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3
귀환 마교관
593화
땅! 땅! 땅…!
뚝딱! 뚝딱! 뚝딱…!
대장간은 온통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듯한 더위였다.
게다가 지금은 녹음이 짙은 계절.
그늘을 찾아 쉬어도 절로 땀이 주르륵 흐르는 날씨인데, 이글거리는 불길이 사방에 널린 신수각은 그야말로 불구덩이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때문에 신수각에서 일하는 대장장이들은 저마다 기본적인 내공심법을 익히고 있었는데, 대체로 음의 기운을 이용해서 몸을 차갑게 유지했다.
후우욱! 후우욱! 후우욱!
시뻘건 아궁이 안으로 열심히 풀무질 하는 대장장이들의 몸에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극음의 기운을 운공하고 있지만, 역시나 대장간 가득한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그들의 전신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마침 문이 열리면서 사비강과 부군사인 담우기가 들어섰다.
하지만 그를 맞이하는 것은 신수각주 조신량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사비강을 힐끔 보고서도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다.
“오셨는가?”
조신량이 사비강에게 말을 건넸다.
사비강은 신수각 내부 전경을 둘러보고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 열심이군요.”
“다들 최후의 전투가 멀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네. 이번 전투에서 사용할 특별한 무기를 만드느라 바쁜 게지. 흑성으로 쳐들어가야 하니, 기관 장치를 만들 수는 없고… 특별한 무기를 몇 가지 개발하고 있네.”
“특별한 무기라면…?”
조신량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짓을 하자, 그들이 어디선가 커다란 나무 상자를 가지고 왔다.
조신량이 앞장섰다.
“여기서는 성능을 보일 수 없으니 따라오게.”
후원으로 나온 조신량이 나무 상자를 열어 안에 든 것을 보여주었다.
제일 먼저 꺼내든 것은 방아쇠가 달린 기다란 금속 장치였다.
“이게 뭐요?”
“석궁이라고 보면 되네.”
“한데 시위가 없군.”
“그렇지. 마공석을 이용해서 개발한 장치라네. 여기 이 방아쇠를 당기면 화살이 발사되지. 한 번 해보게.”
사비강이 후원 뒤편의 목각 인형을 조준한 다음 방아쇠를 당겼다.
퉁!
쒸에에엑, 푹!
과연 금속 장치에서 화살 한 자루가 튀어 나가더니 그대로 목각 인형을 꿰뚫었다.
그 힘이 어찌나 센지 목각 인형을 뚫어 버린 화살은 그 뒤쪽까지 날아갔다.
사비강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대단한 힘이오.”
“이걸 천 개 정도 생산할 계획이야. 이름은 섬전궁(閃電弓)으로 지었지. 참고로 방아쇠를 당기고 있으면 일곱 발까지 연사가 가능하네.”
사비강이 바로 방아쇠를 당겨 보았다.
투두두두두두둥!
조신량의 말대로 일곱 자루의 화살이 허공을 찢어발길 듯 날아가더니 목각인형을 연이어 뚫었다.
결국 가운데가 뻥 뚫린 목각인형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르더니 뚝 부러지면서 넘어가고 말았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에 큰 보탬이 되겠군.”
“클클. 이런 것 만들라고 자네가 날 고용한 것 아닌가?”
“하지만 이걸 만들려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할 텐데.”
그러자 곁에 있던 담우기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섰다.
“자금은 걱정 마십시오. 제가 그동안 불린 자금이 아직 넉넉합니다. 현재도 멸마궁에서 지출되는 모든 자금을 오차 없도록 계산 중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군.”
“그리고 또 조 각주님의 지인 분이 큰 도움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지인…?”
사비강의 시선이 돌아가자, 조신량이 툴툴 웃으며 말했다.
“자네도 본 적이 있지 않던가? 노대영이라고….”
“아…!”
사비강은 곧바로 그를 떠올릴 수 있었다.
조신량이 자신을 따라서 정강산을 떠날 때, 그는 애지중지하던 애환상을 노대영에게 맡겼다.
노대영.
