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5
귀환 마교관
605화
한 줄기 섬광이 긴 꼬리를 이끌며 산기슭으로 떨어져 내렸다.
꽈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빛줄기가 떨어진 장소에는 분화구처럼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빛줄기는 바로 사비강과 능운파 그리고 마왕 타란트였다.
파바박!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셋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면서 천천히 기세를 끌어올렸다.
능운파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과연 마왕이로군.’
사실 사비강이 빛살같이 몸을 날린 그 순간만 해도 틀림없이 마왕이 일격에 당할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조차도 사비강의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한데다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발검이었기에.
하지만 베르타스가 마왕의 얼굴을 그어 버리기 직전, 반투명한 실드가 형성되면서 불꽃이 일어났다.
그 직후 타란트가 사비강을 공격했고, 능운파 역시 지체 없이 나서면서 마왕을 공격했다.
한 번의 격돌 끝에 셋은 흑성에서 튕기듯 튀어 나와 여기까지 다다른 것이다.
허공을 가르며 이곳까지 떨어지는 순간에도 셋 사이에서는 어지러운 공방이 오고갔다.
‘그럼에도… 이대일의 싸움에서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군.’
능운파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반면 타란트는 시종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가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먼발치에서는 마족들과 인간들이 격렬한 전투를 치르는 중이었다.
마침 협곡이 무너지면서 마족들이 대거 매몰된 상황이었다.
타란트가 입매를 비틀었다.
“많은 준비를 한 모양이군.”
“왜? 겁나나?”
사비강이 입매를 비틀고 말하자, 타란트가 싱긋 웃었다.
“좋다. 그 기개. 내가 어째서 너를 중용했는지 알 것 같군.”
“나에 대한 기억은 없을 텐데.”
“없지. 하지만 회귀자라는 건 알고 있지. 회귀를 할 정도라면 꽤나 내가 아끼는 자였을 테고.”
사비강의 눈동자에 분노가 서서히 서렸다.
그가 입매를 말아 올리며 답했다.
“아주 아껴 주었지.”
“그랬을 거야. 분명히.”
타란트도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시선을 돌려 능운파를 보았다.
“너는 실망이군.”
능운파 역시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나도 실망했소. 그 정도면 죽어 줄 줄 알았거든.”
“하하하. 그 기개는 사비강에게서 배운 것인가?”
역린을 건드린 것일까?
능운파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다시 한 번 나를 저자와 비교하면 가만있지 않겠소.”
“호오, 가만있지 않으면? 물론, 나도 더 이상 비교할 생각은 없다. 너와 사비강은 비교 상대가 될 수 없지. 적어도 사비강은 내가 인정하는 상대니까.”
타란트의 시선이 사비강에게 향하자, 능운파가 이맛살을 팍 구겼다.
“흥! 인정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목이 날아가면 어떤 기분일까?”
말을 마친 능운파가 바닥을 차고 쏜살 같이 날아갔다.
쒸에에에엑!
허공을 가르는 마력검이 그대로 타란트의 목을 노렸다.
“가소로운.”
타란트가 나직이 중얼거리더니.
탁!
놀랍게도 맨손으로 능운파의 마력검을 막아내는 것이 아닌가?
능운파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타란트가 무심한 투로 말했다.
“놀란 모양이군.”
다음 순간, 능운파가 히죽 웃더니.
“놀랐지. 이렇게 단순하게 걸려들 줄 몰랐으니까.”
곧이어.
츄촤아아아악!
마력검이 그대로 붕괴되는가 싶더니 한 올 한 올 풀어헤쳐지면서 그물처럼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하운트에게서 빼앗은 소유와 집착의 악신이 가진 권능이었다.
거미줄처럼 날아간 오러 줄기가 그대로 타란트를 완벽하게 옭아맸다.
찰나지간 사비강이 그대로 천해심보를 펼쳐 이동한 다음 베르타스를 사선으로 내려 그었다.
촤아아아악!
