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4
귀환 마교관
644화(외전 17)
“칫!”
목단화가 주위를 둘러보며 혀를 찼다.
더 이상 기감도 느껴지지 않고 달아난 흔적을 찾기도 어려웠다.
‘그 화살은 대체 누가 날린 걸까?’
목단화가 턱을 괴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굉장히 먼 거리에서 쏜 화살이었다.
이 정도의 활 솜씨라면 궁을 전문으로 다루는 무인이리라.
그렇다면….
‘흑천도가 사람은 아닐 가능성이 높은데….’
의외의 결과다.
분명 석검영이나, 흑천도가의 무인이 딸을 납치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두 가문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칼부림이 나든 이상하지 않을 사이니까.
‘정말로 흑천도가의 짓이 아니란 말인가?’
하긴.
흑천도가에서 그런 짓을 했다면 저렇게 발뺌을 하진 않을 것이다.
석탄강과 유송령이 제대로 배우지 못했더라도 치졸한 거짓말을 할 성격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정말로 석검영도 사라진 것인가?
만약 이게 흑천도가의 짓이 아니라, 두 남녀가 사라졌다면….
‘제삼의 세력이 있다는 말인데… 감히 누가?’
목단화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담이 커도 너무 큰 게 아닌가?
송백현에서 자신의 가문을 건드리는 것도 모자라 흑천도가까지 건드리다니.
특히 사파의 맥을 잇는 흑천도가는 잘못 건드리면 뼈도 못 추릴 텐데.
무공의 고하와 상관없이 그들이 그만큼 거칠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확실히 그 두 사람도 당황한 기색이 있었어. 석검영에게도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그러고 보니 그 두 사람의 표정을 지금처럼 자세히 살펴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언제였던가?
그래, 두 사람이 송백현에서 혼인식을 올리는 날, 둘의 표정을 오늘만큼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오늘과 달리 무척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목단화 역시 그들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날 이후로 눈빛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눈 날이 있었던가?
처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에게 소홀했고, 나중에는 각종 문제가 발생해도 건성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점점 골이 깊어지다가 마침내는….
‘어디서부터 우리가 이렇게 된 걸까?’
기억을 더듬어도 잘 모르겠다.
삼십 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면서 변한 일이다.
그 과정을 어찌 일일이 기억할까?
어쨌거나 지금은 일단 흑천도가로 돌아가서 일의 진상을 따져봐야 한다.
파밧!
목단화가 얼른 몸을 날렸다.
그녀가 바람처럼 달려 나가고 나서 한참이 흘렀다.
실바람이 불었다.
꽃잎이 떨어지면서 바람에 날려 연못에 내려앉았다.
그 순간.
촤아아아!
츄아아아!
수면 위로 두 그림자가 불쑥 솟구쳐 올라왔다.
“헉, 헉, 헉!”
“후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단리혁과 사비란이었다.
뭍으로 올라온 두 사람이 기를 운용해서 젖은 옷을 바짝 말렸다.
장삼이 부풀어 오르면서 순식간에 몸이 마르자, 단리혁이 가까스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들킬 뻔했군. 도대체 무슨 사람이 저렇게 빠르지?”
“괜히 섬검목가의 가주님이 아니시지. 목 사부님의 검공은 신속함에 무게를 두고 있으니까. 경공도 빠를 수밖에.”
“역시 내가 도와주길 잘했군. 내가 아니었다면 분명 실패했겠어. 저렇게 눈치 빠르고 경공도 빠른 사람이 있었으니까.”
“지금도 들킬 뻔한 것 같은데? 운이 좋았을 뿐.”
“여, 여기까지 다 계산이 된 거라고…요.”
어설픈 존대에 사비란이 피식 웃었다.
그녀가 단리혁을 보며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아버지, 단리 사부님이 천멸대주로 계실 때, 다른 사부님들은 서로 말을 편하게 했어. 대주님, 대주님 하면서 존대하진 않았지. 하지만 단리 사부님이 하는 말은 무조건 복종했어. 그래야 조직이 유지되니까.”
