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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581화 (581/670)

# 581

귀환 마교관

581화

바리탄과 헤어진 사비강과 추량은 멸마궁으로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정말 막바지에 이른 느낌이 듭니다. 따지고 보면 별로 긴 시간이 아니었는데, 사건 하나하나가 힘겨워서일까요? 무척 오랜 시간 싸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그 또한 지나고 나면 빛살처럼 빠르게 느껴질 테지.”

사비강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추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요즘 같으면 정말 사부님이 회귀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아찔합니다.”

“내가 회귀를 하고, 하지 않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국은 인간들의 마음가짐이 문제지.”

“새겨듣겠습니다.”

“너 혼자 새겨듣는다고 뭐가 달라진다더냐?”

“그래도 저라도 새겨들어야죠. 그렇게 작은 한 걸음부터 시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쭈, 제법인데?”

“헤헤. 이래봬도 사부님의 수제자 추량이라고요.”

“널 수제자로 인정한 적이 없는데.”

“헉! 그럼 대체 누굴…?”

“글쎄, 단리정도 있고, 연우경, 염자량, 맹가숙, 설서린… 등 너무 많군. 누굴 뽑아야 하지?”

“하아, 경쟁률이 어마어마하군요. 반드시 제가 수제자가 될 겁니다!”

추량의 너스레에 사비강이 피식 웃어 넘겼다.

가끔 이렇게 추량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곤 한다.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그래, 가끔은 생각 없이 웃고 떠들 필요도 있는 법이지.

모든 일이 끝나면 어디로든 사람이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

매설란만 데리고.

그녀와 함께 아들 딸 하나씩 낳고 행복한 여생을 누리고 싶다.

‘늙다리라고 싫어하려나?’

하긴, 이미 잠자리까지 다 나눈 상황에서 그게 무슨 소용인가?

옆에서 나란히 걷던 추량이 넌지시 물었다.

“기분 좋은 상상을 하시나 봅니다.”

“그래.”

“무슨 상상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강호를 지키기 위해 네 한 몸 희생하는 상황을 그려 보았지. 멋지더군.”

“아, 그럼 다시 상상하셔야겠습니다. 전 그렇게 이타적인 놈이 아니거든요. 저를 위해 강호가 희생하면 모를까?”

“그래서 넌 수제자가 될 수 없는 거야.”

“수제자 포기하죠, 뭐.”

사비강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추량도 헤실헤실 웃다가 물었다.

“그나저나 바리탄은 정말 아름다워 보이더군요. 그게 다 악신의 권능 때문인 거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존야에게는 바리탄의 진짜 모습을 보여드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끔찍한 괴물의 모습을.”

“그건 사실 어디까지나 그의 내면을 보여준 거다. 겉이 아니라, 그가 가진 내면의 모습. 겉과 속 중에서 무엇을 바리탄의 정체성으로 여길 것인가는 개인의 판단에 달렸지.”

“그럼 실제로 바리탄의 외모는 어떤 모습입니까?”

“나도 모른다. 그의 진짜 모습을 본 자는 아무도 없다. 마왕조차도 모른다.”

“그렇군요. 베일에 싸인 바리탄이군요.”

사비강이 발걸음을 멈추고는 추량을 힐끔 돌아보았다.

“뭐가 문제냐?”

“예? 갑자기 무슨….”

“오늘따라 수다스러워.”

사비강의 진지한 눈빛에 추량이 잠깐 움찔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저 원래 수다쟁이잖아요?”

“이 정도로 심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사실… 불안해서 그렇죠.”

추량이 쓴 웃음을 지으며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무리가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이렇게 평화롭기만 하지만… 몸은 느끼고 있는 걸요. 결전의 날이 멀지 않았다는 걸요. 그때가 되면….”

“죽을까 봐?”

“사실 제 죽음은 별로 상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럼?”

“사부님이… 걱정됩니다.”

추량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사실이었다.

