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5.
제5장 낯선 방문자
“계시오.”
한참 마당을 쓸고 있던 표가장의 가복(家僕) 봉운은 작지만 고막을 파고드는 소리에 적이 놀랐다. 나지막한 소리였지만 대문 밖에서 들려온 음성은 귓가에 또렷이 남았고 계속 여운을 주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누가 찾아온 것일까?”
봉운은 빗자루를 세워놓고 혼잣말을 하면서도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뜻하지 않는 손님이라도 반갑게 맞이하라고 늘 말씀하신 주인마님의 가르침을 기억했다.
대문을 열고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니 청의(靑衣)를 걸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나이가 지긋한 사내었다. 오랫동안 표가장에서 지낸 봉운은 여러 관원들과 학자들을 보아왔기에 한눈에 이 사내가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일로 오신 뉘신지요?”
공손한 질문에 청의인이 말했다.
“이곳에 상서로운 기운이 있어 그저 지나칠 수 없어 잠시 번거로움을 끼칠까 하오.”
봉운은 청의인의 용모나 하는 말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다시 공손히 말했다.
“우선 안으로 드십시오. 가주께서는 늘 말씀하시길 지나는 나그네를 잘 모시라 하였습니다.”
청의인은 그 말이 맘에 들었던지 흡족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실례를 무릅쓰겠소이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잠시 사랑채에 머물고 계시면 제가 가주님께 말씀을 아뢰겠습니다.”
봉운의 말에 표만석이 한 손으로 턱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런 말을 하셨단 말이지. 뭔가 사연이 있는 분 같으니 내 직접 만나보아야겠구나. 부인, 함께 가도록 합시다. 봉운, 너는 월향이에게 차를 준비하라 일러라.”
표만석과 화연실은 사랑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연실로서는 괴상스런(?) 꿈을 꾼 후 실망하고 있던 터였지만 이번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가닥 기대를 품었다.
사랑채로 든 두 부부는 대충 상견례를 마치고 차를 나누었다.
“귀인께서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찾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표만석이 정중히 말했다.
“귀인이라니,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미천한 재주지만 몇 가지 말씀을 드려야겠기에 염치 불구하고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귀를 씻고 경청하겠습니다.”
두 부부의 공손한 태도에 청의인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이곳을 지나다 보니 조만간 세 가지 나쁜 일과 한 가지 좋은 일이 있게 될 것을 보았습니다. 세 가지 나쁜 일이란, 첫째는 이곳의 주인이 된 표 장주님의 몸에 갑작스런 병이 찾아올 것을 말하며, 두 번째는 며칠 내로 밤손님이 찾아옴을 뜻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좋은 일이란 첫째 아드님이 큰 성취를 이룸을 알리는 기별이 올 것이라는 겁니다.”
표만석과 화연실은 놀라며 거의 동시에 물었다.
“정말이십니까? 그럼 화를 면하려면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두 부부는 첫 번째 화에 대한 이야기로 인해 미처 청의인이 세 번째 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당장에 표만석에게 병이 찾아온다는 데야 다른 것은 나중 문제였다.
“화를 면할 방법이 없다면 제가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겁니다. 너무 심려 마십시오. 표 장주님의 얼굴엔 지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오늘 저녁이 이르기 전에 증상이 나타날 겁니다. 그러니 누굴 시켜 뛰어난 명의를 준비토록 하시어 초반에 조치를 취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으니 서두르십시오.”
이런 말을 듣고서 초연해지기는 참으로 힘든 법이다. 좋은 일이란 오든 오지 않든 나중에 문제될 것이 없겠으나 화(禍)는 만일에 닥치면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안겨다 주기에 소홀히 여길 수 없는 것.
두 부부는 미심쩍었지만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무당을 불러 굿을 하자거나 액땜에 좋은 부적을 그려주며 돈을 요구했다면 당장에 쫓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의원을 부른다는 데야 손해 볼 것은 없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귀인께서는 며칠 편히 묵으십시오. 옛말에 이르길 부지중에 진인(眞人)을 영접한다 했는데 바로 저희들이 그런 복을 받은 것 같습니다.”
