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618화 (618/670)

# 618

귀환 마교관

618화

콰자악!

퀴이이이이이잉!

방어막이 뚫렸다.

처음에는 칼끝이 삐죽 튀어 나오더니, 이내 긴 선을 그리며 잘라 나갔다.

타란트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방어막을 찢어내는 등부형을 보았다.

치짓! 파지지짓…!

상처를 입은 방어막이 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등부형이 찢어낸 그곳만이 벌어졌을 뿐, 전체적인 방어막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등부형이 벌어진 틈으로 몸을 쑤셔 넣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잠시 그를 관찰하던 타란트는 뒤늦게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고 블레이드를 가지고 있었군.”

그것도 호승심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고스트를 가지고 있으니 자신의 방어막을 찢어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적의 기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칼.

그게 바로 에고 블레이드인 고스트만의 특징이다.

방어막이 깨졌음에도 타란트는 여전히 흥미로운 표정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오는 등부형을 바라보았다.

그가 사비강을 한쪽으로 아무렇게나 걷어차고는 등부형이 있는 곳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한편 방어막 안쪽으로 들어온 등부형은 눈을 부릅뜨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구오오오오오…!

“커헙!”

그의 이마에서 핏대가 툭툭 불거져 나왔다.

‘뭐, 이런 압박이…!’

마치 공기가 온몸을 짓누르는 듯하다.

아니, 위에서만 짓누르는 게 아니다.

사방팔방에서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다.

마치 전신을 압박해서 쥐어짜는 것만 같다.

이 자리에서 몸이 터져 나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

방어막 바깥과 이곳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다.

공기도, 압력도 다른 공간.

그래서인지 시간이 더욱 느리게만 흘러가는 것 같다.

‘이런… 이런 곳에서…! 이런 곳에서 싸우고 있었단 말인가?’

그가 부들부들 떨면서 가까스로 일어나 한쪽 구석에 쓰러진 사비강을 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사비강의 몰골은 처참했다.

정말이지 인류 최강의 무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마왕 타란트 앞에서는 한낱 인간이었다.

이제야 그들이 왜 인간을 보면서 하나 같이 수식어를 ‘한낱 인간’이라고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크아아압!”

기합성을 내지르면서 겨우 한 걸음을 떼어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그렇잖아도 무거운 귀혼도가 연신 떨어대니 자칫 손에서 놓칠 것만 같다.

의식이 가물가물한 사비강을 지켜보자니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자네… 어째서 그리 쓰러져 있는가? 자네라면 시건방진 소리를 하면서 벌떡 일어나야지! 이런 무게도 견디지 못하는 나를 비웃으면서 일어나야지!’

하지만 사비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다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저벅…!

한 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싸움은커녕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는 곳.

아니,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는 곳.

“헉, 헉… 헉…! 사비….”

때마침 앞을 가로막는 존재.

“어서 오게.”

비릿한 웃음을 짓는 자는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달린 마왕 타란트였다.

그 순간 등부형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제길…! 움직여!’

하지만 의지와 달리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타란트가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뻗어 등부형의 뺨을 쓸었다.

“가여운… 떨고 있구나.”

“크이익…!”

마침내 등부형이 움직였다.

아니, 등부형의 분노를 읽은 듯 귀혼도가 알아서 움직였다고 봐야 하리라.

쒸이이잇!

따앙!

귀혼도와 마력이 부딪치면서 금속성이 울렸다.

타다닥…!

휘청거리면서 물러난 등부형은 겨우 중심을 잡고 타란트를 노려보았다.

우웅! 우우웅! 우우웅!

그의 손에 쥐어진 고스트가 연신 몸을 떨어댔다.

그 떨림이 마치 등부형의 감정과 공명을 이루는 듯했다.

타란트가 싱긋 웃었다.

“고스트. 형편없는 주인을 섬기는구나.”

우우우웅! 우우우웅!

“하긴 너는 원래 반항아적인 기질이 있었지. 그래서 나는 베르타스를 선택한 것이고.”

타란트가 손을 뻗었다.

쒸이이이이잉, 탁!

순간 사비강의 손에 쥐어져 있던 베르타스가 허공을 날아 타란트의 손에 착 감겼다.