그는 전생에서도 강호인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자.
그러고 보니 그에게 미리 감사 인사를 건네기도 하지 않았던가?
결국 그는 이번 생에서도 강호를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투척한 것이다.
조신량은 곧 다른 무기를 꺼내 보였다.
이번에는 마치 솔방울처럼 생긴 금속 덩어리였는데, 오묘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건 뭐요?”
“폭렬탄(爆裂彈)이라고 이름 지었네.”
“폭렬탄?”
“이건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 축소한 것일세. 실제로는 좀 더 크지.”
“사용법은?”
“아주 간단하네. 여기 고리를 뽑아내고 던지면 되네. 충격이 가해지면 폭렬탄이 터지면서 이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가지. 모여 있는 적들을 한 방에 쓸어버리기에 적격이지.”
말을 마친 조신량이 폭렬탄 한쪽에 달린 고리를 뽑아내더니 먼발치 목각인형이 빼곡히 서 있는 곳을 향해 힘껏 던졌다.
“엎드리게!”
그의 말이 터지기가 무섭게 상자를 들고 온 자들과 담우기가 얼른 바닥에 엎드렸다.
사비강만 멀뚱멀뚱 서 있는데.
꽈아아앙!
어마어마한 폭음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폭렬탄이 떨어졌던 자리에 움푹 구덩이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폭렬탄의 파편이 조각조각 깨지면서 사방으로 튀었다.
그 파편에 맞은 목각인형이 완전히 망가지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고도 남은 파편 중 일부가 서 있는 사비강을 향해 날아들었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당!
사비강이 무심히 베르타스를 휘젓자 파편들이 튕겨 나가면서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휘유. 정말 무시무시한 무기군요!”
담우기가 일어나면서 혀를 내둘렀다.
조신량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건 삼천 개를 준비 중일세.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아주 좋을 거야. 물론, 매우 조심히 다뤄야 하지만.”
“훌륭하군.”
사비강도 인정했다.
과연 이런 무기들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것들 모두 소환지에서 수확한 마계 물품으로 만든 것일세. 폭렬탄은 그 폭렬단을 가공해서 만든 것이기도 하고. 사실 폭렬단을 가공하는 게 가장 힘들었지. 자칫 모두 죽는 수가 생기니까. 그걸 가공하는데 쏟은 시간이 가장 많아.”
폭렬단이란 데블 파이어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정말 고생하셨소. 전투에 큰 보탬이 될 거요.”
“아직 더 있네.”
조신량은 그러고도 몇 가지 무기들을 더 선보였다.
무기들 중에는 정말 기발한 것들이 다양하게 있었다.
하늘에 띄운 다음 사방으로 화살비를 쏟아내게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발로 밟는 순간 터지게 만드는 폭약도 있었다.
그 모든 무기들의 시연을 보는 것에만 반나절이 꼬박 흘렀다.
사비강은 조신량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는 신수각을 나왔다.
물론, 신수각에서 고생하는 궁도들에게도 격려의 말을 잊지 않았다.
궁주가 직접 찾아와 격려를 하니, 모두들 감동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후 사비강은 초환당을 찾았다.
그곳 역시 온통 짙은 약향이 가득했고, 의생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도 사비강을 힐끔거리며 보기만 할 뿐, 진백만이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게.”
“많이 바쁘신 것 같군요.”
“바쁘다마다. 각 종류별로 영약을 최대한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 서두르는 중일세. 그나마 만약상이 가지고 있던 온갖 약재가 아니었다면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게야. 그나저나 최후의 작전은 언제 시행할 것 같은가?”
그러자 담우기가 넌지시 나서며 답했다.
“죄송하지만 아직 정확한 날짜를 특정하기가 어렵습니다. 마지막 작전에 임하기 전, 궁주님이 준비하실 일이 있다고 하셔서요.”
“그렇군. 역시… 아직은 부족한가?”
진백이 사비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사비강이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두려운가?”
사비강이 진백의 두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예.”
이상하게 진백 앞에서는 솔직해진다.