“감당키 어렵습니다. 장주님께서는 저녁까지는 볼일이 있으시더라도 바깥출입을 하지 않으심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후 급히 봉운이 조 의원을 부르러 갔고 표만석은 방에 있으면서도 반신반의했다.
‘내 이렇게 몸이 건강하건만 갑작스런 병이라니… 납득할 수가 없구나. 내 비록 그 앞에서는 고분고분했다만 밤이 되도록 아무 증상이 없다면 크게 모욕을 줄 테다.’
그는 혹시나 하는 염려로 여러 하인들에게 집안을 정리하는 척하면서 실은 청의인을 감시하라고 말해 두었다. 하지만 그의 의심은 그로부터 채 두 시진(4시간)도 못 돼 믿음으로 바뀌었다.
“으허헉…… 커억…… 커억……!”
큰 바위가 가슴 위에 올려 있는 것 같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얼굴은 급격히 창백해지며 비명을 질러야겠다는 마음만 있을 뿐 그저 ‘커억커억’ 소리만이 새어 나왔다. 옆에 있던 화 부인도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때를 맞춰 이제 주름이 가득한 조언참 의원이 당도했다는 것이었다.
“조 의원님,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화 부인이 다급히 조 의원을 인도했다.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방금까지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조 의원은 진맥을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로선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아무런 증세도 없었고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그런데 미리 나를 불러 이곳에 오게 했다. 음… 우선은 치료를 한뒤 천천히 물어보도록 하자.’
그는 침을 놓고 혈을 풀어주는 한편 봉운을 불러 약방문을 적어 급히 약을 준비케 했다.
“휴∼ 이제 좀 안심해도 되겠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이 날 뻔했군요.”
그 말에 화 부인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경솔한 마음으로 청의인을 홀대하고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하니 식은땀이 흘렀다.
“심장 마비 증세입니다. 어떻게 저를 부르시게 된 것인지 이야기해 주십시오.”
화 부인은 굳이 숨길 것이 없다고 여겨 청의인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들려주었다.
“…… 저희도 오늘 처음 뵈었을 뿐이랍니다. 미처 존함도 여쭙지 못했지요.”
화 부인의 대답에 조언참은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미리 장주님의 병을 예상하셨는지 참으로 대단한 분이십니다. 제가 한번 뵈어도 괜찮겠습니까?”
표 장주와 조언참이 워낙에 각별히 지내다 보니 화 부인은 조 의원을 거의 가족처럼 여기고 있었다.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겠다 여긴 그녀가 말했다.
“제가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화 부인을 따라 조언참은 사랑채로 향했다.
‘세상엔 그 능력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기인들이 참으로 많구나.’
하지만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화 부인의 표정에 죄송스러움이 가득함을 보고 조 의원은 대면하기 어려울 것임을 직감했다.
화 부인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말했다.
“하하, 화 부인은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인들을 만남에 있어서는 정한 복과 때가 맞아야 하는 법이지요. 다 저의 부족한 덕 때문이니 마음 쓰지 마십시오.”
더욱 송구스러워진 화 부인이 머리를 숙었다. 다급히 달려와 주신 데에 대한 보답으로 작은 부탁도 못 받아주었으니 말이다.
“죄송합니다. 귀인께서 번거로움을 싫어하셔서 두 번 부탁드릴 수 없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저의 평생의 기쁨이며, 환자를 돌봄은 의원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마음 쓰지 마시고 장주님이 편안히 몸조리 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십시오. 처방전을 써놓고 갈 테니 그대로 약을 지으시면 될 것입니다.”
조언참은 작별 인사를 고하고 대문을 나섰다. 그는 나서기 전 못내 서운한 마음이 이는지 사랑채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 후 처소로 향했다.
