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7
귀환 마교관
607화
‘제길! 우리 기세 때문에 물러나는 게 아니었어!’
확신을 가진 양비웅이 다시 소리쳤다.
“모두 후퇴한다!”
갑작스런 외침에 무인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 일도 없는데 갑자기 후퇴 명령을 내리니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만약 이들이 군대를 경험했더라면, 즉각적으로 명령에 무조건 복종했으리라.
하지만 흑수단을 제외하면 어디까지나 강호 각지에 흩어져서 홀로 활동하던 무인들이 다수였다.
게다가 정사를 구분하지 않고 모인 무인들이었다.
무인 대다수가 그렇듯이 각자의 개성과 자존심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러다 보니 납득이 안 되는 명령에 고분고분 따를 리가 없었다.
“대체 이유가 뭐요? 알고나 물러납시다.”
“그렇소. 우린 당신이 멸마궁의 흑수단주이기에 임시로 따르긴 하지만, 당신의 정식 부하는 아니오.”
‘이런 답답한…!’
양비웅은 면상에 욕지거리라도 쏟아내고 싶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능력에 자긍심을 가졌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마족이 왜 그토록 인간을 우습게 보는지 알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꾹 참고는 말했다.
“이질적인 기운이 감지되고 있소!”
“이질적인 기운? 마왕의 기운이라면 우리도 이미….”
“그게 아니오! 잘 느껴 보시오! 지금 뭔가가…!”
말을 꺼내는 순간.
쿠구구구구구궁…!
다시 한 번 육중한 진동이 울리면서 바닥이 흔들렸다.
이번에는 좀 더 확실한 진동이었기에 다른 무인들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드러났다.
양비웅이 소리쳤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소! 일단 물러나서 이 기운의 정체가 뭔지 알아본 다음에…!”
찰나지간.
쿠와아아아아앙!
“크아아악!”
“우아아악!”
갑자기 바닥이 불쑥 솟구치더니 거대한 그림자가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 구우우우우웅!
거대한 괴물이 괴이한 포효를 내지르면서 꿈틀거렸다.
무인들이 고개를 꺾어 들고 갑자기 나타난 커다란 괴물을 보았다.
“마, 맙소사… 이게 대체 뭐야?”
- 퀴야아아아아아악!
거대한 괴물이 다시 한 번 비명을 터뜨리자.
“크으윽!”
“쿠웨에엑!”
무인들이 저마다 그 자리에서 털썩 무릎을 꿇으면서 피를 토했다.
괴물의 비명소리는 음공과 같은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그나마 내가고수들은 재빨리 내공을 끌어올려 혈맥을 보호하는 바람에 큰 부상은 피할 수 있었다.
거대한 애벌레를 닮은 괴물은 협곡을 가득 채울 정도로 굵고, 머리가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았다.
게다가 진득한 점액질로 뒤덮인 애벌레의 표면에는 수천 명의 인간들이 벌거벗은 채 융합되어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형상이었다.
바로 대마괴였다.
인간의 한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최대한 이용하여 만든 융합 괴물체!
“이, 이건 대체…?”
호승심이 뛰어난 양비웅조차 그 끔찍한 괴물의 모습에 넋을 놓고 말았다.
마침 무인 몇 명이 거대한 괴물을 보면서 일갈을 터뜨리며 날아갔다.
“하찮은 미물이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나!”
파바밧!
쒸쒸에에엑!
그들이 각 방향에서 검기를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한데.
츄츄츄아아악!
대마괴의 몸통에서 뱀처럼 희고 긴 줄기가 뻗어 나오더니 그대로 사람들을 집어 삼켰다.
“크헙! 끄아아악!”
“우으으읍!”
순식간에 흡수당한 무인들이 마구 몸부림치며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늪에 빠져드는 것 마냥 대마괴의 몸통과 하나가 되어 갔다.
마침내 그들 역시 대마괴의 하얀 표피에 뒤덮이면서 끊임없이 절규하는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 괴이한 모습에 무인들이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저, 저건 못 이긴다! 젠장! 후퇴하라!”
“후퇴다! 후퇴!”
무인들이 저마다 몸을 돌리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대마괴는 수백 가닥의 촉수를 쏘아냈다.
