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8
귀환 마교관
648화(외전 21)
흑립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웬 놈들이냐?”
“멸마궁 백화단이다.”
사비란의 말에 흑립인이 흠칫거렸다.
‘설마…?’
백화단이 파놓은 함정이었던가?
한편 사비란을 확인한 연우경과 목단화가 반색하며 소리쳤다.
“란아!”
“오랜만이에요, 사부님.”
사비란이 싱긋 웃었다.
“네가 여기엔 어떻게…?”
연우경이 반가우면서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비란이 흑립인을 빤히 노려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마침 귀영단을 통해서 정보가 입수됐거든요.”
“정보…?”
“저자들이 사부님들의 자녀들을 납치해서 인질로 삼은 후 두 가문의 마공석을 노린다는 정보였죠.”
“그런…!”
연우경이 노한 음성으로 탄식하자, 목단화가 얼른 다가왔다.
“그럼, 우리 연아는? 그 아이는 무사하니?”
“네, 무사해요.”
“아아, 다행이구나. 네가 아이들을 구해 준 것이구나!”
“전 별로 한 게 없답니다. 설연이 갇혀 있는 곳을 석 소협이 알려 주었고, 빠져나올 때도 그의 무공이 큰 도움이 되었죠.”
사비란이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석검영도 처음 듣는 소리였기에 그저 멀뚱멀뚱 서 있을 뿐이었다.
목단화가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석검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 그랬구나. 내 딸을 도와줘서 고맙네.”
“별, 별말씀을요.”
석검영이 어색한 태도로 답변했다.
만약 사비란이 고분고분 대응하라는 눈짓을 강렬하게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아무튼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일단은 저들부터 처리해야 할 테니까요.”
“그러자꾸나!”
연우경이 청빙검을 한 차례 휙, 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조심해라. 저자는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자다. 무공이 예사롭지 않다.”
“네, 사부님.”
연우경이 경고할 정도면 진짜 조심해야 할 상대인 것이다.
사비란이 천천히 기도를 끌어올렸다.
한편 흑립인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도 도무지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납치를 하고 구출을 해?
자신들의 은거지는 아무도 모를 텐데?
게다가 납치는 또 뭔 소린가?
흑립인이 어금니를 뿌득 갈고는 으르렁거렸다.
“백화단이라… 무슨 짓을 꾸미는 거냐?”
“그건 내가 할 소리 같은데? 도대체 너희들, 무슨 짓을 꾸미는 거지? 이렇게까지 마공석을 모으는 이유는?”
“서로 답할 생각이 없는 듯하군.”
“그렇다면 대화가 나누고 싶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네.”
말을 마친 사비란이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가만히 자세만 잡고 있을 뿐인데도 그녀의 전신에서 우러나오는 기운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빈틈이 없다.
정말이지 바늘 하나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듯하다.
‘어린 것이 대단하군.’
흑립인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사비란이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하지만 그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쉽지만 서로 대답할 생각이 없으니 우리 만남은 이쯤에서 정리하도록 하지.”
“누구 마음대로!”
파앗!
사비란이 바닥을 차며 쏜살 같이 날아갔다.
동시에 흑립인이 훌쩍 물러나며 월명도로 바닥을 찍었다.
“하앗!”
꾸드드드드득!
순간 바닥에서 갑자기 커다란 벽이 생성됐다.
이 역시 마법이었다.
콰아앙!
그대로 날아간 사비란이 벽을 산산조각 내며 부쉈다.
쿠르르르르!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벽이 무너지자, 저만치 멀어진 흑립인이 보였다.
그 주위로 다른 복면인들도 서 있었다.
“그럼, 다시 볼 날을 기대하지.”
따악!
흑립인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주변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끄드드득…! 쿠드드득!
급소를 맞아 절명했던 무인들이 삐거덕거리면서 몸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온통 흰자위를 드러낸 그들은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며 천천히 자세를 잡아 갔다.
아예 목이 날아가거나 온몸이 터져 죽은 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체들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크으…!”
