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7
귀환 마교관
647화(외전 20)
투타타타탕!
꽈아앙!
연이어 터진 마찰음 끝에 폭음이 들려왔다.
“크아악!”
“으악!”
수많은 무인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널브러졌다.
연우경과 목단화는 어깨를 들먹이면서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눈을 날카롭게 치뜨고 주변의 적들을 노려보았다.
복면인 수십 명이 죽어서 널브러져 있었지만, 그들은 어떠한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쉽지 않군.’
연우경의 턱 끝을 타고 땀이 뚝뚝 흘러내렸다.
살짝 찢어진 어깨에서는 피도 흘러나왔다.
목단화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옷자락이 찢어져 나간 한쪽 팔은 맨살이 훤히 드러나 있었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귀신처럼 아무렇게나 휘날렸다.
사심자를 든 손이 가늘게 떨려 올 만큼 많은 공력을 소진한 상황이었다.
적을 얕잡아 보지도 않았지만, 이만큼 강할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송백현에는 이 정도의 무공 실력을 갖춘 조직이 없었기에.
게다가 이만큼 강한 조직이라면 분명 그 이름 정도는 알려졌어야 했다.
한데 처음 보는 조직이다.
사용하는 무공 역시 정공이라고 보기도 힘들고, 사공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네놈들… 도대체 정체가 뭐냐?”
연우경이 이를 빠득 갈고 물었다.
흑립인이 입매를 살짝 비틀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텐데. 그럼 병신이 되더라도 살 수는 있다.”
“시건방진 소리하기는. 네놈들이 내 딸을 건드린 순간부터 이 싸움의 결과는 정해진 거다.”
“글쎄,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 버러지 같은 것들!”
연우경이 일갈을 터뜨리더니 그대로 바닥을 차고 허공을 가로질렀다.
순간 흑립인이 손을 불쑥 뻗었다.
그 순간.
화르르륵, 퍼어엉!
손바닥 앞에서 불덩이가 생성되더니 그대로 날아가 연우경에게 작렬했다.
뿌연 연기가 흩어지고 나자, 파이어 볼을 검신으로 막아낸 연우경이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게 보였다.
“마법을 익혔군.”
“마족대전 이후로 개나 소나 다 익혔는데 놀랄 것까진 없지.”
“물론 놀라진 않았지. 다만 오래 전 그때가 생각나서 기분이 더 나빠졌을 뿐이다!”
파바밧!
따다앙!
연우경의 검이 흑립인의 칼과 어지럽게 뒤섞였다.
하지만 흑립인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는 괴이한 보법을 밟으면서 연신 연우경의 검을 막아냈다.
‘과연 강하군!’
연우경은 어금니를 꽉 다물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 검술을 펼쳤다.
아무리 지쳐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은 정식으로 패검연가의 맥을 이어받은 무인이었다.
게다가 섬검목가의 검술도 어느 정도 익혔다.
그런 자신이 이렇게까지 힘들게 상대해야 하다니!
‘도대체 이것들은 뭐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친마파였다.
마족대전 이후로 친마 앞잡이들을 대대적으로 가려냈지만, 여전히 아직도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가 있다는 소문은 은밀히 돌고 있었다.
‘한데 이들이 왜 마공석을…?’
분명 뭔가 꾸미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자신의 딸이 걱정됐다.
“하앗!”
연우경이 기합성을 터뜨리며 그대로 검봉을 내질렀다.
쒸이이잉!
시퍼런 검강이 맺히면서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 갔다.
서리를 이끌 듯 뻗어 나간 청빙검이 그대로 흑립인의 칼에 맞부딪쳤다.
쩌어어엉!
그 순간 두 사람의 도검에 서리가 내려앉으면서 주변으로 살얼음이 끼었다.
쫘자자자자작!
파바바밧!
흑립인과 연우경이 동시에 뒤로 물러나면서 자세를 바로 잡았다.
‘크읏!’
연우경은 적잖이 당황했다.
패룡단천검과 청빙검은 정말이지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극음의 기운으로 한기를 일으켜 싸우는 것은 그만의 특별한 검술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적어도 북해빙궁주와 자웅을 겨뤄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오히려 한기가 내 몸으로 침투해 오다니!’
