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4장 (15/199)

 # 14

14.

그 후로도 사부 원구협은 열흘에 한 번씩 산에서 여러 맹수들을 잡아왔다. 내장이 갈가리 찢긴 늑대, 혹은 그냥 머리를 푹 숙인 채 쓸쓸히 따라오는 살쾡이, 간교하다는 여우 등 참으로 그 짐승들도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원구협은 표영을 데리고 산을 올랐다.

“사부님! 오늘은 뭘 잡으실 거죠?”

“반달곰이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 정도는 보아두는 것이 수련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곰은 잡아도 너무 무거워서 옮기기 귀찮으니 거기 머물면서 먹고 내려오자꾸나.”

“허허…….”

표영도 어지간하지만 사부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얼마쯤 산을 올랐을까. 표영이 가다 쉬다 가다 쉬다 하는 통에 재촉하느라 잔소리를 늘어놓던 원구협이 조용히 말했다.

“바로 저기다.”

그가 가리킨 곳은 큰 동굴이었다.

“곰의 집이로군요?”

호기심 가득 표영이 묻자 원구협이 씨익 웃었다.

“그래, 곰 녀석의 집이지. 아직 나서기엔 수련이 부족하니 너는 이곳에서 지켜보고 있거라.”

“네, 사부님.”

원구협은 성큼성큼 걸어가 동굴 앞에 이르러 큰 소리로 외쳤다.

“야! 나와라! 여기 견왕이 왔느니라!”

우렁찬 소리에 동굴에서 어슬렁거리며 반달곰이 나왔다. 한참 낮잠을 즐기고 있던 중에 잠을 깨운 것이라 곰은 분노를 띠고 포효했다. 하지만 원구협이 어떤 사람인가. 호랑이 잡길 파리 잡듯이 하는 이가 아니던가.

“이놈! 어디서 감히 노려보느냐! 내가 손을 쓰기 전에 어서 스스로 배를 갈라 간과 쓸개를 공손히 바치지 못할까!”

뒤쪽 바위에 몸을 숨기며 바라보고 있던 표영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허허… 거참, 사부님도……. 곰이 어찌 말을 알아듣는다고 저러실까. 거참… 아무리 제자에게 멋있게 보이려고 한다 해도 좀 심하잖아.’

곰의 생각도 표영과 비슷했다. 그저 시끄러울 뿐이라 어서 때려 죽여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크헉-

곰은 1차 경고의 뜻으로 위협적인 소리를 내질렸다. 아마도 ‘까불면 죽는다’라는 뜻인 것 같았다.

“이 미련 곰탱이 같으니, 이리도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더란 말이냐!”

원구협은 구혈잠혈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올려 삽시간에 주변을 공포 분위기로 만들어 버리고 똑바로 곰의 눈을 쳐다보았다. 반달곰은 눈이 딱 마주치자 그때부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눈을 통해 보여지는 영상에 반달곰은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원구협의 눈을 통해 반달곰은 호랑이들이 죽어가는 모습, 늑대, 뱀, 여우, 개, 그리고 여러 곰들이 속절없이 죽어가는 광경을 본 것이다. 눈빛만으로도 모든 짐승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진정한 견왕의 경지였다. 약 일 식경(30분) 정도를 그렇게 원구협과 반달곰은 서로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오히려 뒤에서 지켜보는 표영이 지겨울 지경이었다.

‘사부님도 사부님이지만 저놈의 곰은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왜 저렇게 다리를 후들거리며 서 있는 걸까? 설마 둘이 사귀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게 표영이 별 쓸모 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변화가 나타났다. 갑자기 곰이 다리를 구부리고 원구협 앞에 머리를 푹 숙인 것이다. 원구협은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표영을 불렸다.

“영아, 큰 짱돌을 들고 오너라.”

표영은 사부가 곰과 싸우지는 않고 짱돌을 가져오라고 하자 괴이하게 여기며 물었다.

