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2
귀환 마교관
592화
까앙! 쩌엉!
금속성이 터지면서 천멸대원들이 저마다 비명을 내지르며 튕겨 나갔다.
쿠당탕!
“크윽!”
“아악!”
마침 그 틈을 이용해서 허공을 가르며 화살 한 자루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쒸에에에엑!
순간, 사비강이 몸을 휘릭 돌리더니 날아드는 화살을 낚아채고는 그대로 돌려보냈다.
쒸에에엑!
“헉!”
전각 지붕 위에서 사비강의 배후를 노렸던 단리정이 헛바람을 삼키면서 뒤로 물러나는데, 민유향과 백미령이 재빨리 나섰다.
따아앙!
콰콰콰콰콰콱!
“크읏!”
민유향의 발이 기왓장을 부수면서 뒤로 밀리자, 백미령이 얼른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가 손바닥을 대고는 내공을 실어 주었다.
두 사람이 가까스로 멈추자, 화살이 겨우 힘을 잃고 떨어졌다.
단리정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우.”
한편 천멸대의 모든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이번엔 신생조가 강기와 검기를 마구 쏟아내면서 덤벼들기 시작했다.
사비강은 천해심보를 이용해서 신생조 사이를 바람처럼 누비며 번개처럼 손을 뻗어냈다.
탁, 탁탁탁! 타타타탁!
정말이지 눈으로 쫓기도 힘들만큼 빠른 움직임이었다.
“컥!”
“억!”
외마디 비명을 터뜨린 신생조원들은 자신이 어떻게 당하는지도 모른 채 허수아비처럼 픽픽 쓰러져 갔다.
마지막으로 맹가숙까지 점혈한 사비강이 천해심보를 멈추고는 심호흡을 했다.
깊이 숨을 몰아쉰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주변에는 천멸대와 신생조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채 끙끙 앓고 있었다.
그 순간.
“방심하지 마십시오!”
벼락같은 고함 소리가 튀어 나오더니.
쉬이이이잇!
추량이 질풍처럼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사비강이 얼른 돌아서면서 가슴을 파고드는 마나검을 맨손으로 쳐냈다.
쩌엉!
손과 마나검이 부딪쳤음에도 요란한 금속성이 울렸다.
추량이 휘청거리는 틈을 타서, 사비강이 빠르게 짓쳐들었다.
그가 일장을 내지르려는 찰나,
- 크르르렁!
우렁찬 포효 소리와 함께 반묘가 불쑥 끼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사비강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몸을 빙글 돌리면서 손을 뻗었다.
퍼퍽!
그가 순식간에 요혈을 점하자, 반묘가 깨갱거리는 소리를 내며 한쪽에 쓰러졌다.
“반묘!”
추량이 화들짝 놀라면서 소리치자, 사비강이 눈 깜빡할 사이에 그 뒤로 돌아가면서 손을 뻗었다.
탁탁탁.
“커억!”
추량이 헛바람을 삼키며 그대로 굳어 버렸다.
사비강이 싸늘하게 읊조렸다.
“전투 중에 아군의 피해를 신경 쓰다간 네 목숨도 잃는다. 오로지 적을 상대하는 것에만 신경 써야지.”
그때였다.
“하아앗!”
다시 배후에서 날카로운 기합성이 들리더니, 두 자루의 연검이 굽이치며 날아들었다.
순간 사비강의 몸이 여러 개로 쪼개지는 듯했다.
스스스슷!
천해심보를 밟은 그가 천 개의 검신으로 갈라진 연검을 피하면서 양손을 불쑥 뻗었다.
슈우우욱!
“꺄악!”
매설란이 눈을 질끈 감고는 비명을 지르자, 사비강이 반사적으로 손을 거두었다.
이 정도는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매설란의 빈틈이 컸던 것이다.
그런데.
파밧!
눈앞에 서 있던 매설란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곧이어.
척!
