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6
귀환 마교관
606화
사비강의 두 눈이 퀭해졌다.
그가 미간을 잔뜩 좁히고는 물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중원의 언어로 말해 줘도 못 알아듣는 건가?”
“허튼 소리. 분명 나는 회귀할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아들러를 잡아서 고문하고 죽였을 테지. 그러한 사실들을 내가 몰랐을까?”
순간 사비강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면, 마왕도 회귀를 했다는 말인가?
마치 그 속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타란트가 말했다.
“물론, 나는 회귀하지 않았다. 다만 알고 있을 뿐.”
“대체 어떻게…?”
“본능이다.”
타란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를 수호하는 악신 중에서도 가장 강한 권능을 가진 악신.
바로 본능의 악신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해되는 건 아니다.
본능이 강하다고 한들 미래에서 벌어진 일을 어찌 다 알 수가 있나?
타란트가 툴툴 웃었다.
“이해하기 어려울 테지. 그것이 바로 인간과 마족의 차이다. 그 하찮은 뇌로 모든 걸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한계가 분명한 거지.”
“개소리도 작작….”
“믿지 않겠다는 건 너의 자유지만 사실이다. 나는 널 일부러 과거로 돌려보냈다. 이렇게 다시 만나기 위해서.”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했단 거지?”
“모르겠는가?”
타란트가 가늘게 뜬 눈으로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먼발치에서는 백만에 이르는 무인들이 희뿌연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타란트는 감회가 새롭다는 듯 희미한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더 큰 힘을 위해서다.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서지.”
그의 시선이 다시 사비강에게 향했다.
사비강은 말없이 타란트의 시선을 담담히 받아냈다.
타란트가 말을 이었다.
“너를 통해서 중원인들, 특히 무인들의 능력을 높이 샀지.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신체 기량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인간들을 보면서 나는 몹시 흥미를 가졌을 것이다. 지금 너희들을 보면서 느끼듯이.”
“그래서?”
“그 중에서도 너는 특별했을 터. 지금 역시 이렇게 특별하지 않은가? 결국 나는 너를 이용해서 내 한계를 깰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비강이 타란트를 빤히 응시하면서 씹어 뱉듯 말했다.
“하지만 너는 미래를 알 수 없을 텐데. 마치 보고 겪은 것 마냥 말하는군.”
“그래. 미래를 알 수는 없었지. 적어도 중원에 올 때까지만 해도. 하지만 시간의 굴레를 벗어난 존재들이 있지 않은가?”
“시간의 굴레… 신을 말하는 건가?”
타란트가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야 조금 머리가 돌아가는 모양이군. 나는 본능에 따라 자콕을 죽이고 그 권능을 흡수했지. 그가 가진 가장 강한 권능은 바로 예지와 변화. 나를 가호하는 본능의 악신이 그 권능을 흡수하는 순간, 나는 모든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비강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아니, 사실일 확률이 매우 높다.
타란트는 간악하지만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할 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분명 자신의 회귀 역시 타란트의 뜻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타란트는 자콕 백작을 죽여서 그 권능을 흡수하면서 전후사정을 완전히 알게 된 것이리라.
실제로 타란트는 자콕 백작을 죽인 후 흡수한 권능으로 본능의 악신을 더욱 강화시켰다.
그렇다고 새로 만들어진 권능으로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전부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다만 시간의 굴레가 서로 부딪치는 순간에는 단편적인 기억들을 볼 수 있다.
일전에 타란트가 사비강을 찾아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비강과 대화를 나누던 그 순간, 타란트를 가호하는 악신은 꽤나 선명한 시간들을 보여주었다.
사비강에게는 과거이지만, 자신에게는 미래였던 순간들을.
“하지만 지금부터는 완전히 바뀌어 버릴 미래지.”
가만히 중얼거린 타란트가 양손을 펼쳤다.
그러자 주변의 땅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마침내 흙먼지와 자갈, 돌덩어리가 허공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타란트의 전신에서 엄청난 마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가 먼발치의 전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아라. 내가 만든 이 순간을. 완벽한 무대이지 않은가? 백만에 이르는 제물들. 그리고 내가 흡수할 너의 능력.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순간이다.”
쿠구구구궁…!
이제는 육중한 바위조차 허공으로 가볍게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땅을 통째로 들어낼 듯했다.
타란트는 지금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악신들에게 바쳐진 제물은 양과 질 중 하나였다.
양이 많거나 질이 좋거나.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무공을 익힌 백만의 인간들이 집결했다.
그야말로 양질의 제물이다.
다만…
“생각보다 강해지진 못했군. 슈비츠 폰 그렌탈. 그래도 널 상대함에 있어서 조금은 버거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
“그래도 저만한 양질의 제물을 가져왔으니 그걸로 만족하겠다.”
사비강이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했다.
“저들을 쉽게 보는군.”
“아니, 쉽게 보지 않았지. 그래서 여러모로 준비를 해두었다. 대마괴를.”
“……!”
다음 순간.
쿠콰아아아아앙!
주변의 땅이 통째로 들어 올려졌다.
가늠할 수조차 없는 마력이 마왕 타란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
음습한 지하실.
얼굴에서 촉수가 자라나온 아들러 백작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만 같은 기둥과 이어져 있었다.
이따금씩 촉수를 따라서 묘한 빛이 기둥으로 이동하곤 했다.
마치 심장이 박동하듯 꿈틀거리는 벽과 천장, 그리고 기둥.
어느 순간, 아들러의 두 눈이 허옇게 뒤집어지면서 확 빛을 뿜었다.
곧이어.
그그그그그그응…!
육중한 진동이 울리면서 어디선가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
무너져 내린 협곡 사이를 걷는 무인들은 비로소 표정에서 여유를 찾았다.
