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6
귀환 마교관
616화
“엇! 웬 마수가…!”
흑성 입구를 지키는 마족 경비병이 소리치는 순간,
- 크르러렁!
맹수의 포효가 울리면서 덩치 커진 반묘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우악!”
“크아악!”
순식간에 두 명의 마족을 물어뜯은 반묘가 입가에서 피를 흩뿌리며 포효했다.
- 쿠르러렁!
천둥 같은 소리가 울리자, 마족 경비병들이 이를 갈며 달려왔다.
“이 미친 짐승이!”
“죽여 버렷!”
순식간에 십여 명의 경비병들이 반묘를 둘러싸며 시퍼런 칼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어딜!”
느닷없이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추량이 바람 같은 속도로 나타나면서 마나검을 휘둘렀다.
스카앙! 꽈앙!
“이익! 인간이다! 죽여랏!”
“엇! 여기도…!”
마침 뒤를 돌아본 경비병은 말을 마저 잇지도 못한 채 목이 날아가고 말았다.
쉬리리릿! 슈컥!
툭, 데굴데굴…!
츄아아아!
목을 잃은 몸통이 피를 분수처럼 터뜨리면서 넘어갔다.
경비병의 목을 날린 사람은 바로 매설란이었다.
난데없이 두 사람이 나타나서 칼부림을 하자, 경비병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소리쳤다.
“적이다! 인간이 나타났다!”
“궁!”
그들의 외침에 성벽 위에 남아 있던 궁수들이 상체를 내밀더니 시위를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총관님!”
추량이 소리치자, 매설란이 얼른 보법을 펼쳐 그의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동시에 반묘가 작아진 체형으로 추량의 품으로 돌아왔고, 두 사람을 에워싸며 공격하던 경비병들 역시 튕기듯 물러났다.
곧이어.
쒸쒸쒸쒸에에엑!
하늘에서 화살비가 쏟아져 내렸다.
후아아아아앙!
순간 추량이 머리 위로 왼손을 들어 올리자 마나방패가 나타났다.
이전까지 사용하던 것보다 훨씬 커다란 방패였다.
진백이 만들어 준 영약의 효과를 본 것이다.
투타타타타타탕!
마치 철판에 콩을 볶는 듯한 소리가 울리면서 시커먼 철시가 사방으로 튕겨 날아갔다.
한 차례 화살비가 쏟아지고 나자, 매설란이 두 자루의 연검을 곧장 교차하듯 휘둘렀다.
“하아아앗!”
츄카가가각!
뱀처럼 구불거리는 강기가 바닥을 타고 빠른 속도로 기어가더니 이내 성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성벽 꼭대기까지 다다른 강기가 마족 경비병들을 향해 쇄도했다.
슈카카가각!
“크아악!”
“커허억! 아악!”
마족 궁수들이 저마다 비명을 내지르며 성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다른 경비병들 역시 매설란의 무위에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주춤 물러났다.
놀라기는 곁에 있던 추량도 마찬가지였다.
“대, 대단하군요!”
“진 당주님 덕분이죠.”
매설란은 무미건조하게 말했지만, 내심 자신의 성취에 놀라고 있었다.
‘이제 사행기검(蛇行氣劍) 초식까지 무리 없구나.’
조금 전 그녀가 펼친 것은 사사검법에서도 상승 무공에 해당하는 ‘사행기검’이라는 초식이었다.
대체로 강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초식이었는데, 강기가 바닥을 타고 기어가 상대에 닿았을 때 전신을 난자하는 방식이었다.
조금 전에는 이를 응용하여 변초를 펼친 것인데, 넝쿨처럼 벽을 타고 오른 것이다.
추량 역시 그녀가 단순히 영약 때문에 강해진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혹독한 수련을 매일 같이 하던 자였다.
아마도 멸마궁에서 아니, 강호에서 그녀보다 더 많은 수련을 한 자는 없으리라.
멸마궁의 공식 업무가 끝나면 오로지 수련만 하던 그녀였으니.
“저도 질 수 없지요!”
추량이 버럭 소리치고는 마나검을 휘두르며 달려 나갔다.
“이이익…!”
“막앗!”
경비병들이 소리치며 나섰지만, 반묘의 버프를 받은 추량은 어지간한 속도로 상대하기 힘겨웠다.