“…….”
“앞으로 말을 놓는 건 따지지 않겠어. 그게 편하다면.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은 결코 부탁이 아니야. 명령이지. 그걸 거역할 생각이라면 일찌감치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적어도 임무를 수행할 때만큼은 너와 난 친구가 아니니까.”
“끄음. 알았어.”
단리혁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이걸로 확실히 기선제압은 됐다.
사비란은 핀잔을 주긴 했지만, 내심 단리혁의 능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이백여 장 밖에서 쏠 생각이었는데… 삼백 장 밖에서 쐈어. 이 녀석 말대로 내가 했더라면 들켰을 지도 몰라. 확실히 단리 사부님의 피를 이어 받긴 했구나.’
단리혁이 활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만약 아버지의 활이었다면 더 잘 쐈을 거야.”
“하지만 네가 활을 안 들겠다고 했다며?”
“뭐… 그러긴 했지.”
단리혁이 묵묵히 활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사비란은 알 수 있었다.
지금 그의 마음속에 모종의 동요가 일어나고 있음을.
‘뭐, 이 계기로 활을 다시 잡겠다면 좋은 신호겠지. 단리 사부님의 가정에 화목도 가져오고.’
단리혁이 물었다.
“이젠 어떻게 할 거야?”
“미끼를 준비했으니, 물고기를 낚아야지.”
말을 마친 사비란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갔다.
**
“어찌 됐소?”
연우경이 얼른 다가와 물었다.
목단화가 고개를 저었다.
“놓쳤어요.”
그녀의 대답에 연우경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석탄강과 유송령은 나직이 탄식했다.
목단화는 그 두 사람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역시… 연기가 아니야.’
연우경이 말했다.
“당신의 경공을 따돌릴 정도로 빠르다니. 대체 송백현에서 누가 그럴 수 있지?”
“송백현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죠.”
“그럼…?”
연우경의 시선이 석탄강과 유송령에게 향했다.
저들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는 것이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목단화가 얕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조직일 것 같아요. 제가 쫓지 못할 정도로 빠른 데다 궁술이 매우 뛰어났어요.”
“하긴. 나도 느꼈소. 전문적으로 궁을 다루는 무인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지. 아, 화살에 이런 게 있었소.”
연우경이 찢어진 종이를 보여주었다.
“찢어진 거군요?”
“음. 그게….”
연우경이 석탄강 쪽을 힐끔 보았다.
석탄강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다가와 자신이 가진 종이를 휙 던져 주었다.
연우경이 그걸 낚아채고는 보여주었다.
글귀를 읽은 목단화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누가 감히…!”
“부인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흐음. 당신 생각은 어때요?”
“나는 우선 마공석을 가지고 관제묘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소. 그럼 그놈들이 누군지도 자연히 알게 될 테니까.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 외에는 없지 않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연우경이 조금 쭈뼛거리며 물었다.
다짜고짜 흑천도가에 찾아와서 난리법석을 부린 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석탄강이 냉소를 지었다.
“흥! 우리가 그 마공석을 노린다고 우기지 않으니 다행이군.”
“실수가 있었네.”
“실수를 두 번 하면 우리 아들은 납치범이 아니라, 살인범이 되겠어.”
“끄음.”
연우경이 입을 꾹 다물고는 침음을 흘렸다.
‘미안하다’는 말이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유송령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따졌다.
“그 잘나고 대단하신 명문 정파에서는 실수로 상대에게 결례를 저지르면 사과하는 방법도 가르치지 않는 모양이군?”
그러자 목단화가 눈썹을 성큼 치켜 올리며 따졌다.
“그런 너희들은 우리에게 실수한 적 없냐? 우리 도움을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건 어떻고?”
“삼십 년도 더 지난 일을 따지는구나!”
“삼십 년이 지났으면, 고마움이 사라지는 모양이군? 그게 사파의 도리인가 보군?”
“흥! 당장 눈앞의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 너희들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뭐가 어쩌고 어째?”