하얀 실타래처럼 타란트를 꽁꽁 옭아맸던 오러 줄기가 절반으로 쪼개졌다.
한데…
“헛!”
능운파가 눈을 크게 뜨고는 한 걸음 물러났다.
마치 커다란 실타래처럼 꽁꽁 묶여 있던 타란트는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대신 오러 덩어리만이 그대로 좌우로 갈라지더니, ‘쿵’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순간 능운파의 등 뒤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정말 단순하게 걸려드는구나.”
“……!”
능운파가 돌아서는 순간.
꽈앙!
타란트가 가볍게 손을 후려친 것인데, 능운파의 몸이 포탄처럼 날아가 암벽에 부딪쳤다.
꽈다아앙!
콰르르르르르!
능운파가 부서지면서 떨어지는 돌 더미에 그대로 깔려 버렸다.
그와 동시에 사비강이 타란트를 향해 날아갔다.
“타란트!”
쒸이이이이잉!
사비강의 손에서 베르타스가 날아갔다.
이기어검술이었다.
강기가 베르타스를 완벽하게 감쌌다.
타란트가 눈을 가늘게 여미자.
쒸이이이잉!
허공에서 마력검이 형성되더니 그대로 뻗어 나갔다.
따다다다앙!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터져 나왔다.
따라라라라라랑!
고막을 찢어 버릴 것 같은 소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마력검과 베르타스가 서로 뒤엉키면서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사비강은 그 틈에 타란트에게 달려가 일장을 내질렀다.
흑귀와 옹기승의 힘을 물려받으면서 오로지 중원의 무공만 사용할 수 있게 된 사비강이었다.
비록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공력이 곱절 이상 상승했고, 중원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무공에 대한 원리를 꿰고 있는 그였다.
그의 기억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견식한 것이 있었던 무공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적재적소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지금 그가 사용하는 무공은 무극문(無極門)의 절기인 무극패장(無極敗掌)!
쉬이이이이잇!
꽈아아앙!
사비강의 손바닥이 타란트의 손바닥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후우우우웅!
기파가 타란트 뒤로 훅 퍼져 나가는가 싶더니.
꽈르르르르르릉! 꽈과앙!
지진이 일어나는 듯한 떨림에 이어 능운파를 덮고 있던 돌 더미들이 산산조각 나면서 터져 나갔다.
타란트가 손을 거두고 자신의 손바닥을 보며 오므렸다 펴길 반복했다.
“흐음. 과연 상당하군.”
사비강이 미간을 좁혔다.
무극권은 대성했을 경우, 권법만으로 따졌을 때 중원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파괴력을 가진 무공이었다.
한데 이걸 막아내다니!
다음 순간, 타란트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팟!
순식간에 사비강 코앞에 나타났다.
쉬이이잇!
사비강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타란트의 손을 보고는 황급히 몸을 비틀었다.
스팟!
타란트의 손길에 옷깃이 찢어지면서 쇄골 사이에 상처가 생겨났다.
사비강이 얼른 금나술을 펼치면서 타란트의 손목을 낚아채는 것과 동시에 비틀었다.
하지만 타란트의 동작이 그보다 한 박자 더 빨랐다.
바람처럼 빠져나온 타란트가 마력검을 수십 개 만들어내더니 사비강에게 퍼부었다.
솨솨솨솨솨솨솨악!
“하아아앗!”
사비강이 기합성을 터뜨리며 양손을 뻗어내자, 전신에서 채찍처럼 구불구불한 강기가 뻗어 나오면서 마력검들과 마주쳐 갔다.
꽈자자자자앙!
천둥치는 소리와 함께 수십 줄기의 강기와 마력검들이 부딪치며 소멸했다.
한편 암벽 아래에 쓰러졌던 능운파는 사비강과 타란트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내심 혀를 내둘렀다.
‘제길, 도저히 끼어들 경지가 아니군.’
분하지만 인정해야만 했다.
확실히 사비강은 더 강해졌다.
그 한계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다.
마족이 된 자신보다도 강한 인간이니 생각할수록 짜증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적으로 나설 때가 아니다.
