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617화 (617/670)

# 617

귀환 마교관

617화

꽈다아앙!

“커억!”

사비강이 피를 토하면서 큰 대자로 뻗었다.

이제는 정말이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다.

아니, 움직이려면 움직일 수야 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굴복해 버렸다.

마왕 타란트를 이길 방법?

그딴 건 애초에 없었다.

‘못 이긴다. 이길 수가 없다.’

마침내 좌절감이 차올랐다.

타란트는 시종 여유가 넘쳤다.

처음에는 저 표정이 얄미웠다.

저 방심을 이용해서 제대로 엿을 먹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저 여유로운 표정이 두렵기 시작했다.

애초에 자신은 회귀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결국 강호인들을 두 번 죽이는 꼴이 되지 않았나?

아니, 강호인들은 사실 상관없다.

처음부터 대의명분 따위를 위해 회귀한 것은 아니니까.

그저 마계로 이끌려 가서 그 개고생을 했던 세월을 보상받고, 자신을 죽인 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회귀했다.

한데….

‘이건 뭐 복수는커녕….’

오히려 뒤통수를 한 번 더 맞은 꼴이라니!

가만, 회귀를 다시 하는 방법은 어떨까?

한 번 회귀를 했으니, 이번에도 회귀를 하지 못하리란 보장은 없지 않은가?

그럼 여기 있는 자들은 어떻게 되지?

자신이야 과거로 돌아간다고 쳐도, 이곳의 매설란과 천멸대, 신생조들은?

아니다.

불가능하다.

마계의 고대 마법인 회귀는 한 존재가 두 번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역시 틀렸다.

‘제길…!’

“생각이 복잡한 모양이군.”

어느새 다가온 타란트가 사비강을 내려다보다가 복부를 발로 짓눌렀다.

콱!

“컥!”

다시 한 번 피가 울컥 토해졌다.

내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타란트의 입매가 비틀렸다.

“눈빛이 달라졌어. 이제야 깨달은 건가? 너의 한계를.”

“어째서… 죽이지 않는 거냐?”

사비강이 힘겹게 말을 꺼냈다.

타란트가 싸늘한 미소를 지은 채 가까이 다가왔다.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왜냐고? 악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너희 인간들의 감정이지. 절망이 극에 달했을 때.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그렇게 너희 인간의 이성이 무너지는 순간에 악(惡)이 스며들면서 힘을 얻는 법. 나는 너의 절망이 극에 달하는 순간을 기다릴 뿐이다. 그곳에 나의 힘이 있으리니.”

대마괴가 인간의 감정을 이용하여 탄생하듯, 제물 역시 인간의 부정적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가장 효과가 좋은 법이다.

상대를 단칼에 죽일 때보다, 온갖 고문 끝에 죽일 경우 더 악랄한 심정이 극에 달하는 것과 같은 이치.

즉, 타란트는 제물을 바칠 가장 좋은 시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계획대로 사비강은 조금씩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타란트가 사비강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들어올렸다.

그가 방어막 밖을 향해 사비강을 내밀며 물었다.

“보이는가? 너를 구하고자 달려오는 녀석들이. 저기 저 녀석의 품에는 뭔가 빛나는 것이 있군. 아마 저걸 너에게 전해주러 오는 모양인데.”

사비강은 게슴츠레 뜬 눈으로 용암 건너편에서 달려오는 천멸대와 신생조 그리고 등부형을 보았다.

타란트의 말대로 등부형의 품에는 무언가 빛나는 게 있었다.

사비강의 얼굴을 타란트가 바짝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정말 우습지 않은가? 도대체 인간은 어쩌면 저리도 미련한지. 저걸 들고 이 넓은 용암 지대를 어찌 건널 생각일까? 또한 이곳으로 온다 해도 저것을 너에게 전할 수 있을까? 그걸 전하는 동안 나는 가만히 구경만 하는 건 아닐 텐데. 자, 어떤가? 이제 다시 희망이 조금은 생겼나? 너 역시 미련한 인간일 테니. 분명 그럴 테지. 슈비츠여.”

아닌 게 아니라 사비강은 천멸대와 신생조 그리고 등부형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희망이 생기고 있었다.

그것이 정말 타란트의 말대로 미련한 반응인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타란트는 그걸 정확히 간파했다.

“그래야지. 벌써 절망하면 그 강도가 약할 테니, 좀 더 희망을 품다가 처절하게 절망하도록. 그것이 곧 나의 힘으로 승화하리라.”

“너의 그 자만이… 언젠간 네 목을 겨누는 칼이 될 것이다.”

“하하!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슈비츠!”

휘이익!

타란트가 사비강을 방어막이 있는 곳으로 냅다 집어던졌다.

콰다아앙!

반투명한 방어막에 부딪친 사비강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쓰러졌다.

타란트는 사비강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방어막 가까운 곳으로 갔다.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미련한 제물들이여, 좀 더 힘을 내도록. 악신의 권능이 충만해지도록!”

그의 입매가 사악하게 찢어졌다.

**

“훅, 훅, 후욱…!”

천멸대와 신생조 모두가 무릎을 짚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정말이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오로지 등부형을 호위한다는 그 임무 하나만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용암이 흐르는 곳까지 도착했다.

하지만….

“너무 멀어. 젠장!”

방각이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말이지 용암은 강처럼 넓게 흐르고 있었다.

마침내 이곳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지만, 이 넓은 용암을 건너갈 방법이 없다.

허공답보를 펼친다고 해도 용암을 모두 건너기 전에 빠지고 말 것이다.

산 너머 산이라더니…!

사비강을 구하고 강호를 구할 수도 있는 마지막 한 수가 남아 있는데, 그걸 사용할 방법이 없다.

