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8장 (9/199)

 # 8

8.

세상모르고 잠들었던 표영이 눈을 뜬 것은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였다.

“어, 내가 이것밖에 자지 않았나? 허허허.”

어제 정오에 잠들었다가 하루를 꼬박 지내고 오후가 된 것이었으나 표영은 같은 날 정오에 잤다가 같은 날 오후에 일어난 것으로 생각했다.

“벌써 내가 이렇게 부지런해졌단 말인가? 어머니께서 기뻐하시겠는걸.”

씨익 웃으며 표영은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그럼 이제 서서히 개방으로 가볼까.”

자리를 털고 몇 걸음을 옮길 때였다.

“이보게, 소형제. 같이 가세.”

30대 중반의 거지 차림의 사내가 허겁지겁 달려오며 표영을 불렸다. 표영은 그가 거지임을 알고 절로 반가운 마음이 일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거지님이시로군요. 어서 오세요.”

중년의 거지는 친한 척 옆에 앉았다.

“아, 거참. 선선한 게 낮잠 자기 딱 좋은 날씨지 않나?”

표영은 역시 거지라서 그런지 말이 좀 통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하하, 역시 그렇죠?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지만 여기서 잠시 드러누워 이야기를 나누시죠.”

“그럴까?”

표영이 팔을 머리 뒤로 베고 유유히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눕자 중년 거지도 표영 옆에 벌러덩 하늘을 향해 누웠다.

“그런데 자네 눈은 참 특이하게 생겼군. 어디 아픈 데라도 있는 건가?”

“아프긴요. 전 어렸을 때부터 이랬는걸요.”

“그래? 그럼 다행이군. 근데 자넨 어디로 가는 길인가. 보아하니 귀한 집 자제인 것 같은데 혼자서 길을 가고 있는 겐가?”

“저는 앞으로 거지가 되려고 감숙성 쪽으로 가는 길이에요.”

중년 거지는 의아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려 표영을 바라보았다. 곱상한 얼굴에 새하얀 피부를 가졌지만 눈동자 주위가 푸르스름한데다가 말하는 게 어수룩해서 혹시 바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지가 되려고 한다…….”

그는 자세히 표영을 살폈다. 값비싼 목걸이에 고운 비단 옷, 그리고 옆에 놓아둔 두툼한 행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침을 꿀꺼덕 삼켰다.

‘이 녀석은 바보인 것 같으니 적당히 속여 넘겨야지.’

“이보게, 자넨 거지가 된다고는 하지만 차림새를 보아하니 거지가 되긴 어려울 것 같네.”

중년 거지의 눈이 탐욕스럽게 변한 것도 모른 채 표영은 순진하게 물었다.

“어렵다고요? 어라,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럼 거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자네 목에 걸린 목걸이를 그대로 차고 갔다간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 게야. 그건 나한테 주는 게 어떤가? 사실 나는 지금은 거지지만 이젠 청산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거든.”

표영이 듣자하니 말이 그럴싸했다.

“정말 그렇군요. 아, 이거 거지님을 뵙지 않았다면 아주 큰 실수를 할 뻔했네요.”

그러더니 목걸이를 풀어 중년 거지에게 건넸다.

“자, 여기 목걸이 받으세요. 저는 앞으로 개방으로 가면 뭐 이런 것 필요 없을 테니 좋은 데 쓰도록 하세요.”

표영은 애초에 삶 자체가 재물에 대한 욕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기에 아깝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년 거지는 설마 진짜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가 이리도 쉽게 얻게 되자 눈이 휘둥그레져서 목걸이를 받아 쥐고 입이 찢어져라 좋아했다. 그의 눈은 재물로 인해 탐욕스러움을 여실히 드러낸 채 번들거렸다.

‘이 녀석 정말 바보였구나. 오늘 정말 운이 좋구나. 이건 족히 금 한 덩어리의 값어치는 될 것 같지 않은가.’

“흐흐흐, 고맙구나.”

“고맙긴요. 제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데요.”

벌떡 몸을 일으킨 거지는 이번에는 옆에 놓아둔 봇짐에 눈이 갔다.

“이보게, 자네 옆에 놓인 봇짐 안에는 돈이 꽤 들어 있는 것 같은데 그것도 굳이 필요할까? 거지란 본래 구걸을 하며 하루하루 사는 것이니 돈 같은 것은 애초에 지닐 필요가 없지 않겠나?”

중년 거지의 눈은 욕심에 이글이글 타오를 지경이었다. 더불어 수틀리면 주먹다짐이라도 할 양으로 두 손을 매만졌다.

“음… 이건 어머니께서 가는 길에 쓰라고 하신 것인데… 어떻게 하지? 좋아요, 거지님 말씀대로 어차피 저는 앞으로 거지가 될 텐데 이런 것이 무슨 필요 있겠어요. 자, 받으세요.”