‘화 부인이 하늘을 향해 5천 번의 제사를 드렸다고 하더니 복을 받은 게로구나. 그만한 정성이니 받을 만하다 할 수 있지.’
조 의원이 떠난 뒤 표만석과 화연실 부부는 청의인에 대한 의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오히려 두 번째, 세 번째 화(禍)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마저 들었다.
저녁 시간에 화연실은 시녀들을 시키지 않고 직접 저녁상을 들였다. 생명의 은인에게 있어서 이런 예우는 큰 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표가장의 안주인이 직접 상을 들고 오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표만석이 사랑채로 들어서자 청의인은 황망히 일어서며 겸양했다.
“어이쿠, 왜 아랫사람을 시키지 않으시고 직접 상을 들고 오셨습니까.”
“귀인께는 귀인에 맞는 대접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남편에게 두 번째 삶을 주셨는데 그것을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허허허,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다 두 분이 평소에 덕을 많이 쌓아 하늘의 복을 받으신 때문이지 저의 힘이랄 것이 있겠습니까. 앞으로 이렇게 하시면 저는 당장 이 집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 저녁 같은 일은 없도록 해주십시오. 호의란 상대방이 그에 기뻐했을 때이지 부담을 주는 것은 오히려 짐을 지우는 것이랍니다.”
이 부부에게 떠난다는 말보다 더 두려운 말은 없는 것이기에 다급히 말했다.
“귀인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그러니 떠난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허허허…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 부부는 청의인과 함께 식사를 나눈 후 월향이 내온 차를 마실 때 표만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배우지 못하고 못난 사람이라 이제껏 귀인의 크신 이름도 묻지 못했습니다. 높으신 이름을 들을 수 있는 복을 주시지요.”
“보잘것없는 저의 이름이 무어 그리 중하겠습니까. 그저 구름처럼 떠도는 청의(靑衣)의 나그네일 뿐입니다.”
표만석은 다시 물어보기가 어려워 일단 그 문제는 제쳐 두고 두 번째 화에 대해 물었다.
“그 일은 그리 염려하실 것은 없습니다. 이틀 뒤 축시 초(새벽 2시경)에 도둑이 들 것이나 제가 나설 것이니 두 분은 보고만 계시면 됩니다.”
두 부부는 이제 팥으로 메주를 쑤고 콩으로 집을 짓는다 해도 믿을 정도인지라 고마움에 머리를 조아렸다.
“형님, 정말 괜찮을까요?”
표가장의 담 밑에서 키가 작고 뚱뚱한 체격의 복면인이 옆에 있는 비쩍 마른 복면인을 보고 속삭였다.
“염려 말아라. 이곳의 장주는 덕망으로는 이름이 높으나 무공에 대해선 문외한이지 않느냐. 그 밑의 가복들도 무공을 익힌 자가 없으니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마른 체구의 복면인은 뚱뚱한 복면인의 어깨를 잡고 안심시켜 주었다.
“왜 우리가 이렇게 도둑질을 해야 하죠? 정말 생각할수록 너무 억울합니다. 게다가 형님 말씀처럼 표 장주의 덕망을 생각할 때 표가장을 턴다는 것은 정녕 내키지 않습니다.”
뚱뚱한 복면인의 낮은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잔뜩 배어 있었다.
“휴∼ 내가 알 게 뭐냐. 우리의 목숨은 그의 손에 달려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그가 오늘 축시 초에 표가장에서 패물을 훔쳐 내라 했으니 그저 따르는 수밖에…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목이 열 개라도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형님 말이 맞수. 강호밥을 먹은 지 십여 년이 넘었지만 그런 고수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쑤. 그는 누구일까요? 천하제일 고수라는 천선부의 오비원이라도 그런 무공을 발휘하진 못할 게유. 그런 그가 우리 같은 하찮은 무림인에게 이따위 일을 시키다니… 지금도 그 속 내막을 알 수가 없단 말이우.”
“쳇, 어린아이가 장난삼아 던진 돌이 개구리에게는 치명적이듯 아마도 그는 조금 심심했나 보지.”