결국 마왕과 싸우는 사람은 사비강이 될 것이다.

이 강호에서 마왕을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사비강 밖에 없을 것이기에.

그리고 마왕은 지금까지 강호가 만난 그 어떤 적보다도 강했다.

물론, 사비강도 역사상 전무후무할 정도의 절대 고수다.

하지만 마왕을 이길 수 있을까?

사비강은 강호의 마지막 희망이자 자존심이었다.

그런 사비강이 꺾인다면?

생각도 하기 싫다.

하지만 자꾸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툭!

사비강이 추량의 어깨를 쳤다.

“뭘 믿어야 할지 모를 때는 차라리 희망을 믿어라. 그것도 인간만이 가진 능력 중 하나다.”

추량이 잠시 바라보다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 희망마저 무너지는 순간이 올까 봐 또 두려웠다.

그래도 그때는 그때다.

지금은 사비강을 믿는 거다.

“이렇게 전부 사부님만 믿고 의지하니, 어깨에 짊어진 짐이 엄청 무겁겠습니다.”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멍청하긴. 그건 짐이 아니라, 힘이야.”

**

사비강과 헤어진 바리탄은 오솔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갔다.

마침 저만치 두 아이가 장난을 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앞을 보지 않고 달리던 두 아이 중 하나가 바리탄의 다리에 다가와 부딪쳐 넘어지고 말았다.

바리탄은 애초에 피할 생각도 없었지만, 부딪쳐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줄 생각도 없었다.

그가 무감한 시선으로 넘어져 우는 아이를 바라보자, 형으로 보이는 아이가 쭈뼛쭈뼛 다가와 동생을 달래 주었다.

하운트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나서면서 손을 뻗었다.

벌레 따위가 날아와 부딪치면 죽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바리탄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고는 아이에게 물었다.

“괜찮으냐?”

만약 바리탄을 아는 누군가 이 모습을 보았더라면, 경악을 금치 못했으리라.

물론, 바리탄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감정도 서려 있지 않았지만, 아이의 상태를 묻는 것 자체만으로도 놀랄 일이었다.

아이가 대답하지 않고 울기만 하자, 바리탄이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까진 무릎 부위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어디 보자.”

잠시 후, 바리탄의 손바닥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더니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고는 신기한 표정으로 무릎을 보았다.

무릎의 상처가 거짓말처럼 나았다.

“와…”

형과 동생이 동시에 감탄을 터뜨렸다.

“이제 괜찮으냐?”

“응!”

동생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자, 형이 꿀밤을 쥐어박고는 말했다.

“네, 라고 대답해야지.”

“응! 네!”

“그럼 됐다. 가봐라.”

바리탄이 몸을 일으키자, 아이들이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는 언덕길을 따라 달려 내려갔다.

하운트는 이 모든 과정을 그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꽤 오랜 시간 바리탄을 섬겼지만, 이런 모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그가 뭐라고 입을 열려는데.

“저기요!”

문득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에 두 마족이 몸을 돌렸다.

큰 아이가 쭈뼛쭈뼛 다가오더니 품에서 군옥수수 하나를 꺼내 뚝 부러뜨리더니 바리탄과 하운트에게 각각 내밀었다.

“드세요. 맛있어요.”

하운트가 실소를 터뜨리고는 아이를 잿더미로 날려 버리려는데.

“고맙다.”

놀랍게도 바리탄이 그것을 받아드는 것이 아닌가?

하운트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자, 큰 아이가 활짝 웃었다.

“동생이 그러는데… 누나가 정말 예쁘대요.”

말을 마친 아이가 휙 몸을 돌리더니 동생이 있는 곳까지 달려갔다.

바리탄은 잠시 서서 아이를 바라보다가 군옥수수를 아무렇게나 길가에 던져 버렸다.

그제야 하운트도 던져 버리고는 손을 바지춤에 닦았다.

하운트가 바리탄을 힐끔 돌아보았다.

