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7장 (8/199)

 # 7

7.

“푸르스름한 청광이 흐르는 가운데 그 속에 현기가 스쳐 지나지 않습니까? 다른 문파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개방의 무공을 익히기엔 이보다 더 적합한 인재를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표영은 옆에서 듣고 있다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눈을 반짝거리게 만들려 노력했다. 그는 근 한 달 동안은 더욱 명확하게 꿈을 꾸었다. 그 꿈에서 지난 여러 달 동안의 꿈보다 더 확실히 어머니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 내용에서 거지가 되면 게으름을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은 터였다.

‘어머니께서는 저리 기원을 드리고 계시니 나는 거지가 되어 게으름을 벗고 마음을 편케 해드려야 되겠다. 생각해 보면 거지의 삶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딱 그만일 테니 그리 어려울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 찰나에 이제 개방 사람을 만나게 되고 자신을 데리고 간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개방의 거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벌써 눈은 몽롱해지며 졸음이 몰려와 잠들기 일보 직전이었다.

“음…….”

귀인의 말을 따르기로 작정했지만 막상 아들을 거지 방파로 보내려고 하니 선뜻 승낙의 말이 나오질 않았다.

“저같이 개방에서 30년을 보낸 감숙성의 분타주 정도 되면 개방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를 알아보는 눈은 그 어느 누구보다 정확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앉아 있던 화연실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여쭤보지 않을 수 없군요.”

그 말에 분타주 녹정이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말씀하시죠.”

“우린 오늘 당신을 처음 보았고 당신이 개방 분타주라고 하는 것도 아무런 증거도 없지 않나요? 그저 당신의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우리로서는 그저 듣는 입장이니 쉽게 납득할 수가 없군요. 우리 앞에서 무공을 보여주신다면 혹시라도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전에는 무조건 당신 말만을 들을 순 없지 않겠어요?”

비록 청의 귀인의 말이 있었지만 화연실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녀는 아들이 고생할 것을 염려하는 한 어머니일 뿐인 것이다.

순간 중년 거지의 눈빛이 찰나지간 노기를 띠었고 곧바로 얼굴을 차갑고 딱딱하게 굳혔다.

무림인에게 있어 무공을 보여 달라는 것은 참으로 실례되는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의 이러한 요구는 철저히 상대를 불신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거절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흥, 우리 개방은 아무 곳에서나 무공을 펼쳐 보이지 않소이다. 더욱이 제자를 받아들이고자 정중하게 말씀을 드렸건만 이런 식으로 매도할 줄은 몰랐소이다. 정 그렇게 못 믿으시겠다면 오늘의 대화는 없었던 것으로 합시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시는구려. 구파일방의 대 개방을 정말 한낱 거지 나부랭이로 생각하는 것이란 말이오? 내 비록 거지 차림을 하고 있으나 누구에게도 모멸당할 생각은 전혀 없소이다!”

녹정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얼굴 가득 분노를 실어 거침없이 뿜어냈다. 그 모습은 무림 고수의 자존심을 잘못 건드려도 한참 잘못 건드렸다는 뜻이 강하게 담겨 있었다.

의외로 강성한 대답에 오히려 당황한 쪽은 표만석 부부였다.

사람이란 게 묘해서 내 것이 안 될 것 같다 싶으면 왠지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지라 두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귀인의 말씀이 귓가에 어른거려 아들을 개방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던 그들인지라 이젠 오히려 두 사람이 다급해졌다.

‘말마따나 명색이 개방은 무림에 가장 큰 방파가 아니던가. 이 기회를 놓치면 둘째는 결코 화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혹여 이 사람이 떠난 뒤에 훗날 재물을 싸 짊어지고 가도 자존심으로 살고 죽는 무림 방파인 개방에서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큰 낭패가 아니겠는가.’

두 부부는 고개를 돌려 표영을 바라보았다. 어느 샌가 아들 녀석은 탁자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중요한 순간에도 아무 대책 없이 잠만 자고 있는 것이다.

“휴∼.”

길게 한숨을 내쉰 후 표만석이 손을 모으고 공손히 말했다.

