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7
귀환 마교관
657화(외전 30)
쒸에에엑!
푸욱!
“크억!”
찰나지간이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그대로 엄철의 오른쪽 팔꿈치로 날아갔다.
만약 엄철이 급히 반응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오른팔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미친…!’
엄철의 눈이 뒤집혔다.
‘인질을 잡고 있는 중에도 활을 쏴?’
그가 이를 뿌드득 갈고는 그대로 검을 내질러 옹수령을 죽이려고 할 때였다.
쒸에에에엑!
“헛!”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허공을 가로지르면서 붉은 강기 수십 줄기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뻗어 오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인질로 삼은 옹수령을 피해 휘어 가면서 날아들었다.
‘말도 안 돼!’
그가 발악하듯 검을 마구 휘둘렀다.
따다다당! 푹! 푸푹!
몇 가닥의 강기는 튕겨냈지만, 몇 가닥은 그대로 요혈로 날아들었다.
“크억…! 쿠웨에엑!”
기혈이 뒤틀리면서 구토가 일어났다.
한 움큼의 피를 토한 엄철이 고개를 막 들었을 때는, 이미 사비란의 신형이 바람처럼 날아들어 그의 가슴을 발로 차는 순간이었다.
퍼억!
“크억!”
슈우우우우, 꽈앙!
그대로 포탄처럼 날아간 엄철이 커다란 나무 기둥을 부러뜨리면서 나동그라졌다.
그와 동시에.
“저놈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버려!”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기합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곧이어 숲에서 한 무리의 무인들이 우르르 나타나더니 혈휘대와 뒤섞이면서 칼부림을 시작했다.
차차창! 창! 창!
“크아악!”
“죽어랏!”
이제 막 나타난 무인들 역시 백화단이었다.
사비란이 소수 정예를 추려서 매복을 지시했고, 싸움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등가휘가 나머지 무인들을 이끌고 나타난 것이다.
엄철의 표정에 낭패감이 서렸다.
백화단 소수 정예와 싸우면서도 어려움을 느낀 그였다.
그런 만큼 백화단 전체를 상대로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에 혈휘대는 이렇게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고 싸우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은밀한 암습에 특화된 자들이었다.
살수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또 다른 것은 반드시 누군가를 죽이는 것만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뭔가를 훔치거나 정보를 빼오는 일도 도맡는다.
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나선다.
한데 이래서야….
일단 마공석은 포기하더라도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적어도 이들이 함정을 팠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백화단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들의 저력과 대응을 상부에 알릴 필요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생각을 굳힌 그가 몸을 돌리고 바닥을 찼다.
그런데 그 순간.
촤르르르르륵!
쇠사슬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촤라락! 철컥!
어디선가 날아든 사슬낫이 그의 발목을 휘어감는 게 아닌가?
“헛!”
그가 헛바람을 삼키고는 발을 빼내려는데.
휘익!
“악!”
엄철이 외마디 비명을 터뜨리고는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타닷!
마침 쇠사슬을 따라 한 여인이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그녀가 연검을 휘두르면서 몸을 날려 왔다.
취리리리릿!
연검이 뱀처럼 굽이치며 날아들었다.
까가앙!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아슬아슬하게 막아낸 엄철이 몸을 회전하려는데.
촤락!
“헉!”
발목에 묶인 사슬낫이 그를 강하게 아래로 끌어당겼다.
슈우우우욱, 꽈다앙!
그대로 바닥까지 곤두박질친 엄철은 다시 한 번 피를 토해내고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이런 제기랄…!”
잔뜩 화가 난 그가 사슬낫을 날린 석검영과 검을 휘둘러 온 연설연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엄철은 잠시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공력을 천천히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를 본 사비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또 그건가?”
일전에 송백현에서 싸울 때와 비슷한 현상이었다.
그때 적들은 이상한 방식으로 공력을 운용하더니, 마치 고통이라고는 모르는 자들처럼 덤벼들었다.
지금 엄철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사술을 쓰게 둘 수는 없지!’