츄츄츄아아악!
“크아아악!”
“우아아악!”
촉수에 삼켜진 인간들이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그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거대한 괴물의 몸에 흡수되고 말았다.
검기를 일으키고 강기까지 일으켜도 마찬가지였다.
강기에 맞은 촉수는 잘리기는커녕 더욱 진득하게 달라붙으면서 그대로 인간들을 집어삼켜 갔다.
마침 촉수 하나가 부단장 진청일의 머리로 날아들 때였다.
“허억!”
진청일이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헛바람을 삼키는 찰나.
“흐아아압!”
콰앙!
벼락처럼 나타난 양비웅이 촉수를 향해 일장을 뻗었다.
장풍에 얻어맞은 촉수가 꿈틀거리면서 물러나자, 진청일이 얼른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단주님,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나중에! 일단 살아남는다!”
“알겠습… 엇! 단주님, 뒤에…!”
츄아아아아악!
진청일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촉수가 날아들면서 그대로 양비웅을 덮쳤다.
뱀처럼 하얀 촉수는 양비웅의 어깨에 달라붙는가 싶더니 이내 점점 팔과 목을 타고 진득하게 면적을 넓혀가고 있었다.
진청일이 검을 뽑아 들고 촉수를 잘라내려고 하자,
“안 돼! 달아나라!”
양비웅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단주님이…!”
“어차피 검강으로도 자를 수 없다! 우선 여길 벗어나라!”
마침 촉수가 양비웅을 휘감으면서 그대로 말아 올렸다.
“단주님!”
진청일이 절규하듯 외쳤지만, 이미 양비웅은 촉수에 휘감겨 허공 높이 떠오른 상태였다.
촉수는 그대로 양비웅을 끌어당겼다.
마침내 대마괴의 몸통 어디쯤이 쩌억 갈라지더니 입처럼 벌어졌다.
‘이왕 이리 된 것 자멸이다!’
양비웅이 마지막으로 내공을 쥐어짜면서 손에 집중했다.
그가 자랑하는 독문무공인 흑수폭장(黑手爆掌)이었다.
슈우우우우욱!
대마괴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 양비웅이 그대로 강기로 뒤덮인 주먹을 내질렀다.
꾸우우우우웅!
대마괴의 몸통 복판에서 흑수폭장이 발출됐다.
그 순간 대마괴의 몸통이 잠깐 부푸는가 싶더니.
- 뀌야아아아아악!
대마괴의 표피에서 허우적거리는 수많은 인간 형상들이 동시에 비명을 내지르며 절규했다.
“크아아악!”
“쿠우웁!”
달아나던 무인들이 비틀거리면서 무릎을 꿇고 피를 토해냈다.
“제길…! 단주님…!”
특히 진청일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대마괴를 보았다.
양비웅의 희생에도 대마괴는 멀쩡한 상태였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달아나야 한다!’
진청일이 이를 악다물고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 꾸아아아아아아앙!
대마괴가 몸을 뒤틀며 크게 포효하더니.
쿠콰콰콰콰콰콰콰콰아!
무서운 속도로 협곡을 따라 밀고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크아아악!”
“우아아악!”
엄청난 속도에 달아나던 무인들이 차례대로 깔려 죽기 시작했다.
대마괴의 몸 그 자체가 무기나 다름없었다.
강렬한 마력에 닿은 무인들의 몸은 그 자리에서 녹아 버리면서 대마괴에 흡수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대마괴의 몸집은 더욱 크게 부풀고 있었다.
진청일은 있는 힘을 다해 경공을 펼쳤다.
그런데.
쿠구구구구궁…!
쿠콰아아아아아!
“허억!”
경공을 펼쳐 달리던 그가 다시 한 번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협곡을 가로막으면서 또 한 마리의 대마괴가 튀어 나온 것이다.
- 꾸아아아아아앙!
대마괴의 울부짖음에 고막이 찢어질 듯했다.
“크읍!”
진청일은 피가 흐를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가 주저앉은 채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마침내 뒤에서 빠른 속도로 밀고 내려오던 대마괴도 진청일 앞에서 멈췄다.
