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645화 (645/670)

# 645

귀환 마교관

645화(외전 18)

“아저씨!”

객잔으로 돌아온 사비란이 반색하며 달려갔다.

단정한 외모에 콧수염이 가지런한 사내가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여행은 즐거운가?”

“덕분에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어떤 아가씨가 자꾸 귀찮게 일을 부려서 도망 왔지.”

사내의 말에 사비란이 웃었다.

“그렇다면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요?”

“그러게. 그 아가씨가 이 아가씨일 줄은 몰랐구나.”

“아저씨도 참.”

사비란이 웃으며 말하자, 사내가 부드러운 눈길을 던지며 물었다.

“몸은 괜찮으냐?”

“보시다시피. 아주 건강하죠.”

“다행이구나.”

“정말로 일하기 싫어서 도망치신 건 아니죠? 이번에 부탁한 일은 반드시 귀영단의 협조가 필요해요.”

그랬다.

지금 사비란을 만나러 온 사내는 바로 귀영단주 홍염이었다.

홍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협조를 부탁하는 자세가 아닌데?”

“나중에 맛있는 것 사드릴 게요.”

“좋아. 그렇다면 또 달라지지.”

“그런데 정말 여긴 어쩐 일이세요?”

사비란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홍염이 주변을 슥 둘러보고는 말했다.

“알다시피 네가 요구한 일이 은근히 까다로운 일이거든.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건지 확인이라도 할 겸 왔다.”

“그렇군요. 사실은….”

목단화가 그간의 사정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홍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런 일이라면 본단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지. 이번 일로 두 가지 일이 동시에 해결되면 좋겠구나. 궁주님과 총관님도 기뻐하실 것 같다.”

“설마요. 아빠라면… 이곳에 와서 싸움이나 붙이지 않으면 다행이죠.”

“하하하!”

홍염이 진심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사비강이라면 어땠을까?

사비란의 말대로 이 자리에 그가 있었다면 두 가문에게 적극 싸움을 권장했을 지도 모른다.

사비강은 그런 성격이니까.

정말이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자.

하지만 그는 그 나름으로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리라.

그것만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사비란은 그녀의 방식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볼 때, 사비란의 방식이 나쁘지는 않다.

“뭐, 이미 작업은 들어갔다. 지금쯤이면 물고기가 모여들어 입질을 시작했을 거다.”

“역시! 아저씨는 언제나 빠르다니까요.”

“이 바닥이 느리면 끝장이거든.”

사비란의 칭찬에 홍염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회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가 어둠을 향해 물었다.

“마공석 스무 개가 한자리에 모인다?”

“예, 화해의 증표로 의식에 사용한다고 합니다.”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 어떤 의식이지?”

“아직 그것까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두 가문이 은밀히 진행하려는 듯 보입니다.”

“정보는 확실한가?”

“예, 사흘 전에 두 가문의 접촉이 있었다는 첩보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조금 이상하군.”

“…….”

“어떤 의식인지도 모를 곳에 마공석 스무 개. 마침 우리가 필요한 양으로 실험을 한다니.”

“함정의 가능성도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다시없을 기회입니다. 각각의 가문을 치는 것보다는 훨씬 잘 된 일이지요. 만약 저들의 함정이라면, 그 함정이 소용없다는 걸 가르쳐 줘야겠지요.”

“자신 있나?”

“흑야단(黑夜團)과 혈휘대(血揮隊) 그리고 극마대(極魔隊)까지 투입할 생각입니다.”

확실히 과한 수였다.

하지만 그만큼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직접 가려는 것인가?”

“예, 교주님.”

교주라 불린 사내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중해서 나쁠 건 없을 테지. 상대는 섬검목가와 흑천도가니까.”

“그럼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마공석을 취하도록.”

“존명!”

잠시 후 어둠 속에서 기척이 사라졌다.

“이제 거의 다 왔구나.”

탁한 목소리를 흘린 교주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걸렸다.

