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6장 (7/199)

 # 6

6.

‘정말이로구나. 진인이 말씀하신 시간에 정확히 도둑이 들다니……. 그분이 아니었다면 오늘 표가장은 큰일을 치를 뻔했구나.’

두 도둑놈의 몸놀림을 보고 있자니 더욱 귀인에게 감탄하는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곧 두 부부는 귀인이 걱정되었다. 직접 상대하시겠다고 하였으나 도둑들의 무공이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것임을 확인했으니 혹여 불상사가 나지 않을까 염려한 것이었다.

추룡쌍비 형제가 슬금슬금 발걸음을 옮기며 방 쪽으로 향하려 할 때였다.

“허허허, 밤손님께서 납시었구려.”

“헉……!”

두 형제는 갑자기 들려온 여유 있는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처마 그림자에 파묻혀 있는 사람의 그림자에게서 나온 소리임이 분명했다.

‘이런, 일이 꼬여 가는구나. 표가장에 고수가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둘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목소리의 얼굴을 확인하곤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다, 당신은…… 바로…… 그……!”

운비와 천비는 눈을 달처럼 크게 뜨고 더듬거렸다. 나타난 이는 바로 표가장에 잠입하라고 시킨 괴인이었던 것이다. 50대 중반의 청의인, 그리고 그 얼굴……. 분명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시켰고, 그는 왜 이곳에 와 있단 말인가. 기가 막혀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천비는 막 ‘당신이 이곳에 오도록 시켰지 않소’라고 말하려 했으나 어깨 쪽이 뜨끔해지며 입만 뻥긋거릴 뿐 말이 되어 나오진 않았다. 둘 다 이미 아혈이 짚힌 것이다. 그들의 귀로 청의(靑衣) 괴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쉽게 돈을 벌기 위해 이런 짓을 하는 것이오!”

추룡쌍비는 부르르 떨었고 눈물이 마구 쏟아지려 했다.

‘뭣이 어쩌고 저째! 당신이 시켜놓고 이제 와서 훈계하면 우리보고 어쩌란 말이냐, 젠장.’

‘아무리 무공이 높다 해도 이거 정말 너무하는 거 아냐.’

청의인의 말이 이어졌다.

“표 장주는 인근에 그 덕이 자자하여 많은 사람들이 흠모하고 있건만, 그대들은 어찌하여 그 덕을 알지 못하고 이곳에 수고로움을 끼치려 하는가. 부족한 재주지만 내 그대들에게 본때를 보여 무서움을 알게 하여야겠소.”

청의인은 오른손을 뻗어 두 사람을 가리킨 후 말했다.

“떠올라라.”

그러자 두 형제는 힘없이 공중으로 지붕 높이만큼 솟아올랐다.

‘허걱! 말도 안 돼,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이냐.’

‘이렇게 허무하게 우리 형제가 죽어가는구나.’

5장여(약 15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손짓 한번에 두 장정의 몸을 떠올리는 것이니 심장박동수가 불에 소금을 집어넣었을 때 튀어 오르듯 했다.

추룡쌍비가 경악할 때 지켜보는 표만석, 화연실 부부 또한 입을 함지박만 하게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아까까지 염려했던 것은 정말 쓸 데 없는 걱정일 뿐이었다.

‘귀인은 무공 또한 하늘과 같구나.’

화연실도 기쁨에 겨웠다.

‘아…… 나의 기원 드림이 결코 헛되지 않았구나. 이처럼 큰 은혜를 입다니…….’

그렇게 방 안에서 놀라고 있을 때 청의인이 다시 외쳤다.

“돌아라!”

‘돌아라’라는 말에 운비와 천비는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떨어지면 그대로 이루어지니 앞으로 될 일이 갑갑했던 것이다. 둘은 말을 못하게 되었으므로 손짓 발짓으로 사정해 보았으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머리가 아래로 급격히 떨어지다가 다시 솟아오르며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어찌나 빨리 도는지 자신들이 팽이로 변신해 버린 것만 같았는데 더 미칠 일은 한쪽으로만 도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뚝 멈추었다가 다시 반대로 씽씽 도는 바람에 속이 뒤집어지고 눈알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었다.