놀란 눈으로 흑립인을 노려보니, 그의 손에 들린 칼에서 시린 달빛이 비쳤다.
“그 칼… 보통 도가 아니군.”
“알아봐 줘서 고맙군.”
흑립인이 무뚝뚝하게 말을 뱉어냈다.
확실히 흑립인이 들고 있는 도는 평범하지 않았다.
휘청 굽은 환도였는데, 중원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문양이 손잡이와 도집에 새겨져 있었다.
아마 마계의 물건이리라.
그리고 마계의 칼이라면 당연히 평범하진 않을 것이다.
청빙검만큼 기물이리라.
위이이이잉!
흑립인의 검이 울음을 터뜨렸다.
“월명도(月明刀)라고 하지. 뭐, 내가 지은 이름이지만.”
말을 마친 흑립인이 서서히 기도를 끌어올렸다.
연우경이 몸을 흠칫 떨었다.
확실히 상대는 강했다.
이미 지쳐 있는 자신에 비해 흑립인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물론 일대 다수를 상대한 자신과 똑같은 처지는 아니겠지만, 처음부터 정면 대결을 했어도 그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럼 제대로 시작해 볼까?”
“와라.”
파앗!
순간 흑립인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뀌리리리링!
달빛이 구르는 소리가 이러할까?
고막을 간질이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왔다.
그 소리가 워낙 영롱한데다가 영혼마저 울릴 듯 청아하니, 소리의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디…!’
촤아악!
“크읏!”
왼쪽 어깨를 깊게 베인 연우경이 신음을 터뜨리고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당신! 괜찮아요?”
목단화가 깜짝 놀라서 소리치며 달려왔다.
하지만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어딜!”
복면인들이 저마다 도검을 난잡하게 휘두르며 마구 달려들었다.
“방해하지 마라! 이 개 잡것들!”
그녀가 표독스럽게 소리치며 사심자를 휘둘렀다.
취리리리링!
휘청휘청 굽는 사심자가 적들 사이를 누비면서 요혈만 찍어 갔다.
푹! 푸푹! 푹!
“컥!”
“아악!”
복면인들이 몸을 뒤집으며 쓰러져 갔다.
그러자 흑립인이 한쪽 무릎을 꿇은 연우경을 향해 달려가며 소리쳤다.
“동귀어진하라!”
“복명!”
말을 마친 복면인들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폭기를 끌어올리며 목단화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마치 이글거리는 불에 온몸을 내던지는 불나방들 같았다.
‘자멸공!’
이들은 작정하고 자폭하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흑립인은 그대로 연우경 코앞에 다다랐다.
찰나지간.
파앗!
그 주변으로 시커먼 안개가 퍼지더니 초승달처럼 휜 월명도만이 수십 개가 나타나 청명한 울음을 터뜨렸다.
뀌리리리리링!
“이런!”
연우경이 당황하면서 물러났다.
그는 처음 겪는 생소한 현상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목단화 역시 무작정 몸을 던져 오는 적들에게 둘러싸여 위기의 순간에 처해 있었다.
“안 돼!”
연우경이 목단화를 돕기 위해 바닥을 차는데.
뀌리리리링!
쉬따앙!
“크읏!”
어둠 속에서 빛이 번쩍이면서 연우경을 튕겨냈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 빛을 막아낸 것은 검이 아니라 자신의 생살이 되었으리라.
뒤이어.
“그러게 좋게 정리하면 좋았을 것을.”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사방팔방에서 월명도가 날아들었다.
찰나.
“엎드리세요!”
어둠 속을 뒤흔드는 목소리!
촤르르르르르르르륵!
매끄러운 쇠사슬 소리가 들리더니 기다란 섬광이 숲속 공터를 한 차례 휘저었다.
쉬커커커커커컹!
어떤 이는 사슬에 맺힌 검기에 베이고, 어떤 이는 그대로 사슬에 맞아 튕겨 나갔다.
마침 자멸공을 사용한 몇몇 무인들은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과 동시에 온몸이 터져 나갔다.