“뭐 하실려고요?”

“녀석아, 먹으려면 잡아야지.”

“그, 그럼 끝난 것이로군요?”

“그래, 이 녀석이 죽기로 결정 봤다. 어서 가져오너라.”

“겨, 결정 보셨군요.”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결정 봤다는 데야 뭐라고 말할 순 없었다. 표영은 주위를 살펴 양팔에 가득 들어올 만큼 큰 돌을 들어 낑낑대며 사부 옆에 놓았다. 원구협이 곰에게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견왕에게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 넌 복받은 거야.”

그리곤 옆에 있는 짱돌을 들어 내리쳤다.

퍼억!

머리가 터지고 피가 바닥을 적셨다. 한방에 즉사였다. 원구협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먹을 준비 해야지?”

“네??!!”

이렇듯 2개월 정도의 과정으로 흉악육식을 지나게 되었을 때 표영의 몸에는 작게나마 살기가 뻗어 나왔고, 그때부터 모든 개들은 표영의 눈을 마주 대할라 치면 몸을 비비 꼬고 창살에 몸을 비벼대는 등 생난리를 치곤했다. 그건 표영의 피부 하나하나, 몸에 난 터럭 하나에까지 고기 냄새로 절어 있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개들은 그 냄새만으로도 자신이 반찬거리가 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표영 스스로는 자신의 냄새를 맡지 못했지만 후각이 극히 발달한 개들은 그 냄새만으로도 이미 공포감을 느낀 것이다.

특히 흉악육식 후에는 호랑이마저 간식으로 먹어치울 정도가 되었기에 개들로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흉악육식을 끝마친 후에 원구협이 표영을 앞에 두고 말했다.

“너는 역시 아무리 봐도 천하의 기재로구나. 휴∼ 하지만 너 같은 기재가 개방으로 간다니 개방이 부럽기 그지없구나.”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감은 채 말을 이었다.

“자, 이젠 다음 과정으로 타구일일(打狗日日)을 수련할 차례다. 너는 이곳을 떠나 석 달 동안 사방팔방을 싸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개들을 패버려라. 이 과정에서 중요한 요결은 최소한 매일 세 마리 이상의 개를 두들겨 패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상 패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잘할 수 있겠지?”

“사부님. 염려마십시오. 닥치는 대로 패버리겠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비장미가 물씬 풍기는 어조로 표영이 답했다.

아직까지도 견치지겁 때의 원한이 남아 있는 데다가 견육다식과 흉악육식을 거치면서 살기가 몸에 넘쳐 났기 때문이었다.

“장하다, 하하하. 타구일일을 위해서 너에게 선물을 한 가지 주겠다. 자, 받아라.”

원구협은 옆구리에서 검은 죽봉을 꺼내 표영에게 주었다.

“이것은 시조님께서 사용하셨던 것으로 견왕(犬王)의 신물이다. 이 죽봉의 이름은 견왕봉(犬王棒)이라고 부르는데 흑룡강성 북쪽 지역에서 우연히 발견한 흑죽(黑竹)을 사조님께서 제련하신 것이다. 그 어떤 나무들보다 강해 개를 패는 데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느니라. 게다가 이 견왕봉에는 수많은 개들과 흉악한 짐승들의 피가 묻어났던 터라 어지간한 짐승들은 이 견왕봉만 보고도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제 앞으로 견왕봉은 너의 것이다. 너는 이것으로 타구일일을 연마하고 귀히 간직해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표영은 견왕봉을 받아들었다.

“네, 사부님.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개들을 후려 패는 데 몸과 마음을 다 바치겠습니다.”

표영의 말에 사부 원구협의 입가에 만족스런 웃음이 번졌다.

제11장 개를 보면 개를 때리는 자

감숙성의 유중(柳重) 지역은 구견구타자(狗犬狗打者)의 등장으로 인해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구견구타자’란 개를 보면 개를 때리는 놈이란 뜻이다. 그건 갑작스럽게 등장한 괴상한 거지 녀석의 별호였다.

