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80화 (580/670)

# 580

귀환 마교관

580화

자콕의 몸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폐하께 죽임을 당한다!’

이유?

그건 모른다.

신탁이었다.

꿈으로 내려왔다.

자신이 오늘 내로 마왕 타란트에게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예지!

최근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근본적인 이유였다.

자콕이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

“폐, 폐하께서는 이 시간에 어찌 저를 찾아오셨는지요?”

“글쎄… 그냥 이끌려서.”

자콕은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마왕이 자신의 방에 온 것은 단순한 본능인 것이다.

본능의 악신이 그를 가호하기에.

그리고 그 본능의 악신은….

“너를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군.”

“헉.”

자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끝났다.

마왕이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조금이라도 일찍 신탁을 주지 않은 악신이 원망스러웠다.

타란트가 천천히 자콕에게 다가왔다.

자콕은 보이지 않는 사슬에 얽매인 것처럼 꿈적도 할 수 없었다.

마침내 타란트가 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찍었다.

“미안하군. 내 본능이 너를 죽여야만 모든 걸 이해할 것이라 얘기하는구나.”

“폐, 폐하….”

쩌적… 쩍…!

마침내 자콕은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는가 싶더니 몸이 용암덩어리처럼 갈라지면서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속에서부터 타오르는 불길이었기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쉬르르르르르…!

그의 몸이 한 줌 잿더미로 변하면서 타란트의 콧속으로 흡수됐다.

타란트의 눈동자가 잠깐 노랗게 물들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과연. 그리 된 거였군.”

**

대회의장에 모인 마족들은 안절부절 못했다.

장내 분위기는 어두웠다.

빈자리가 많았다.

오늘따라 수다스러웠던 아라니우스의 공백이 더 크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그는 영원히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수뇌 인사가 모두 모인 자리였지만, 그 분위기가 어찌나 엄중한지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지경이었다.

루시달 공작이 죽었다.

정말이지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일단 공식적인 보고는 사비강이 멸마궁도들을 이끌고 먼저 루시달 공작의 소환지를 급습했다.

이 과정에서 바리탄 후작과 능운파가 루시달을 돕기 위해 급히 이동했지만, 이미 루시달은 사망한 후였다는 보고였다.

이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능운파와 바리탄은 후퇴해서 다시 소환지로 복귀한 상태.

하지만 이 공식 보고를 그대로 믿는 마족은 거의 없었다.

바리탄이 누구던가?

한때 마왕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반역을 모의했던 역적이 아닌가?

수뇌 인사 대부분은 제일 먼저 바리탄을 의심했다.

물론, 능운파를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이제 막 마족이 된 반쪽짜리가 그런 무모한 짓을 벌일 까닭이 없을 거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아들러 백작만이 조심스럽게 의심을 품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의심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가 직접 능운파의 배신 가능성을 언급하진 않았다.

능운파를 마족으로 만든 게 바로 본인이기 때문이다.

능운파가 배신을 했다면, 그 원망의 화살이 자신에게도 날아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게다가….

‘자콕 백작이 보이지 않는군.’

최근 들어 왠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던 자콕 백작이었다.

한데 그가 오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마왕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마왕은 그 이유를 안다는 뜻.

어쩌면 마왕이 직접 자콕 백작을 죽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타란트는 그런 자다.

언제 어떻게 행동할지 모를 자.

본능의 악신이 그를 가호하기에 더욱 예측이 어렵다.

어쩌면 미래를 정확히 예지하지 못한 자콕 백작의 책임을 물어서 그를 제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들러는 사비강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마왕에게 직접 알렸다.

한데 마왕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알고 있다.”

무뚝뚝했던 그 한 마디.

그걸 알고도 저렇게 태평하다니.

마왕이 저런 태도를 취할 때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아직은 모든 상황이 그의 통제권 안에 있다! 심지어 루시달 공작의 죽음까지도!’

그러지 않다면 지금쯤 마왕은 어떤 행동을 보였으리라.

그때, 수뇌 인사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나서며 말했다.

“오로지 멸마궁의 공격만으로 루시달 공작이 전사했다는 건 도저히 믿기가 어렵습니다. 분명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겁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당황하지 않고 원인을 찾아 밝혀야 합니다.”

“원인을 찾을 게 뭐 있겠소? 사실 우리 모두 짐작하고 있지 않소?”

누군가 불쑥 말했다.

그 순간 장내가 다시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들 마왕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마침내 타란트가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가 장내를 훑어보면서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귀족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폐하, 지금 인간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합니다. 바리탄 후작이 폐하를 배신하고 사비강과 손을 잡았다는 소문입니다. 그냥 간과해서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폐하. 루시달 공작은 바리탄 후작이 죽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젠 그를 지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하운트 백작이 바리탄 후작과 작당을 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적어도 원망하고 징벌할 대상이 하나라도 있으면 분위기는 반전될 수 있다.

때문에 모든 마족들은 바리탄을 향해 저주에 가까운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한동안의 소란이 잠잠해지자,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타란트의 시선이 아들러에게 향했다.

아들러가 얼른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바리탄 후작이 여러모로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진상을 확실히 조사하신 다음 그가 배신을 한 게 사실이라면 일찌감치 제거하시는 게….”

“진상 조사는 필요 없다.”

“예…?”

“비헤더즈를 보내지.”

순간 장내가 술렁거렸다.

비헤더즈는 마왕의 직속 암살대인데, 모두 네 명의 마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이 나서기만 하면 죽은 자의 영혼마저 찾아내서 소멸시킨다는 말이 떠돌 정도.