대마괴의 몸통 가운데 부분에서 촉수 하나가 길게 뻗어 나왔다.
구불구불 뻗어 나온 촉수의 끄트머리에는 사람 얼굴이 박혀 있었다.
다름 아닌 양비웅이었다.
“단, 단주님…?”
진청일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단주님… 제발…!”
다음 순간.
쿠와아아악!
양비웅의 입이 길게 찢어지더니 그대로 진청일을 머리부터 삼켜 가기 시작했다.
꿀꺽꿀꺽…!
**
쩌어어엉!
강렬한 금속성에 이어 사비강의 신형이 눈앞에서 팟 사라졌다.
다음 순간, 그의 신형이 타란트의 배후에 나타났다.
블링크는 아니었다.
천해심보가 극성을 이루면서 블링크와 유사할 정도로 빨라진 것이다.
“흐아앗!”
사비강이 그대로 강기로 뒤덮인 베르타스를 내려쳤다.
따아아앙!
하지만 타란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막아냈다.
그의 배후에 반투명한 마력패가 형성된 것이다.
그 직후 마력패가 산산조각 깨져 나가는가 싶더니.
피피피피피융!
하나하나가 암기처럼 변해 사비강을 향해 쇄도했다.
“크읏!”
따라라라라랑!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휘두르자 불꽃이 번져 나갔다.
검붉은 기운이 자욱하게 퍼지자.
슈우우욱!
타란트의 그림자가 불쑥 나타나더니 그대로 사비강의 얼굴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꽈앙! 꽝! 꽝!
타란트의 주먹질이 이어질 때마다 허공에서 폭음이 터졌다.
사비강은 연신 주먹을 피하다가 타란트의 주먹을 발로 걷어차며 훌쩍 물러났다.
“제법이군.”
시큰둥하게 말을 뱉은 타란트가 손바닥을 휙 내젓자.
슈슈슈슈우우웅!
허공에 뜬 바윗덩이들이 사비강을 향해 무자비하게 날아갔다.
파바바밧!
사비강이 허공답보를 펼치면서 날아올랐다.
그는 연신 날아드는 바위들을 밟아 가면서 빠른 속도로 타란트에게 날아갔다.
곧이어.
“타란트!”
쒸아아아아앙!
사비강의 손에서 베르타스가 날아갔다.
그 순간 타란트가 손을 들어올렸다.
쩌어엉!
타란트의 손바닥과 베르타스의 검봉이 부딪쳤는데, 요란한 금속성이 울렸다.
“주인을 몰라보는군.”
무심히 중얼거린 타란트가 그대로 손바닥에 마력을 싣자.
피이잉!
튕기듯 날아간 베르타스가 그대로 사비강을 향해 쇄도했다.
쒸에에에엑!
“크으읍!”
사비강이 얼른 호신강기를 펼쳐내며 장력을 발출했다.
쩌어어어엉!
마치 폭발하는 것만 같은 소리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슈우우우욱, 꽈다아앙!
그대로 추락한 사비강이 암벽을 부수며 나동그라졌다.
타란트가 바닥으로 천천히 내려섰다.
그가 사비강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한편 이 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능운파는 동공이 흔들렸다.
‘제길…! 강하다!’
마왕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했다.
지금까지 사비강과 마왕의 싸움을 지켜본 것만으로, 자신이 끼일 자리가 아님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저 빌어먹을 사비강이 죽는다!’
그래도 기대를 했건만.
사비강은 제대로 힘도 못 쓰지 않는가?
이건 일방적인 싸움이다.
어른과 아이의 수준이다.
거기에 대면 자신은 갓난아기 수준이리라.
하지만 이대로 지켜만 볼 수도 없는 상황.
사비강이 죽으면 그 다음은 자신의 차례가 되리라.
‘젠장! 도움이 안 되는 놈!’
생각을 마친 능운파가 순간 블링크를 시전했다.
팟!
다음 순간, 마왕의 배후에 나타난 능운파가 번개처럼 생성된 마력검을 그대로 휘둘렀다.
파지지직!
쒸에에에엑!
그와 동시에 마왕이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죽어엇!”
능운파가 절규하듯 외치며 마력검을 내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