위이이이이이잉!

타란트의 손에 쥐어진 베르타스가 몸을 떨며 전율을 일으켰다.

마치 이제야 제대로 주인을 만났다는 듯 광기를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귀혼도 역시 베르타스를 앞두고 온몸을 떨었다.

“크읏…!”

그 떨림이 너무 강해 등부형이 미간을 좁혔다.

타란트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스트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는 모양이군.”

“닥쳐랏!”

어디서 기운이 솟은 것일까?

등부형은 귀혼도가 이끄는 대로 달려가서 칼을 휘둘렀다.

쉬까아아아앙!

불꽃이 튀면서 귀혼도와 베르타스가 부딪쳤다.

따앙! 땅! 쩌어어엉!

연이어 터진 금속성.

등부형은 무아지경 속에서 마구 칼을 휘둘렀다.

보법이고, 도법이고 없었다.

그냥 본능에 따라 아이가 칼부림을 하듯 휘둘러댔다.

한데 묘하게도 그것이 호각지세를 이루고 있었다.

사실 이는 베르타스와 귀혼도의 싸움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희망을 주었으면 됐겠지. 절망하라, 미련한 인간이여.”

타란트의 싸늘한 목소리.

곧이어.

쒸이이이이이잉!

베르타스가 빛줄기를 이끌며 등부형의 몸을 사선으로 베어 왔다.

“흐아아아아압!”

등부형 역시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귀혼도를 사선으로 그어 올렸다.

쩌어어어어엉!

기파가 사방으로 훅 퍼져 나가는 것과 동시에.

쒸이잉, 푸욱!

“커어억!”

등부형은 명치를 관통한 베르타스를 보면서 입을 쩌억 벌렸다.

베르타스에 관통당한 채 그대로 날아간 등부형은 방어막에 부딪치고는 종이처럼 구겨지고 말았다.

“커억… 억…!”

그의 동공이 커졌다.

눈빛에 절망이 차올랐다.

등부형이 고개를 들고 저만치 쓰러져 있는 사비강을 보았다.

사비강 역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등부형을 구할 수 없다는 게 못내 한스러운 듯했다.

타란트가 입매를 뒤틀었다.

“절망하라! 더욱…! 더욱 절망하라! 인간들이여!”

그가 손을 뻗자, 등부형의 명치를 관통했던 베르타스가 ‘쒸잉!’ 소리를 내며 돌아왔다.

꽈르르르르릉! 쩌저엉!

방어막 위로 몰려든 구름에서 번개가 치며 천둥이 울렸다.

타란트가 힘없이 주저앉은 등부형에게 다가갔다.

“그래, 너희 인간이 준비한 마지막 한 수가 무엇인지나 볼까?”

등부형은 마지막까지 품안에 든 것을 지키려는 듯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것을 든 손은 이내 힘없이 떨어졌고, 빛을 품은 물건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툭, 데굴데굴….

타란트의 시선이 빛을 품은 물건으로 향했다.

그가 허리를 굽혀 그것을 주워들었다.

“이게… 뭐지?”

타란트가 미간을 좁히고는 둥근 구슬을 보았다.

묘한 빛을 품은 구슬.

한데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타란트가 눈살을 찌푸리자,

“킥킥…! 뭐긴… 뭐냐? 야명주지!”

버럭 고함을 내지른 등부형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면서 귀혼도를 세차게 내던졌다.

쒸아아아아앙!

귀혼도가 빛살처럼 허공을 가르며 타란트에게 날아드는 순간.

쒸에에에에에에엑!

마침 방어막 바깥에서 무언가 빠른 속도로 날아 들어왔다.

‘협공…?’

하지만 바로 앞에서 날아드는 귀혼도를 막아내는 것이 급했다.

쉬따아아앙!

휙, 콰직!

베르타스에 막혀 튕겨 날아간 귀혼도가 방어막 천장에 꽂혔다.

파지지짓…!

이번에도 방어막은 한 차례 기파를 터뜨리기만 할 뿐, 깨지지는 않았다.

다행히 밖에서 날아든 화살은 타란트를 스쳐 지나갔다.

