 영상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네가 보아왔던 모든 과정 등을 마음에서 피워 올려 머리에 잘 새겨두도록 하여라. 이것이 이루어지면 눈빛만으로도 어떤 짐승도 감히 대들지 못할 것이다.”

표영은 그동안 보아왔던 것들을 하나둘 마음속에 갈무리했다. 호랑이 고기를 먹던 때며 개들을 후려 패던 때, 개 피를 짜내던 때 등등…….

어느덧 시간은 가고 심신평정의 과정이 끝났다. 견왕지로의 모든 비법을 전수받고 견왕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리고 이때 표영에게는 또 다른 변화가 일었다. 푸르스름한 눈자위가 어느덧 옅게 변한 것이다. 이렇듯 빠른 변화는 처음부터 극한 고생을 함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었다. 아직까지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변화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소공공의 예견이나 천계의 주지함이 틀리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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