복면인들이 거친 숨을 토해내자, 허연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연우경이 놀란 표정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괴이한 광경을 본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럼 즐기길.”
말을 마친 흑립인이 돌아서서 다른 복면인들과 달리기 시작했다.
“어딜!”
목단화가 얼른 몸을 날려서 뒤쫓으려는데.
“크아아아!”
쒸쒸쒸에에엑!
시체들이 괴성을 지르며 그녀를 향해 덮쳐 왔다.
“부인!”
연우경이 얼른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가 시체 중 하나의 목을 내리쳤다.
스까아앙!
‘크읏! 뭐 이런 몸이…!’
분명 목을 내려쳤는데 검신을 타고 무지막지한 진동이 전해졌다.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자칫 기혈이 뒤틀려 내상을 입었으리라.
시체들은 금강불괴라도 되는 것 마냥 온몸이 금속처럼 단단했다.
게다가 절정 고수만큼이나 몸이 빨랐다.
오히려 살아 있을 때보다도 훨씬 빠르고 단단해진 몸이었다.
‘놀랍군. 이건 마공의 주술인가?’
마교가 부활한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일단 여긴 백화단에게 맡기고 저자의 뒤를 쫓아요!”
“그러자꾸나!”
사비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백화단 무인들이 파도처럼 밀려가며 되살아난 시체들을 상대했다.
쉬이이잇! 쉬쉭!
까가가강! 창창!
시체들의 무위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백화단의 조직력 역시 만만치 않았다.
숲속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그 혼란한 틈을 타서 사비란과 연우경, 목단화와 석검영이 흑립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크웃!”
석탄강이 신음을 흘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타다닷!
복면인들은 거침없이 휘몰아쳐 왔다.
파바바밧!
따다당! 깡! 깡!
복면인들은 그야말로 쉴 틈도 없이 공격해 왔다.
촤르르르륵! 따다다당!
사슬낫이 허공에서 춤을 췄다.
하지만 석탄강은 조금씩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마공석 상자를 들고 달아나는 복면인을 뒤쫓아 왔는데, 놀랍게도 계곡 근처에 매복하고 있던 조직이 더 있었다.
초절정 고수가 몇몇 섞여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절정 고수였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조직이 갑자기 튀어 나온 것일까?
이만한 조직이라면 분명 중소 규모의 문파가 아니다.
게다가 이들이 사용하는 무공이 무척 괴상하다.
강호에서 본 적이 없는 방식.
틈틈이 마법까지 섞어 가며 사용한다.
물론, 마족대전 이후로 마법을 사용하는 무인들이 제법 늘긴 했다.
하지만 익히기가 다소 까다로운데다 몸을 쓰는 무공보다는 학문적 성향이 강하다 보니 조금씩 실전되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그 마법을 무척 자연스럽게 시전하고 있다.
‘보통 놈들이 아니군!’
어느 순간 적색 복면인이 소리쳤다.
“난혈진(難血陳)을 펼쳐라!”
그러자 복면인들이 일제히 진을 펼치면서 유송령을 에워쌌다.
그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에 유송령은 재빨리 적들의 포위를 벗어나려고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적색 복면인이 몸을 날리더니 빠르게 검을 내질러 오는 것이 아닌가?
따아앙! 깡깡까라라랑!
불꽃이 터지면서 대도와 검이 어지럽게 부딪쳤다.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한 유송령이 결국 제자리로 내려서자, 적색 복면인이 훌쩍 몸을 물리면서 소리쳤다.
“지금이다!”
그 순간 유송령을 포위한 복면인들의 기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여보!”
석탄강이 버럭 소리치며 사슬낫을 날렸다.
쒸에에에엑! 핏!
사슬낫이 복면인들 틈을 스치듯 지나가면서 유송령 앞에 처박혔다.
촤르르르르륵!
석탄강이 사슬을 잡아당기자, 그의 몸이 용수철처럼 튕기면서 순식간에 유송령을 막아섰다.
다음 순간.
쑤쑤쑤카카카앙!
두 사람을 완전히 포위한 복면인들이 일제히 검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빛줄기 수백 개가 마구 쏟아졌다.