이들은 누구이기에 담 밑에서 이처럼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의 별호는 추룡쌍비(追龍雙飛)라 불리는데 단운비(端運飛)와 단천비(端天泌)로 둘은 형제 간이다.
경신술이 뛰어난 둘은 보름 전 뜬금없이 등장한 한 사람에게 괴상한 제의를 받았는데, 그것은 표가장에 잠입해 패물을 훔쳐오라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일자와 시간까지 알려주며 정확히 그 시간에 담을 넘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느닷없는 제의에 둘이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음은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곧 둘은 자신들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상대를 만나게 되었음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뒷짐을 지고 있던 상대가 피식 웃더니 허공을 계단처럼 밟으며 다가왔기 때문이다. 추룡쌍비가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몸이 굳어져 있을 때 괴이한 사내는 어느새 둘의 머리 위로 올라가 두 발로 머리를 밟고 말했다.
“여기서 그냥 죽을 테냐, 아니면 좀 더 명을 이어보겠느냐?”
이제껏 말로만 들어 왔던, 실제로는 어느 누가 있어 허공답보를 시전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던 그들이었다. 경공이라면 나름대로 실력이 있다고 자부해 왔던 터였다. 그래서 별호 또한 용을 쫓는 형제라고 하여 추룡쌍비가 아니던가.
두 형제는 머리를 밟고 있는 발에서 거의 체중이 느껴지지 않음에 다시 한 번 놀라며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이 괴이한 사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들은 다시는 밥숟가락을 들 수 없을 것이며 머리는 수박 깨지듯 바스러질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죽일 목적이었다면 죽어도 열 번은 넘게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 사람이 단번에 허공답보를 시전함은 ‘내 실력이 이 정도이니 알아서 기어라’라는 뜻인 게로구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들은 떨리는 음성으로 답했다.
“마,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냥 그때 털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허허, 바로 이야기가 통하는 걸 보니 아주 머리가 좋은 친구들이로군.”
“…….”
“운비, 천비. 너희들이 뜻을 따르지 않고 나의 시야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일 도망갈 생각이라면 지금부터 명당자리를 봐두어야 할 것이야.”
“아, 알았습니다.”
둘은 대답을 한 후 머리 위가 허전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
“증거로 팔에 문신을 새겨두겠다. 일을 마친 후에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운비와 천비는 몸을 돌려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어디에서도 괴인을 찾을 수 없었다. 운비는 언뜻 물어보지 못한 게 있어 크게 외쳤다.
“패물을 훔친 후에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허허…… 하긴 알아서 찾아오겠지…….”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나 하고 둘은 팔뚝을 걷어 문신이 있나 살폈다.
“헉…….”
거기엔 푸를 청(靑) 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언제 어떤 방법으로 옷에 가려진 팔뚝에 문신을 새겨놓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니 잠깐 꿈을 꾸었다고 생각한다거나 멀리 도주해야겠다는 생각은 엄두도 못 낼 일이 되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로군.”
둘은 보름 전의 일을 잠시 머릿속에 떠올리고 쓰게 웃었다. 세상사 별 희한한 일이 많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표가장의 패물이 유별난 보물도 아닐 것이고 그 정도의 고수라면 굳이 자신들을 부리지 않더라도 쥐도 새도 모르게 빼내올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자, 가자.”
형 운비의 말에 천비가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신형을 뽑아 올려 비조처럼 담을 넘었다.
과연 추룡쌍비라는 별호에 부끄럽지 않은 신법이었다. 발이 땅에 닿았으나 그것은 고양이가 소리 없이 착지하듯 미세한 소리만을 남겼을 뿐이었다.
하지만 두 형제는 아무도 모르게 잠입했다고 생각했으나 그들의 행동은 표만석과 화연실의 시야에 낱낱이 드러났다. 방문을 살짝 열어놓고 축시가 가까워 오자 담을 응시하며 지켜보고 있던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