즉, 그들이 나선다는 것은 그만큼 마왕이 이번 사태를 엄중히 판단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족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옳은 결정이십니다!”

타란트가 다시 아들러를 돌아보았다.

“능운파에게는 비헤더즈와 함께 바리탄을 제거하도록 지시하라.”

“명 받들겠습니다.”

아들러 백작이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대꾸했다.

**

“지령이 내려왔다.”

능운파의 말에 구윤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내용입니까?”

“나보고 바리탄을 제거하라더군.”

“결국 마왕이 먼저 줄을 끊기로 결정했군요.”

“이미 예상했던 바가 아니던가?”

“그렇긴 합니다만.”

구윤이 쓴 웃음을 지었다.

능운파가 뒷짐을 지고는 생각에 잠겼다.

“군사의 생각에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맹주님 혼자 바리탄을 제거하라던 가요?”

“그럴 것 같으면 이렇게 고민할 것도 없지.”

“하면…?”

“비헤더즈를 보낸다고 한다.”

“비헤더즈라면…?”

“마왕 직속 암살대. 네 명의 마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투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거기에 나까지 합세하라고 했으니, 이참에 바리탄을 확실히 제거하겠다는 뜻이지.”

“그럼, 그들이 마왕의 오른팔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그런 셈이지.”

“맹주님 뜻은 어떻습니까?

“바리탄과 함께 비헤더즈를 제거해야 하지 않겠나?”

“흐음.”

구윤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침음을 흘리자, 능운파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보았다.

“자네 생각은 다른 것 같군.”

“이쯤에서 계획을 바꾸도록 하죠.”

“계획을 바꾼다?”

“바리탄 후작을 너무 키워 버리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추후 마왕을 제거한 다음, 바리탄 후작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면…?”

“우선은 비헤더즈와 손을 잡고 바리탄을 제거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때 맹주님이 바리탄의 악신을 흡수하시는 겁니다.”

능운파가 눈을 빛내며 흥미를 보였다.

구윤이 말을 덧붙였다.

“이때 가장 좋은 결과는….”

“양패구상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바리탄을 제거하고, 마왕의 오른팔도 꺾어 버릴 기회지요.”

능운파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자네도 제법 간악해졌군.”

“모두가 의협을 부르짖을 때, 군사는 적어도 그런 감정들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능운파가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랬군. 어쨌든 나쁘지 않은 방법이야. 그렇잖아도 바리탄은 내 손으로 직접 제거하고 싶었으니까.”

**

멸마객잔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방.

사비강과 추량 그리고 바리탄과 하운트가 마주 앉아 있었다.

하운트는 시종 불만스런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강호에 퍼진 소문을 어쩔 생각이냐?”

그러자 추량이 얼른 나섰다.

“멸마궁주님이시오. 예를 갖추시오!”

“이런 건방진…!”

하운트는 이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멸마궁과 관련된 인간들은 어째서 하나 같이 이 모양이란 말인가?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소문이라면?”

“몰라서 묻는 건가! 바리탄 후작님이 배신을 했다는 소문이 인간들 사이에서 나돌고 있다. 이 소문이 흑성의 귀에 들어가면…!”

“어차피 마왕은 그쪽의 배신을 알고 있을 텐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공공연하게 떠들게 되면….”

“뭐, 의미 없는 신세 한탄은 그쯤하고.”

“뭐, 뭣이? 신세 한탄?”

“우리도 최대한 입단속을 한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사람이라면 눈이 달렸고, 귀가 달렸고, 입이 달렸으니. 저들이 보고 듣고 떠드는 걸 어쩌겠나?”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운트가 으르렁거리는데, 바리탄이 손을 들어 제지하고는 사비강을 보았다.

“이제 다음 계획은 뭐지?”

“흐음. 칼날의 방향을 바꾸는 게 어떨까?”

“무슨 뜻인가?”

바리탄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자, 사비강이 그를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그쪽도 너무 오래 끌고 가면 걸리적거릴 존재가 있지 않은가?”

“능운파를 말하는 건가?”

사비강은 대답 대신 빙그레 웃기만 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바리탄이 툴툴 웃었다.

“확실히 인간의 간악함은 마족도 울릴 지경이군.”

“마음에 안 들면 한 귀로 흘리고.”

“아니. 아주 마음에 드는군. 하지만 그전에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능운파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지.”

“넘지 말아야 할 선?”

“원래 나와 이 자리에 함께 있어야 할 자를 그가 납치해 갔다. 인질이지.”

“그 애송이 군사를 말하는 거군.”

“그래. 능운파를 제거한 후, 루시달 공작을 죽인 것도 그라고 보고하면 어떨까?”

바리탄의 입매가 비열하게 틀어졌다.

“가끔 인간이 마족과 너무 닮아서 놀랄 때가 있지. 바로 지금처럼.”

이 역시 긍정의 뜻이었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받아들인 걸로 알지. 능운파를 제거하는 시점은 추후 따로 알려 주겠다. 참, 만약을 대비해서 안전가옥을 만들어 두었다.”

“안전가옥?”

“일전에 우리가 만났던 그 기루를 기억하나?”

“기루가 아니라 다 쓰러져 가던 정자가 아니었던가?”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곳. 무랑의 술법이 펼쳐져 있으니, 적들에게 발각되진 않을 거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그곳으로 피신하도록.”

바리탄이 냉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쓸데없는 걱정을. 갈 데가 없어 한낱 인간에게 기댈까?”

“그래도 앞일은 모르는 거지.”

사비강이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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