“분타주님은 노여움을 푸십시오. 제 처가 강호의 예법을 알지 못해 잠깐 실언을 한 것 같습니다. 개방에서 부족한 저희의 아들을 거두어 주시겠다니 이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분타주님께서는 이삼 일 정도 이곳에 머물러 주십시오. 아들이 떠날 채비도 해야 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 내키지 않으신다면 억지로 아드님을 보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인재라고 해도 마땅히 인연이 닿아야 서로 맺어지게 되는 법이지 않겠습니까. 부담스러우신 듯한데 저 혼자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표만석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한 번도 떨어져 있어본 적이 없던 터라 안사람이 서운한 마음이 일었을 뿐입니다. 분타주님께서는 노여움을 푸십시오, 부족한 제가 용서를 구합니다.”

표만석이 머리 숙여 사죄하고 화연실도 송구스러운 듯 가만히 있음을 보고서야 분타주 녹정은 못 이기는 척하며 말했다.

“그럼 삼 일 후 아침나절에 제가 다시 표가장에 들를 테니 그동안 아쉬운 정을 나누도록 하십시오.”

“저희 집에 거할 처소가 많으니 분타주님께서는 이곳에 머무르시면 안 되겠습니까?”

표만석은 혹시나 아직도 기분이 언짢아 떠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그런 낌새를 눈치 챈 녹정이 여유 있게 웃으며 답했다.

“장주께서는 그리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제가 더 원하는 바이니, 꼭 삼 일 후에 이곳으로 올 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럼 전 이만.”

낮에 비가 내린 후 해질 무렵 하늘은 맑게 갰다.

‘내일이면 내 아들을 떠나보내야 하는구나.’

화연실은 저녁 식사 후에 따로 표영을 불렸다. 툇마루에 걸터앉은 두 모자지간을 달빛은 화사하게 비춰주었다.

“영아.”

“네, 어머니.”

“이제 너도 15살이 되었지? 15살이라면 어린 나이라 할 수 있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리 적은 나이라고 볼 수도 없단다. 이제 내일이면 너는 개방으로 가서 생활할 텐데 잘해낼 수 있겠니?”

화 부인으로서는 해가 지날수록 아들의 게으름이 심해지고 개선될 여지가 없는 것에 걱정이 앞섰다. 고생이라고는 이제껏 해보지 못한 아들이 아니던가. 달빛에 비친 곱상한 얼굴을 보니 더욱 안쓰러웠다.

“헤헤…… 어머니, 너무 심려 마세요. 할아범이 말하길 개방은 거지들의 집단이라고 하던걸요. 거지들이야 밥을 해먹지도 않고, 옷 갈아입을 필요도 없으며, 목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저로서는 그보다 더 어울리는 곳이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 어머니께서는 아무 염려하실 필요 없어요.”

만성지체를 타고난 사람답게 표영의 말은 어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염려하지 말라고 한 말은 더욱 화연실의 마음을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휴우…….”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얘야, 아버지와 이 어미가 너를 개방에 보내겠다고 허락한 것은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란다. 세상에 나가 어려운 일을 경험하는 가운데 부지런하고 활발한 모습이 되었으면 하는 게야. 나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네가 변화된 모습을 꼭 보고 싶구나.”

이제 50대 중반에 접어든 화 부인의 음성엔 아들을 아끼는 따뜻함이 배어 있었다.

“어머니, 제가 어떻게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표영은 이제껏 알고 있는 훌륭함이란 ‘훌륭하게 잠자기’, ‘훌륭하게 게으르기’뿐이었다.

“영아. 지금도 너는 내게 있어 가장 훌륭한 사람이란다. 넌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이렇듯 아무 탈 없이 잘 커주었지 않니. 세상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하고 훌륭한 내 아들이지.”

화연실은 표영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세상 모두가 다 나처럼 너를 훌륭하게 보는 것은 아니란다. 나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럽지만 아버지와 난 언젠가 세상을 떠날 테고 넌 혼자 남게 되지 않겠니? 그때 내가 하늘에서 널 지켜볼 때 너의 게으름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이 된다면 이 어미는 하늘에서도 편히 쉬지 못할 거야. 내가 바라는 것은 너의 형처럼 무공을 배워 강호에서 이름을 떨치거나 관직에 오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란다. 그저 난 네가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가며 일가(一家)를 이룰 수 있다면 그것으로 훌륭한 사람이라 생각한단다.”