**

두 가문은 며칠 전부터 관제묘 앞에 등불과 탁자를 마련해 두었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쪽지를 받은 날로부터 열흘이 지난 날, 연우경과 석탄강은 그곳 탁자에 마주 앉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자, 연우경이 탁자 위에 둔 등불을 밝혔다.

주변으로는 풀벌레 우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물건은 가져왔는가?”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연우경이었다.

석탄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자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렸다.

덮개를 열자 형형한 빛을 발하는 마공석 스무 개가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석탄강의 눈빛이 연우경에게 향했다.

그 뜻을 짐작한 연우경도 말없이 탁자 위에 상자를 올렸다.

역시 덮개를 열어 보이자, 그 안에는 마공석 스무 개가 들어 있었다.

“내 딸을 가지고 도박을 할 정도로 무모하진 않네.”

“그래야지.”

석탄강이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다시 침묵이 찾아들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던 게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조금씩 사이가 뒤틀어지고, 그 후로는 아예 원수처럼 지내면서 서로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오죽하면 서로의 가문을 향해서는 오줌도 싸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을까?

“한데 참 이상하지.”

“뭐가 말인가?”

“원수처럼 지내는 동안, 자네를 보면 곧바로 칼부림부터 할 거라고 생각해왔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자네를 피했는지도 모르겠어.”

“마찬가지야.”

“한데 지금 이렇게 가까이에 앉아 있는데도 그런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군.”

“자식을 빼앗긴 마당에 그런 생각이 들면 멍청한 거지.”

석탄강이 조금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연우경은 그저 껄껄 웃었다.

두 사람은 다시 침묵했다.

하지만 이렇게 침묵만 해선 안 된다.

수다를 떨어야 했다.

지금쯤 두 가문에서 목단화와 유송령이 최정예 무인들을 이끌고 주변에 잠복해 있을 터였다.

그들의 존재가 발각되지 않도록 두 사람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지나치게 조용하면 잠복한 자들도 발각될 위험이 있으므로.

한데 반평생을 원수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할 말이 생각날 리도 없었다.

“이렇게 마주 앉아 있으니 과거 멸마관에서 연회를 가질 때가 생각나는군.”

이번에도 연우경이 먼저 말을 꺼냈다.

석탄강이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때 자네의 주량을 보고 놀라긴 했지.”

“내 주량을 보고? 내가 영 술을 못할 줄 알았나?”

“그랬지. 내공을 이용해서 취기를 밖으로 배출하지 않는다면 석 잔만 마셔도 만취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허허, 헛다리를 짚었군.”

“제대로 헛다리였지. 맹 영감과 내기까지 했는데 졌으니까. 자네가 그렇게 술을 잘 마실 줄은 생각도 못했거든.”

“왜?”

“그야 기생오라비처럼 생겼으니, 당연히 비리비리할 거라고 생각한 게지.”

“허허, 이 사람 참.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되네.”

“그럼 파벌로 사람을 평가하면 되겠는가? 정파는 술을 못하는가?”

“거참. 무슨 말을 그리 하는가? 그런 게 어디에 있나? 주량이 사람에 따라 다른 거지. 어찌 파벌로 나눌 수 있겠나?”

“그렇군. 한데 자네는 왜 그렇게 파벌로 사람을 구분하는가?”

“내, 내가 언제….”

“사파라고 해서 다 배우지 못하고 천박한 사람들이 아닐세. 물론, 명문 정파의 후예들처럼 안정적인 환경이 드물긴 하겠지. 하지만 제대로 배운 자들도 많네.”

“커험! 누가 뭐라고 하던가?”

연우경이 짐짓 딴청을 부리듯 말했다.

석탄강이 피식 웃었다.

“하긴 평생 고리타분한 선입견에 갇혀 산 정파 돌대가리들이 그런 것까지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지.”

“허어! 돌대가리라니? 누가 돌대가리라는 건가? 아, 혹시 자네 아들?”

“뭐라?”

“말이 나왔으니 따져 보세. 우리 연아를 자네 아들이 꼬신 게 아닌가?”