“멈춰라!”

청의인의 말이 떨어지자 비로소 둘은 회전을 멈추었고 서서히 지면으로 내려섰다. 하지만 둘은 너무 어지러워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술 취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다가 쓰러지고를 반복하다가 간신히 정신을 수습했다.

“내 오늘 너희의 목숨을 취하진 않겠으나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도록 하라, 알겠느냐?”

“아, 알겠습니다.”

추룡쌍비 형제는 의식하지 않고 부지불식간에 입을 연 것이었는데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어느새 아혈이 풀린 것이다.

“좋다, 내가 셋을 셀 동안 떠나도록 하라. 머뭇거렸다간 반성치 않은 것으로 간주하여 다시금 혼쭐을 내주겠다. 하나, 둘…….”

둘을 세기도 전에 어지러운 몸을 이끌고 두 형제는 담을 넘었고, 셋을 셀 때는 어느새 길을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도망치는 두 형제의 귓가로 모기만 한 음성이 들려왔다.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은 괴인의 목소리였다.

-허허, 수고했다. 나중에라도 큰 복을 받을 터이니 너무 상심하지 말도록 하라. 팔에 문신은 지워졌으니 그리 알아라.

운비와 천비는 목소리에 경악하여 더욱 힘을 내 발에 불이라도 붙은 듯 달음질쳤다.

일이 이렇게 되자 표만석과 화연실의 청의인에 대한 신뢰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진다 해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부부는 방문을 열고 달려 나갔다.

“대인, 참으로 감사합니다. 세 번째 화는 어떤 일인지 들을 수 있겠습니까?”

“허허허… 그 문제는 당장 급한 일이 아니니 천천히 말씀을 드리기로 하지요. 밤이 늦었으니 두 분은 이제 들어가 쉬십시오. 저도 처소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방금 전까지 놀라운 무위를 드러낸 사람 같지 않은 참으로 소탈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다음 날이 되어 청의인은 잠시 다녀올 데가 있다고 하며 표가장을 나섰다. 잠시라고 하여 마음을 놓고 있던 표만석은 귀인이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부인과 함께 마음을 졸였다. 세 번째 화에 대해 듣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떠나버린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러웠다.

“왜 이리 늦으시는 걸까.”

“영이의 만성지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드리려고 했는데 돌아오지 않으시면 어떡하죠?”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 봅시다, 부인.”

표만석은 부인을 위로하는 말을 했지만 그의 얼굴엔 부인보다 더한 초조함이 배어 있었다.

청의인이 돌아온 것은 다음 날 이른 아침이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부부는 허겁지겁 나서며 반갑게 그를 맞았다.

“급한 일이 있으셨나 봅니다.”

“저희는 떠나신 줄 알고…….”

청의인은 두 부부의 퀭한 눈과 거칠어진 피부를 보며 공손히 말했다.

“어찌 제가 그냥 떠날 수 있겠습니까. 말을 꺼냈으니 그에 대한 답도 드려야지요. 두 분을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세 번째 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천기를 살피느라 그만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습니다.”

표만석과 화연실은 귀인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밤을 새워 천기를 살폈다는 말에 모든 피곤이 사라지는 듯했다.

“안으로 드시어 말씀을 나누시지요.”

“네.”

탁자에 앉자 청의인이 입을 열었다.

“세 번째 화(禍)란 장주님의 둘째 아드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말에 두 부부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꼭 화(禍)에 대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아들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고자 했던 터라 더욱 그러했다.

“…… 둘째 아드님은 만성지체를 타고났습니다.”

이제까지 집안에서도 만성지체에 대한 이야기는 운학 노인을 제외하고는 비밀로 해온 터였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둘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천기가 괴이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아드님을 방치해 두신다면 앞으로 5년을 넘기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화입니다.”

화연실이 경악하듯 물었다.

“5년을 넘기기 힘들 것이란 말씀은 설마…….”

그녀는 차마 그 뒷말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청의인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하신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너무 절망하지 마십시오. 다행히도 벗어날 방법이 조만간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꿀꺽…….”

두 사람은 침을 넘기는 소리로 말보다 더한 반문의 뜻을 보냈다.

