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5
귀환 마교관
655화(외전 28)
취리리리릿!
연검 한 자루가 복면인들 사이를 거침없이 누볐다.
푹! 푸푹!
“커억!”
“억!”
피가 튀고 비명이 솟구쳤다.
사비란의 움직임은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들 정도였다.
그녀는 부드러운 바람이 되었다가,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가 되기도 했고,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화염이 되기도 했다.
따다당, 취릿! 푹!
“크아악!”
복면인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분명 검신을 튕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연검은 거짓말처럼 휘면서 손목의 요혈을 가격해 왔다.
검을 놓치고 급소를 맞아 쓰러지는 자들이 수두룩했다.
비단 사비란만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이끄는 백화단 역시 놀라울 정도로 잘 싸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모두 사비강과 매설란이 직접 가르치는 제자들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한 명 한 명의 무공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복면인들의 수장, 혈휘대주 엄철(嚴鐵)은 내심 이를 빠득 갈았다.
흑야단과 극마대가 두 가문의 마공석을 탈취해서 복귀했지만, 혈휘대는 남아서 백화단을 감시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백화단이 파 놓은 함정에 하마터면 몰살을 감수했어야 했던 만큼 그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계략을 어느 선까지 파악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다음으로는 옹수령이 가진 마공석 때문이었다.
사실 마공석을 딱 필요한 만큼 모으긴 했다.
하지만 다다익선이다.
만약을 대비해 몇 개 더 가지고 있는 게 나쁠 건 없었다.
더구나 그 마공석은 일전에 혈휘대 부대주가 구하러 갔다가 구강룡과 백화단에게 전멸당하면서 탈취하지 못한 것이었다.
사적인 감정이 아예 없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이리라.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혈휘대는 끝까지 남아서 백화단을 미행했다.
그리고 옹수령이 홀로 남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앞서 백화단의 저력을 보아서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충돌을 피하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런데….
까가강! 깡!
차차창!
금속성이 난무하고 비명과 고함소리가 마구 뒤섞여 터져 나왔다.
그렇다고 적의 숫자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백화단은 딱 열 명이었다.
소수 정예만 추려서 매복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리고 단리정의 아들인 단리혁이 대궁을 들고 맞서 싸우고 있었다.
당연히 누구보다 성가신 사람은 바로 백화단주인 사비란이었다.
그녀는 사비강의 딸답게 복면인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볐다.
‘생각보다 백화단의 무력이 세구나!’
게다가 옹수령도 이상한 사술을 부렸다.
그녀가 손을 휘저으면 계곡에서 물기둥이 치솟는가 싶더니, 이내 복면인들을 향해서 무자비하게 쏟아져 내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물벼락이 쏟아질 때, 물줄기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화살처럼 가늘게 내리꽂힌다는 것이었다.
촤아아아아아!
슈슈슈슈슉!
“크아악!”
푹! 푸푸푹!
“아아악!”
사비란과 단리혁, 그리고 옹수령과 백화단원 열 명.
겨우 이 열세 명을 상대하는데 오십 명이나 되는 혈휘대가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마공석은커녕 전멸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리라.
“칫!”
혀를 찬 엄철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백화단원 한 명을 슬쩍 피하고는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쩌엉!
커다란 마찰음과 함께 백화단원이 보법을 밟으며 물러났다.
잠시 주춤거린 상대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복면인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엄철은 싸늘한 시선으로 주변을 훑었다.
확실히 머릿수는 혈휘대가 훨씬 많았지만, 적들의 생소한 싸움 방식과 수준 높은 무공 때문에 거의 박빙인 상황이었다.
마침 그의 눈에 사비란이 혈투를 벌이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의 무공은 정말이지 기상천외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백화단의 무공 자체가 그랬다.
정공처럼 보이기도, 사공처럼 보이기도, 어쩔 때는 마공처럼 보이기도 했다.
거기에 마법까지 섞여 있으니 그야말로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에 비하면 사비란은 ‘단정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하지만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각각의 무공이 무척이나 조화롭게 연출되기 때문이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는 고전 무공처럼.
그럼에도 그 변화가 예측을 불허한다.
따당! 차차차창!
마찰음과 불꽃이 터지면서 사비란이 검을 한 차례 휘저었다.
그녀는 십여 명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엄철은 이따금씩 자신에게 달려드는 백화단원을 멀찍이 튕겨 내면서 계속해서 기회를 엿보았다.
전세가 비등비등할 때는 적의 머리부터 제거하는 것이 공식이나 다름없다.
만약 사비란이 무너지면 백화단도 평정심을 잃고 우왕좌왕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이다!’
그의 눈에 사비란의 허점이 정확히 들어왔다.
십여 명의 복면인들을 동시에 상대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빈틈이었다.
물론, 찰나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그 틈새를 파고들만 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타앗!
순간 그가 바닥을 차고는 사비란을 향해 빛살처럼 뻗어 나갔다.
쉬이이이익!
‘죽어랏!’
한데 그의 검봉이 사비란의 등에 닿기 직전.
뀌아아아아아앙!
다시 한 번 귀신의 울음이 터져 나오면서 붉은 빛줄기가 측면에서 날아들었다.
“헉!”
엄철은 그것이 ‘강기’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얼른 검을 베었다.
쩌어엉!
강기와 검이 부딪치면서 고막을 찢을 듯한 소음이 터졌다.
“크읍!”
그가 기혈이 뒤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어금니를 까득 깨물었다.
‘뭐, 이런 무식한 힘이…!’
잠시 잊고 있었다.
처음에 나타나자마자 활을 쏜 저놈을!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단리혁이 시위를 놓은 채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단리혁이 사비란을 보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아름다운 여인은 항상 뒤를 조심해야 한다고. 남자들이 졸졸 따라다니거든.”