“흐흐… 참 똑똑한 친구로군. 자넨 필시 훌륭한 거지가 될 수 있을 것이네.”

“훌륭한 거지라……. 그거 듣기 좋은걸요. 하하하하…….”

‘이 녀석은 정말 바보 중에 최고 바보로구나. 세상에 이런 바보가 어디 있을까.’

그는 속으로 비웃고 겉으로는 다른 말을 했다.

“흐흐……. 내가 원래 틀린 말은 하지 않는 사람일세.”

그는 주먹을 어루만지던 손을 풀고 얼른 봇짐을 받아 들었다. 겉에서 손으로 매만져 보니 은전이 제법 많게 느껴졌다.

“아, 거지님 말씀대로 하고 나니 정말 홀가분하네요.”

하지만 중년 거지는 아직도 뭔가 미련이 남아 있는 듯 표영을 바라보았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해 표영이 입고 있는 옷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욕심이란 이렇듯 끝이 없는 것인가, 하나를 가지면 다른 것이 부럽고 자신의 큰 재물보다 남의 작은 재물이 더 좋아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옛말에 이르길 문둥이 콧구멍에 박힌 마늘씨도 파먹겠다, 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닐까.

“흐흐… 이보게… 자네 옷도 조금 문제가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 옷도 나에게 주는 것은 어떨까. 자넨 거지니 차라리 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겠나?”

모든 말이 표영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말들뿐이었다.

“하하하, 정말 섬세한 분이시네요. 하마터면 제일 중요한 것을 빠뜨릴 뻔했는걸요.”

원래 표영은 집에서도 옷 갈아입는 것을 아주 귀찮게 여기고 지냈던 터였고 새 옷은 쉽게 때가 탈 것이라 더러운 옷을 입는다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편해졌다.

“자, 옷 받으세요. 그리고 저는 거지님의 옷을… 하하하.”

중년 거지도 신바람이 났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녀석 덕에 나도 이제 세수하고 머리만 감는다면 어엿한 부자로 행세할 수 있겠구나.’

중년 거지의 체격이 표영과 비슷했기에 옷을 바꿔 입었지만 둘 다 크게 어색하지는 않았다.

“야, 정말 멋진데요. 냄새도 아주 구수하구요. 으흐흐…….”

다 떨어진 누더기 옷을 입고 두 팔을 활짝 펼쳐 보이며 빙글 돌기까지 하며 좋아했다. 여기저기 냄새를 맡아본 표영은 크게 만족했고 중년 거지 또한 탐욕스런 눈길로 걸쳐진 비단옷을 바라보며 기쁨에 겨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일방적인 착취라 할 수 있지만 착취당하는 쪽이 더 기뻐하고 있었다. 중년 거지는 이제 마음이 급했다.

‘내 이 녀석에게 취할 만한 것은 다 취했으니 속히 이곳을 떠나야겠다. 바보 녀석이 마음이 변할지도 모르잖은가.’

그는 매우 급한 일이라도 생긴 양 다급한 기색으로 말했다.

“이보게, 소형제. 내게 급한 일이 있는 것을 깜박하고 있었군. 여기서 이만 작별해야겠네. 당부하건대 부디 소원을 이루어 꼭 거지가 되게나.”

‘흐흐흐… 이 바보는 이미 알거지가 되었음을 알고 있을까?’

“하하하, 그러시군요. 그럼 전 못 잔 잠을 더 보충하고 길을 떠날 테니 먼저 가세요. 오늘 이렇게 훌륭한 거지님을 만난 것도 천복을 받은 것 같아요.”

표영은 고개 숙여 인사까지 올렸고 중년 거지도 흐뭇하게 웃으면서 서둘러 길을 떠났다.

“자, 그럼 해도 저물어가고 밤이 되어가는 것 같으니 잠을 자볼까.”

해는 중천에 솟아올라 있을 뿐 어디에도 저무는 기색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표영의 눈에는 정오가 조금만 벗어나도 이미 그것은 해가 저물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햇살이 따가워 나무 그늘 쪽으로 이동한 후 표영은 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중년 거지는 서둘러 언덕을 넘다 뒤돌아 표영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세상엔 참 별의별 미친놈에 바보들이 있다더니 사실이었구나. 좋은 집을 놔두고 거지가 되겠다니, 하지만 너 같은 멍청이가 있기 때문에 나 여방만(呂放晩)의 인생이 활짝 피는 것이 아니겠느냐.’

중년 거지 여방만은 언덕을 넘으며 행복한 꿈에 젖었다. 천지간의 모든 것이 밝게 빛나고 아름답게 보여지는 순간이었다.

기쁨에 가득 찬 여방만이 불과 몇 걸음이나 옮겼을까, 귓전에 낯선 시비조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이. 형씨, 옷 좋은데. 요즘 거지는 비단 옷을 입고 다니나 보군.”