등부형 역시 멍한 표정으로 용암 지대를 바라보았다.

숨도 쉴 틈 없이 달려왔더니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그의 머릿속에는 주술처럼 하나의 생각만 가득할 뿐이었다.

‘사비강에게 가야 한다. 사비강에게 가야 한다. 사비강에게…!’

그가 무심결에 성큼 걸음을 내디딜 때였다.

“…라고!”

“…….”

멍하니 고개를 돌리는 순간.

짜아악!

불이라도 붙은 듯 뺨이 화끈거렸다.

등부형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돌아보니 맹가숙이 잔뜩 화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정신 안 차려!”

“아… 뭐라고 하셨소?”

“지금 뭐하는 거야? 타 죽으려고 작정했어?”

그제야 등부형은 헛바람을 삼키며 훌쩍 물러났다.

“헉, 언제…!”

바로 발 앞에 용암이 흐르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걸음을 옮긴 것이리라.

어쩌면 유황 연무에 취해서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거기에 지겹도록 울어대는 귀혼도.

귀혼도는 여전히 저곳으로 달려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맹가숙이 앞에 쪼그려 앉고 허리를 숙이더니 소리쳤다.

“정신 들었으면 업히시오!”

“그, 그게 무슨 소리요?”

등부형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던 천멸대와 신생조가 우르르 몰려와서 소리쳤다.

“영감! 뭐하는 거야?”

“시끄러! 내가 그쪽을 업고 허공답보는 어렵더라도 수상비는 펼칠 수 있을 것 같으니, 업히란 말이오!”

“미쳤습니까?”

등부형이 버럭 소리쳤다.

설서린도 화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영감이야말로 타죽으려고 작정한 거야? 저기가 어디라고 수상비를 펼쳐?”

“그래, 아무리 수상비를 펼친다고 해도 발이 물에 닿아야 하듯, 용암에 발바닥이 닿아야 한다고!”

유송령이 거들자, 맹가숙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시끄러!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리고 용암은 물보다 농도가 짙다. 수상비보다도 공력 소모는 덜 할 거란 말이지. 그러니 한기를 이용해서 몸을 보호하고 수상비를 펼친다면….”

“안 돼! 그럴 순 없소!”

말을 가로지른 사람은 등부형이었다.

그 역시 들은 적은 있다.

흐르는 용암에 떨어져 그 위를 떠내려가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그자는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이었고, 전신에 화상을 입었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당대 의원들의 말에 의하면, 이는 용암의 농도가 사람보다도 높기 때문이라나?

어쨌거나 그건 정말이지 운이 좋았던 경우다.

맹가숙이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더라도 자신을 업고 수상비를 펼쳐 여길 건너갈 수는 없으리라.

맹가숙이 지지 않고 소리쳤다.

“아, 내가 빠져 죽더라도 그쪽이 나머지를 건널 수만 있다면…!”

“잠깐만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소리친 사람은 바로 능소소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염자량이 반색하며 물었다.

“소소! 혹시 정령을 부릴 수 있겠어?”

“지금 상급 이상은 어려워. 중급 정령이라면….”

“건널 수 있을까?”

“아슬아슬할 것 같아.”

이번엔 모두의 시선이 등부형에게 향했다.

등부형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능소소에게 다가갔다.

“도와주게! 나를 저곳까지 건너갈 수 있도록!”

“교관님이 경공을 최대한 펼치셔야 해요.”

“하겠네!”

“그래도 좀 모자랄 지도 몰라요.”

“각오하지!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건너갈 것이야.”

능소소가 호흡을 가다듬고는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등부형을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간 얽혔다.

능소소가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바로 실라페를 소환할 테니, 경공을 펼쳐 주세요.”

“알겠네!”

등부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넓게 흐르는 용암 지대를 돌아보았다.

구오오오오…!

조금 떨어져 있음에도 얼굴이 그대로 녹아 버릴 것만 같은 열기.

이곳을 건너야 한다.

천천히 뒤로 물러선 그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눈을 떴을 때!

“하아아아앗!”

등부형이 기합성을 내지르면서 경공을 펼쳐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암이 흐르는 경계에서 힘차게 도약했다.

팟!

“실라페!”

능소소의 외침에.

후우우우우웅!

때 아닌 바람 줄기가 후욱 불어오더니 등부형의 등을 떠밀었다.

그의 신형이 허공 높이 날아올랐다.

파바바바밧!

허공답보를 펼치듯 등부형은 한참이나 날아갔다.

천멸대원과 신생조원들이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어쩌면…!’

‘건너갈 수 있을 지도!’

모두가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능소소의 눈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힘에 겨워하는 실라페의 형상이 또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애초에 실라페는 사람을 바람으로 날려 보낼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그나마 등부형이 경공을 펼치니 가속을 더해 준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등부형은 정령의 힘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모자란다…!’

이대로라면 이십여 장이 남는다.

등부형은 이를 악다물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파바밧!

마침내 실라페가 사라졌고, 등부형은 그대로 용암 지대 위로 떨어졌다.

치이이이익!

발바닥에서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크으읍!”

이를 악다문 등부형이 수상비를 펼쳤다.

“흐아아아압!”

파바바바밧!

치치치이이익!

그의 발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이내 불길이 옮겨 붙더니 종아리를 휘감으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팟!

마지막으로 도약을 한 순간, 등부형은 아슬아슬하게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재빨리 한기를 운용해서 불을 끈 그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방어막에서 묘한 기의 파장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귀혼도 역시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등부형이 귀혼도를 콱 움켜쥐었다.

“으아아아압!”

마침내 절규에 가까운 기합성이 그의 목구멍에서 토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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