“조금 방심했군.”

살짝 화가 난 표정을 지은 타란트가 이맛살을 구기고는 등부형을 보았다.

괜찮다.

어차피 적에게 희망을 줄수록 절망은 더욱 깊어질….

“…왜 웃지?”

타란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등부형이 헤벌쭉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넌… 이제… 좆 됐어… 새끼야.”

말을 마친 그가 그대로 털썩 쓰러졌다.

그는 저만치 쓰러져 있는 사비강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렇지 않소…? 사 궁주! 이걸로 내 임무는 다 한 것 같소.’

그 생각을 끝으로 그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타란트가 휙 돌아선 순간.

위이이이이잉…!

베르타스가 격동하듯 몸을 떨어댔다.

강한 기운을 느꼈을 때 일어나는 현상.

타란트의 미간이 구겨졌다.

“저건…?”

사비강의 심장에 뭔가가 박혀 있었다.

아마도 조금 전에 밖에서 날아든 화살인 듯했다.

한데….

화살촉이 평범하지 않다.

위이이잉! 위이이이잉!

베르타스가 격렬하게 몸을 떨어댔다.

녀석이 소리치고 있었다.

지금 그를 죽여야 한다고!

또한 자신의 본능이 소리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사비강을 죽여야 한다고!

위기의식을 느낀 타란트가 바닥을 박차고 날아가는 순간.

쒸아아아아아아아앙!

사비강의 몸에서 갑자기 검붉은 기운이 터져 나오더니 세 개의 거대한 형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하나는 레드 드래곤의 형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악신, 또 다른 하나는 마령혼의 형상이었다.

거대한 세 존재가 나타나면서 점점 커지자, 방어막이 ‘빠지직!’ 소리를 내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타란트도 처음 보는 현상에 주춤 물러났다.

다음 순간.

꽈차아아앙!

방어막이 완전히 부서져 나가자 세 존재가 타란트를 내려다보며 엄중히 경고했다.

- 지금 그를 건드리지 마라.

“뭐…?”

타란트의 뺨이 씰룩였다.

일단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세 존재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마족에게도 악신의 권능이 있지만, 악신들을 한꺼번에 소환할 수는 없다.

게다가 저렇듯 완전히 각각의 의지를 가진 객체로 소환해내지는 못한다.

어디까지나 악신은 마족에게 그 권능을 주는 것일 뿐이다.

한데 저래서야….

마치 저 존재들을 수하처럼 두는 것 같지 않은가!

뒤늦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타란트가 버럭 소리쳤다.

“감히… 누가 누구에게 명령하는가!”

순간 그의 전신에서 강렬한 기운이 휘몰아치듯 일어났다.

악신을 사용하는 최고 단계를 발현하자, 그의 뒤로 거대한 형상이 나타났다.

본능의 악신이었다.

타앗!

타란트가 그대로 바닥을 차며 사비강에게 날아가자, 본능의 악신 역시 똑같은 동작으로 움직였다.

마침내 타란트가 베르타스를 강하게 내질렀다.

쉬이이이잇!

쩌어어어어엉!

고막을 찢어발길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타란트는 눈을 부릅뜨고는 앞을 막은 존재를 보았다.

레드 드래곤이었다.

- 더 이상의 공격은 불허한다.

레드 드래곤이 크고 붉은 날개로 사비강을 감싸고 있었다.

쑤아아아아앙!

허공을 가르는 소리에 타란트가 반사적으로 베르타스를 들어올렸다.

본능의 악신이 그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자.

꽈자아아앙!

천지가 갈라질 것만 같은 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마치 염라처럼 전신이 불길에 둘러싸여 이글거리는 존재가 거대한 창을 내려찍고 있었다.

마령혼이었다.

마령혼이 일장을 내밀자, 본능의 악신이 마력을 일으키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파아앙!

거대한 손바닥을 앞으로 내민 마령혼이 다시 한 번 엄중히 경고했다.

- 물러나라.

곧이어.

쉬아아아아아악

사방에서 어둠이 몰려들더니 주변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 어둠 속에서도 거대한 두 눈이 유일하게 빛났다.

암흑의 악신이었다.

- 그를 건드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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