모든 공력을 와해시킨 사비강은 뒷목에 닿은 차가운 검신을 느꼈다.
매설란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전투 중에 적에게 동정을 베풀다간 당신 목숨도 잃을 걸? 오로지 적을 상대하는 것에만 신경 써야지.”
마치 사비강의 목소리를 따라 하려는 듯 일부러 굵게 내는 목소리였다.
사비강이 피식 웃으면서 돌아섰다.
“아쉽지만 이 방법은 마족에게 통하지 않을 거야. 당신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들은 당신에게 반하진 않을 테니까.”
“치이, 바라지도 않아. 난 그저 당신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방심하지 말란 뜻을 전하고 싶었을 뿐.”
“고맙군.”
매설란이 빙그레 웃으며 검을 거두었다.
그녀가 주위에서 끙끙 앓는 궁도들을 훑어보며 물었다.
“해보니까 어때?”
“아직 부족해.”
“진심이야?”
매설란이 정말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사비강은 멸마궁에서 내로라는 무인들을 한꺼번에 상대했다.
그럼에도 그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사비강은 이제 중원의 그 어떤 무인도 뛰어넘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런데도 부족하다니.
“욕심이 지나친 건 아니야?”
하지만 사비강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바리탄을 상대한 후 돌아오는 길에 그는 마왕과 마주쳤다.
바로 곁을 지나면서도 그가 마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만은 마왕을 바로 알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마계에서도 오랜 세월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지 않았던가?
한데 모습을 조금 바꿨다고 그렇게까지 모르다니.
그만큼 마왕은 자신의 기운을 철저히 숨긴 것이다.
그리고 그걸 간파하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한 수 아래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아니, 두 수 또는 세 수 아래이리라.
“다들 일어나라. 다시 덤벼라. 죽을 각오로.”
“헉! 좀 봐주십쇼. 벌써 일곱 번째입니다. 해가 저물고 있다고요.”
“맞습니다. 이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니까요. 금창약부터 발라야겠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체력이라면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 곡보옥도 혀를 내두르며 울상을 지었다.
“어제 오후부터 꼬박 만 하루를 수련했습니다. 이제 좀 봐주세요.”
그러자 매설란도 넌지시 말했다.
“그래, 조금은 쉬도록 하자. 당신 혼자 마왕과 싸우도록 두지 않을 테니까. 우리 모두 같이 싸운다면 분명 힘이 될 거야.”
하지만 사비강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매설란의 말은 틀렸다.
멸마궁도가 지금보다 배로 많아진다고 한들, 마왕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전쟁에서는 천 명의 졸개보다, 한 명의 장수가 중요한 법이다.
조바심이 나지만, 그렇다고 마냥 천멸대와 신생조를 다그칠 수도 없다.
‘역시 마왕을 이길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만해경에 이르러야 한다.
천해경을 넘어 만해경.
강호 역사상 정식 기록에도 남지 않은 절대 고수의 영역.
하지만 만해경에 이를 방법이 없다.
지금 사비강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천해경에서도 삼해경 정도의 경지다.
이렇게 일곱 단계를 더 돌파해야 만해경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마왕과 치를 최후의 결전은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
‘시간이 없어. 젠장.’
사비강이 손을 콱 말아 쥐자 베르타스가 우웅 떠는 소리를 내질렀다.
그나마 그날 마왕이 베르타스를 빼앗아 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여전히 그의 속내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사비강이 주변을 둘러보며 조금 지친 음성으로 말했다.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하지.”
그제야 궁도들이 저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철퍼덕 드러누웠다.
사비강은 말없이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을 매설란이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것만 알아줘. 당신 혼자서 싸우는 건 아니라는 것. 그러니 너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
**
푸욱!
“커어억!”
섬뜩한 파육음에 이어 비명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소리가 입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았다.
끔찍한 고통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나가는 듯했다.
사비강은 두 눈을 부릅뜨고는 마왕 타란트를 노려보았다.
마침내 목소리가 힘겹게 터져 나왔다.