“…….”

아무 대답이 없는 가운데 화연실은 달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사내라면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는 것만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뭇 사람들은 여기지만 나는 네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혼인을 하고 귀여운 자식을 낳고 집안을 화목하게 꾸려 나갔으면 좋겠구나. 넌 할 수 있겠니?”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저 고른 숨소리만 새근새근 들려오자 화연실은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경청하리라 생각했던 아들은 어느새 입가에 침을 흘리며 잠들어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화 부인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달빛에 반사된 눈물이 반짝거리며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강호는 험하다고 했건만 이 아이가 그런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아이가 화(禍)를 당하지 않기를 바라기에 어쩔 수 없이 보내지만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달님! 제 아들을 지켜주세요.”

그녀는 눈물 어린 시선으로 달빛을 바라보았다.

제7장 끝내 거지가 되다

“아들아, 개방에 가서는 윗분들의 말씀 잘 듣고,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된다. 알겠지? 그래서 나중에 훌륭한 무림인이 되어 돌아와야 한다.”

표만석은 못내 철없는 아들이 걱정되어 연신 당부했다. 곁에 있던 화연실은 눈물로 범벅된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 운학 노인을 비롯해 표가장의 하인들과 시녀들도 함께 나와 전송했다. 모두의 염려스런 얼굴을 보며 표영이 밝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훌륭한 개방 고수가 되어 돌아올게요.”

감각이 둔하기 그지없는 표영이지만, 어머니의 눈물은 자신의 마음으로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연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더욱 걱정하실 것 같았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호탕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개방 체질이에요. 너무 염려들 마세요.”

두 부부와 운 노인을 비롯해 여러 하인들과 차례차례 어느 정도 인사가 마무리 돼 가는 것을 보고 녹의를 입은 녹정 분타주가 말했다.

“자자… 이별은 짧을수록 좋다고 했으니 길을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 염려 마시고 나중의 멋진 모습을 상상하고 계십시오.”

“분타주님, 1년에 한 번이라도 집에 보내주시지 않으시렵니까?”

화 부인이 안타까움에 눈물이 가득한 채 물었다. 약속된 아침 시간에 이른 녹정 분타주가 말하길 5년 동안은 얼굴을 보기가 힘들 것이라 말했기 때문이었다.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뼈를 깎는 인고의 나날이 있어야만 합니다. 5년이라는 시간도 사실 길다고 볼 수가 없지요. 그러니 너무 심려 마시고 넉넉히 기다리십시오. 첫째 아드님이 속한 무당파에서도 비슷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둘째 영이는 큰아들 숙과는 차이가 나기에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을…….

“자, 그럼 이만 모두 들어가십시오. 먼 길을 가야 하니 여기서 인사를 마치겠습니다.”

녹정 분타주는 공손히 융을 한 후 표영을 등에 업고 신법을 발휘해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굳이 걸어갈 수 있음에도 신법을 발휘해 보임은 무공을 보여줌으로써 안심을 시키고자 함이었고 오랫동안 뒷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점점 멀어지며 아들의 뒷모습이 점이 되고 사라질 때까지 화 부인은 눈을 뗄 줄을 몰랐다.

새가 마치 지상을 낮게 나는 것만 같았다. 등에 업혀 사물이 빠르게 뒤로 밀려나는 것을 느리며 표영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오호, 대단한걸요. 아저씨가 지금 달리는 건지, 우린 가만히 있는데 풍경이 빨리 지나가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혹시 아저씨, 새[鳥] 아니에요?”

“하하하하… 그놈 참…….”

녹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신법을 더욱 빨리해 앞으로 나아갔다. 벌써 세 시진(약 6시간)째 달리고 있는 것이었으나 녹정 분타주의 숨결은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녹정은 청해성의 동쪽으로 달려왔는데 어찌나 빨랐는지 어느덧 청해성과 감숙성의 경계선까지 이르고 있었다. 대충 위치를 파악한 녹정은 산길에서 멈춰 표영을 내려놓았다.