여방만은 흠칫 놀라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앞쪽에서 흉악한 몰골의 세 남자가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좋아하는 통에 앞에서 다가온 흉악한 몰골의 세 사람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들의 옷차림은 특별히 누구라고 밝히지 않더라도 ‘나 산적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왜, 왜 그러시오?”

방금까지 탐욕 속에서 꿈을 키우던 중년 거지 여방만의 목소리가 두려움으로 덜덜 떨렸다. 표영을 만나기 전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라면 산적을 만나더라도 전혀 거리낌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값진 보물을 지니고 있다 보니 그걸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온갖 걱정과 번뇌가 교차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은 이래서 생긴 것이리라.

산적 중 구레나룻이 멋있게 자라고 호랑이 눈을 가진 중년인이 비웃음을 던졌다. 이 비웃음은 아까 여방만이 표영을 바라보며 짓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와 똑같은 비웃음을 자신이 받게 될 줄이야 그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클클클… 왜 그러는지 몰라서 묻나.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원. 날 봐, 뭐 느껴지는 것 없어? 나 산적이야, 산적. 좋은 말로 할 때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내놓는 게 좋을 거야. 행색을 보아하니 꽤나 부유하게 사는가 보군. 물론 얼굴은 딱 거지새끼지만 말야, 으하하하하!”

한바탕 깔깔거리던 산적은 다시 얼굴을 굳히고 말을 이었다.

“음… 가진 것을 고스란히 내놓도록 해라. 그럼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갈비뼈 한 대만 부러뜨리는 것으로 끝내주지.”

갈비뼈 한 대가 뉘 집 개 이름인 양 구레나룻 산적은 굉장한 선심이라도 쓰는 듯 검지를 세워 올린 후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 곁에 있는 산적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형님, 갈비뼈 하나라뇨. 그러다가 우리 명성에 흠집이 생기는 일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적어도 세 개 정도는 되어야죠,”

“맞습니다, 형님. 우리 청해삼마(靑海三魔)의 명예도 생각하셔야죠.”

두 동생의 말을 듣자 두목 산적은 심각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음… 그래, 아우들아. 그걸로는 아무래도 좀 약하겠지? 그래도 명색이 청해삼마인데 말이야.”

이들의 목소리는 자부심으로 완전 무장한 상태였다. 무림에 대한 사정을 잘 모르는 누군가가 이들 청해삼마가 비분강개하며 자신들을 소개하는 말을 들었다면 마치 이들이 무림을 쩌렁쩌렁 울리는 마두일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은 이곳 청해성 고호산(孤虎山) 부근에서만 근근이 활동하는 보잘것없는 녀석들일 뿐. 청해삼마라는 것도 그저 스스로 지어낸 것에 불과했다. 그들이 명예 운운하며 열을 올릴 때 여방만이 말했다.

“이, 이건 내 물건이오. 왜 내가 당신들에게 이것을 줘야 한단 말이오.”

“훗, 이보게. 인생은 말이야. 돌고 도는 거야. 그리고 돈도 돌고 도는 것이라구. 오늘의 운세를 보니 자네의 재물은 우리한테 돌아오도록 돼 있더군.”

“킬킬킬…… 형님, 언제 보셨수? 눈도 빠르시구려.”

“킬킬킬…… 형님, 다음엔 함께 좀 봅시다 그려.”

여방만은 이제 막 오른 희망봉을 이렇게 쉽게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방법은 하나, 도망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리에 실어 언덕 너머로 뛰었다. 이건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다 뽑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탐욕에 가득 찬 거지의 연약한 발걸음은 보잘것없었다. 강호에서 잔뼈가 굵은 세 명의 산적을 따돌리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얼마 가지도 못해 목덜미가 잡힌 여방만은 집단 구타가 무엇인지 즉시 체험해야만 했다.

“이 자식아, 네놈이 도망을 가. 오늘 죽어봐라. 간다, 토극권(吐極拳)!”

“청해삼마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더냐. 왕룡십팔장(王龍十八掌)!”

“봉마장법(鳳魔掌法)이다, 이얍!”

퍼퍽- 퍽퍽- !

약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 동안 엉터리 같은 초식 이름을 남발하며 폭력을 행사하던 산적들은 목걸이와 봇짐을 챙기며 득의한 웃음을 지었고 여방만은 갈비뼈 세 대가 부러지고, 왼쪽 어깨가 탈골되고, 발목이 부러진 채로 바닥에 고꾸라진 채 숨만 깔딱거렸다. 몇 발자국 떼보기도 전에 상황이 이렇게 급반전될 줄 어찌 알았으리요.

“아, 역시 우린 말이야, 너무 마음이 착해서 탈이란 말이야.”