만약 다른 사람이 물어보았더라면, 허세라도 부렸으리라.
하지만 진백은 사비강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회귀를 했을 때, 하필 그 시점에 깨어난 것도 어쩌면 그 푸근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없이 자란 사비강으로서는 진백의 그런 포용력이 커다란 기둥과도 같은 것이었다.
진백 역시 사비강을 예전과 같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사비강을 영웅처럼 떠받들고, 만인지상의 존재처럼 여기지만 진백만은 달랐다.
그의 눈에 사비강은 여전히 부모를 여의고 구슬피 울던 아이다.
그 아이가 어느새 커서 이렇게 어엿한 무인이 되었는지 새삼스럽긴 하지만, 역시나 그의 마음에는 한없이 감싸고 보호해 주고픈 존재였다.
진백이 조금 젖어든 눈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마음으로 너무 애쓰지 말게. 그저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는 게지. 마음을 쓴다고 하여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건 자네도 잘 알 테지.”
“물론입니다.”
“에혀, 늙으면 잔소리가 많아진다더니. 내가 주책을 떨었군. 아무튼 지금 만들고 있는 영약들을 보여줌세. 따라오게나.”
진백은 사비강에게 이런저런 영약들에 대해서 안내하며 보여주었다.
과연 듣기만 해도 힘이 절로 솟아날 것 같은 영약과 단환들이 가득했다.
어떤 것들은 마공석의 마력을 뽑아내어서 제조한 것도 있었고, 또 어떤 것들은 오로지 중원의 약재만을 재조합해서 만든 것도 있었다.
물론, 몸에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적의 목숨을 단숨에 앗아갈 수 있는 독단이나 독수, 환각을 일으키거나 앞을 보지 못하게 하는 약들도 있었다.
이런 경우 신수각과 연동하여 무기 개발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무랑도사의 조언을 얻어 술법에도 사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간구하기도 했다.
사비강은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면서 내심 감탄했다.
무랑의 말대로 오늘 이렇게 멸마궁을 전체적으로 돌아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전선에서 마왕의 군대와 싸우면서 줄곧 느낀 것은 뜻밖에도 외로움이었다.
나 혼자 강호를 이끌고 있다는 느낌.
오로지 나만 애쓴다는 생각.
하지만 미처 보지 못한 곳에서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매설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모두가 함께 싸운다면 분명 그 가능성은 조금이라도 올라가리라.
그리고 이들은 단 일 푼의 가능성을 바라보며 밤잠 자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이 싸움에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순간이었다.
아니, 그간 외로움을 느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이들의 노고를 잊었다는 것이 못내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무랑전주에게 전해주었네. 그곳에 마련되어 있을 게야.”
“알겠습니다.”
사비강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돌아설 때였다.
“강아.”
부드러운 목소리가 사비강의 발길을 잡았다.
그 목소리에 사비강은 움찔거리고는 멈췄다.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오래전 어린 시절, 진백은 자신을 줄곧 이렇게 부르곤 했다.
처음으로 자신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은 그 때문에 회귀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사비강의 등에 진백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와 닿았다.
“지금껏 너는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아니, 어쩌면 이 강호를 변화시켰다. 가장 어렵고도 힘든 일을 해낸 것이지. 그리고 이 강호는 너를 믿고 있어. 이젠 너도 강호를 믿어 보아라. 네가 변화시킨 자들이, 네가 변화시킨 이 강호가 결국 너를 변화시킬지도 모를 일이니.”
알 듯 모를 듯한 말이었다.
하지만 사비강은 그 뜻을 더 따져 묻지 않았다.
언젠간 이해되는 날이 올 테지.
어려서부터 진백이 해주는 말은 늘 그랬으니까.
해서, 사비강은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가 전한 깊이 있는 조언을 가슴에 담은 채.
이제 그에게는 만해경의 경지에 오를 일만 남아 있었다.
겨우 이 할도 되지 않는 가능성.
하지만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실패한다면… 이번엔 정말 방법이 없다.
‘반드시…!’
사비강의 눈빛이 전에 없이 날카롭게 빛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