“칫!”
석탄강이 혀를 차고는 얼른 사슬낫을 휘돌렸다.
따다다다다다다다앙!
빛줄기를 쳐낸 사슬낫이 그대로 두 사람을 꽁꽁 감쌌다.
마치 뱀이 알을 품으면서 똬리를 트는 것만 같았다.
투카카카카카앙!
두 사람을 감싼 사슬낫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분명 일반적인 검기나 도기와 달랐다.
이건 마치….
‘마법과 검기를 섞었어?’
석탄강도 한 번쯤 상상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직접 시전해 본 적은 없다.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아마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그런 무공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리라.
한데 지금 자신들에게 쏟아진 이 강맹한 기운은 분명 순수한 무공만이 아니다.
마나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
그렇다.
마치 마법 화살에 검기를 덧씌운 것만 같다.
그렇게 하니 강기와 비슷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도대체 이놈들 정체가…!’
마지막 빛줄기까지 완전히 막아낸 석탄강이 사슬낫을 풀고는 유송령을 보았다.
“괜찮아?”
“괜, 괜찮아.”
유송령도 조금 당황했는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적들을 노려보았다.
석탄강이 어금니를 뿌득 갈고는 으르렁거렸다.
“이 개 같은 것들이…!”
파앗!
그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다음 순간, 그는 적색 복면인 코앞에 나타나서는 낫을 수직으로 내려쳤다.
“죽어라!”
슈카앙!
기다란 빛줄기 두 자루가 그대로 적색 복면인을 세로로 그어 버렸다.
스스슷…!
하지만 적색 복면인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앗! 뒤에!”
말을 던진 유송령이 냅다 몸을 날리며 대도를 횡으로 그었다.
쑤아아아아앙!
도강이 파도처럼 휩쓸며 나아갔다.
촤아아악!
마침 석탄강의 배후를 치려던 복면인은 옆구리가 절반이나 베인 채 쓰러졌다.
“크아악!”
그러는 사이, 바로 옆에서 빛줄기가 번뜩였다.
반사적으로 물러나자.
쉬카앙!
“악!”
유송령이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났다.
파파파파!
그녀가 수상비를 펼쳐 계곡 위를 뒷걸음질하며 물러났다.
“송령!”
석탄강이 얼른 쫓아가려는데, 마침 복면인들이 그를 완전히 에워쌌다.
“이놈들! 썩 비키지 못할까!”
촤르르르르륵!
따다다다당!
사슬낫이 춤을 추었지만, 끝없이 달려드는 복면인들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었다.
적들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더 신기한 것은 부상을 입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몸을 놀린다는 것이었다.
한편 유송령은 계곡 가운데에 우뚝 솟은 바위를 밟으며 대도를 들어올렸다.
꽈앙!
도와 검이 부딪쳤는데, 폭발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크읏!”
유송령이 이를 악다물었다.
적색 복면인이 눈매를 휘었다.
“제법이군.”
탁한 목소리에 이어.
쉬이이잇!
그가 팽이처럼 몸을 회전하면서 덮쳐들었다.
‘빠르다!’
유송령은 이제 꼼짝없이 옆구리가 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호신강기를 최대한 끌어올려 상처를 줄이는 게 전부였다.
그때.
“멈춰!”
앙칼진 목소리가 불쑥 튀어 나오더니.
투타타타타탕!
물보라가 일어나면서 물방울 하나하나가 비수가 되어 복면인에게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헛!”
타타타타타탕!
복면인이 경공을 펼치면서 검을 마구 휘둘러 물방울을 튕겨냈다.
곧이어 그림자 하나가 그대로 적색 복면인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쒸에에에엑!
쩌엉!
검과 검이 부딪치며 두 사람이 멀어졌다.
촤아아아앗!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수상비를 펼친 그림자가 계속 가에 멈춰 섰다.
“넌…?”
유송령이 미간을 좁혔다.
달빛을 받으며 꼿꼿하게 선 그녀는 다름 아닌 연설연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녀가 정중히 포권하며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