두 여인이 노기를 드러내며 공력을 끌어올리자, 보다 못한 장려심이 불쑥 나섰다.
“두 분은 잠시 화를 누르시고 침착하게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서로가 분열할 게 아니라,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전 소가주님을 지키지 못한 죄인이지만, 주제넘게 나서는 것은 그만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디 저의 충언을 오해하진 말아 주십시오.”
그의 목소리가 끼어들자, 목단화와 유송령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장려심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 그 납치범들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놈들을 만나게 되면 어찌하실 건지….”
“당연히 찢어 죽여야지!”
“당연히 찢어 죽여야지!”
목단화와 유송령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휙 돌렸다.
한 목소리로 같은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기분 나쁜 듯했다.
장려심이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든 납치범들은 이 두 가문에 요구를 해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두 가문이 힘을 합쳐 난관을 헤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렇게 싸우고만 있으니….
그렇게 얼마나 어색한 시간이 흘렀을까?
유송령을 힐끗 본 목단화가 눈살을 슬쩍 구겼다.
“음…? 그건…?”
유송령이 목단화의 시선을 쫓아서 자신의 대도를 살피다가 당황한 얼굴로 얼른 칼을 숨겼다.
“뭐, 뭐? 뭐?”
목단화가 입매를 비틀었다.
“내가 준 거군.”
“흥! 잘못 본 모양이군.”
“아니. 틀림없어. 내가 만든 거니까. 길거리에 파는 게 아니거든.”
목단화는 거신도에 매여 있는 수실을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수실은 유송령이 혼인을 하던 날, 목단화가 직접 짠 것을 선물한 것이다.
그 수실은 천연 색소를 입힌 천잠사로 짠 것이었는데, 특별한 실인만큼 흐른 세월에도 거의 때를 타지 않았다.
사실 유송령은 그러한 일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지내다가 목단화의 시선을 느끼고 나서야 생각난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그 자리에 매여 있었기에 그냥 거신도와 한 몸인 것처럼 여긴 것이다.
마침 곁에 있던 연우경이 거들었다.
“그렇구려. 저 수실… 확실히 부인이 만든 거구려.”
“그래서? 지금이라도 뜯어서 달란 거야?”
유송령이 다소 유치하게 나오자, 연우경과 목단화가 서로를 보다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연우경이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석탄강을 보았다.
“우리 딸이 그러더군. 한때 우리가 정말 친구 사이가 맞느냐고. 그날 밤 나는 생각해 보았지. 우리가 친구로 지낼 때 어떤 일을 겪었는지. 사실 마족과 싸우던 기억밖엔 없었지만 말이야.”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런 시기였으니까.”
석탄강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꾸했다.
연우경이 고개를 들었다.
새벽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떠 있었다.
그가 쏟아질 듯한 별을 보며 말을 이어 갔다.
“저 별무리만큼이나 많은 일이 있었겠지. 하지만 별로 기억이 나는 건 없더군. 그래서 ‘정말 우리가 친구로 지내긴 했던가?’ 하고 생각했지. 하긴 삼십 년이나 지났으니까. 그런데 우스운 건 뭔지 아는가?”
“……?”
“그 많은 일들은 하나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때의 감정만큼은 기억이 나더란 말이지. 자네와 내가 동료로 지낼 때. 그때의 감정만큼은… 기억이 나더라고.”
연우경의 시선이 석탄강을 향했다.
석탄강이 그 시선을 담담히 받았다.
마침 석탄강의 입이 열렸다.
“기억나는군. 그때의 감정.”
“어떤가? 이번에 우리를 위협하는 적이 나타난 것 같은데… 잠시라도 한 번 우리의 무서움을 보여줄 생각 없는가?”
“흥, 왜 없겠나? 그놈들이 어떤 놈들이든지, 감히 우리를 건드린 대가가 무엇인지 톡톡히 가르쳐 줘야겠지.”
“그렇다면 아주 잠깐이더라도 그때의 감정에 취해 보세.”
연우경이 손을 내밀었다.
“잠깐이라면.”
석탄강이 손을 뻗어 연우경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