슈컥! 슈슈컥!
마나검이 빛을 뿌리며 날아갈 때마다 적의 목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거기에 매설란이 사행기검을 흩뿌리니 경비병들은 금세 손발이 어지러워져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추량의 마나검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경비병의 심장을 뚫었다.
“크윽…!”
경비병은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추량을 보았다.
“한낱 인간에게 어째서…!”
털썩!
슈우우욱!
마나검이 사라지자 추량이 손을 털며 고개를 저었다.
“죽어가면서도 무시하다니. 진짜 너무하네.”
그가 고개를 꺾어 들고는 하늘 높이 치솟은 흑성을 올려다보았다.
“와아, 이렇게 보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높군요. 저 위에까지 걸어서 올라갈 수나 있는 걸까요?”
“걱정 마요. 우린 저 위까지 올라갈 일이 없을 테니.”
“다행이네요.”
매설란은 천천히 성 내로 걸음을 옮겼다.
성문은 무방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활짝 열려 있었다.
추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방비가 허술하군요.”
“한낱 인간이 여기까지 올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겠죠.”
“하긴. 놈들의 그 자만 덕분에 이나마 싸울 수 있는 거겠죠.”
“그래도 우린 방심하면 안 돼요. 언제 어디서 함정이나 적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이제 아들러 백작을 찾아야 해요. 궁주님 말씀대로라면, 그를 찾아 죽이면 마계화 된 이 지역을 정화시킬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대마괴의 힘도 약해지겠죠?”
“아마도.”
매설란은 신중하게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곳 흑성의 구조가 눈에 익다는 것이었다.
일전에 사비강의 의식 세계에서 와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흑성의 위치는 다르지만, 구조는 똑같았다.
‘역시 다시 봐도 정말 대단하구나.’
마계수(魔界樹)가 자라나서 그대로 굳으면서 만들어진 흑성.
이 검고 단단한 벽들을 보고 있노라면 도저히 식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엇, 반묘!”
추량의 품안에 있던 반묘가 폴짝 뛰어내리더니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녀석은 한참 달려가다가 모퉁이에서 돌아보더니 마치 두 사람을 기다리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매설란과 추량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반묘의 뒤를 쫓았다.
마침내 반묘가 멈춘 곳은 지하로 향하는 널찍한 계단 입구였다.
계단 아래쪽에서는 사이한 기운이 넘치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째… 쉽지 않은 길이 될 것 같네요. 역시 지원을 받아….”
“사람이 많아지면 더 어려워져요. 우리가 해내야 해요.”
매설란이 더는 말을 듣지도 않은 채 걸음을 내디뎠다.
결국 추량도 굳은 표정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
콱!
누군가 발목을 잡았다.
콰당탕!
등부형은 바닥을 구르며 거칠게 넘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상당한 마족 기사 하나가 안광을 형형하게 내뿜으며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벌레 같은 인간…! 감히 마족을 이기려…!”
“이익! 방해하지 마라!”
버럭 고함을 내지른 등부형이 귀혼도를 휘둘렀다.
서컥!
“크아악!”
팔이 썰려 나가자 마족 기사가 비명을 내지르며 떨어졌다.
그 순간 등부형의 배후를 덮쳐 오는 시커먼 그림자!
“헛!”
등부형이 헛바람을 삼키며 돌아서는 찰나.
쒸에에엑!
푹!
“쿠아악!”
리자드맨 한 마리가 비명을 내지르며 튕기듯 날아갔다.
녀석의 가슴에는 빳빳한 철시가 꽂혀 있었는데, 타들어 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등부형은 고개를 들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단리정… 정말이지 대단한 녀석이군.’
누가 알았을까?
단리정이 저토록 먼 거리에서도 백발백중하는 신궁이 될 줄을.
등부형은 ‘끙!’ 소리를 내고는 일어섰다.
다시 달려야 한다.
그는 총군사와 강호 명숙들이 있던 언덕에서부터 이곳까지 쉬지도 않은 채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럼 등 대협께 막중한 임무를 맡기겠습니다!”
총군사 구윤의 명이었다.
그의 두 눈빛에서는 간절함을 넘어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들어 있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등부형은 온 마음을 다해 대답했다.