셋 중 제일 형님 되는 산적의 말에 두 산적은 클클거리더니 여방만의 가슴을 발길로 툭툭 찼다. 그러다 한 산적이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형님, 아까 보니 언덕 너머에 웬 놈이 나무 밑에서 잠자고 있던데 어떻게 할까요? 우리 눈에 걸린 놈을 곱게 보내준 데서야 청해삼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전례(前例)를 남기면 안 되는 법이거든. 가서 우리의 무서움을 보여주자.”

산적들은 걸음을 옮겨 표영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뭐야, 이거. 새파랗게 젊은 거지잖아. 어떻게 하죠, 형님?”

산적 두목은 심각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얼굴이 숙연하게 변해 침묵을 지켰다, 워낙에 진지하다 보니 두 동생 산적들은 말 한마디조차 붙이기 힘들었다.

잠시 후 두목이 입을 열었다.

“가만 둬라. 거지를 패봐야 무엇이 나오겠느냐. 게다가 거지를 함부로 팼다가는 옛날부터 죄받는다고 했어. 알겠냐? 너희들도 앞으로 명심해라. 이런 놈들은 불쌍한 놈들이야. 잠들어 있는 이놈 얼굴을 봐라. 왠지 불쌍해 보이지 않냐. 어린놈이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것이겠지.”

그는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 후 비장한 얼굴로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린 이놈처럼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해야 돼. 자, 이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이놈을 위해 기원해 주자.”

세 명의 산적은 잠시 표영을 둘러싼 채 눈을 감았고 두목 산적이 대표로 중얼거렸다,

“하늘과 땅이시여, 이 거지를 불쌍히 여기시고 날마다 굶지 않도록 일용할 양식을 푸짐히 주시옵고 배고픔으로 인해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우리도 꽤나 어렵게 살지만 이놈은 장난 아니게 불쌍한 놈인 것 같습니다. 도우소서∼ 끝. 앗, 추가로 몇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요. 오늘 확실한 건수를 챙기게 되었음은 이 모든 것이 하늘의 은덕이며 감사함입니다. 말로 감사한들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두목 산적은 그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는지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 머리를 박박 긁더니 말을 이었다.

“………진짜 끝.”

“동감입니다.”

“동감입니다.”

이들은 가끔씩 하늘을 향해 기원을 올려보았는지 꽤나 호흡이 잘 맞았다. 눈을 뜬 산적들은 다시 한 번 표영을 불쌍하다는 듯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봇짐에 은전이 있는지 살펴봐라.”

둘째 산적이 여방만에게서 빼앗은 봇짐을 뒤지다가 황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야∼ 상당히 많은걸요. 운수대통입니다, 형님.”

그의 손엔 가득 은전이 쥐어 있었고 아직도 많은 은전이 봇짐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킬킬, 우리가 다 하늘을 향해 기원한 덕분이지.”

“하나만 주고 갈까요?”

“하나 주면 정 없다. 두 개 넣어줘라.”

산적들은 은전 두 개를 꺼내 표영의 품에 잘 갈무리해 준 후 길을 떠났다,

마음을 비운 표영에겐 화가 복으로 바뀌고 탐욕이 들어간 여방만은 화를 당했으니 참으로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만일 여방만이 표영의 옷을 바꿔 입지만 않았더라도 오히려 불쌍히 여김을 받았을 테고 표영의 갈빗대가 부러졌을 텐데 말이다.

“아, 잘 잤다∼ 개운한걸.”

표영은 부스스 눈을 뜨며 기지개를 활짝 켰다. 자는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꼬박 만 하루를 꿈나라에 가 있다가 이제야 깨어난 것이다.

“자, 이젠 서서히 길을 떠나볼까.”

표영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감숙성 쪽으로 향했다. 한편 어제 산적들에 의해 몰매를 맞은 여방만은 언덕 너머에서 맥없이 혼절해 있었다. 사실 어제 저녁. 밤새 10장여(약 30미터) 떨어진 언덕 너머에서 여방만은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러댔었다. 그에게 있어 유일한 희망은 자신이 농락한 어수룩한 바보 녀석뿐이었기에 오직 속히 깨어나 주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표영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기에 좌절 또한 그에 비례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그의 목소리가 벼락 치는 소리보다 컸다면, 혹은 그가 표영의 모친 화연실의 자애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더라면, 땅을 기는 수백만 마리의 개미를 조종해 물어뜯게 할 수 있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목을 놓아 부른들 모두 허사인 것이다.

여방만으로서는 자신이 바보 녀석의 옷까지 뺏어 입은 것에 앙심을 품고 바보가 억지로 코를 고는 시늉을 하며 놀려먹고 있는 줄로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목이 쉴 때까지 부르다 지금은 힘이 다 빠져 혼절한 상태였다. 하지만 정작 표영으로서는 둔덕에 가려져 있는 그를 볼 수 없는 터라 그저 여유로이 발길을 옮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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