파바밧!
이번에는 사비란과 연설연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과연 경신법 하나 만큼은 연설연이 조금 더 빨랐다.
쉬이이이잇!
그녀가 먼저 검을 횡으로 그어 갔다.
따앙!
엄철이 검을 들어 연검을 막았다.
취리리릿!
찰나지간 연검은 한 마리 뱀이 된 것처럼 그대로 엄철의 검을 휘어감더니 손목을 노려 왔다.
“치잇!”
그가 혀를 차고는 손잡이를 놓자.
촤륵!
“헙!”
또 다시 그의 발목을 휘어감은 사슬낫이 확 끌어당겨지면서 그가 바닥으로 끌려갔다.
“하앗!”
마침 달려들던 사비란이 그대로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검을 수직으로 내려찍었다.
“이익…!”
엄철이 이를 꽉 깨물면서 몸을 최대한 뒤틀었다.
파악!
사비란의 검이 그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면서 바닥을 찍었다.
곧이어 엄철이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땅을 향해 일장을 날렸다.
콰아앙!
과연 어지간한 장력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그 바람에 사슬낫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그가 그대로 허공답보를 펼치면서 이동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쒸에에에엑!
허공을 가로지르면서 화살 한 대가 빛살처럼 날아왔다.
“이익…!”
엄철이 온힘을 다해 몸을 뒤틀면서 날아드는 화살을 단검으로 쳐냈다.
까앙!
“크읏!”
불꽃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튕겨나간 화살이 너풀거리면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엄철은 기가 막혔다.
‘풀잎…?’
그랬다.
그를 향해 날아든 것은 화살도 아니고, 나뭇가지도 아니었다.
풀잎.
한데도 단검을 쥔 그의 손바닥은 찢어져 나갈 듯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놀라고만 있을 여유는 없었다.
쒸쒸에에엑!
두 대의 화살이 연이어 그를 향해 날아왔다.
그것이 화살인지 아닌지 따질 겨를도 없었다.
단지 엄철은 호신강기를 극한으로 이끌어내면서 쌍장을 뻗어냈다.
꽈꽈아앙!
폭음과 함께 그에게 날아들던 무언가가 터져 나갔다.
그런데.
푸욱!
“크어억!”
엄철은 눈이 찢어져라 부릅뜨고서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활을 쏜 단리혁이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엄철은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는 명치를 관통한 나뭇가지를 보았다.
역시 화살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 나뭇가지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치 살수가 날린 비수처럼.
어둠 속에서 소리도 없이 고요하게 날아들었다.
이는 사비강의 도움을 받아서 단리정이 창안한 일성궁문의 독문무공으로, ‘암류시(暗流矢)’라는 것이었다.
본래 암류시가 극성에 이르면, 단 한 대의 화살도 어떠한 기척 없이 날릴 수 있게 된다.
즉, 당한 자는 화살에 맞고 나서야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하지만 단리혁은 아직 그 정도의 경지가 아니었다.
때문에 그는 다른 기운을 요란하게 섞었다.
그리고 그 중 치명타를 입힐 한 대의 화살을 암류시로 신중하게 쏘았다.
털썩!
한쪽 무릎을 꿇은 엄철이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사비란을 노려보았다.
“저승길 동무로 삼아 주…!”
쉬잇, 탁탁탁!
찰나, 사비란이 번개처럼 몸을 날려 엄철의 마혈을 점했다.
자멸공을 시전하려던 엄철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사비란이 쓰러진 그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그런 길동무는 조용히 끌고 가야지. 그렇게 대놓고 말하면 가고 싶지 않잖아.”
한편 수장이 쓰러지자 혈휘대원들도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등가휘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적의 수장이 쓰러졌다! 이 기세로 전부 쓸어버려라!”
“존명!”
백화단이 우렁찬 소리와 함께 노도처럼 적을 휩쓸어 갔다.
**
홍염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피투성이가 된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건 또… 뭐냐?”