“무슨 망발을! 내 아들에게 네놈 딸이 꼬리를 친 거겠지!”

“내 딸은 절대 그럴 애가 아닐세!”

“내 아들도 마찬가지야!”

“아들 가진 부모는 다 그렇게 생각하지.”

“뭐야!”

쾅!

석탄강이 분을 참지 못하고 탁자를 내려치며 벌떡 일어났다.

힘을 합치자고 다짐을 했지만, 삼십 년간의 묵은 증오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진 않았다.

연우경도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의심스럽네. 이 모든 걸 꾸민 게 자네 아들이 아닌지!”

“이 연가 놈아! 말 다했느냐!”

촤르르르륵!

석탄강이 사슬낫을 척 늘어뜨리고는 투기를 드러냈다.

연우경이 청빙검을 뽑아 들었다.

차앙!

“그래, 말 다 했다. 어디 한 번 그 형편없는 낫질 감상이나 해보자.”

“노오오옴!”

“낫을 들었으면 벼나 벨 것이지, 무슨 무공을 한다고 설치는 게냐?”

“용서하지 않겠다!”

파박!

타앗!

마침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전광석화처럼 날아갔다.

촤르르르르륵!

쒸이이이이잉!

석탄강의 사슬낫이 그대로 연우경의 안면을 향해 쏘아졌고, 연우경의 청빙검이 석탄강의 옆구리를 향해 뻗어 갔다.

마침내 두 사람이 격돌하는 순간!

스윽!

사악!

연우경이 고개를 비틀어 사슬낫을 피했고, 석탄강은 몸을 비틀어 청빙검을 피했다.

대신 두 사람의 사슬낫과 청빙검은 서로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면서 그대로 날아가더니.

푹!

푸욱!

“컥!”

“끄어억!”

그들 뒤에서 달려오던 복면인의 심장에 정확히 각자의 무기를 박아 넣었다.

촤아악!

촤악!

사슬낫과 청빙검이 피를 뿌리면서 허공을 한 차례 휘저었다.

사사사악!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몸을 회전하면서 서로 등을 졌다.

연우경이 입매를 비틀었다.

“과연 아직 감이 죽지 않았군.”

“자네도 마찬가지군.”

석탄강이 낫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는 말했다.

두 사람은 일부러 목청껏 소리치며 서로 싸우는 척했다.

아니, 실제로 처음에는 감정이 상해서 싸우긴 했다.

한데 적의 기척을 감지한 후에는 일부러 더 크게 소란을 피웠다.

근방에서 조직들을 이끌고 잠복해 있을 목단화와 유송령에게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리고 서로를 공격하는 척하면서 마공석을 노리고 달려드는 적을 동시에 공격한 것이다.

다음 순간.

슈슈슈슈슈슉!

관제묘 앞으로 수십 명의 복면인들이 유성이 떨어지듯 내려섰다.

사사사삭!

그들은 순식간에 두 사람을 포위하더니 살기를 무럭무럭 피워 올렸다.

“이제야 등장하셨군.”

그러자 복면인들 중 수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한 걸음 나섰다.

“우리를 기다리셨다?”

“당연한 말을 하는군.”

복면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가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어째서?”

“그럼 고분고분 마공석만 내어줄 줄 알았느냐!”

파밧!

연우경과 석탄강이 동시에 적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복면인이 버럭 소리쳤다.

“마공석 확보가 최우선이다!”

하지만 연우경과 석탄강이 적의 목을 단숨에 베어 버리며 외쳤다.

츄아아아!

“어딜!”

“그전에 우리 애들부터 내놓아라!”

두 사람의 성난 기세에 복면인들이 주춤거렸다.

수장 복면인이 이맛살을 팍 구기고는 으르렁거렸다.

“애들이라니… 무슨 개소리냐?”

“이제 와서 시치미를 뗄 작정이냐! 내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네놈들 내장을 모조리 긁어내 버릴 테다!”

“자식 가진 부모가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는지 보여주마!”

두 사람은 그야말로 귀신처럼 몸을 날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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