한동안 마을 사람들은 개들이 힘이 없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것을 괴이하게 여겼다. 혹시 먹지 못해서 그러는가 싶어 개밥그릇을 살펴보면 늘 깨끗이 비워져 있는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양 축 처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개 주인들이 의아하게 받아들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만 할 뿐 실질적인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개들로서는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 즉 인간 중에 개밥을 뺏어먹는 놈이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 개들은 큰 타격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개조차도 이에 반발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개들로서는 개밥을 가로챈 상대가 보통 인간이 아닌 견왕의 수제자임을 알아본 것이다. 그러니 마음만 애타 하며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물론 처음 몰랐을 땐 반항해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반항의 선봉은 유중 땅에서 포악하기로 첫손에 꼽히는 초씨 세가의 검둥이였다. 하지만 검둥이는 덤비려고 갔다가 물기는커녕 짖어보지도 못하고 기절할 때까지 얻어터진 뒤로 모든 개들은 반항이나 저항, 개김, 대들기, 불순종 따위는 생각해 볼 수도 없게 되었다. 개들은 모였다 싶으면 구견구타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살길을 모색했다.

흰둥이: 왈왈… 와르르 왈왈…….

[해석: 그분의 몸에서 품어져 나오는 냄새 맡아봤나? 우리 동족(同族)의 냄새는 물론이거니와 괴이하고 흉악한 맹수의 냄새가 뭉게뭉게 뿜어져 나오니, 감히 그 앞에서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더군.]

바둑이: 크르르… 바워우워…….

[해석: 말도 말게. 나도 그것 때문에 가슴이 울렁거리고 살이 떨려와 삼 일간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더라니까.]

똘똘이: 냥냥… 냥냥냥…….

[해석: 나 같은 경우엔 며칠 전 집에서 뵀다네. 배가 고프신 건지 내 그릇을 깨끗이 비우시더군. 옆에서 보니 부족한 듯싶더라구. 더 드리지 못해 어찌나 송구스럽던지, 민망해서 혼났네 그려.]

멍영이: 캉캉… 크르크르… 캉캉…….

[해석: 그래도 자네들은 나은 편이군. 어제였었지. 가볍게 산책하러 골목을 돌고 있는데 그분을 거기서 뵙게 되었지 뭔가. 근데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다짜고짜 몽둥이를 휘둘러 두들겨 패지 않겠나. 내가 중도에 기절한 척하지 않았다면 지금 자네들과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을 것이네. 요즘 같아선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힘드네. 계속 계시게 되면 살아남을 동료가 몇이나 되겠나.]

멍멍이의 짖는 소리에 다른 개들은 침묵에 잠겼다. 이건 생존에 관한 문제였다.

개들이 이렇듯 한참 동안 어려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개 주인들이 사태의 진상을 알게 된 것은 한 달 정도가 지난 뒤였다. 그들은 아끼는 개들이 밖으로 나갔다 하면 어딘가 터지거나 부러져서 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크게 생각진 않았다. 각기 자기 집 개만 그러려니 생각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한 것이다.

그러나 얼마 후.

“우리 집 개가 요즘 통 밖을 나가려고 하질 않네. 그리고 집에서조차 개 집을 벗어나려고 하질 않지 뭔가. 이상한 일이야.”

“어라, 우리 집 개도 그러던데…….”

“거참, 난 우리 집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우리 집도야.”

“나도 그래, 나도.”