“벌써 도착한 건가요?”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숲만 우거져 있을 뿐 마을이나 사람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하, 거의 가까이에 이르렀단다. 영아, 너는 거지가 될 자신이 있느냐?”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했지만 표영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럼요, 거지가 별건가요. 다른 것은 몰라도 거지라면 자신 있다고요.”

“다행이구나. 너에게 해줄 중요한 말이 있어 이곳에 멈추게 되었다.”

표영은 바닥에 앉자 벌써부터 잠이 오는지 눈이 게슴츠레해지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아까는 주위를 구경하느라 잠자는 것을 깜박했는데 땅에 내려서자 잠이 몰려온 것이다.

“아, 잠 온다. 피곤하니까 빨리 말씀해 보세요.”

녹정은 앞으로 얼마나 험난한 길이 놓여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속 좋게 하품을 해대는 표영이 귀엽기도 하고 조금 안타깝기도 했다.

그는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강호란 참으로 험난하다 할 수 있다. 나는 너를 이곳에 두고 떠날 참이다. 널 개방으로 데려갈 수도 있지만 그것은 너무 쉬운 일이 아니겠니?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고 잘 찾아보면 개방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그들을 만나 스스로의 힘으로 개방에 들어가도록 하거라. 나는 급한 일이 있어 달리 가봐야 할 데가 있단다. 무슨 말인지 알겠니?”

표만석과 화연실이 들었다면 기절초풍할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표영은 별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것도 재밌겠는데요, 흐흐흐. 거지가 되는 거야 뭐 특별할 것이 있겠어요. 잠 잘 자고 밥 잘 얻어오면 되는 거겠죠.”

흐릿한 눈으로 청광을 흘리며 표영은 미소 지었다.

“좋다. 그럼 이 아저씨는 여기서 너와 작별을 해야겠구나. 우선 감숙성의 장령 지역으로 가도록 하여라. 다시 만나기는 어렵겠지만 멀리서 널 지켜보마.”

아마 다른 사람 같았으면 펄쩍 뛰며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따졌을 것이다. 여기에 두고 갈 것이라면 다시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하든지 할 것이었고, 그것도 아니라면 개방에 들어갈 만한 추천 서신이나 증표 같은 것이라도 달라고 했으리라. 하지만 표영은 여유가 넘쳤다.

“피곤하실 텐데 여기서 좀 주무시고 가시지 그러세요. 저도 이제 막 잠 잘 참인데.”

“허허허…….”

녹정은 표영의 순진무구한 말에 그저 너털웃음을 날렸다.

“급한 일 때문에 그럴 수가 없겠구나. 그럼 너의 앞길에 행운이 함께하길 빌마.”

이미 옆으로 누워 팔베개를 하고 표영은 손을 흔들었다.

“그래요. 바쁘신 것 같은데 어서 가보세요. 개방에 들어가는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안녕히 가세요.”

여유있게 손까지 흔드는 표영을 보고 녹정은 미소를 짓고 신형을 날려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언덕을 넘어서자 그곳엔 청의를 입은 이가 서 있었다. 그는 바로 표가장에 세 가지 화와 한 가지 복에 대해 이야기했던 청의인이었다.

“어서 오게, 녹운신. 수고가 많았지?”

“수고랄 게 있나, 청운신. 근데 그 아이 너무 순진하더군. 험한 세상을 잘 헤쳐 나갈지 모르겠어.”

“하하, 걱정할 것 있겠나. 대천신께서 이르시길 만성지체를 타고난 아이라 재앙이 닥쳐도 곧 복으로 바뀔 것이라 하지 않으셨나. 게다가 화 부인의 정성 어린 기원으로 더 큰 복을 받았으니 우리가 염려할 일은 없을 것이네.”

“아무래도 그렇겠지. 게으르긴 해도 정이 가는 녀석이야. 이제 우리의 할 일은 여기서 끝난 것 같군.”

청운신과 녹운신이 이야기를 나눌 때 그들의 귓가로 한 목소리가 들렸다.

-청운신, 녹운신, 고생이 많았다. 이제 돌아오거라.

“저희가 한 일이 무엇이 있겠나이까. 모든 것이 대천신님의 은덕일 뿐입니다.”

둘은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고 푸른 빛줄기와 초록 빛줄기가 되어 하늘로 솟아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