사비란이 생긋 웃었다.
“보시다시피 나쁜 놈이죠.”
“그게 아니라… 왜 이런 걸 나한테….”
“이번에 백화단이 맡은 임무에서 아주 중요한 열쇠를 가진 자예요. 이들이 꾸미는 음모가 뭔지 알아야겠어요.”
“해서?”
“멸마궁으로 데려가서 조사 좀 부탁드리려고요.”
홍염은 침음을 흘리면서 피투성이 사내를 바라보았다.
피투성이 사내는 바로 혈휘대주 엄철이었다.
고문을 당한 것인지 이는 모조리 빠져 있었고, 코뼈가 부러졌으며, 광대뼈가 눌러앉은 모습이었다.
거기에 점혈을 당한 탓인지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흐음. 말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죄송해요. 나름 손을 써보았는데,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아서요.”
사비란이 애교 섞인 미소를 짓자, 홍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실소를 머금고는 말했다.
“알겠다. 그 정도는 협조해야겠지.”
“그럼요. 강호를 지키는 일이잖아요.”
사비란의 말에 홍염이 피식 웃어 넘겼다.
“그럼 이제 천신무관에 들렀다가 바로 이동할 생각이냐?”
“네, 지체해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하긴. 반묘라면 어렵지 않게 놈들의 근거지를 찾을 수 있을 테지. 그럼 무운을 빈다.”
“네, 고마워요. 아저씨.”
“별 말을.”
말을 마친 홍염이 누군가에게 전음을 전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뚝 떨어져 내리더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엄철을 들쳐 업고는 사라졌다.
홍염이 몸을 돌리려다가 멈칫거리고는 돌아보았다.
“란아.”
“네?”
“항상 조심하거라.”
사비란이 활짝 웃었다.
“걱정 마세요.”
**
미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단리혁은 어젯밤에 앉아 있었던 그 바위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그는 아까부터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엄지로 매만지고 있었다.
활 좀 몇 번 쐈다고 거의 지워져 가던 굳은살이 거짓말처럼 되살아나 딱딱하게 자리를 잡았다.
문득 기척이 들려 돌아보니, 옹수령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저어… 감사합니다!”
그녀가 꾸벅 허리를 숙이면서 사례했다.
“아… 뭐… 별로….”
뭐라고 말해야 하나?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를 받아본 건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옹수령이 얼굴을 살짝 붉히고는 말했다.
“덕분에 살았어요. 정의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수 있지만, 제가 그때 죽었더라면 부모님이 많이 슬퍼했을 거예요. 다시 한 번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희한한 감사 인사네. 얘도 어지간히 답답한 집안에서 자란 모양이구나.’
단리혁은 속생각을 삼키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니까.”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도 구해 달란 소린가…?”
“아, 아뇨! 그냥 앞으로 같이 임무를 수행해 나가야 할 테니까….”
“헐, 농담이야.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다고.”
“아, 네. 네! 그럼 이만…!”
옹수령이 다시 한 번 꾸벅 인사를 하더니 몸을 돌려 휑하니 달려갔다.
“귀엽지 않아?”
문득 들린 목소리에 단리혁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사비란이 서 있었다.
‘이 처자는 항상 귀신처럼 나타나는군.’
평소라면 짓궂은 농담으로 받아쳤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딱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단리혁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답했다.
“뭐… 그렇네.”
“어때?”
“뭔 소리야? 내가 아무 여자에게나 집적대는 사람으로 보여?”
“너야말로 무슨 소리야? 활을 다시 잡은 소감이 어떠냐고 묻는 건데.”
“아….”
단리혁이 움찔거리다가 이내 피식 웃어 버렸다.
그러고는 곧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떻긴, 개떡 같지.”
“저 귀여운 친구의 목숨을 네가 구했어.”
“결과가 좋아서 다행일 뿐,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었지.”
단리혁의 시선이 멀어져 가는 옹수령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녀의 모습에서 자꾸만 옥류향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날처럼 반대가 되었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