사람들은 이렇듯 이야기를 나누다가 개 키우는 모든 집이 동일한 피해를 입었음을 알게 되었다. 개 주인들은 이것이 무슨 조화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든 사건이 구견구타자에 의해 벌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며 다시금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그중 장 씨가 들려준 이야기는 모두 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 글쎄 말이야. 우리 집 개가 보통 개가 아니잖은가? 난 우리 집 개가 보이지 않기에 어디로 갔나 찾아보았다네. 또 어디서 엉뚱하게 사람이나 물고 있지나 않을지, 혹은 다른 개들을 괴롭히지나 않는지 걱정하고 있었던 거였지. 자네들도 알지 않나. 전에 길 가던 중년인을 이유도 없이 물어버려 내가 얼마나 곤욕을 치렀느냔 말일세. 그래서 난 이번에도 또 어디서 사고를 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 거지. 그런데 웬걸, 골목 모퉁이에서 고양이 앞의 쥐 꼴로 머리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등판을 얻어맞고 있는 것이 아니겠나. 그 괴상한, 거지같은, 그리고 황당하기 그지없는 구견구타자(狗犬狗打者) 앞에서 말일세.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몰래 지켜보았지 뭔가. 구견구타자 그놈은 글쎄 일 다경(15분) 정도를 팬 후에 한 식경(30분) 동안 일장연설을 늘어놓더군. 무슨 말이었냐고? 나도 몰라. 별 쓰잘 데기 없는 말들뿐이었으니 말이야. 지금 대충 기억을 되새겨 보자면 뭐 이런 식이었지. ‘앞으로 말 잘 들을래 안 들을래’로부터 시작해서 바른생활을 실천하는 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하는 말들이었던 것 같았어.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 외에도 무지 많았다네. 대체 개들이 말을 알아들을 수나 있냔 말일세. 그런데도 어찌나 진지하던지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더라니까. 험험… 아, 그렇게 연설을 마치자 우리 집 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터벅터벅 골목을 빠져나와 집으로 가더군. 지나는 길에 날 보았음에도 그냥 못 본 체하고 가더라니까. 허허, 기가 막히지 않나? 보지 않았으면 믿을 수나 있었겠냔 말일세.”

개 주인들은 이대로 못 본 척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개 주인으로서의 자존심에 대한 문제였다. 바쁜 일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약 100여 명 정도의 개장수들은 각기 자기 집 개들을 데리고 구견구타자를 찾았다.

대이동이었다. 사람 100명에 개들은 약 200여 마리 정도였는데 어떤 집에서는 두세 마리씩 키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쪽 변두리 쪽에 이르러 구견구타자를 만날 수 있었다. 구견구타자는 나무 그늘 아래서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 여유로운 모습이란 마치 한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으나 사람들의 마음은 그런 것을 생각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외치기 시작했다.

“네 녀석이 구견구타자냐?!”

“흥. 우리 개들을 못 살게 굴면서 네놈은 이렇듯 마음 편히 쉬고 있더란 말이냐?”

“어서 일어나지 못해!”

“자는 척해도 소용없다. 그동안의 너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고야 말겠다!”

100여 명이 고래고래 한동안 소리를 질러대자 구견구타자는 눈을 비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왜 이리 시끄러운 거야.”

그러다 사람들과 개들이 주욱 늘어선 것을 보고 탄성을 내질렸다.

“와아∼ 장관이로다. 모두들 개들하고 단체로 야유회를 나온 모양이로군요.”

구견구타자는 사태 파악을 못하고 있었다. 오늘 이 무리의 임시 대표자격인 똘똘이의 주인 모천각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싸늘하게 말했다.

“네놈이 구견구타자렷다.”

“구견구타자라구요? 사람을 잘못 찾으셨군요. 전 표영이라고 하죠.”

이제까지 만행(?)을 저질러 온 표영은 정작 자신이 구견구타자라고 불린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손을 가로저으며 대수롭지 않게 부인하는 말에 개장수들이 분노를 일으켰다.

“이제 와서 발뺌하려는 것이냐? 이미 때는 늦었다.”

“네 옆에 차고 있는 몽둥이가 너를 구견구타자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거짓말을 하려 해? 그동안 우리 개들을 괴롭히지 않았느냐?”

그때서야 비로소 표영은 이들이 왜 이곳에 몰려왔는지를 깨닫고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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