퍽! 퍼펑! 퍽퍽!
허공에서 인육 파편이 흩어지며 피가 쏟아져 내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엽기적이었다.
목소리에 따라 반사적으로 엎드렸던 목단화는 얼른 일어나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사내에게 개유전편 초식을 펼쳤다.
휘리리리리링!
수십 줄기의 검기가 단단하게 뭉치면서 마치 하나의 커다란 파도처럼 휩쓸어 갔다.
쑤카아아앙!
복면인이 상하반신이 분리된 채 각각 흩어져 날아갔다.
그런데 그때 그녀 뒤로 시커먼 그림자가 생겨났다.
얼른 돌아보니, 또 다른 복면인이 칼을 치켜들고 서 있었다.
‘이런…!’
그녀의 표정에 낭패감이 스쳤다.
그런데.
푸욱!
복면인의 심장을 뚫고 튀어 나오는 커다란 칼!
그것은 유송령이 즐겨 쓰는 거신도와 꼭 닮은 모습이었다.
촤아악!
대도가 횡으로 그어지자, 심장부터 옆구리까지 찢어져 나간 복면인이 그대로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복면인 뒤에 서 있던 청년이 목단화를 보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목 가주님!”
“너, 너는…?”
“오랜만에 뵙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말을 뱉다 만 석검영이 휙 돌아서며 또 다시 달려드는 복면인을 향해 사슬낫을 날렸다.
촤라라라라락!
슈컥!
빛살처럼 날아간 사슬낫에 목이 베인 복면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석검영은 그대로 몸을 날려 흑립인에게 달려들었다.
쉬이이이익!
대도가 망설임 없이 흑립인의 정수리를 노리며 떨어졌다.
“안 돼! 위험…!”
연우경이 뒤늦게 소리쳤지만, 벌써 석검영은 흑립인을 향해 대도를 내려찍고 있었다.
“노옴! 감히 이분이 누군 줄 알고 칼을 휘두르느냐!”
석검영이 일갈하는데.
팍!
순간 검은 안개가 터져 나오더니 흑립인이 다시 한 번 감쪽같이 사라졌다.
뀌리리리링!
역시나 사방팔방에서 도명이 울리더니, 초승달처럼 굽은 칼날이 마구 날아들었다.
어떤 것이 진짜인지, 어떤 것이 가짜인지 구분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석검영의 무기는 두 개였다.
대도와 사슬낫.
그가 몸을 팽이처럼 회전하니 사슬이 그의 몸을 친친 휘감으며 갑옷처럼 두껍게 보호했다.
따다다다다다다당!
수십 개의 칼날이 석검영을 에워싼 사슬에 부딪치며 튕겨 나갔다.
타앙!
마지막 칼날까지 막아낸 석검영이 사슬낫을 풀고는 뒤로 성큼 물러났다.
사슬낫으로 보호하고 있었다지만, 온몸이 아려 왔다.
연우경이 얼른 달려와 물었다.
“괜찮으냐?”
“예? 아, 예. 괜찮습니다.”
석검영이 얼른 자세를 바로 잡으며 대답했다.
사실 바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온몸이 쑤셨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 연우경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 주었다는 것이 감격스러울 뿐이었다.
연우경 역시 반사적으로 물어보고는 잠깐 어색함을 느꼈는지 머쓱하게 물러났다.
“그, 그럼 됐다.”
“우리 딸, 연아는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마침 목단화가 달려오며 물었다.
예전 석검영을 대할 때와 비교하면, 그녀의 목소리가 한층 누그러져 있었다.
그녀 역시 석검영이 아니었다면 바닥에 드러누운 시체 신세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연 소저는 무사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그보다….”
석검영의 시선이 주변으로 향했다.
어느새 복면인들과 흑립인이 세 사람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흑립인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죽여야 할 상대가 하나 늘었군.”
그때.
“하나가 아닐 텐데.”
청아한 목소리가 허공에 낭랑하게 울렸다.
흑립인이 미간을 구기고 돌아보는데.
슈슈슈슈슈슈슉!
그들 주변을 에워싸면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 중 사비란이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좀 많이 늘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