“원래는 걸인의 삶이나 혹은 천한 삶을 살아가면 만성지체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상황이 악화되어 그렇게 하지 않을 시엔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야 말았습니다.”

꿈속에서 대천신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던 화연실이었으나 청의인의 말은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껏 보여준 두 가지 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기에 그 신뢰함이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상태였다.

“구체적으로 가르침을 주십시오.”

화연실의 말에 청의인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열흘 후에 거지와 관련 있는 한 분이 이곳으로 찾아올 겁니다. 그때 그에게 아드님을 맡기십시오. 그렇게 되면 분명 아드님의 목숨은 구함을 얻을 것이며, 또한 나중에 크게 이름을 떨칠 수도 있을 겁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저는 말씀만 해드릴 뿐 모든 결정은 두 분이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그 일은 첫째 아드님에 대한 것으로 사흘 안에 무당파로부터 기별이 당도할 테니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시면 됩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말에 두 부부가 아무런 말이 없이 멍해 있자 청의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는 이만 작별을 고할까 합니다. 사실 이곳에 너무 많이 지체한 것 같습니다. 장주님과 부인께서 워낙 각별히 대해주시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낼 수 있었습니다. 부디 이곳에 큰 복이 임하길 바랍니다.”

“귀인께서는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하하하……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 흘러서 갈 뿐이지요. 언제 또 인연이 닿는다면 뵈올 날이 있지 않겠습니까.”

청의인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후 방문을 열고 나섰다.

황급히 뒤를 따라나선 두 부부는 일순 어리둥절했다. 방금 나간 귀인이 사라진 것이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대문 밖까지 나가 좌우를 살펴보았으나 먼발치에도 귀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기인이로구나.”

표만석은 못내 아쉬운 듯 시야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고, 구름 한 점이 그들 머리 위를 지났다.

제6장 최고의 인재로소이다

표만석과 화연실은 심각한 표정으로 앞에 높인 찻잔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탁자 건너 맞은편에는 녹의(綠衣)에 군데군데 고의로 꿰맨 듯 기운 자국이 난 옷차림을 한 중년인이 진지한 낯빛으로 앉아 대답을 기다렸고, 옆 좌석엔 표영이 곧 잠이 들 듯 눈을 끔벅거리고 있었다.

중년인이 기다리는 대답이란 표영을 개방 제자로 받아들이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우연히 길을 지나다 자제 분을 보았습니다. 저는 한눈에 이 아이가 앞으로 크게 될 인재임을 알아보았습니다. 부디 무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아드님을 개방으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자신을 감숙성의 분타주 녹정(綠精)이라고 소개한 중년 거지는 눈에 정광이 번뜩이고 기백이 넘쳐남이 한눈에 보기에도 고수의 풍모가 물씬 풍겨났다. 귀인이 떠난 후 정확히 열흘째 되는 날이다. 귀인의 말을 상기해 보건대 찾아온다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임이 분명했다.

“열흘 후에 거지와 관련 있는 한 분이 이곳으로 찾아올 겁니다. 그때 그에게 아드님을 맡기십시오. 그렇게 되면 분명 아드님의 목숨은 구함을 얻을 것이며, 또한 나중에 크게 이름을 떨칠 수도 있을 겁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귀인의 음성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게다가 귀인의 말대로 삼 일째 되던 날 무당파에서 기별이 날아왔는데 그 내용인즉, 첫째 아들 표숙이 옥영(玉影) 관문을 통과하여 무당의 진산절예를 계승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훌륭한 인재를 무당에 보내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내용이었다.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귀인의 말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개방고수의 방문, 표영이 운학 노인과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하는 도중 함께 만나 장원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두 부부는 귀인의 말대로 개방에서 찾아온 것에 안도하는 한편,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분타주께서 보실 때 정녕 제 아들이 개방에 적합한 인물로 여겨지십니까? 아들 녀석은 게으르기 그지없어 오히려 짐만 지우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분타주 녹정이 껄껄껄 시원하게 웃은 후 말했다.

“자제 분은 기재 중의 기재입니다.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인 겁니다. 먼저 아드님의 깊숙이 감추어진 저 눈빛을 보십시오.”

그는 손을 들어 표영의 눈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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