“타란트!”
“슈비츠여, 어째서 날 배신하려 했나?”
“애초에 네놈에게 충성한 적이 없다!”
“쯧쯧… 인간은 어째서 그토록 무모하단 말인가? 네가 날 배신하고 회귀한 덕분에 이 많은 자들이 죽었다. 결국 네가 이들을 두 번 죽인 것이다.”
마왕이 한 차례 손을 휘젓자 주변에 자욱하던 안개가 단숨에 걷혔다.
순간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멸마궁도들이 보였다.
그야말로 시산혈해.
천멸대와 신생조는 물론, 당이협과 적무린, 서래향 등 그간 인연을 쌓았던 자들이 참혹한 시체가 되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매설란의 시체도 있었다.
“설란!”
사비강이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두 눈을 부릅뜬 매설란은 조금도 반응이 없었다.
“타란트! 죽여 버리겠다!”
“쯧… 어째서 넌 내게 화를 내는가? 이들을 이렇게 만든 건 결국 너라는 걸 모르는가?”
“닥쳐라아아!”
사비강이 마지막 공력을 끌어올리면서 베르타스를 힘껏 휘둘렀다.
콰가가가각!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마족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비강의 전신은 창검으로 꿰뚫린 상태.
그는 개의치 않고 그대로 타란트를 향해 돌진했다.
“죽어라앗!”
일갈을 터뜨리면서 베르타스를 날렸다.
한데.
씨이이잉!
마왕의 목전까지 날아간 베르타스가 거짓말처럼 우뚝 멈추는 것이 아닌가?
다음 순간, 방향을 틀어 버린 베르타스가 그대로 사비강에게 쇄도했다.
“이, 뭔…!”
사비강이 얼른 호신강기를 끌어올렸지만 이미 늦어 버린 상황.
쉬컥!
섬뜩한 파육음에 이어 사비강의 머리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
“허억! 헉, 헉, 헉!”
상체를 벌떡 일으킨 사비강이 거친 호흡을 몰아쉬었다.
“끄음.”
두통이 밀려왔다.
“타란트…!”
사비강이 어금니를 뿌득 갈고는 허공을 빤히 응시했다.
자각몽을 꿨다.
꿈속에서 어렴풋이 꿈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그럼에도 기분이 더럽다.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악몽.
심호흡을 한 사비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방을 나갔다.
싸늘한 밤바람이 뺨에 마주쳤다.
정신이 조금 깨어나는 것 같다.
그가 후원의 정자에 올라서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멸마궁이 내려다보였다.
몇 군데에는 아직도 불이 켜져 있었다.
특히 진백이 머무는 초환당은 최근 들어서 불이 꺼진 적이 없었다.
멸마궁도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영약을 개발하기 위해서 불철주야로 연구하며 일하고 있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어서 매설란이 눈에 띄게 강해졌고, 다른 궁도들 역시 그 영약을 복용해서 몸을 보강하는데 성공했다.
“내일은 궁을 한 바퀴 돌면서 인사라도 다니시게. 자네의 격려를 받는다면 다들 힘이 날 테지. 전투는 밖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니까.”
문득 들린 목소리에도 사비강은 놀라지 않았다.
진즉 기척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안 주무십니까?”
“왠지 자네가 자지 않을 것 같았네.”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돌아보았다.
무랑이 곁으로 다가와 섰다.
그가 사비강처럼 먼발치로 시선을 던지면서 말했다.
“만해경에 오를 방법이 한 가지 있긴 하네.”
순간 사비강이 흠칫거렸다.
그 반응을 느낀 무랑이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확실한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네. 무엇이든 얻는 게 있으면 그만한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법. 만약 그 방법에 실패한다면, 자네는 목숨을 잃을 수 있네.”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됩니까?”
“이 할이 채 되지 않네.”
이 할이 안 된다.
한 마디로 십중팔구 실패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비강은 입매를 비틀었다.
“충분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