반드시 성공하겠노라고!
그 후로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구윤은 등부형이 잘 달릴 수 있도록 엄호를 지시하겠다고 했다.
그 말만 믿고 달렸다.
실제로 이따금씩 앞을 막아서는 녀석이 나타나면 대부분 단리정이 활을 쏘아 제거해 주었다.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전장이었지만, 등부형은 그런 것들과는 무관한 사람처럼 오로지 전속력으로 내달리기만 했다.
물론 앞길을 막는 녀석들 중에는 단리정의 화살이 미처 놓친 놈들도 있었다.
그럴 경우에는 등부형이 직접 귀혼도를 휘둘러 제거했다.
오로지 직진!
달리고 달린다!
사비강이 있는 곳까지!
우웅! 우우웅!
사비강이 싸우고 있는 용암 지대가 가까워질수록 귀혼도는 전율하듯 떨어댔다.
강한 기운에 절로 반응하는 게 틀림없으리라.
확실히 귀혼도는 강한 기운을 느낄수록 자신도 더욱 강한 기운을 뿜어냈다.
마치 칼자루가 호승심이라도 지닌 것 같다.
그래서 등부형은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녀석이라면 저 방어막도 뚫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총군사 구윤은 그런 등부형에게 희망을 걸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사비강과 마왕이 싸우는 장소 근처에는 대마괴가 설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크르르르…!”
“카르르륵!”
등부형은 달리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그의 앞을 막아선 수많은 마물들.
딱히 녀석들이 등부형의 앞길을 막으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녀석들 역시 대마괴를 피해 멀찍이 떨어지다 보니 이런 곳에 모여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저 용암 지대까지 가기 위해서는 이 녀석들을 뚫어야 한다.
단리정의 활 솜씨에 의지하기에는 적의 수가 너무 많다.
한편 마물들은 등부형을 보고는 어금니를 빠득 갈았다.
“크륵…! 인간이다…!”
“쿠루룩! 죽이자! 살을 바르고 씹어 삼키자!”
“쿠아아아! 내 먹이다!”
“아냐! 내가 뜯어먹는다!”
마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몸을 날리며 등부형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제길!”
등부형이 욕지거리를 뱉어내면서 귀혼도를 휘둘렀다.
쒸에에엑! 쒸이이잇!
서컥! 츄아아앗!
등부형은 혈귀처럼 싸웠다.
그의 사나운 기세에 순식간에 일곱 마리의 마물들이 목숨을 잃었다.
뜻밖에도 강한 무위를 보이자, 마물들이 주춤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등부형을 부채꼴로 포위하면서 으르렁거렸다.
‘더 이상 달리기 어려운가?’
등부형이 이를 빠득 가는데.
“달리십시오!”
느닷없는 고함 소리에 이어 염자량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짜르르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그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그라운드 웨이브 마법이 부채꼴 모양으로 훅 퍼져 나갔다.
쿠콰콰콰콰콰!
“크아악!”
“우아악!”
마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다.
곧이어.
차르르르르르륵!
사슬낫이 날아들면서 그라운드 웨이브를 피해 살아남은 녀석들을 무참히 베어 가는 것이 아닌가?
등부형이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니, 어느새 천멸대원과 신생조원들이 모여 있었다.
청빙검을 휘둘러 적을 제거한 연우경이 그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우리가 엄호하겠습니다! 달리십시오!”
“너희들…!”
“거참, 뭐하는 거요? 어서 뛰지 않고!”
툴툴 거리듯 소리친 사람은 맹가숙이었다.
아마도 이들은 총군사로부터 신호를 받고 자신을 엄호하러 온 것이리라.
등부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엄호를 부탁드리오!”
“맡겨만 두시라고!”
“교관님, 달리세요!”
마지막으로 목단화의 외침에 등부형은 내심 흠칫하고 말았다.
‘아직… 날 교관으로 불러 주는구나.’
갑자기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그동안 자신의 행동을 생각한다면 과연 그런 호칭이 어울리기나 했던가?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달려야 한다!’
“흐아아앗!”
등부형이 비명 같은 기합성을 내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촤촤촤촤아악!
그를 호위하는 천멸대와 신생조가 연신 혈풍을 일으키며 이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