푹! 푸욱!
“케엑!”
무인들은 돌 더미에 깔려서 신음하는 마족과 마물들을 창칼로 찌르면서 진군했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앞장서서 투기를 끌어올리는 자는 바로 흑수단주 양비웅이었다.
“크르르…!”
마침 돌 더미에 깔려서 신음하는 웨어울프를 본 양비웅이 눈썹을 잔뜩 구기며 저벅저벅 다가갔다.
“그러게 왜 인간 세계까지 나타나서 이 고생을 하는 거냐?”
나직이 으르렁거린 그가 웨어울프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크르르…! 크윽…!”
웨어울프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으르렁거렸지만, 하반신이 묵직한 바위에 깔린 데다 부상이 심각해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양비웅이 비소를 지었다.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날 건지, 늑대로 태어날 건지 둘 중 하나만 골라라.”
퍼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손에 잡혀 있던 웨어울프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그가 피를 털어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흑수단원들이 여기저기 쓰러진 마물들과 마족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마침 부단주 진청일(眞淸一)이 다가오며 말했다.
“이렇게만 싸운다면 압승이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방심하지 마라. 저기 우리를 환영하는 놈들이 아직 많이 있으니까.”
양비웅이 턱짓으로 협곡 끄트머리를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협곡 끝자락에는 수많은 마족들과 마물들이 마력을 무럭무럭 피워 올리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이 차전을 해야지.”
“그래야지요. 여기까지 왔으니 저 잡것들의 씨를 모조리 말려 버려야지요!”
“좋은 각오다. 다들 최후의 순간까지도 절대 혼자 죽지 마라! 단 한 마리라도 더 저승 동무로 삼을 각오로 싸워라!”
“알겠습니다!”
흑수단원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그들의 기세에 중원 각지에서 모인 무인들도 사기를 끌어올렸다.
구오오오오…!
협곡 가득 살기와 투기가 팽팽하게 차올랐다.
협곡이 끝나는 지점에 주둔한 마족과 마물들 역시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리며 한 바탕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타몬스 기사단장인 글레이드는 천천히 창을 움켜쥐고는 나직이 일렀다.
“준비하라.”
“예, 단장님!”
타몬스 기사단원들이 일제히 대답하면서 창을 척 앞세웠다.
진득한 마력과 살기가 뒤섞이면서 숨쉬기도 힘든 공기가 만들어졌다.
진격 신호를 위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던 글레이드는 어느 순간 멈칫거렸다.
‘방금 그건…?’
그가 미간을 좁히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느끼지 못한 건가?’
다른 기사단원들과 마물들은 여전히 진격할 준비를 하느라 기세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글레이드는 조금 전 뭔가를 느꼈다.
보통의 마족과 마물들이 뿜어내는 마력과는 차원이 다른 기운을.
“단장님…?”
마침 명령을 기다리던 부단장 가르가스가 넌지시 부르자, 글레이드가 얼른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쉿.”
심상치 않은 반응에 가르가스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
구구구구…!
잔잔한 진동과 함께 내공을 잔뜩 끌어올린 무인들이 진군하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투지가 가득한 표정들.
마치 뭐든 걸리기만 하면 뼈째 씹어 먹겠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글레이드는 그들의 기운 이외에 또 다른 이질적인 기운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나직이 명령했다.
“물러난다. 천천히.”
“예?”
옆에 있던 가르가스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반문했다.
하지만 글레이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돌아볼 뿐이었다.
실수를 깨달은 가르가스가 얼른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모두 천천히 물러난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치자, 마족과 마물들이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한편 협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던 무인들은 타몬스 기사단이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나자, 코웃음을 쳤다.
“흥! 말끝마다 하찮다는 둥 해대는 마족들도 우리 기세에 잔뜩 쫄아 버렸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대로 저놈들을 완전히 짓밟아 버리지요!”
흑수단원들이 소리치자, 중원 각지에서 지원 온 무인들도 덩달아 외쳤다.
“옳소! 이 기세로 단숨에 놈들의 씨를 말립시다!”
“난 이 전쟁에서 반드시 천 명의 마족을 벨 생각이오. 그래야 문파 하나쯤은 세우지 않겠소?”
“하하! 그땐 내가 증언해 드리리다.”
“좋소. 그러니 꼭 살아남아 주시오.”
“물론이외다!”
전장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대화가 오갔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은 두려움을 떨쳐내고 사기를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군.’
양비웅은 눈살을 슬쩍 구겼다.
평소 그였다면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흑수단장으로서 흑수단과 무림인들을 규합하여 이끄는 위치에 서게 되자, 예전에는 없던 신중함이 생겨났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타몬스 기사단은 자신들과 맞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데 진군을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꼬리를 말고 있다.
‘함정을 판 건가?’
양비웅이 슬쩍 돌아보았다.
구윤이 있는 저 언덕 위에서 어떤 신호가 있진 않은지 확인한 것이다.
만약 저곳에 함정이 있다면, 누구보다 구윤이 의심하면서 신호를 보내 왔으리라.
하지만 그건 아니다.
‘그런데 왜 물러나는 거지?’
정말로 인간들의 기세에 주눅이라도 들었단 말인가?
그때였다.
쿠구구구궁…!
저만치 사비강과 마왕이 싸우는 곳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모든 이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땅덩어리가 갈라지면서 솟구쳐 오르고, 허공에 뜬 마왕에게서는 붉은 빛의 기운이 노을처럼 자욱하게 퍼져 나오고 있었다.
모두가 거기에 이목이 쏠린 순간.
“이건…!”
양비웅은 바로 아래에서 느껴지는 막강한 기운에 솜털이 쭈뼛 곤두섰다.
곧이어 그가 목이 찢어져라 명령을 내렸다.
“후퇴! 모두 후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