사비란은 연검을 휘두르면서도 픽 웃어 버렸다.
왠지 그녀는 그 정도쯤은 단리혁이 나서 줄 것이라고 믿었다는 표정이었다.
반면, 절호의 공격이 가로막힌 엄철은 싸늘한 시선으로 단리혁을 노려보았다.
“이런 개잡놈이…!”
파앗!
순간 그가 바닥을 차고는 단리혁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갔다.
쒸아아앙!
검신이 허공을 가르면서 단리혁을 향해 떨어졌다.
파바밧!
단리혁이 얼른 보법을 밟으면서 물러났다.
타다닷!
쉭쉭쉭!
엄철이 그를 끝까지 뒤쫓으면서 검을 마구 내질렀다.
마치 화살 수십 발이 단리혁을 향해 쏟아지는 듯했다.
따당! 땅!
단리혁이 활을 들어 막으면서 연신 보법을 밟으며 물러났다.
파파파파!
마침내 단리혁은 수상비까지 펼치면서 계곡을 건넜다.
파파파파!
엄철이 단리혁을 뒤쫓자, 두 사람의 발끝에서 물보라가 마구 일어났다.
그 물보라가 물안개를 만들 지경이었다.
얼핏 보면 두 사람은 마치 희뿌연 구름 위에서 검과 궁을 섞으며 노니는 듯했다.
엄철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상대가 틀림없이 궁술을 익혔으리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근접전에 약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 잘난 사비강도 궁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단리정을 뛰어넘지 못하니까.
한데 단리혁은 근접전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잘 싸우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계는 있지!”
엄철이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그대로 검을 그어 올렸다.
츄아아아아!
흐르는 계곡물을 날카롭게 베어 가면서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
단리혁이 얼른 몸을 젖히면서 팽이처럼 팽그르르 회전했다.
쒸아아아앙!
검신이 그의 코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면서 지나갔다.
동시에 바닥에서 튀어 오른 물방울들이 그의 몸을 마구 때렸다.
강기가 더해져서 그런 건지 물방울에 맞은 부위가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화끈거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허공으로 솟구친 엄철의 검이 그대로 뒤틀리더니 곧장 단리혁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끝이다!”
그 순간 단리혁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아, 죽는구나…!’
그는 죽음을 직감했다.
그간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제길, 역시 활을 쥐는 게 아니었어…!’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그냥 집에 돌아갔다면 이런 곳에서 개죽음은 당하지 않았으리라.
그야말로 찰나지간에 불과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침 먼발치에서 혈투를 벌이는 사비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죽는 데는 관심도 없구나….’
내심 서운한 생각을 하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쉬이이이익!
그래도 머리가 갈라져 죽는 것보다는 목이 베여 죽는 게 차라리 보기에 나을 거란 생각이 들어 고개를 비틀었다.
그런데 그 순간.
츄아아아아아!
갑자기 그의 앞으로 물기둥이 장벽처럼 솟구치는 게 아닌가?
츄아아아앙!
물기둥은 마치 사람의 형상을 한 채로 팔을 들어 검신을 쳐냈다.
파파팟!
깜짝 놀란 엄철이 두 눈을 부릅뜨는데.
파아아앙!
다시 한 번 수인(水人)이 커다란 발을 들더니 그대로 엄철의 가슴을 가격했다.
“크억!”
파파파팟!
그 충격에 엄철이 수상비를 펼치면서 계곡 끝까지 물러났다.
‘저건 또 뭔…!’
엄철이 눈을 휘둥그레 뜨자, 수인은 이제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 그대로 허물어져 내렸다.
촤아아아아!
갑자기 벌어진 일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단리혁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계곡가에서 양손을 뻗고 있던 옹수령이 격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했다.
“쿠웨엑! 쿨럭!”
엄철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저년이구나!’
그가 미간을 팍 구기는 것과 동시에옹수령을 향해 몸을 날렸다.
타닷!
“안 돼!”
단리혁이 소리치면서 그대로 수상비를 펼쳐 계곡을 건너왔다.
파파파팟!
한편, 무리하게 정령술을 사용하면서 몸이 약해진 옹수령은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비틀거렸다.
찰나, 그녀 곁으로 미끄러지면서 다가선 엄철이 그대로 그녀를 끼고 돌면서 목에 검신을 가져다 댔다.
그러는 사이 계곡을 건너온 단리혁은 미끄러지면서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들었다.
제법 곧게 뻗은 나뭇가지였는데, 화살 대신 쓸 생각이었지만, 진짜 화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단리혁이 나뭇가지를 시위에 걸어 잡아당기는 순간.
“멈춰라!”
엄철의 사자후가 숲속에 쩌렁쩌렁 울렸다.
공력이 담긴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밤새가 후드득 날아올랐고, 계곡의 물줄기가 마구 요동을 칠 정도였다.
물론 격전을 벌이던 무인들 모두 몸을 흠칫거리고는 엄철을 돌아보았다.
차차착!
혼잡하게 섞여 있던 복면인과 백화단이 자연스럽게 갈라서면서 경계를 만들었다.
복면인들이 엄철 뒤로 도열하자, 엄철이 싸늘한 웃음을 그린 채 자신에게 활을 겨눈 단리혁을 노려보았다.
“시위 좀 놓지, 그래? 아니면 도박이라도 할 생각인가? 네놈의 화살과 내 검 중 무엇이 더 빠른지?”
말을 마친 그가 손에 힘을 주자, 옹수령의 목 줄기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
단리혁이 시위를 팽팽하게 잡아당긴 채 흠칫거렸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모두가 마른 침을 삼키고 두 사람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