“저 아이의 눈에는 주군께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나 봅니다.”

“그런 지도.”

시큰둥하게 대답한 바리탄의 시선이 한동안 아이들에게 머물렀다.

왠지 흥미로운 눈빛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바리탄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저만치 아래의 마을 전경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하운트가 넌지시 물었다.

“안 가십니까?”

“어딜 가는 것이냐?”

“예?”

하운트가 영문을 몰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바리탄이 하운트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하운트는 바리탄에게서 어떤 낯선 감정 같은 것을 보았다.

아니, 그건 감정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공허했다.

그래, ‘허무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눈빛.

언제나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힌 눈빛만을 보았기 때문에 하운트는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바리탄의 질문.

단순히 지금 어딜 가고 있느냐고 묻는 것은 아닐 터였다.

하운트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주군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너는 내가 어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무엇을 보며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제야 하운트는 바리탄이 묻는 의미를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주군은 마왕이 되실 분이십니다. 그자리가 주군이 향할 곳입니다.”

“마왕이 되면?”

“마계를 평정하시게 될 겁니다.”

“그러고 나면?”

“무엇이든 주군이 원하는 대로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며, 뜻하는 건 무엇일까?”

“저 같은 것이 감히 어찌 주군의 높은 뜻을 헤아리겠습니까?”

바리탄이 피식 웃었다.

“그런가? 그만 가지.”

바리탄이 다시 몸을 돌렸다.

둘은 말없이 언덕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그렇게 일 리 정도를 걸었을 때였다.

바리탄이 걸음을 멈추었다.

이번에도 하운트가 영문을 몰라 입을 열려는데,

“이제 그만 나오지 그러나?”

바리탄의 입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하운트가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고는 주위를 경계했다.

다음 순간.

스스스스슷.

양쪽 숲에서 각각 네 명의 마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모두 전신에서 검은 기운을 연기처럼 풀풀 휘날리고 있었다.

바리탄은 그들의 정체를 바로 알아보았다.

“비헤더즈.”

마왕의 직속 암살대.

악신의 가호를 받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전투력은 웬만한 귀족들을 능가한다.

“어딜 다녀오는 길이신가? 바리탄.”

피부가 얼음장처럼 새하얀 마족이 잔뜩 쉰 듯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는 비헤더즈에서 수장이라고 볼 수 있는 드라칸이었다.

“글쎄, 어딜 다녀오는 길로 보이나?”

바리탄이 희미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그때.

“사비강을 만나고 오는 길일 테지.”

문득 들려온 목소리.

하운트가 황급히 돌아서니, 능운파가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네놈…! 우릴 배신할 생각인가?”

하운트의 외침에 능운파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역시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군. 너희들이 날 끌어들일 거라고 생각했지. 애초에 배신자는 너희들이 아니었나?”

“뭣이?”

“이미 너희들의 반응을 예상하고 내가 저들에게 언질해 두었다. 네놈들이 나도 끌어들여서 적으로 여기도록 만들 거라고. 그렇게 비헤더즈가 내게 신경 쓰는 사이 네놈들은 도망칠 생각이었을 테지.”

“이놈…!”

하운트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차아앙!

능운파가 검을 뽑아 들었다.

바리탄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네 명의 비헤더즈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터였다.

한데 능운파까지 가세하다니.

어차피 제거하기로 한 능운파였지만, 이런 방식으로 싸우길 바라진 않았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군.’

스르르릉.

바리탄이 천천히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방심하지 마라. 하운트.”

“예, 주군!”

하운트가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두 손으로 검을 잡았다.

비헤더즈 중 한 명이 말했다.

“결국 끝까지 해보겠다는 거군.”

“그럼 고분고분 죽어 줄 거라 생각했나?”

“좋다, 그럼.”

네 명의 비헤더가 일시에 마력을 끌어올리자, 주변은 순식간에 죽음의 땅처럼 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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