지금 저들을 보면 용과 호랑이의 싸움.
하나 호랑이가 용을 이길 수는 없으리라.
일단은 지켜보는 거다.
그리고 용이 호랑이를 물었을 때, 간신히 호랑이를 잡은 용이 지쳐 있을 때, 그 용의 모가지를 썰어 버리는 건 자신이 되리라.
아니, 그렇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호랑이를 죽인 용이 여우에게 당할 리는 없지 않겠나?
인정하기 싫지만 지금 자신은 고작해야 여우 수준이다.
그렇다면 역시 용이 호랑이에게 모든 신경을 쏟아 붓고 있을 때, 자신이 나서서 용의 모가지를 썰어 버리는 게 나으리라.
그렇게 마왕의 권능을 흡수하기만 한다면, 남은 호랑이는….
‘우스울 뿐이지.’
능운파의 입매가 차갑게 말려 올라갔다.
그는 고개를 슬쩍 들어보았다.
창공 높은 곳에서는 베르타스와 마력검이 아직도 요란하게 부딪치면서 불꽃을 터뜨리고 있었다.
사비강과 마왕은 서로 육탄전을 벌이면서도, 이기어검술과 마력검을 이용해서 싸우는 중이었다.
‘정말이지 미친 것들이군.’
꽈자아앙!
그러는 사이 다시 한 번 요란한 폭음이 들렸다.
푸스스스스!
단지 그 소리만으로도 암벽에 균열이 생기더니 돌가루가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꽈아앙!
또 한 번 사비강과 능운파가 부딪친 소리에 암벽이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
콰르르르르르!
사비강은 쏟아져 내리는 암벽을 손바닥으로 일일이 쳐냈다.
따다다다다앙!
포탄처럼 날아간 암벽의 파편들이 그대로 타란트를 덮쳐 갔다.
슈아아아아앙!
퍼퍼퍼퍼퍼펑!
돌 더미가 연신 터져 나가면서 먼지구름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돌 더미가 날아갔을까?
콰자아앙!
마지막으로 가장 큰 바위가 날아가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먼지가 자욱한 안개를 만들어냈다.
“스으읍, 후우우우!”
사비강이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걸로 끝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마왕이 이렇게 간단히 죽진 않으리라.
마침 하늘에서 베르타스가 떨어져 내렸다.
쒸이이이잉! 푹!
바닥에 거꾸로 꽂힌 베르타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력검을 깨부순 다음 할 일을 마쳤다는 듯 떨어진 베르타스였다.
하지만 사비강은 차갑게 말하며 베르타스를 주워들었다.
“그 정도로 지치면 실망이지.”
베르타스가 반항이라도 하듯 검신을 우웅 떨어댔다.
잠시 후.
저벅저벅…!
안개처럼 번진 먼지 사이로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타란트였다.
역시 그는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말끔한 모습이었다.
그가 입매를 치켜 올렸다.
“과연. 훌륭하군. 하지만 조금은 아쉽구나. 뭐, 인간에 대한 기대가 지나쳤는지도.”
“…….”
사비강이 미간을 구기고는 가만히 바라보자, 타란트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은 버거울 줄 알았다. 굳이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다는 건… 그만큼 기대치도 높았다는 뜻일 테니.”
사비강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타란트가 사비강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그가 광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아둔한 인간이여.”
“무슨…?”
타란트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네가 회귀한 것이 자의라고 생각하는가?”
사비강이 눈살을 구기고 가만히 바라보자, 타란트가 무심한 투로 물었다.
“한 번이라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나?”
“의심…? 뭘 의심한다는….”
말을 뱉던 사비강이 흠칫 몸을 떨고는 타란트를 올려다보았다.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타란트가 말을 이었다.
“실망이군, 슈비츠. 흑성으로 올 때쯤이면 이미 눈치는 챘으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늦군.”
“설마 나의 회귀를….”
“그렇다. 너의 회귀는 결국 나의 뜻이었다.”
마왕 타란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